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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괴담

[1311st] 산의 측량

레무이 2023. 3. 2. 23:24

639 : 장문의 글 죄송 : 03/02/04 17:50
지난 달 일입니다. A와 나는 산에 측량을 하러 갔습니다.

산에 측량하러 갈 때는 최소 3명이 가는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한 사람이 독감에 걸린데다가 달리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둘이서 가게 되었어습니다.
하지만 역시 불안해서 경계를 안내해 주는 동네 아저씨에게 측량도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요.
아저씨는 일당만 주면 괜찮다고 해서 우리 셋이서 산에 들어갔습니다.

전날 내린 눈으로 산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폴이 잘 보여서 측량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한참을 걸려 능선까지 측량하고 있는데, 아저씨의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아저씨는 한참을 통화하다가 통화를 마치자 갑자기 볼일이 생겨서 내려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얘기가 다르잖아'라고 생각했는데, "나머지는 오솔길을 따라서 땅의 경계니까, 거기까지만 측량하면 된다" 하더라고요,
오솔길을 따라가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뭐 있겠어? 같은 그런 분위기로, 결국 A와 나 둘이서 계속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와 헤어지자마자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면서 날씨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눈이 내리면 위험하겠어"라고 말하며, A와 나는 빨리 끝내자 생각하고 속도를 높였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산을 측량할 때 포켓 나침반이라는 기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침반 자석 위에 작은 망원경이 달려 있고, 그것을 향하는 방향의 방위와 고저각을 알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가볍고 튼튼하고 다루기 쉬워서 산을 측량할 때 아주 유용하죠.
나는 나침반을 수평으로 세우고, 폴을 들고 서 있는 A를 향해 망원경을 들이댔습니다.
그런데 눈 덮인 땅과 나뭇가지와 이파리에 눈이 쌓인 나무숲은 보이지만, 폴도 A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겁니다.
망원경을 조금 움직이자 긴 머리카락의 머리가 보였고, 이제 폴을 찾아 눈금을 읽기 위해 초점을 맞췄습니다.
"어?"
초점이 맞춰지자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헬멧을 쓰고 측량을 하고 있었는데, A는 어째선지 헬멧을 벗고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A의 머리는 갈색 머리였을 텐데 지금 보이는 것은 새까만 머리카락입니다.
'이상하다'
망원경에서 눈을 들어보니 A가 마스크를 쓰고 이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뒤쪽 나무숲 틈새에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다시 한 번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며 조금 움직여 보았습니다.


여자가 있었습니다. 서 있는 나무에 기대어 뒷짐을 지고 서 있습니다.
흰 옷을 입고 있었고,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고 있었습니다.
'이런 설산에... 왜 여자야?'
나는 깜짝 놀라 망원경에서 눈을 뗐습니다.
"어이!"
A가 내 쪽으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러자 신호라도 받은 듯 여자는 경사면을 내려와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뭐하는 거예요? 그러지마세요~"
A의 그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나침반을 읽고 야장(野帳)에 기입한 후, 나는 종종걸음으로 A의 곁으로 달려가 물었습니다.
"방금 네 뒤에 여자가 서 있었어, 알고 있었어?"
"또 그런 말 하지알아요, 그만하세요~"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하던 A도 내가 진지하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정말이에요? 아니, 전혀 몰랐어요"라며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A와 나는 다시 한 번 나무숲 쪽을 둘러봤지만, 나무와 눈만 보일 뿐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등산하는 사람 같은거 아닐까요?"
"아니,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어..."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그 여자는 이 설산에서 혼자서 짐도 없이, 게다가 반팔 옷을 입고 있었어요.
"그거 정말 위험하지 않아요? 미친 여자라든가..."
A는 상당히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나도 겁이 나서 안절부절 못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주변은 점점 어두워졌고, 드디어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끝내고 산을 내려가자. 이봐, 큰일이야."
우리는 서둘러 측량 작업을 재개했습니다.

날씨는 점점 더 악화되어 눈보라처럼 되어갔습니다.
폴을 들고 서 있는 A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고, 순식간에 쏟아지는 눈 때문에 오솔길(小路)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휴대폰도 권외가 되어 통화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조급해져서 빨리 산을 내려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나침반을 설치했습니다.
수평도 제대로 잡지 않고 A를 향해서 망원경을 들이대며 그쪽을 바라보았는데...

그랬더니 아까 그 여자가 A의 바로 뒤에 서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앞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눈보라 때문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A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가만히 서 있을 뿐입니다.
"이봐!"
내가 말을 걸어도 A는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여자 쪽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급히 망원경을 그쪽으로 돌려서 겁에 질린 채로 들여다보니, 여자는 눈을 감고 A의 뒷머리를 잡고 뒤에서 귀에 입을 대고 있었습니다.
뭔가 속삭이는 것 같았어요.
A는 도망치지도 않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그런 A에게 계속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A의 곁을 떠나 눈 덮인 경사면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A도 그 뒤를 따라 나무숲 속으로 들어가는겁니다.
"어이, A! 뭐하는 거야! 돌아와! 빨리 돌아와!"
하지만 A는 그런 내 목소리를 무시하고 눈보라 속에서 여자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나는 측량 도구를 던져버리고 뒤를 쫓았습니다.

A는 우왕좌왕하며 숲 속을 헤매고 있었어요.
"위험해! 진짜 조난 당할 거야!"
이대로라면 나도 위험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폭발할 것 같았습니다.
주변은 눈보라로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A에게 다가갔습니다.
"A! 정신차려! 너 이러다 죽어!"
그러자 A가 이쪽을 돌아보았습니다.
A는 멍한 눈으로 엉뚱한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혀 의미도 알 수 없는 말을 외쳤습니다.
"*******! !"
입이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크게 벌어졌습니다. 너무 심하게 벌려서 아래턱이 가슴에 붙을 정도였어요.
혀가 늘어져 있고, 입 가장자리가 찢어져 피가 나고 있었어요.
저건 완전히 턱이 빠져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이번에는 내 쪽으로 다가오는겁니다.
"...****! !"
그게 한계였습니다.
나는 A도, 측량 도구도, 모든 것을 버리고 무아지경으로 산을 내려갔습니다.
차까지 돌아와서 휴대폰이 잡히는 곳까지 달려가서 회사와 경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곧이어 수색대가 산에 들어갔고, 나는 취조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 여자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결국 본 그대로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은 담담하게 조서를 작성하고 있었어요.
다만 'A에게 여자가 무언가를 속삭였다'는 부분은 반복해서 질문했습니다.

다음 날, 시신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하얀 여름옷에 검은 머리.
제가 봤던 그 여자의 특징과 일치했어요.

나는 경찰에 불려가서 그때의 상황을 다시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때 경찰이 그 시신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여자의 신원은 금방 알 수 있었대요.
작년 여름에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에서 실종된 여자였다고 합니다.
다만 왜 그런 산 속에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때의 일은 이미 잊고 싶었기에 그런 건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듣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신경쓰이는 점이 있었어요.
여자의 시신을 살펴보니 두 눈이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A 녀석이 그런 짓을 했나 싶었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고, 그 상처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눈은 전혀 보이지 않았을 텐데."
경찰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A씨의 행방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하면 A가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면 솔직히 나는 더 이상 A를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어 지난 주에 머리를 자르고 삭발로 바꿨습니다.


655 :당신의 뒤에 무명씨가... :03/02/04 19:16
>>639
어라? 이 이야기
· 뒷머리를 잡아 홀린다
· 눈이 손상되어 있다
· 삭발을 했다

이거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


664 :당신의 뒤에 무명씨가...:03/02/04 20:50
>>655
엄청 궁금하네. 알려줘.


667 :655 :03/02/04 20:58
>>664
단순한 기억이라 자신없습니다만,
이전 스레드의 파트? 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본 것 같은...
폐가에서 뭔가에 빙의되고 신주씨가 나오는 거..
뒷머리를 잡아당겨서 빙의한다든가 뭐라든가...


70 :당신의 뒤에 무명씨가... :03/02/04 21:06
>>667
"자기 책임?"


672 :655 :03/02/04 21:51
>>670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방금 전 과거 로그의 part13 보고 왔습니다. 그 이야기입니다.


673 :639 :03/02/04 23:12
>>670 672
아,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저도 그 이야기, 예전에 읽은 적이 있어서,
그리고 이번 일로 신경이 쓰여서, 머리를 삭발한거였어요.

A도 머리를 길렀고요.
그 이야기(자기 책임)의 사투리를 보면 여자가 실종된 마을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나는 뭐, 마음대로, 여자에게 빙의된 무언가가 A에게 옮겨갔고 여자는 죽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A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니 왠지 무서워서 머리를 잘랐어요.

여기에 글을 쓴 건 억측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반응을 보고 싶었어요.
제 불안이 (자기 책임 이야기와 공통점이 있는) 평범한 수준인지, 아니면 망상 수준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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