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천사 (4/4)

레무이 2017. 1. 15. 16:20

깜짝할 사이에 지나쳐가 보이지 않게 된 그녀를, 그 잔상을 째려보며 나는 마음 속으로 날뛰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 날의 1교시는 영어 수업이었다.

칠판의 영어를 노트에 옮겨적고 있는 내 책상에, 둥글게 뭉친 종이가 툭 떨어져 왔다. 펼치자

『야, 치히로. 덕분에 케익 두개나 먹어버렸다. 뚱뚱보 되면 어쩔거냐 `皿´ 』라는 문장이 쓰여있었다.

노트 가장자리를 찢어『미안. 미안한 김에 점심시간에 잠깐 어디 좀 같이 가줘』라고 써서 돌려보냈다.

대답은『OK』

아무 일도 없이 시간은 흘러, 드디어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웅성거림이 교실에 퍼지는 한편 나는 일어나 타카노 시호의 자리로 향한다.

‘잠깐 나좀 보자’

그 순간, 긴장한 듯한 공기가 주위에 흘렀다.

나는 신경쓰지 않고 마치 어디에 묶이기라도 한듯 몸을 굳힌 타카노 시호의 팔을 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잠깐, 치히로’

라고 말하면서 다가온 요코에게도 덮어놓고 ‘같이 와’라고 고한다.

반 애들의 익명의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두사람과 함께 교실을 나갔다.

빠른 발걸음으로 교사 뒤의 비밀장소로 향한다. 마땅한 장소는 그곳밖에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중얼중얼 말하면서도 따라오는 요코는 언짢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타카노 시호는 창백하다고 말해도 좋을 얼굴빛으로, 걸음걸이도 휘청거려 보인다.

나는 그녀의 팔을 움켜쥔 손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 똑바로 걸어, 하고.



아무도 없는 그 장소에 도착해, 나는 타카노 시호를 벽 쪽에 세웠다.

지금은 먼 곳의 웅성거림도 들리지 않는다. 교사의 벽에 반사된 햇빛 탓에 눈에 아프다. 하얗게 빛나면서, 여름이 벌써 여기까지 와 있다.

‘무서워하지 말고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타카노 시호는 침을 삼키면서도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 눈은 정신없이 헤엄치고 있다.

‘시마자키씨가 자살하려고 한 이유를 알고 있지’

끄덕.

‘그 일로 그 애는 마사키 쿄코에게 상담받으러 갔던 거지’

끄덕.

‘점을 보고 그 결과에 쇼크를 받은 그 애는 고민하다 못해 손목을 그었다’

끄덕.

‘그 반창고 밑의 상처는 발리볼 부의 연습에서 생긴 상처가 아니지’

끄덕.

‘시마자키씨와 너, 두사람 다 협박당하고 있었지’

......끄덕.

‘꽤 상당한 액수의 돈을 뜯기고 있었지’

끄덕.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더 무서운 사람으로부터 무서운 일을 당한다고?’

끄덕. 끄덕.

‘협박하고 있던 건, 이녀석이지’

요코가 비명을 질렀다.

내가 강한 힘으로 팔을 당겼기 때문이다.

‘자, 잠깐, 무슨 말 하는거야, 치히로. 아파. 아프다니까’



아우성치는 요코의 눈앞에서 타카노 시호는 지금이라도 쓰러질듯한 표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를 악물고 필사로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차가운 심장이 보내오는 피가 몸 속에서 저온의 불을 활활 지피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안고서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내 쪽을 겁먹은 눈으로 보고 있었던 건 언제나 옆에 있었던 이녀석을 무서워했기 때문이었던 거지’

또 요코가 비명을 지른다. 날뛰는 팔을 사정없는 힘으로 비틀어 올렸다.

‘난 너희들이 상상했던 것 같은 인간이 아니니까 안심해. 이녀석을 지금 이렇게 붙들고 있는 게 증거다.

그러니까 대답해줘. 언제부터야. 어째서 이녀석한테?’

타카노 시호는 떨면서도 이윽고 중얼중얼 말하기 시작했다.

나와 시마자키씨는 오쿠씨와 같은 초등학교였다. 그 즈음, 우리 두 사람은 오쿠씨와 그 그룹으로부터 심하게 왕따당하고 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오쿠씨와는 다른 학교가 될 수 있었지만 역시 거기서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이제, 이 악순환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선 자신이 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운동부에 들어가서 소극적인 성격의 자신의 껍질을 깨고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 태어날 장소였어야 할 고등학교에는 그 오쿠씨가 있었다.

그 때의 난폭하기만 하던 소녀와는 조금 틀린 교활한 얼굴로, 초등학교 때 명령받아서 했던 절도에 대해 폭로하겠다는 턱없는 일로 협박해 돈을 요구했다.

나도 시마자키씨도 저항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밝고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우리들의 배나 등을 때리고 발로 차는 그녀에게 냉혹하고 무자비한 악마가 겹쳐보였다.

나는 발리볼 부라 상처가 눈에 띄지 않을거라며 얼굴까지 때렸다. 덕분에 얼굴에서 반창고가 없어지는 일은 없었다.

오쿠씨는 나니까 그나마 이정도 인거야, 라고 말했다. 내 친구가 열받으면 너희들한테 ‘팔게’ 할지도 몰라, 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다른 학교의 불량학생과 어울려서, 그런 것만 하고 있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고.



‘거짓말이야, 거짓말. 당신 대체 무슨 거짓말을 하고 있는거야. 사과해. 웃기지 마’

아우성치는 요코를 벽에 밀어붙이고, 귓가에 얼굴을 갖다댔다.

‘어이, 내가 일진이네 뭐네 하고 소문을 퍼뜨린 건 너 자신이지. 내가 그런 소문에 일일히 변명하고 다니지 않는 타입의 인간이라고 판단하고서 말야.

그 두사람의 태도를 내가 수상쩍어 하자마자 그런 소문이 있다고 털어놓고, 협박의 비밀로부터 멀리 떨어뜨린다......

꽤 머리 잘 돌아가네. 그래도 말야, 계속 학교를 쉬던 애가 발리볼 부 연습에 나가지 않았는데도 반창고가 늘어 있었다는건 납득이 안 가지.

너답지 않은 실수야’

학교를 쉬고 있는 중에라도 불러내서 입막음을 하려 했었던 거겠지.

내게 움직임을 요코는 딱딱 이빨을 부딪히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뭐야. 뭐야.

나를 원망섞인 눈으로 노려보면서 그런 말을 입 속으로 되뇌이고 있다.

‘돈이 그렇게 필요했던 거냐. 명품 옷을 사고 맛있는 것을 먹고.

그게 타인을 밟아뭉개서 얻은 돈이라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거냐고’

퉷, 하고 침이 뺨으로 날아왔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내 안의 차가운 분노의 불꽃이 어느샌가 어둡고 슬픈 빛으로 변해있는 것을 알아챘다.

‘친구라고, 생각했었어, 요코*’

천천히, 그것만을 말하곤 나는 그녀의 뺨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그 바람에 몸을 벽에 세게 부딪히곤, 요코는 무너지듯 쓰러졌다.

웅크린 등으로부터 오열하는 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역주: 여태까지는 요코의 이름을 가타카나로 불렀지만 이 부분에서는 한자로 불렀다.

말하자면 평소엔 별명으로 부르다가 이번엔 본명으로 딱딱하게 불렀다는 뜻.)



‘진정하고 나면 타카노씨에게 사과해. 그리고 시마자키씨에게도 사과하러 가자. 나도 같이 갈테니까.

그게 끝나면......절교다’

요코의 등에 그런 말을 던지고 타카노 시호에겐 ‘이제 교실로 돌아가’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두사람을 남기고 뛰쳐나와 교사 안으로 들어갔다. 일직선으로 마사키 쿄코의 교실로 향한다.

복도에서 지나치는 평화에 찌든 여학생들의 얼굴이 정말 짜증났다.

‘비켜’

그런 말을 뱉자, 상대는 겁먹은 듯 길을 비킨다.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있는 걸까.

닫혀있떤 문을 난폭하게 열자 교실 안에서 앗 하고 놀란듯한 기척이 돌아왔다.

신경쓰지 않고 마사키 쿄코 쪽으로 다가간다.

그녀는 팔꿈치를 괴고 자리에 앉아 양 손의 손가락을 걸곤, 마치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나를 올려다보면서 어렴풋한 미소를 띄우고 있다.

‘시마자키 이즈미를 협박하고 있던 상대를 알고 있었지’

대답하지 않는다.

‘이시카와씨가 사건에 대해 떠봤을 때, 넌 이렇게 말했지. “올림픽 스피리츠”라고’

“올림픽 정신”이라고 한 다리 건너 들은 나에겐 그 의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바꾸어 말한 이시카와씨를 탓할 순 없다.

그 쪽이 확실히 익숙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올림픽 스피리츠’에는 같은 발음이면서도 또 하나의 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맞힐 의미가.



그 날, 도서관에서 나는 천사의 이름이 망라된 사전을 펼쳐놓고 있었다.

거기서 희미했던 기억 그대로의 이름이 나왔을 때, 나는 모든 걸 알아버린 것이다.

천사란 유대교와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등에 나타나는 신의 사자의 총칭이다.

그 천사들에겐 계급이 있어, 많은 천사가 그 히에라르키*에 포함되어 있다.

(*역주: 히에라르키(Hierarchie)는 피라미드 모양의 계급제도를 말한다.)

미카엘이나 가브리엘 등의 유명한 사대천사는 그 이름대로 대천사로서 제 8계급, 말하자면 밑으로부터 2번째의 낮은 순위가 매겨져 있기도 한다.

그 9계급에 속하지 않는 천사도 많으며, 다양한 종파에 따라 그 역할도 상징하는 의미도 다르다.

그 중에 올림피아의 천사라고 불리는 그룹이 있다. 성서가 아닌 마술서에 나타나는 천사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쓰여진다고 하는 성질로 굳이 따지자면 천사라고 하기보단 데몬에 가깝다.

일본어로 번역될 때도 ‘올림피아의 천사’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올림피아의 정령’ 등으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다.

영어로는 ‘Olympic spirits(올림픽 스피리츠)’라고도 한다.

그들은 혹성을 지배하는 존재가 되어, 각자 상징하는 7개의 별을 가지고 있다.

수성은 오피엘. 금성은 하기트. 화성은 파레그. 목성은 베토르. 토성은 아라트론. 달은 풀. 그리고 태양은――오크*.

(*역주: 일본어에서 오크(Och)와 오쿠의 발음은 ‘오쿠(オク)’로 똑같다.)

오쿠 요코.

그 이름을 따져 마사키 쿄코는 말한 것이다. 올림피아의 천사. 올림픽 스피리츠라고.

흑마술 등의 오컬트에 박식한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몰랐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향해 그녀는 사건의 진상을 보낸 것이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기대온 시마자키 이즈미를 죽던말던 내버려두고서. 그뿐만 아니라 검의 10이라는 최악의 결말의 암시만을 본인에게 전한 것이다.

난 그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알고 있었다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방관자로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던 나 자신에게도 분노의 칼끝이 향해, 몸 안의 어딘가를 상처입혔다.



‘태양은. 태양의 카드는, 켈틱 크로스의 두번째 자리에 나와 있었지’

대답하지 않는다.

켈틱 크로스 스프레드에 있어 2번째 카드는 1번째 위에 교차되도록 놓여진다. 그것은 이윽고 주위에 전개되는 카드 배열 속에서 십자가의 가운데의 위치가 된다.

나타내는 것은 ‘방해가 되는 것’.

대 아르카나 22장 중에 19장째의 카드인 태양(The Sun)은 정위치라면 ‘창조’ ‘행운’ ‘탄생’ etc. 역위치라면 ‘파국’ ‘불안’ ‘이별’ etc.

그러나 이 경우엔 요코라는 태양을 암시시키는 이름 자체를 나타내고 있다.

적어도 시마자키 이즈미 자신에게 있어선 그녀의 고민의 근원지를 형성하는 ‘장애물’로서.

그리고 언젠가 내게 했던 경고. ‘가급적이면 원한은 사지 않는 편이 좋아’라는 말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서 한 말이었던가.

‘그녀의 손에 들린 칼은 결국 자신을 향했어. 그건 그녀 자신의 선택이야’

마사키 쿄코의 입으로부터 음악처럼 말이 미끄러져 나왔다.

‘넌 대체 누구냐’

주위에서 마른침을 삼키며 이 대화를 주시하고 있는 무수한 기척을 느낀다. 누구도 겉으로 대놓고 이쪽을 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무수한 악의 어린 시선은 확실히 내 마음을 깎아내고 있었다.

‘아직 그 애를 구할 마음을 갖고 있다니, 당신도 참 어수룩하네'

요코를 말하는 건가. 어째서 이녀석에게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인가.

‘7개의 별에 대응되는 수많은 상징 중에 7대 대죄가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알아?’

표정은 하나도 바꾸지 않았는데도, 미소가 조소로 바뀐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때 나는 이 여자를 처음으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수성은 폭식. 금성은 욕정. 화성은 분노. 수성은 오만. 토성은 나태. 달은 질투. 그리고 태양은――’

연극이라도 하는 듯한 몸짓으로 그녀는 손가락을 하나 하나 접어 7번째가 된 왼손 검지를 천천히 접어내리며 말했다.

‘탐욕’

그 말과 동시에 나는 그녀의 책상을 양 손으로 힘껏 내리쳤다. 주위가 깜짝 놀라 일순 조용해진다. 거기에 냉정한 말이 내려앉는다.

‘너도 알고 있잖아? 그녀는 그녀 자신의 별에서는 도망칠 수 없어.

이 세계에는 바뀌려고 하는 인간과 바뀌려고 하지 않는 인간밖엔 없어. 그건 당신 탓도, 내 탓도 아냐’

분노라던가, 슬픔이라던가, 분함이라던가, 그런 여러가지 감정이 내 속에서 태풍처럼 소용돌이치며 눈 앞에서 파직파직 하고 빛나는 불꽃을 발하고 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이 얼음조각같은 여자를 때려눕히고 싶은 마음을 필사로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변함없는 미소로 응시하면서, 그녀는 유혹하는 듯한 달콤한 속삭임으로 이렇게 말했다.

‘대신에 내가 당신의 친구가 되어 줄게’


그것이, 마사키 쿄코와의 만남이었다.

'퍼온 괴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승시리즈 - 괴물 (기)  (0) 2017.01.15
스승시리즈 - 사진  (0) 2017.01.15
스승시리즈 - 천사 (3/4)  (0) 2017.01.15
스승시리즈 - 천사 (2/4)  (0) 2017.01.15
스승시리즈 - 천사 (1/4)  (0) 2017.01.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