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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천사 (2/4)

레무이 2017. 1. 15. 16:19

그 때 겁먹은 듯한 눈으로 날 보고 있던 두 여자애의 이름을 양쪽 다 새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애도 있었어?’라는 것이 최초의 감상이었다.

그러고 보면 안경 낀 애는 최근 2, 3일간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집이 근처라는 같은 반 여자애가 어제 마침 지나가다가 그녀의 집 앞에 멈춰서 있는 구급차를 보았다는 것이다.

당시 모여 있던 이웃 주부 여러명에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학교를 쉬고 혼자서 집에 있던 시마자키 이즈미가 욕실에서 손목을 그었다던가.

마구 흐르는 피에 무서워져서 스스로 구급차를 부른 것 같았다. 경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지만 그 후 여하튼 입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가 아침조회 전에 이미 반 교실에 퍼져나가 있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근처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경솔한 흥미와 약간의 죄악감을 가지고 소문에 대해 숙덕거리고 있었다.

‘어째서’라는 부분에는 크던 작던 자신들도 관계되어 있다는 자각을 갖고 있는게 틀림 없었다.

겉으로는 따돌림 당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촌스러운 녀석, 지루한 녀석이라는 딱지가 붙은 아이가 반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는 누구든지 알고 있으니까.

서로를 감싸듯 언제나 함께 있던 타카노 시호는 주위의 호기심 어린 눈을 견딜 수 없어진 건지 아니면 친구의 자살미수라는 선택에 쇼크를 받은 건지,

1교시에 새파란 얼굴로 조퇴를 했다.

무거워보이는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가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그 뺨의 반창고가 1주일 전부터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런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에 동참하는 것은 싫었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요코에게 물어보았다.

‘아아, 타카노씨의 반창고? 그 애 아마 발리볼 부니까......’

상당히 훈련이 호되다고나 할까, 구박당하는 모양이야.



그렇게 말하는 요코도 뉴스가 쇼크였던지, 언제나처럼의 시원시원한 태도가 아니다.

나부터도 전혀 익숙하지 않은 죄악감이 조용히 어깨를 짓누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 그 애들은 나를 그렇게까지 무서워했던 걸까.

머리 속에 새까만 구름이 낀 것만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일까, 3교시 쉬는시간에 반에서 소곤소곤 오고가는 이야기에 슬며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는, 어느 단어에 강하게 관심이 쏠렸다.

‘마사키 쿄코’

그런 이름이 어지러이 뒤섞여 날아다니는 무수한 대화 속에서 명백한 이질감과 함께 내게 날아든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룹 쪽으로 다가가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에? 그러니까, 그 마사키씨한테 시마자키씨가 찾아가고 있었다는 얘기야.

왜냐니, 잘 모르지만 그 애, 뭔가 점술인가 하는 것 같으니까 고민상담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고맙다고 말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마사키 쿄코. 1주일 전 입구에서 내게 말을 걸어온 여자애. 그 때 그녀의 말이 머리 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가급적이면 원한은 사지 않는 편이 좋아’

설마하니 그건 눈 앞에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러브레터를 난폭하게 다룬 나에게 대한 경고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 외에 다른 것을 알고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참기 힘들어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실을 나간다.

여기저기에 세라복 무리들이 모여 술렁이는 복도를 지나, 마사키 쿄코가 있을 교실로 향했다.

교실 앞에 도착하자 문은 활짝 열려있었기 때문에 살짝 안을 들여다 보았다. 몇명인가의 여자애가 나를 눈치채고 거리낌없는 시선을 향해 온다.

이 반에 대해선 잘 모르기 때문에 마사키 쿄코가 평소 어디쯤에 앉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훑어본 결과,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가벼운 실망을 느꼈을 무렵, 본 적 있는 얼굴과 맞닥뜨렸다.



‘이시카와 씨’

라고 부르자, 상대방도 나를 알아본 듯 웃는 얼굴로 문까지 다가왔다.

‘치히로쨩, 무슨 일이야?’

같은 중학교였던 아이다. 그렇게까지 친했던 건 아니지만, 이 인연에 의지해 보자.

‘마사키씨는 이 반이지?’

이시카와씨는 순간 표정을 딱딱히 굳혔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고 말한다.

‘그래, 하지만 아까 조퇴했어’

어깨를 툭툭 치며 이끌려 복도 구석에 몸을 맡겼다. 리놀륨의 바닥이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저기, 시마자키 이즈미씨에 관한 거지?’

놀라면서도 끄덕였다. 아무래도 소문은 이렇게 먼 교실까지 단기간에 불똥이 튄 모양이다.

이시카와씨의 말에 의하면, 시마자키 이즈미는 정말로 마사키 쿄코에게 때떄로 찾아왔던 모양이다.

그리고 교실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무언가를 서로 얘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사키 쿄코에겐 그녀 뿐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몇명인가의 여자애들이 마치 여왕을 우러르듯 찾아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마사키씨 말이야, 뭐라고 할까 사람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차가운 눈빛을 하잖아.

엄청 미인이니까 그게 오히려 오싹하다고나 할까, 무서울 정도로. 말을 해봐도 가끔 의미를 알 수 없는 얘기를 하지 않나.

반 애들 전부 다 그 애를 경계해서 피하고 있다는 느낌이려나’

내가 받았던 첫 인상과 똑같다. 그녀에겐 긴장을 풀 수 없게 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



‘요전에 말이야, 시마자키씨랑 둘이 마주앉아서 말이야. 뭔가 책상 위에 트럼프같은 카드를 늘어놓고 있는거야. 뭔가, 흙 토(土)자 모양으로. 기분 나빴어.’

뭐지. 마사키 쿄코가 자주 하고 있다는 점술의 일종인가.

‘시마자키씨는 뭘 하러 왔었던 걸까’

이시카와씨는 고개를 흔들곤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그저, 그 때 마사키씨가 뭔가를 말해서 시마자키씨가 울고 있었다나봐’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시카와씨는 시마자키씨가 자살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사키 쿄코에게 속마음을 떠보려 했다고 한다.

‘어째서 시마자키씨가 자살같은걸 하려 했던 걸까. 마사키씨는 알겠어?’ 하고.

‘뭐라고 대답했어?’

나도 모르게 톤이 높아져 버렸다.

‘그게......’

이시카와씨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생각해내듯 말했다.

‘확실히, 올림픽 정신이지, 같은 말 했었어’

올림픽 정신?

전혀 의미를 모르겠다.

역시, 그런 엉뚱한 말을 하니까 기분 나쁘다는 소리를 듣고있는 건가.

문 쪽에서 ‘나나세~’ 하는 목소리가 들려서 이시카와씨는 그 부름에 대답하곤 ‘그럼, 다음에 봐’ 하고 말하고 교실로 돌아가 버렸다.

남겨진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흙 토(土)자 모양으로 배열된 카드. 자살하려 한 시마자키 이즈미와 그런 그녀가 우러르고 있었다는 마사키 쿄코. 그리고 “올림픽 정신”이라는 말.



갖가지의 파츠가 제각기 날아다녀서 생각이 정리되질 않는다.

쉬는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등을 떠밀리듯 교실로 향한다.

자리에 돌아가자 요코가 ‘어디 갔었어’ 하고 물어온다.

‘응, 그냥 좀’ 하고, 별로 감출 필요도 없지 싶었지만 무심코 얼버무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 일련의 사건으로부터 무언가 위험한 냄새를 감지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거기 뒤! 어딜 보냐!’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요코는 혀를 낼름 내밀곤 수업태세로 돌아갔다.


현대국어 시간에 나는 노트필기도 잊은 채 생각하고 있었다.

점술을 한다는 마사키 쿄코에게 반에서 위축되어 있던 시마자키 이즈미가 찾아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아마 자신의 입장, 있어야할 곳에 관한 고민의 상담이었겠지.

그리고 그 고민을 듣고 마사키 쿄코가 한 것은 흙 토(土) 자 모양으로 트럼프같은 카드를 늘어놓는 것......

트럼프는 아닐 것이다. 트럼프같은 겉모양에 인쇄된 내용이 다른 것. 그리고 점술에 쓴다고 하면 그것밖엔 없다.

타로 카드다.

거기까지 생각하곤 어째서 금방 알아채지 못한건지 자신의 바보같음을 한탄했다.

타로카드는 질문에 대해서 나온 카드의 패턴에 따라 대답을 하는 고전적인 점술이다.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22장의 대 아르카나라고 불리는 카드만으로 치거나, 아니면 거기다 56장의 소 아르카나라고 불리는 카드를 더해 78장의 덱으로 점을 친다.

그 덱으로부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카드를 고르는 방법인데, 그 방법이 여러가지 있어서 어느 의미로 타로카드의 심오함을 나타내는 묘미라고도 할 수 있다.



그 고르는 방법을 바로 카드를 배열하는 전개법, ‘스프레드’라고 말하고, 각자 배열하는 매수도 다르며 배열법에 따른 카드의 의미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 스프레드 중에서 흙 토(土) 자 모양과 연관된 것이 있었다.

(켈틱 크로스 인가......)

오소독스한 스프레드로 10장의 카드를 배열하는데, 마지막까지 배열하면 ‘十|’ 같이 십자가의 오른쪽 옆에 세로획을 추가한 듯한 형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시계방향으로 90도 돌리면 그대로 ‘土’라는 한자로 보인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 바로 교실을 나가 다시 한번 마사키 쿄코의 교실로 향했다.

타로카드라면 나도 잘 알고 있다. 거기서 무언가 힌트를 잡을 수 있는건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이시카와 씨’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기 위해 책상을 옮기고 있던 이시카와씨는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보았다.

그래도 민폐라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친구들을 놓고 교실에서 나와 주었다.

‘타로 카드’라는 말이 나오자 잘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어떻게든 그 때의 일을 기억해내 달라고 다그쳤다.

‘에~그러니까, 확실히 태양 카드가 있었어. 그리고 다음엔, 그거, 검에 찔려서 쓰러져 있는 사람 카드. 음~, 다음은 기억이 안 나. 그렇게 빤히 본 것도 아니고’

검에 찔린 남자?!

나는 숨을 삼켰다.

‘그거, ‘土’의 어느 부분에 있었어? 그리고 어느 방향이었어? 검 모양은 마사키씨 쪽에서 보면 어느 쪽이었어?’



이시카와씨는 가볍게 생각한 후, 아마......하고 잠시 서두를 끌다 대답했다.

‘끄트머리였으니까, ‘土’의 마지막 끝부분이려나. 모양의 방향은 별로 자신 없지만 내 쪽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마사키씨 쪽에서 보자면 검 끝이 정면이 되려나’

이시카와씨는 그게 뭐 어쨌냐고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검에 찔린 남자는, 소 아르카나의 검의 10. 그리고 마사키 쿄코에게 검 끝이 향해있었다는 것은 “정위치”.

최악의 카드다. 개인적으로는 ‘탑’의 정위치보다도 불길한 느낌이 드는 카드였다.

그리고 ‘土’의 끝부분이라는 것은, 켈틱 크로스에 있어 ‘최종결과’를 나타내는 카드.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 걸 느꼈다.

검의 10이 암시하는 것은 ‘파멸’ ‘결정적인 패배’ ‘희망의 상실’ ‘한층 더한 고통’......

마사키 쿄코는 그 최종결과를 시마자키 이즈미에게 얼버무리지도 숨기지도 않고 그대로 말한 거겠지. 그리고 그녀는 울었다.

고민에 대한 대답으로 이러한 처사는 너무한 것이었다. 그게 좋은 것만을 말하지 않는 점술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해도.

더 나아가 그게 시마자키 이즈미 자신의 운명이었다고 해도.

나는 누구에게 향해야 할지 모를 분노가 몸 안에서 파도치며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내 상태를 수상하게 보고 있던 이시카와씨가 ‘이제 교실로 가봐야 해’ 하고 말하는 것을 막고, 이게 마지막이라고 ‘태양’ 카드의 위치를 물었다.

‘아마도 가운데 쪽. 미안, 진짜 잊어버렸어. 에? 방향? 태양에 방향같은 것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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