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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괴물 (승)

레무이 2017. 1. 15. 16:28

무서운 꿈을 꾸고 있었던 듯하다.

아침 햇살이 이상하게 더 성가시게 느껴진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양 손을 머리 위로 뻗어 기지개를 켠다. 자기 자신이 기분 나쁜 땀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챈다.

이불을 걷어 차내고 몸을 일으킨다.

꿈의 잔재가 아직도 머릿 속에 남아 있다.


현실의 눈은 감겨 있었는데도 시각 정보로서 기억에 새겨진 꿈 속의 광경. 지금까지는 신기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오늘은 무척이나 기묘한 것처럼 느껴졌다.

  꿈 속의 나는 이상하게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있었다.

  흐트러진 벽에,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와 나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현관에 서서, 문에 귀를 대고 숨을 죽인다.

  발 소리가 아래서부터 올라온다.

  나는 그 발소리가 엄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드디어 그 소리가 문 앞에서 멈춘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진동.

  기지개를 켜고 체인을 벗긴다. 

  그리고 잠금쇠를 찰칵, 연다.

  문이 열리고, 나는 그 너머에 서 있는 인간에게 말을 걸지도, 웃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단지 그 등 너머의 달빛만이 선명했다.

  그리고 핏방울이 춤추고, 나의 시야를 새빨간 색으로 물들인다.

  세계가 단 하나의 색으로 변한다.

  엄마는 무너지듯 쓰러져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 


「으아아」 

침대의 시트를 꾸욱 쥐며 무의식적으로 그런 소리가 나왔다. 나 자신도 놀랐다. 그것은 공포심을 신체의 내측에서 쫓아내기 위한 자기방위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금방 냉정해졌다.

생생한 꿈이었다. 요즘 엄마하고 왕왕 충돌하고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죽여버리는 꿈을 꾸다니.

이게 내 잠재의식의 바닥에 있는 소망인가, 하고 생각해보자 한기가 들었다. 요 전부터 계속 꾸었던 무서운 꿈은 이 꿈이었을까?

벽의 달력을 본다.

목요일. 오늘도 학교에 간다. 우울하다.

그 즈음이 되어서야 겨우 창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눈치챘다. 멀리서 못을 박고 있는 듯한 소리. 아니, 망치로 말뚝을 박는 소리인가. 어느 쪽이라고 해도 귀에 거슬린다.

짜증을 내며 옷을 갈아입는다. 엄마가 깨우러 오기 전에.

오늘도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들려오는 아침의 리듬이 이런 불쾌한 소리라니.

그 탓에 그런 꿈을 꾸고 만 걸까.

그렇다면 차라리 좀 낫다.

그 날 아침의 식탁은 어색했다.


학교로 가던 도중 나는 어디서 공사라도 하고 있나 싶어서 그 소리를 단서로 두리번거렸지만 출처가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이윽고 그 귀에 거슬리는 소리도 뚝 끊겼다.

평일 아침부터 이게 무슨 민폐람.

그 때엔 아직 그 정도 느낌밖엔 없었다.

지각할 뻔 하기 직전에 교실에 들어온 직후에 있었던 조례 시간 중에 선생님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

「어젠 참 이상했지. 신문들 봤어? 그거 요 근처에서 있었던 일이라더라.」 

돌 비가 내린 이야기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후 곧장 선생님이 중얼거렸다.

「나무가 말야……」



나무?

고개를 갸웃대고 있자니 금세 화제를 마무리 짓고는 선생님은 교실을 나가버렸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에 할 수 있는 만큼은 정보를 수집해두자. 나는 평소에 딱히 반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미지 관리 따위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금세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고 계셨던 것은 어제의 석간이 아니라 오늘의 조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아차. 안 읽었다. 엄마가 아무리 화를 내도 먹으면서 봐 둘 걸.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아무래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어젯밤 9시 좀 넘어서 시내 주택가의 도로변의 가로수가 15미터에 걸쳐 누군가에게 파내어져 뿌리채로 뽑혀선 그 자리에 굴러다니고 있던 것을 근처 주민이 발견했다. 근처 주민에 따르면 밤 9시 전에는 분명히 가로수가 평상시처럼 잘 서 있었다는 모양이다. 불과 몇 십분 만에 여섯 그루나 되는 큰 나무를 흙에서 뽑아내려면 중장비라도 사용하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주변 주민 중 아무도 그런 소동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대체 누가 했을까? 도 궁금하지만 어떻게 했는지도 무척이나 큰 의문이다.

또, 대체 왜 그런 걸까?

그러나 그 다음 쉬는 시간 나는 더욱 놀라고 말았다.

종이 친 후 교실 안에서 교환되는 정보에 귀를 곤두세우고 있었던 나는 이 마을에서 어제 일어난 것이 돌 비나, 가로수 사건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민 도서관의 목제 책장 중 하나에 꽂혀있던 책이 갑자기 모두 튀어나와 마룻바닥에 온통 흩어져 있었던 사건.

주유소 천장에서 늘어뜨린 급유 호스가 바람도 안 부는데 크게 흔들리는 통에 한 시간 가까이 주유를 할 수 없었던 사건.

아케이드 안에 있는 큰 시계의 짧은 바늘과 긴 바늘이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팽글팽글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돌고 있었던 사건.



역 앞 빌딩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전에 휘말려 그 후 층마다 조명이 불규칙적으로 반복해서 깜빡였다는 사건.

그 어떤 것도 이상한 사건 뿐이었다.

하나 하나를 보자면 「이상하네」라는 말로 끝나고, 한 달만 지나면 잊어버릴 정도의 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떤 사건도 어제 단 하루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3교시 쉬는 시간에 나는 자연스러운 척 반 친구들이 소문 이야기를 하는 데에 끼어들었다. 

그 그룹의 중심은 정보통인 부모님께 들은 모양인 소문을 흥분된 어조로 이야기하는 아이였다.

「그 편의점이 엄청 굉장했나봐. 아무도 만지지 않았는데도 아이스크림의 박스 커버가 열리기도 하고, 전기가 갑자기 꺼지지를 않나, 갑자기 알바 시간표가 바뀌기도 하고,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선반에 있던 잡지가 막 팔랑팔랑 넘어가고 그랬나봐.」 

알바 시간표하고는 상관 없잖냐, 하고 생각하며 듣고 있었는데, 어째 점점 내용이 선정적이 되는 느낌이 든다.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잘 모르겠다.

점심 시간에는 평소보다 천천히 도시락을 먹으며 복수의 그룹에서 떠는 수다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말야. 오늘 아침 어째 이상한 소리가 났었지?」 

그 말에 번뜩 반응한다.

그 말을 한 애를 젓가락으로 가리키며 다른 애가 「아, 우리 집 근처에서도 났었어. 어디서 새벽바람부터 공사 따윌 하는 거야. 소음 공해잖아, 이거.」라고 말했다.

내 안에 영감이 번뜩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교내에 단 하나 있는 공중전화 쪽으로 향했다.

전화 주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딱히 눈에 뜨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마침 잘 됐다.

옆에 비치된 전화번호부에서 시청의 전화번호를 찾는다.



담당 부서가 어딘지는 모르기 때문에 대표번호로 걸어서 용건을 말한다. 내선으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라는 말 뒤에 보류음을 질리도록 들은 후에야 겨우 전화의 상대방이 받았다. 묻고 싶은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짜증이 난 듯한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저기 말이죠. 지금 시내에서 그런 공사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민간기업의 소음공해냐고 물으셔도 말이죠, 그게 어디서 하고 있는지 모르면 주의를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잖습니까? 아침부터 대체 뭡니까, 하여간.」 

묻지도 않은 것까지 대답해준다. 그리고 전화가 뚝하고 끊겼다. 무심코 시계를 봤는데 12시 정도다. 그렇다는 것은 아침부터, 라는 말은 다른 사람이 건 전화 이야기인 것 같다. 그것도 1 통이나 2 통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알아낸 것은 시내의, 아마 여러 장소에서 공사를 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디서 공사를 하고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르는 공사가.

대체 이건 뭐지?

우리들의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데 그게 뭔지는 아직도 모른다.

단지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울지 않는 참새. 기억해낼 수 없는 무서운 꿈. 떨어져내리는 돌. 뽑혀나간 가로수. 소리만 들리는 공사. 마을 안에서 일어난 기묘한 사건들.

표면적 단서에 속아서는 안된다. 본질에서 눈을 피해선 안된다.

공중전화 앞에서 나의 마음은 고요해져갔다.

복도 쪽으로 걸어나간다.

그 녀석은 있을까.

만나야만 한다. 그리고 들어내야만 한다.

스쳐 지나가는 여학생들과 나는 같은 옷을 입고 있다. 그녀들은 교재를 안고 있다. 서로 기대는 듯 서로 웃어주고 있다. 빵과 우유를 가지고 걸어가고 있다. 나는 서둘러 교실로 가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명백한 단절이 있다. 그것은 내 자신이 일방적으로 만들고 만 단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단절을 기분 좋다고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이 있다. 같은 소문을 듣고 있는데도, 나만은 일상에서 발을 빼내고 있다.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다음에 일어날 것을. 그리고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를.

자조하듯 웃는 순간을 복도 저 편에서 오고 있던 여자애가 보더니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본 적이 있는 아이다. 나와 같은 1학년인가. 아직도 날 무서워하고 있네.

의외로 우물쭈물하고 있는 내 자신을 눈치채고는 가볍게 양 뺨을 때린다.

그 교실에 도착했을 대 복도 쪽의 창가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여자애 몇 명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에게 멀리서 말을 건다.

「이시카와, 그 녀석, 오늘 왔어?」 

그 애는 이쪽을 힐끗 보더니 검지손가락으로 교실 쪽을 가리킨다. 나는 고맙다고 하고는 교실문을 잡았다.

우리 반이 아닌데도 요즈음 여기에 점점 더 자주 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교실 안은 어디서나 그렇듯이 어수선한 공기가 넘치고 있었지만 명백히 이질적인 분위기가 구석 쪽에 감돌고 있었다. 설명하기는 좀 어렵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거품이 그 부근을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반의 녀석들은 모두 이걸 눈치챘을까.

그 거품의 중심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듯한 미소를 띤 짧은 머리의 여자가 앉아 있다.

이름은 마사키 쿄코다.

내가 교실에 들어온 것을 눈치챈 것인지 주위에 있던 몇 명의 아이에게 뭐라고 말하고는 자리에서 비키게 한 모양이다.

추종자가 생겼다는 건 진짜인 모양이다. 이 방심할 수 없는 여자의 어디에 그런 매력이 있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물어볼 게 있어. 잠깐 밖으로 나올 수 있겠냐.」 

어째 심술궂어보이는 말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의외로 그녀는 그저 끄덕여보인 후 일어났다.



그리고 문 쪽으로 가려고 돌아서려는 내 얼굴 가까이에서, 「드디어 데이트 신청?」이랜다.

역시나 나왔다.

짜증이 울컥 치솟아올랐지만 무시하고는 서둘러 교실에서 나온다. 우리들은 비상구 밖의 계단까지 걸었다.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고 하늘에서는 여름의 햇빛이 쏟아지고 있다. 다른 사람은 없다.

「그럼,」 

마사키 쿄코는 난간에 몸을 기대고 지면을 내려다본 후 얼굴을 이쪽으로 돌린다.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해.」 

「……당돌하네.」 

딱히 놀라지도 않은 양 쿄코는 방긋 웃는다.

나는 이 여자와 서로 속셈을 캐내는 게 귀찮았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늘어놓았다.

책을 사서 조사한 『FAlls FROm The SKIES/하늘에서의 낙하물』 이야기까지.

그녀는 내 이야기를 재밌다는 듯이 들으며 일부러 그러는 듯한 동작으로 턱을 왼 손의 엄지와 검지로 괴는 듯한 동작을 해 보인다.

「신기하네.」 

「그게 다냐.」 

그게 무엇이든 간에 전부 꿰뚫고 있는 듯한 그 여자가 마을에 일어나고 있는 이변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넌 신기하다고 말하고 만족해버리는 사람은 못되는 모양이네.」 

마치 100점을 받은 아이를 칭찬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리하여 쿄코는 시선을 돌리곤 저 멀리 보이는 마을 쪽을 바라보았다.

그에 이끌려 나도 초여름의 햇빛을 반사하는 건물 지붕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딱히 중요한 건 아닌데, 『FAlls FROm The SKIES』라는 말은 찰스 포트가 생각해낸 말은 아니야. 아이번 T 샌더슨이 명명한 거야.」



쿄코는 마을을 내려다본 채 담담히 말했다.

「찰스 포트야말로 『FAlls FROm The SKIES』라는 말에 휘둘린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어.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물건을 전부 한 가지의 개념으로 정리하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어쩐지 알 것 같지 않니?」 

예전부터 생각하던 거지만, 이 자식은 어째서 이렇게나 저잘난 것 같은 말이나 하는 걸까.

「너도 한 번 그 『FAlls FROm The SKIES』라는 말을 버리고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그 말은 단순한 충고일까, 아니면 그 이변의 정체를 알고선 내게 주는 힌트일까.

나는 쿄코의 옆얼굴을 노려보았다.

「곧 종이 치겠네.」 

쿄코는 난간에서 손을 떼고는 나를 마주 보았다.

「퀴즈.」 

「뭐?」 

「퀴즈를 낼 테니까 잘 들어봐.」 

여전히 당돌하다. 사고를 읽어낼 수 없다.

「아침엔 네 발, 점심엔 두 발, 저녁엔 세 발. 이건 뭐게?」 

「……인간.」 

「그럼 말야, 길을 가는 사람에게 그 수수께끼를 내서 대답하지 못한 사람을 먹어버리는 괴물은?」 

「스핑크스.」 

「역시 아는구나. 그럼, 그 스핑크스와 키마이라의 공통점은 뭘까?」 

키마이라라는 건 그거던가. 사자의 머리와 산양의 몸을 가진 괴물이었던 것 같다. 한 쪽은 사자 몸, 한 쪽은 사자 머리. 이게 공통점인가.

「그럼, 그거하고 스킬라의 공통점은?」 

스킬라? 모습을 금방 떠올릴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든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무래도 상반신이 여자에 하반신이 개라는 괴물이었던 것 같다.



스핑크스, 키마이라, 스킬라의 공통점. 뭐지. 조금 고민해본다.

「……신체가 두 종류 이상의 생물로 구성된 괴물.」 

「그러게. 그럼 거기에다가 케르베로스를 추가하면?」 

케르베로스는 머리가 세 개 달린 지옥의 문지기다. 두 종류 이상의 생물이 붙어있진 않았던 것 같다.

「모르겠어? 그럼 히드라도 더해봐.」 

히드라는 야마타노오로치(일본 건국 신화에 나오는 머리와 꼬리가 각각 여덟 개 달렸다는 전설상의 큰 뱀)같은 녀석이었을 터이다. 케르베로스처럼 머리가 여러개 있다. 그렇지만 스핑크스나 키마이라에게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건 아니다. 스킬라는 하반신에 달린 개가 몇 마리 정도로 나뉘어있었던 것 같긴 한데.

「모르는구나. 그럼 이게 마지막이야. 오르트로스도 더해서 그 모든 것들의 공통점을 찾아봐.」 

종이 쳤다. 그 소리와 동시에 쿄코는 스커티를 펄럭이고는 손을 흔들어가며 가버리려 했다.

「기다려봐. 뭘 알고 있는거야?」 

쿄코는 붙잡으려고 뻗은 손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손은 허공을 갈랐다. 또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 여자에게는 폭력적인 힘이 통하지 않는다. 내 의식하에 『그런 짓을 하면 진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걸까.

「씨발!」 

짜증을 내는 나를 차가운 시선으로 보던 쿄코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서 비상구를 나가버렸다.

괴물들의 공통점이라고?

점점 숙제가 늘어만 간다.

쾅!

문을 차는 소리가 생각보다 더 크게 울렸다.


그 날의 방과 후.



나는 시내의 도서관으로 갔다. 처음에는 어디 이상한 일이 일어난 데는 없나 하고 마을을 산책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았고, 애시당초 목표도 없이 마구 걷는 것은 쓸데없는 노력이라고 깨달은 것이다. 

대신 마사키 쿄코가 낸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내고 싶었다. 답을 발견해내도 거기에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순히 백기를 들기에도 내 소소한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도서관에 도착한 나는 필요한 자료를 샅샅히 뒤져 책장에서 골라와서는 테이블 자리에 진을 쳤다.

우선 나는 오르트로스라는 괴물을 조사해보았다.

그것 만큼은 잘 모르는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자료를 보아하니 오르트로스는 케르베로스의 남동생이고, 머리가 두 개 있는 개처럼 생긴 모양이다. 형은 목이 세 개, 동생은 두 갠가. 그 아래의 동생이 있다면 목이 하나일까, 하고 생각했다.

개 머리가 하나면 그건 그냥 개잖아.

쓴 웃음을 짓고는 도감을 덮는다.

개인가. 그러고보니 스킬라의 하반신도 개였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책을 편다. 스킬라는 상반신이 여성이고 하반신에 여섯 마리의 개가 돋아나 있는 삽화와 함께 설명이 실려 있었다.

가까이에 있었던 히드라에 대한 도해도 확인한 후 케르베로스 항목을 편다.

케르베로스는 머리가 세 개 달린 마견이라고 소개되어 있었지만 용의 꼬리를 가지고 있다고도 쓰여 있었다.

뭐야, 케르베로스에도 두 종류 이상의 생물로 구성된 합성수의 요소가 있잖아.

아니, 하지만 히드라에는 그런 기술이 없다.

다른 책을 몇 권인가 봤지만 역시 히드라는 머리가 여러 개 달린 뱀이고, 다른 생물의 요소는 가지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모르겠다. 대체 공통점이 뭐지?



짜증을 내며 책상을 똑똑하고 손 끝으로 두들긴다. 맞은 편에서 참고서를 펼쳐놓고 있던 학생이 이쪽을 째려본다. 반사적으로 마주 째려보자 학생은 놀란 듯한 모습으로 금세 눈을 돌리고 만다.

이겼다.

조금 기분이 좋아져서는 스핑크스에 관한 책 항목을 펼친다.

피라미드의 옆에 정좌하고 있는, 왕의 얼굴에 사자 몸이라는 익숙한 모습이 아니라 여성의 얼굴과 가슴, 그리고 사자의 동체에 독수리의 날개가 난 괴물의 삽화가 눈에 들어왔다.

얼레? 싶어서 자세히 설명을 읽어보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는 이렇게 생겼다는 모양이다. 그 4개 2개 3개로 변하는 발의 수수께끼는 이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질문하는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한 것인 모양이다.

어쩐지 어렸을 적부터 갖고 있던 이미지로는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에게 그 돌로 만들어진 스핑크스가 질문을 던져오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틀린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렴풋이 공통점이 보인 것 같기도 했다.

스핑크스, 키마이라, 스킬라, 히드라, 케르베로스, 오르트로스는 모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대강의 공통점을 알아낸 것 뿐이라 초점이 잘 안 맞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각각의 설명을 읽어본다.

몇 개인가 같은 고유명사가 나온다. 같은 영웅이 쓰러뜨렸나 싶기도 했지만 헤라클레스가 세 마리를 쓰러뜨리긴 했어도 나머지는 다른 영웅들이 쓰러뜨렸다.

그러나 곧 다른 고유명사가 중복으로 나오는 것을 눈치챘다.

『케르베로스는 티폰과 에키드나의 자식이다.』 

『키마이라는 티폰과 에키드나의 딸이고, 페가수스를 탄 벨레로폰에게 퇴치당했다.』 

……etc. 

그 어떤 것도 거인 티폰과 하반신이 뱀인 여자 괴물 에키드나가 낳은 자식들 뿐이다. 스킬라를 그 양자의 자식으로 보는 건 아무래도 이설인 것 같긴 했지만 분명 그렇다고 해설한 책도 있었다. 그러나 스핑크스의 해설에서 손이 멎었다.



스핑크스는 티폰과 에키드나의 딸이라는 설도 있긴 했지만 에키드나가 자신의 자식인 오르트로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라는 설 쪽이 일반적인 모양이다.

나는 책을 덮고는 허리를 펴고 도서관의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서 도출되는 공통점은 이렇다.

『여섯 마리의 괴물은 모두 에키드나가 낳았다.』 

답은 이거지, 마사키 쿄코.

종이를 넘기는 메마른 소리가 주변에서 들린다. 무척이나 몽롱했던 머리가 아주 조금이나마 명료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때 그 녀석은공통점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의 답에서 그 여자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얼음세공같은 얼굴의 입가가 이미지 속에서 미끈하게 움직이고, 나는 그것을 읽어낸다.

『에키드나를 찾아봐.』 

한숨을 쉬었다. 뭐 이렇게 돌아가게 만들어.

그 년을 다음에 만나면 어떻게든 패줄테다, 라고 생각했다.

그 때 조용해던 관내에서 약간의 소동이 일어났다.

일어나서 가 보니 내가 아까까지 책을 낚고 있던 책장에서 대량의 책이 떨어져 마루에 처박혀있었다.

가까이 있었던 모양인 퍼머 머리 아줌마가 당황해서는 자기 짓이 아니라고 호소하고 있다.

직원들이 달려와 책을 줍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적당히 좀 해주세요.」라는, 누구에게 말해야 좋을지 모를 진절머리 난 듯한 목소리를 나는 분명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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