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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항아리

레무이 2017. 1. 15. 15:45

이것은 내 체험 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이야기이다.


대학 1년째 가을, 내 오컬트길의 스승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의욕이 없다고 할까, 감이 신통치 않다고 할까.

내가 “심령 스포트라도 데려가 주세요-” 라고 해도 건성으로,

가끔 주머니에서 1엔 동전을 4개 정도 꺼내서는 손등 위에서 흔들어 던지고,

“안돼. ‘낌새’가 안 좋아”

라고 중얼거리고는 누워 뒹구는 형편이었다.

그러더니 어느날 갑자기 “손금 좀 보여줘” 하고 내 손을 붙잡았다.

“이건 안 좋네. 너무 안 좋아서 난 잘 모르겠는걸. 신경 쓰이지? 그치?”

말은 제멋대로 잘도 한다.

“그럼 가자 가자”

억지였지만 스승에게 의욕이 생긴 것은 기뻤다.


어디로 가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스승을 따라 지하철을 탔다.

도착한 곳은 옆 현의 중심도시에 있는 역이었다.

지하철역을 나와, 역 앞 아케이드 거리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상점가 한 구석에 손글씨로 “손금”이라고 쓴 종이를 가판대에 얹어놓고 앉아 있는 아저씨가 있었다.

스승은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 ‘우리 친척’이라고 했다.

무네요시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손금쟁이는 “그걸 보러 왔구나” 하고는 언짢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네요시씨는 그 지역에서는 꽤 이름이 있는 사람으로, 아사노 하치로 계열이라고 했다.

나는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한 채로 일단 손금을 봤는데,

여자 때문에 고생할 상이 나왔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나쁜 말은 듣지 않았다.

금성환이라는,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 사이에서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이어져 있는 반원이

진하게 나와 있다는 말이 기뻤다. 예술가의 상이라고 한다.

선배는 안 보나요? 묻자, 무네요시씨는 스승을 노려보고는

“안 봐도 알아. 죽을 상이 나왔어”

스승은 헤헤헤 웃을 뿐이었다.


밤에 가게를 닫을 때까지 기다려서야, 무네요시씨의 집에 갈 수 있었다.

큰 일본식 가옥이었다.

손금을 보는 일은 도락인 듯 했다.


저녁밥을 같이 먹고, 묵고 가라는 말에 욕실을 빌려 썼다.

씻고 나오니, 스승이 와서는 “따라 와” 랜다.

부지 뒤쪽에 있는 광에 가니 무네요시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확실히 너는 볼 권리가 있지만, 탐탁치는 않구나”

스승은 뻣뻣한 소리 하지 말라며 광 안으로 들어갔다.

광 안쪽에는 밑으로 내려가는 사다리처럼 생긴 계단이 있어서, 우리들은 그것을 내려갔다.

스승의 이번의 목적인 듯했다.

나는 두근두근했다.

스승의 눈이 반짝였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반드시 위험한 것과 마주치게 된다.


생각한 것보다 깊어서, 거의 지하 2층쯤 되는 데까지 내려간 곳에는 다다미가 깔린 지하실이 있었다.

노란 램프등이 천정에 걸려 있다.

다다미 6평 정도의 넓이에 벽은 바른 것 없이 흙벽 그대로였고, 다다미도 밑에는 바로 흙인 듯 했다.

본래는 집에서 직접 만든 방공호였다고, 나중에 알았다.



방 구석에 이상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항아리였다.

내 가슴까지 오는 높이에, 양팔로 다 안을 수 없을 정도의 둘레.

게다가 흔히 볼 수 있는 도자기가 아니라, 새끼줄무늬가 있는 질항아리다.

“이거, 죠몬 토기 아니에요?”

무네요시씨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야요이식이지. 곡물을 저장하는 그릇이야”

그런 게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하고 당연히 생각했다.

스승은 항아리에 가까이 가서는 물끄러미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건 저녀석 할아버지가 전쟁 때 북새통을 틈타서 슬쩍 해온 거야”

무네요시씨는 나도 알고 있는 유적 이름을 말했다.

그 때, 스승이 입을 열었다.

“이게 곡물을 저장했다고?”

웃는 듯했다.

노란 불빛 아래에서마저, 항아리는 생기가 없는 어두운 색을 띄고 있었다.

무네요시씨가 신음했다.

“저녀석 할아버지는, 이 항아리는 사람 뼈를 거두던 거라고 했지”


“보인다는 거야. 항아리 주둥이를 들여다보면, 죽은 자의 얼굴이”

나는 떨었다.

가을이라고 해도, 아직 초가을이다. 쌀쌀하려면 아직 멀었을 터인데, 한기가 덮쳐왔다.

“가끔씩 항아리에서 죽은 자가 기어 나온다더군.

죽은 자는 방을 가득 채우고, 광 안을 가득 채우고, 밖에서 빗장을 지르면 마을 전체에 울리는 소리로 운다고 했어”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찔아찔하다. 머릿속을 파리떼가 윙윙대며 날아다니는 것 같다.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이 항아리는 위험하다.

영체험은 이래봬도 꽤 겪어왔다.

그 경험이 말하고 있다.

스승은 항아리 주둥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왔어. 기어 올라오고 있어. 기어 올라와. 기어 올라오라구”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다.

귀울림이다. 파리떼와 같은.

이제까지 겪어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귀울림이 들린다.


탁 소리가 나며 불이 꺼졌다.

꺼지는 순간 푸르스름한 인이 항아리로부터 피어오르는 것이 확실히 보였다.

“안되겠다, 나가자” 무네요시씨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보라구! 이녀석들은 2천년이 지났어도 아직 이 속에 있다구!”

무네요시씨는 부르짖는 스승을 잡았다.

“이자식들 사람을 먹어치웠다구! 이게 우리들의 원죄다!”

나는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기로 와. 내 제자라면 봐. 들여보라고. 이 어둠을 봐.

피안의 어둠에는 바닥이 없어. 저세상 따위, 그런 구원은 없는 거라구.

식인이다, 동족을 잡아먹은 업이다! 나는 이걸 볼 때마다 확신해!

인간은 본질부터가 살 자격 따위 없는 쓰레기라고!“ 


나는 무턱대로 사다리를 올라 달아났다.

무네요시씨는 스승을 끌고 올라와, 광을 닫고는 오늘은 이제 자고 내일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날 밤, 내내 거센 바람이 불어쳐 나는 귀를 막고 잤다.

그 사건 후로, 스승은 기운을, 의욕을 되찾았지만 나는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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