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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스케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무서운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렴풋이 눈을 떴다가 하얀 침대시트가 눈부셔 다시 눈을 감는다. 새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숨을 토하고 나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고요한 아침이다.
어떤 꿈이었는지 생각하면서 기억을 더듬어보려 한다.
그러자 ‘참새는 영혼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
어느 나라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참새는 태어나기 전인 인간의 영혼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침에 참새가 우는것은 바로 그 태어날 인간의 영혼에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그 영혼이 들어가야 할 장소가 텅 비어있으면 영혼을 갖지 못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런 아이가 태어나는 아침엔 참새는 울지 않는다.
그러니까 참새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침은 불길함의 상징이다.
커텐을 열자 2층의 창문으로부터 보이는 이웃집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어수선한 하루를 시작하는 활기가 여기저기에 가득 차 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무슨 요일이더라.
눈을 감고 1초를 세면 하릴없이 흔해 빠진 토요일 아침이 되어 있기를.
그 날은 요컨대 우울한 월요일.
학교로 가는 통학로 도중, 길 가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문득 발을 멈췄다.
시각도, 청각도, 후각도 아닌, 아직 어떤 것으로도 분화하지 않은 감각이 마을의 미묘한 위화감을 감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게 부딪칠뻔 했던 한 샐러리맨이 혀를 차면서 소맷깃을 스쳐 지나간다.
색색의 수많은 구두가 제각기의 스텝으로 나를 앞질러 간다.
그 혼잡 속에서 나는 기기기기기......하고 낡은 가구가 삐걱이는 듯한 소리를 들은 느낌이 들었다.
꿈틀대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몸을 굳혔다.
여름에 한순간에 끝난 듯한 서늘함을 느낀 것만 같았다.
아스팔트로부터 피어오르는, 내리지도 않은 비의 냄새를 맡은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게 환상이라는 것도 또한 동시에 느꼈다.
무언가 본질적인 것이 그것들의 베일 저 편에 숨어있는 듯한,
정체를 알 수 없는 혐오감이 몸 전체에 감겨든다.
길가의 쓰레기장에 모여있던 까마귀가 울었다.
한 마리가 울면 다른 까마귀들에게도 전파되는 듯 울음소리가 파도처럼 퍼져나간다.
곁을 지나가던 몇명인가의 사람이 그 쪽을 보았다.
그 소리는 구애도, 영역을 주장하는 것도 아닌,
단지 “무언가를 경계하라”는 긴박한 울림을 갖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에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발을 멈추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아직 형태가 잡히지 않은 채 어딘가 멀리 있는 듯한 불안감을 가슴에 안고서,
그것을 털어버리고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언가가 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다.
확실히 그렇게 느낀 것은 다음날, 화요일의 점심시간이었다.
‘나, 어제 무서운 꿈 꿨어~’
점삼 도시락을 잽싸게 다 먹고 어딘가 시원한 곳에서 낮잠이라도 자려고 일어나려던 때 그런 말이 귀에 들려왔다.
교실의 가운데 쯤에서 책상을 4개 붙여서 점심을 먹고 있던 그룹이었다.
그 말에 반응한 것은 딱히 무슨 이유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말하자면 감이다.
하지만 그 애의 다음 말을 들은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찰칵 하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뭔가~, 무슨 꿈이었는진 잊어버렸어’
그 소리는 열쇠구멍에서 난 소리인가, 아니면 시계바늘이 말끔히 숫자를 가리킨 소리인가.
나는 쿵, 쿵, 쿵......하고 조금씩 빨라지는 고동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잊어버렸다면서 어떻게 무서운 꿈이란 걸 아는거야’
‘하긴 그런가~’
하릴없는 대화가 계속되고, 그녀들의 화제는 아무런 걸리는 곳도 없이 순식간에 바뀌어갔다.
어제 ・무서운 ・꿈을 ・꿨어 ・어떤 ・꿈인진 ・잊어버렸 ・지만
그 말을 나는 오늘 아침도 들었다. 확실히 들었다. 기시감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학교로 걸어오던 때, 출근 러쉬로 들끓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였다.
누군가가 말한 것인지 얼굴은 보지 못했다. 그저 그 때 나는 생각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지)
지금 똑같은 말이 귀에 들려오자 내 안의 동물적 본능은 불길한 것을 감지했다.
일어나 교실을 나간다.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다.
실내화가 복도를 두드리는 소리가 이중으로 들렸다. 누군가가 따라오는 소리.
그래도 언제나 날 따라다니던 아이는 지금 학교를 쉬고 있다.
머지않아 전학간다는 소문을 들었다.
작은 바늘이 가슴 안쪽을 쿡쿡 찌르는 느낌이었다.
‘야마나카 씨’
하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눈에 잘 띄지 않는 인상의 몸집이 작은 아이가 서 있다.
타카노 시호라는 이름의 클래스메이트다.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에 관계되고 나서 묘하게 내게 정을 붙여버린 듯 했다.
좋은 기분은 아니다. 난 가능한한 혼자 있고 싶으니까.
‘저......나도 꿨어. 어제. 무서운 꿈. 점술같은거 잘 하지? 야마나카 씨.
잠깐 점 봐주지 않을래?’
나는 멈춰서서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 좀 급해서. 나중에 보자’
‘아, 응. 미안’
발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나왔다.
아아. 싫은 녀석이다.
가벼운 자기혐오에 책망당하며 나는 서둘렀다.
어디로?
어딘가 사람이 없는 곳으로.
그날 밤, 나는 심심풀이로 여동생 방에 있던 지역잡지를 슬쩍 빌려와
내 방에서 뒹굴거리며 읽고 있었다.
테이블 위의 라디오에서는 잘 모르는 서양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 잡지를 적당히 넘겨가며 보고 있자니 별자리점 코너에서 손이 멎었다.
이 곳에선 유명한 점술가가 맡고 있는 지면이다.
가본 적은 없지만 마을 안에 점집도 냈다는 모양이다.
그 정보지는 월간이라 한달분의 운세가 별자리별로 나열되어 있었다.
별자리마다, 그것도 1개월 통틀어 나오는 운세라니.
혈액형점과 똑같을 정도로 수상해.
어쨌든 내 별자리를 확인하고서 또 다른 별자리를 읽는다.
이런 부분이 어쩔수 없는 여고생이다 싶어서 내 자신이 싫어진다.
그 후 적당히 앞뒤 별자리의 운세를 읽다 보니,
어느것도 그닥 좋게 쓰여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히 있는게 좋다』 『외출은 자제할 것』 『소중한 것을 잃을 암시?』 『다시 한번 생각할 것』......
별자리의 이름 바로 옆에 5개의 별이 나열되어 있어서
그 중 까만 별의 숫자가 많을 수록 운세가 좋다는 것 같은데,
내 별자리는 별 1개.
다른 별자리도 1개나 2개뿐이라, 3개가 최고였다.
무슨 일이지.
천장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서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적당히 대답하자 여동생이 복도에서 쏙 고개를 내밀곤 느닷없이 이쪽을 가리켰다.
‘역시 여기 있었네. 돌려줘. 아직 안 읽었단말야’
잡지를 홀랑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힘으로 누르고 물었다.
‘이 점술 페이지 말야, 원래 별 점수가 다 이렇게 낮아?’
여동생은 가만히 그 페이지를 보더니, ‘평소엔 이렇게 낮진 않아’ 라고 말했다.
별 3개나 4개가 보통이라고 한다.
‘에~, 뭐야 이거 기분나빠. 이 별점 아줌마, 뭔가 기분나쁜 일이라도 있었던거 아냐?’
여동생은 그렇게 말하며 내 손에서 탈취한 잡지를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네 방에서 읽어’ 하고 쫓아내자 무언가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무시하고 침대에 누웠다.
“기분나쁜 일이 있어서 화풀이로 독자의 운세를 나쁘게 썼다”
역시 어딘가 틀린 것 같다. 왜냐하면 불운을 피하기 위한 경고문구만 잔뜩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잡지라......
중얼거리다 눈을 감는다.
어느샌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모양이다. 라디오 소리에 눈이 떠졌다.
‘......응? 어떤 꿈이었더라. 잊어버렸지만, 무서운 꿈이었다는건 기억해.
뭐 아무렴 어때. 하하하. 그럼, 나도 동지라는 뜻으로 다음 엽서.
어디보자, 우리집 엄마몬 최악이에요, 에로책 정리당했어요, 라는데 다짜고짜 뭐야 어이ㅋㅋㅋ’
라디오에 달려들어서 볼륨을 높인다.
하지만 에로책 상의 다음엔 이번 여름 콘서트에 나올 외국스타 화제로 넘어가서,
그 뒤에도 꿈 이야기는 다신 나오지 않았다.
드디어 광고가 흐르기 시작하고, 이 지역의 캐쥬얼 샵 이름이 연호되는 것을 들으며
나는 이 마을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듯한 정체불명의 예감이
발치를 흔들고 있는 듯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무서운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명종 시계를 끄고 하품을 한번 하고 나서 몸을 침대 위에서 일으킨다.
평소에는 엔진 시동 걸리는게 늦은 내 두뇌가, 지금은 급속히 회전을 시작한다.
생각해내.
어떤 꿈이었지?
어두운 이미지. 싫은. 기분나쁜 이미지. 무서운 이미지.
테이블에 놓아두었던 노트를 펼치고 펜을 잡는다.
탁, 탁, 탁 하고 테이블을 치다가 이내 풀썩 하고 그 자리에 엎드린다.
안돼.
잊어버렸다.
너무 조용한 아침이다. 초조하다. 리듬이 없어. 리듬만 있다면 생각해낼 수 있었을 텐데.
참새다. 참새는 왜 울지 않는거지.
갑자기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쿵 뛰었다. 그보다 빨리 가슴 속에서 삭 하고 검붉은 장막이 걸린 느낌이 들었다.
‘시끄러워, 지금 일어난다니까!’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가 나왔다.
그 너머에서 엄마의 놀란 얼굴이 살짝 열린 문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날의 아침식사 무렵, 엄마로부터 난폭한 말투에 대해 설교를 듣고 한층 더 저기압이 된 나는
학교에서도 아침부터 울컥울컥 하고 기분이 나빴다.
이쪽에 말을 걸고 싶은 듯한 타카노 시호의 주저하는 시선도 날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수요일의 2교시는 미술이다. 즉시 탈출한 나는 사람이 오지 않는 교사 뒤로 직행했다.
담배라도 피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깊게 숨을 토하고 하얀 연기가 파란 하늘에 녹아드는 것을 보고 있자 겨우 기분이 진정되어 온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에 걸쳐서 일어난 일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생각해 보았다.
아니, 처음 시작은 어제가 아니다.
무서운 꿈을 꾸었다는 막연한 기억은 꽤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 여름이 시작되었을 때 쯤,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전부터,
느릿하게 그것은 나의 일상을 침식하고 이 마을을 물들이고 있었던 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그 의미를 눈치채이지 않은 채로......
3개피 째의 담배를 담뱃갑에서 꺼냈을 때였다.
돌연 키잉-하고 이명이 나를 덮쳤다. 마치 주위의 고도가 극적으로 변한 것처럼.
(위험해. 무언가가 일어난다)
그렇게 직감하고 순간 자세를 낮췄다. 공포가 온 몸을 가로질렀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쭈뼛쭈뼛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본다.
지면에도, 교사의 벽에도 이변은 없다. 하늘을 보아도 방금 전과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
뭉게구름이 하늘 높이 솟아 있을 뿐이다.
가슴은 아직 두근두근 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명이 들렸던 그 순간, 어딘가 멀리서 천둥같은 소리가 들린 듯한 기분이 든다.
눈을 감고 귀를 귀울여 봤지만 지금은 이미 아무것도 들리질 않는다.
이명도 어느샌가부터 잦아들어 있었다.
‘대체 뭐야’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곤 꺼내다 만 담배를 담뱃갑에 도로 집어넣었다.
수업에 돌아갈까 생각하다 역시 그만두기로 했다.
방금 전의 이명이 반복성을 띠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바로 도망칠 곳이 없는 교실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학교에서 빠져나갈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 멋진 생각이 들자 안절부절 못하게 된 나는 학교에서 나가기 위해 담을 기어오르는 일 조차 고생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고 빠져나가는 것에 성공한 나는 강 쪽으로 가볼까, 아니면 도서관으로 발을 옮길까 고민했다.
한낮에 교복은 눈에 띄네, 하고 생각하면서 겆고 있자, 멀리서부터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구급차 소리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뛰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까 이명이 들렸던 순간 천둥같은 소리가 났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어디에서 들려온 것인지 몰랐었는데도.
구급차의 사이렌에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앞질러 큰 길을 지나, 뒷골목으로 들어간다.
10분정도 달렸을까.
웅성웅성거리는 인기척이 점점 가까워지고, 골목을 돌았을 때 그 광경이 날아들었다.
상점가에서 주택가로 조금 들어간 부근의 한적한 2층집 건물이 늘어선 한 구석에 구급차의 빨간 불빛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주위에는 깨진 유리들이 널브러져 있고 몇명인가의 사람들이 머리나 팔을 누르고 도로에 주저앉아 있었다.
구경꾼들이 그 근처를 얼쩡대고 있었다.
지면에는 핏자국이 점점이 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 시선을 끄는 것이 지면에 떨어져 있었다.
돌이다.
파칭코 구슬 정도의 것부터 어린아이 주먹 크기의 것까지 다양한 돌들이 주위에 흩어져 있다.
「떨어졌대」「우박이?」「돌이잖아, 돌」「우박 아냐?」「하늘에서 떨어졌대」
그런 말이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우박이라는 단어를 듣고 무심코 손으로 집어 보았지만 역시 그것은 돌이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돌이다. 공원이나 교정에 굴러다닐 듯한 그런 돌.
하늘을 올려다 보았지만 전선이 하나 가로지르고 있을 뿐 그 외엔 비행운* 한점조차 없다.
(*역주 : 비행운, 항적운은 비행기가 날아가며 남긴 구름을 의미함.)
그 길가의 100미터 앞까지 돌이 난잡하게 도로에 흩어져 있다.
유리도 건물의 창문이 돌에 부딪혀서 깨진 것인듯 했다.
잘 보자 집의 기와지붕이 깨져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정말로 이 맑은 하늘에서 돌이 내린 건가? 비처럼?
그런 일이 과연 있을 것인가.
운석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다.
‘비켜 비켜’
도로에 가만히 서있자 소방대원에게 매몰차게 밀쳐졌다. 구급차가 나오는 듯 하다.
나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그 돌을 하나 교복치마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리고 맞은 편으로부터 경찰차가 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난다.
경찰은 곤란하다. 평일 한낮에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채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외없이 모두 참견쟁이에 중고생의 모든 비행이 학교 땡땡이부터 시작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뒤가 켕기는 느낌을 받으며 그 곳을 뒤로 한 나는 학교에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5초 만에 기각했다.
잠시 뒷골목을 목적도 없이 얼쩡대다가 가위를 사려고 했었던 것을 기억하고 근처의 문방구로 발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이 근처는 요즘 오질 않았네 하고 생각하면서 아담한 상점가를 걷는다.
그 동안에도 머리는 방금 전의 돌 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목격자도 많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깨진 유리나 기왓장, 그리고 다친 사람들이 그 증거다.
돌은 내렸다. 그것은 틀림없겠지. 하지만 어디서부터 내린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가까이에 더 높은 빌딩이라도 있었다면 그 위쪽 층이나 옥상에서 뿌렸을 가능성도 있지만,
구획상의 규제라도 있었던 것인지 그런 높은 건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비행기?
그래도 비행기 항로는 아니었을 텐데. 무엇보다 비행기에 저런 돌같은 것을 싣는 일이 있기나 할까.
더욱이 그것을 떨어뜨리다니. 비행운도 남아있지 않았고.
‘......’
너무 집중한 나머지 지나쳐 버려서 되돌아간다.
그 눈에 띄지 않는 문방구에는 왜인지 가위가 없었다. 가게의 아주머니께 묻자 ’품절’ 이라는 것이다.
‘눈썹 자르는 가는 가위라면 있어’ 하는 권유를 정중히 거절하고 가게를 나온다.
가까이에 있었던 또 하나의 작은 문방구에도 가위는 없었다. 라고 해야할까, 다른 손님도 없었거니와 점원도 없었다.
뭐라도 슬쩍 해버릴까 하고 생각하다 역시 관두기로 했다.
그렇게 절박하게 갖고싶었던 것도 아니지만, 가위따위가 손에 들어오질 않자 왠지 오기가 생긴다.
조금 멀지만 백화점까지 가보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슬슬 학교도 점심시간이 될 무렵이다. 참견해오는 사람이 있어도 변명할 거리가 생겼다.
큰 길을 빠져나가 백화점에 도착하자, 바로 잡화 코너로 향했다.
생각한 것보다 수가 적어서 별로 고르진 못했지만 그 중에서 큰 편에 쓰기 편해보이는 것을 구입했다.
뭔가 먹고 갈까 생각하면서 마침 지나가던 층 안에 있던 서점에 들렀다.
딱히 찾고 있는 책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적당히 돌아다니다 어느 책 표지를 본 순간 무심코 책장에서 꺼내들었다.
『세계의 괴기현상 파일』
맑은 날에 하늘에서 이상한 것이 내리는 현상은 어디에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팔락팔락 책장을 넘기자, 이런 타이틀의 장이 있었다.
≪하늘로부터의 낙하물≫
그 화제에 생각보다 많은 페이지를 쓰고 있어서 볼륨이 있다.
책을 뒤집어서 가격을 확인한 후 계산대로 향했다. 점심밥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
그날 밤, 저녁밥을 먹으면서 석간신문을 읽고 있자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완전 너희 아빠네’
대부분은 흘려들었지만 그 한마디가 제일 효과 있었다.
평소에는 먹으면서 신문을 읽거나 하지 않지만, 오늘은 아무리해도 신경쓰이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듣다니.
‘다음에 아빠가 밥먹으면서 신문 보면, 완전 치히로네 하고 말해주면 되겠네’ 하고 반격했지만 3배쯤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에 그만 다물었다.
『한낮의 대사건? 돌의 비』
그 밖의 지역 기사에 묻혀 있었지만 그런 표제를 겨우 찾아냈다.
오전중의 일이었으니까 역시 석간의 발행시간에 맞출 수 있었나 보다.
짧은 기사였지만 그 길거리에 떨어져 있던 돌 비에 대해 거론하고 있었다.
경상 4명, 피해건물은 13채.
구급차에 탔던 사람들도 큰 부상은 아니었나보다.
목격자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아드득아드득 하고 큰 소리가 난 후에 갑자기 하늘에서 돌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처음엔 우박인가 했다]
소리라.
내가 들었다고 생각했던 건 그 소리였던 걸까.
[주민들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그런 말로 이 기사는 매듭지어져, 결국 돌 비의 정체는 모르는 채이다.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긴 음식에 대해 엄마에게 잔소리 들을 게 눈에 훤했기 때문에,
재빨리 식탁을 빠져나와서 등 뒤로 쫓아오는 말을 무시하고 2층의 내 방으로 도망쳤다.
문을 등지고 닫자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종이봉투를 들고『세계의 괴기현상 파일』을 꺼내 뒹굴 하고 카펫에 뒹굴었다.
접어두었던 책장을 표시로, 보려던 장을 바로 펼쳐 들었다.
≪하늘로부터의 낙하물≫의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별안간 믿을 수 없을 이야기이지만, 이 세상에는 하늘에서 비 이외의 기묘한 것이 내리는 현상이 있다.
그것은 어패류나 개구리, 얼음이나 돌, 거기다 고기나 피, 금속류, 곡물, 그리고 지폐 등 실로 종류가 다양하다.
그것들은 기원전 옛날부터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목격되어 왔으며,
이 현상에 흥미를 가진 초현실적 현상연구가 찰스 포트에 의해 『FAllS FROM THE SKIES』라고 명명되었다......」
그런 설명에 이어 구체적인 사례가 들어져 있다.
개구리나 물고기가 내렸다는 케이스가 많은 모양이다.
1954년 영국, 버밍엄의 서튼 파크에서는 해군의 행사 중 비와 함께 몇백마리, 몇천마리의 개구리가 하늘에서 내려,
참석한 사람들의 우산에 부딪혀 지면에 떨어진 후에도 펄쩍펄쩍 뛰어다녔다고 한다.
1922년 프랑스의 샤론=슈르=소느 에서는 2일간에 걸쳐 개구리 비가 계속 내렸다고 당시의 신문이 전하고 있다.
가까운 연도의 예로는 1989년 오스트리아의 퀸즈랜드 주에서 민가의 정원에 100마리의 정어리가 내렸다고도 한다.
나는 그런 방대한 사례 속에서 돌이 내렸다는 기록을 찾아내려 갔다.
1968년 미야자키 현의 하사마쵸에서 어느 약국에 작은 돌 비가 내렸고,
그것이 누구의 장난인지도 판명되지 않은 채로 반년간이나 계속되었다는 사례.
그리고 1820년 영국의 사우스 우드포드에서는 어느 집에 돌 비가 내려 통보에 따라 경찰관이 배치되는 사태까지 갔지만
결국 그 돌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례.
1922년 캘리포니아주 치코의 마을 한 구석에 내린 돌 비는 그 현상이 수개월까지 이어졌지만 대학의 조사팀도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아직 더 있었지만 모든 사례의 공통점은 돌의 비가 넢은 범위에 걸쳐 내렸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히 좁은 범위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1820년 코이시카와의 코우사카 저택이라던가, 1600년 뉴 햄프셔의 조지 월튼의 저택이라던가 하는 기록을 보자,
실제로 그 개인에 대해 돌의 비라는 공격이 행해지고 있는 듯한 감상이 들었다.
마치 그 집의 주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한 짓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돌이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른다고 해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을 때에는 그 장난을 결행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감시가 없을 때를 노려서 안 보이는 뒤에 숨어 돌을 던진다.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이 생각하면 단순한 구조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그『세계의 괴기현상 파일』에는 이 FAllS FROM THE SKIES 현상에 대해 몇개의 가설이 소개되어 있었다.
찰스 포트는 지상에서의 텔레포테이션에 의해 이동한 물고기나 개구리 등이 대기권의 어느 공간에 모여,
그것이 때로 기괴한 비가 되어 지상에 내리붓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외에도 플라즈마나 공중휴거라는 황당무계한 설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보였던 것은 비행기부터의 낙하설과 회오리바람 설이었다.
비행기설은 대부분의 낙하물을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개개의 사례에 있어 그 비행기의 목격이 부정되는 케이스가 많고,
어패류의 낙하 등 연대적으로 비행기의 등장 전후에 있어서도 그 출현 패턴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를 해석하기 힘들다.
또한, 같은 장소에 장기간에 걸쳐 그 현상이 지속되는 케이스의 설명이 불가능하다.
회오리바람 설은 지상의 물체를 공중에 말아올려 이동시켜 별도의 장소에 낙하시킨다는,
실제로 관측되는 흔한 자연현상이기 때문에 가장 유력한 설로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개구리만이라던가, 청어만이라던가, 옥수수만이라던가, 한종류의 동식물만이 낙하하는 것의 설명이 힘들다.
회오리바람이 그런 것을 선별할수 있냐는 제쳐두고라도, 지상에 있어서는 다른 동식물이나 돌이나 모래를 동시에 말아올렸을 테고,
바다나 강이라면 물과 함께 수중의 생물을 종류 관계없이 빨아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중에 올라간 후, 그 공기 저항에 대한 낙하의 타이밍이 각각 같은 종류를
자연스레 나누어 내는것은 아닌가 하는 제일 신빙성 가는 해석도 있었지만,
역시 같은 장소에 계속 내리는 케이스의 설명이 불가능하고, 주위 수백킬로 권내에 그런 동식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케이스도 많았다.
그런 해설을 곰곰히 읽다가 생각했다.
개개의 케이스를 같은 현상으로 설명하려고 하니까 복잡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이건 회오리바람, 이건 비행기, 이건 장난, 그리고 이건 거짓말.
이런 식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의외로 심플하지 않을까.
벌떡 일어나 벽에 걸어둔 교복치마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낮에 그 길가에서 주웠던 돌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건 대체 뭘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자, 그것은 콩 하는 소리를 내며 기울었다.
『세계의 괴기현상 파일』을 책장에 집어넣고, 책을 읽느라 지친 눈가를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침대에 누웠다.
그날 밤, 나는 엄마를 죽이는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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