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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괴물 (결: 上)

레무이 2017. 1. 15. 16:34

그 날 방과 후에 나는 3학년 교실로 향했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책을 빌려준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다. 선배의 반은 복도에서 이름을 대고 물어보자 금방 알 수 있었다.

선배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오,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주더니만, 자리에 가니 금세 양 손을 얼굴 앞에 맞대고 사과했다.

「미안, 지금 동아리에 가야 해.」 

검도는 그만두신 거 아니냐고 물어보니 「문화계~」라며 트럼펫을 부는 시늉을 한다. 취주악부나 뭐 그런 데에 들어간 모양이다.

「딱 하나만 가르쳐주세요.」 

나에게 「뭐, 일단 앉아봐.」라며 가까운 자리에서 의자를 끌어온다. 주위에서는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나를 신기한 듯이 힐끗힐끗 보고 있다.

조금은 시간을 내 줄 것 같았기에 순서대로 물어보기로 했다.

「선배님네 집에서 일어난 폴터가이스트 현상은 장난질이었나요?」 

선배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웃었다.

「갑자기 뭐니. 장난같은 거 아닌데. 나도 놀랐어. 진짜로 눈 앞에서 꽃이 날아다니고 했잖아.」 

「그럼 그 원인은 뭔가요?」 

「……그 책은 다 읽었구나? 나한테 물어보는 걸로 봐서는.」 

고개를 끄덕인다.

「뭐, 알고 있을 것 같긴 한데, 우리 집은 부모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 지금도 별거중이시잖아.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때엔 가장 위험했던 시기였지. 집 안에서도 얼굴만 마주쳤다 하면 싸우기만 하는거야. 애 눈 앞에서 독설을 퍼붓기도 하고. 꼭 내가 거기 없는 것 처럼 말야.」 

내 상상 속에서 실루엣으로 그려진 남자와 여자가 서로 대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10살 정도 된 소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다.

「초능력인지 심령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원인은 나에게 있었을거라고 생각해.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거지만.」 

「그럼, 어떻게 그게 나타나지 않게 되었나요?」



「어제 말 안 했었나? 기도사가 왔다니까. 집에. 그래서 수리수리 마수리, 이야압-! 뭐 이렇게 된거지. 그랬더니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구.」 

「기도사가 폴터가이스트를 봉인한 건가요.」 

「……넌 어째 좀 심술맞아졌구나? 알고 있으면서 그러기니. 아마도, 만족했던 게 아닐까. 내가 말야. 『부모님이 이렇게까지 해 주셨다』고. 지금도 기억나. 부모님 두 분이서 기도사의 뒤에 서서 필사적으로 손을 모으고 빌었던 게. 그리고 기도가 끝나고 나니까 내 머리를 안고는 『이젠 괜찮다』고 두 분이서 말씀하시더라. 그래서 나도 왠지 모르게 안심해서는, 아 이제 괜찮구나, 하고 생각했었어. 처음에 엄마 아빠는 두들기는 소리나, 접시가 깨지고 하는 건 별 일도 아니라고 무시하고 계셨거든. 불길하니까 말야, 기분 탓이다, 못 봤어, 못 들었어, 뭐 그렇게 말야. 아마 그 무렵의 난 그러는 부모님을 보고 날 무시하고 있다고 느꼈나봐. 그러니까 더 심해졌던 거라고 생각해.」 

결국 사춘기 아동이 저지르는 장난질과 똑같은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를 봐 주기를, 응석을 받아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터무니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만다. 분명히 혼이 날 걸 알고 있는데도 할 수 밖에 없다. 그건 아이덴티티의 발생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하여 가까이 있는 다른 이의 시선이 필요한 것이다.

「왜 그런 걸 신경쓰는 거니?」 

선배의 눈이 나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선배도 이 마을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괴현상의 소문 정도는 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단 한 사람이 집점이 되어 만들어낸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고 말해주면 선배는 웃어버릴까.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다른 이야기를 했다.

「선배님이 꿨다고 한 그 악몽 말인데요. 혹시 엄마를 죽이는 꿈이었나요?」 

분위기가 변했다. 상냥해보이는 눈가가 험악한 빛을 띤다.

「어떻게 안거야.」 

그 박력이 나를 삼키려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말을 이었다.

「선배님이 말씀하셨던 『실제로 일어날 리 없는 꿈』말인데요, 별거하고 계셔서 집에 안 계실 터인 어머니를 현관에서 찔러 죽이는 꿈이었지요?」



덜컹, 하고 의자 소리를 내며 선배가 일어났다.

「너, 점을 친다고 했었지? 그딴 걸 멋대로 점 친거야?」 

아차. 화났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집점이 된 적이 있는 인간은 어떤 식으로 그 꿈을 꾸는 걸까.

묻고 싶은 것은 단지 그것 뿐이었다. 거기에 어떠한 힌트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배는 내 말을 완전히 오해하고 말았다. 어떻게 고쳐말할 수도 없을 것 같은 분위기다.

아니, 오해는 아닐테지. 타인이 간섭하지 말았으면 하는 부분을 흙발로 멋대로 짓밟은 건 사실이니까.

「죄송합니다.」 

나는 깊게 깊게 고개를 숙인다.

「됐어. 동아리 하러 갈거야.」 

선배가 그렇게 말하는 이상 나는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모르는 사람 밖에 없는 3학년 교실의 복도를 침울히 걷는다. 발걸음이 무겁다. 다음에 제대로 사과해야겠다. 그러고보니 점 같은 걸 친 적이 없다는 게 생각났다.

마사키 쿄코는 어떻게 진상에 접근했을까. 또 타롯 점이라도 친 걸까? 아니면 나처럼 눈과 귀를 써서 정보를 모아 추리해낸 것일까. 

5교시 쉬는 시간에 교실을 들여다 보았지만 그 녀석은 자리에 없었다. 아침에 복도에서 마주친 걸로 봐선 아마 조퇴를 한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어머니를 죽이는 꿈을 꿨냐고 물어보았다. 그 때 그 녀석은 꾼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각할 위기였기 때문에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불러 세우지는 않았지만, 그 말은 진짜일까. 분명 그 녀석의 집은 지도 위의 오렌지색 원의 가장자리 부분에 있는 데다가, 혹은 꿈의 내용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녹색 점이 있는 영역 내이긴 하다. 그러나 이 이상한 현상이 단순히 거리에 따른 안테나의 정밀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1학년 층으로 돌아온 나는 아직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는 다른 학생들에게서 될 수 있는 한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지도를 형광펜으로 칠해나갔다.

역시나. 빨강, 파랑, 초록의 꿈에 관련된 세 가지 색은 바움쿠헨처럼 명백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 중에는 오렌지색 원의 외곽부분에 해당하는 녹색 구역 안에 뚝 떨어진 파랑 점이 있기도 하고, 파랑 구역에 빨간 점이 있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추가로 취재를 해 보자 모두 영적인 체험을 자주 한다는 언질을 얻을 수 있었다.



나 자신도 목요일에 처음으로 꿈을 기억해냈지만, 살고 있는 집은 금요일을 나타내는 파란 점의 반경 영역에 있다. 아마도 직감이나 영감 등의 이레귤러 적인 개인의 능력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얻어낸 사실을 바탕으로 생각한다. 그 마사키 쿄코가 아직 꿈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초록 점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인가.

모르겠다. 그 여자 특유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느낌"의 핵심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 수 없으니까.

복도나 교실에 보이는 사람들도 슬슬 다들 돌아갔을 무렵에서야 나는 형광펜을 놓았다.

결국 타카노 시호 말고는 목요일 전부터 꿈을 기억해낸 사람은 없었다. 타카노 시호네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아이는 있었지만 그 아이는 무서운 꿈을 꾸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뭐, 됐다. 할 만큼은 했다.

지도에 볼펜으로 그린 원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서두르자.

지도를 가방에 집어넣고 나는 학교를 뒤로 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 한 번 집에 돌아갔다가 자전거에 탄다. 안장에 걸터앉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직 해가 떠 있었다. 자, 가자. 혼잣말을 하고는 페달을 밟는다.

도중에 갑자기 생각이 나 공중전화에 들렀다.

그러나 마침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는 그 「귀신 전화」였다. 어째 좀 싫었기 때문에 조금 돌아가서 다른 공중전화로 갔다.

곧 전화부스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옆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 수화기를 든다.

전화카드를 넣고 외우고 있는 번호를 누른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나자 상대방이 받았다. 집에 없을 것 같아서 메세지나 남기려고 했더니만.

할 수 없이 나는 오늘은 바빠서 만날 수 없겠다고 전했다.



역시나 싸우고 말았다. 매주 금요일에 만나기로 해 놓고는 이걸로 2주 연속으로 내가 갑자기 취소를 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으니까. 역으로 나보고 열받으라는 듯 오늘 밤엔 여자를 사겠다느니 뭐니 해대는 쪽이 훨씬 더 나쁘다.

뒈져버리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전화부스를 나왔을 때에는 머리에 피가 몰려 냉정함이 결여되어 있었지만 얼마간 자전거로 달리고 있자니 점차 침착해졌다.

이런, 완전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자전거 바구니에서 지도를 꺼내 확인한다. 이 부근은 아직 파랑 구역이다. 핸들을 꺾어 방향을 수정했다.

선 채로 페달을 밟아 서둘러 달린다.

경치가 핑 핑 뒤로 지나간다.

그 속으로 녹아가기라도 하듯 눈물이 한 줄기 흘러 사라졌다.

진짜 나란 놈은 뭘 하고 있는 거지.

미치겠다. 요새 몸과 마음의 밸런스가 무너져내리고 있다. 대수롭지 않은 걸로 침울해지질 않나, 고민하질 않나. 지금도 어쩌다보니 어느 새 필사적이 되어있다. 대체 난 뭐 어떻게 된거람.

어젯밤 선배는 내가 조금 변했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나는 변하기 시작하고 만 모양이다. 대체 왤까.

계속 검도부에 있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전거의 페달을 계속 밟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빨강 구역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 최심부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였다.

그냥 흔해빠진 주택가다. 지금은 아무리 봐도 불길한 인상은 아니다. 그런데도 긴장하고 마는 것은 머리로 생각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삼거리의 코너를 돌았을 때 나는 심장이 멈출 정도로 놀랐다.

콘크리트 담장에 전신주가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다. 원래의 자리 같은 곳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마치 힘껏 뽑아낸 것같은 흔적이 지면의 금으로 남았다. 전선의 각도가 변해 한 쪽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고, 한 쪽은 느슨하게 흔들리고 있다.



마치 아이가 장난감 정원으로 놀고 있기라도 한 듯한 현실감이 없는 광경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끼며 나는 무심코 몸을 뒤로 젖혔다.

긁어모은 괴현상 정보 중에 이런 것도 있었다. 그러나 아마 이건 다른 사건일테지.

그 누구도 이 이변을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다. 누군가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성가셔질 것 같아서 곧장 자전거를 출발시켰다.

타카노 시호네 집은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신축인 듯한 주택이 늘어서 있는 한 구석에 있는 푸른 지붕이 인상적인 아담한 집이었다.

집 앞에서 자전거를 멈춰세우고 나는 손목시계를 본다.

그녀는 배구부의 연습에 다녀온다고 했으니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심호흡을 하며 초인종을 누른다.

인터폰에서 「누구세요-」하는 소리가 나더니 잠시 후 현관문이 열렸다.

타카노 시호와 무척이나 닮은 몸집이 작은 여성이 얼굴을 내민다. 아무래도 어머니인 듯 하다.

「어머. 누구세요?」 

문을 열어둔 채로 그녀는 이쪽으로 걸어왔다.

안쪽에 체인은…………없다.

시선의 움직임을 들키지 않도록 재빠르게 확인한 후 나는 될 수 있는 한 얌전한 목소리를 냈다.

「시호 집에 있나요?」 

「아, 시호 친구니? 별 일이네. 미안, 아직 안 들어왔는데. ……어쩐담. 들어와서 기다릴래? 지저분하긴 하지만.」 

「아뇨, 괜찮습니다. 근처에 볼일이 있는 김에 들른 거라서요. 다음에 올게요.」 

나는 머리를 숙이고 미안한 기색의 어머님께 서투르게 웃어보이고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안녕히 계세요.」 

이 인사가 집에서 나갈 때의 인사로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럴 때에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 해야하나? 그러기엔 좀 이른 시간이긴 한데.



그런 걸 생각해가며 코너를 돌 때까지 등 뒤에 타카노 시호의 어머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저 집은, 아니다.

체인도 그렇지만 에키드나의 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근거가 없긴 해도 에키드나의 어머니라면 분명 한 번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을 게 분명하다.

자, 이제부터 어쩐담.

지도를 다시 한 번 꺼내 쳐다보자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친 부분은 딱 보기에는 좁아보여도 실제로 그 자리에 가 보니 이게 또 상당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택가이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집만 해도 두 자리 수가 넘어간다. 조금 더 범위를 좁힐 수는 없을까. 머리를 풀가동 시켰지만 아무래도 성능이 좋지 않다. 

어쩔 수 없이 감으로 어떻게든 해 보기로 했다.

왠지 모르게 짚이는 집(그 기준은 나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의 초인종을 누르며 돌아다녔다.

문패에 써 있는 아이의 이름을 써먹어 볼까도 생각했지만 본인이 나온 경우 대화하기가 좀 뭐할 것 같아서 「시호 집에 있나요?」라고 물어보며 돌아다녔다.

그러자 대다수의 집에서는 어머니가 나와서 「시호라니, 혹시 저기 다카노씨 댁 따님이 아닌가?」라면서 타카노 가의 주소를 가르쳐준다.

그리고 나는 「집을 잘못 찾았나봐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돌아간다.

아무런 문제도 없다.

너무 잘 풀리는 나머지 마음에 걸리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게 오히려 문제였다.

문에 체인이 있는 집도 가끔 있었지만 에키드나가 있는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응대해주는 주부들도 매우 평범한 아주머니들 뿐이었다.

좀 더 깊게 들어가서 집 안에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일어난 적은 없냐거나, 가정 내에서 아동과 무슨 문제가 있진 않았는지 물어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러지는 못할 것 같았다. 반 친구라면 또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이상한 걸 물어보고 다닐 만큼 낯짝이 두껍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해가 질 무렵 나는 지칠대로 지쳐서 콘크리트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안되겠다. 단서라곤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다. 범위가 너무 넓어서 어디까지 돌아다녀야 되는 지 조차 알 수 없다.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런지 왠지 열도 좀 나는 것 같았다.

「이제 집에 가야지.」 

혼잣말을 하고는 비척비척 일어났다.

자전거의 핸들을 쥐며 다른 접근방법을 발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법이 좋을 지 전혀 명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친 다리를 채찍질하며 페달을 밟는다.

돌아가는 길, 해가 진 주택가에 경찰차의 붉은 빛이 보였다. 뽑힌 전신주가 있던 근방이다.

문득 요 며칠 새에 마을에서 일어난 이상한 사건을 경찰도 파악한 상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신주나 가로수가 뽑혀나가는 사건은 명백한 기물파손죄일 것이다. 당연히 범인을 찾고 있을 게 분명하다.

혹시 내가 알아낸 정보를 모두 경찰에게 전해주면 어떨까. 경찰은 취조의 프로다. 그들이 인해전술로 그 원의 중심에 위치한 주택가를 조사했다면 아마 반 나절도 안 걸린 채 에키드나를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살의를 품고 있는 소녀를.

하지만 그럴 순 없다. 경찰은 이런 일을 믿어주지 않는다. 협조할 수 없다. 그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조차 믿지 못하니까.

마을에서 일어난 모든 괴현상을 일으킨 것이 단 한 사람의 소녀라니.

경찰차의 붉은 빛과 구경꾼들의 소란을 뒤로 하고 나는 그 길을 피해 조금 돌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가 「저녁 먹었니?」라고 물었다.

심신 모두 지쳐있는 탓인지 식욕도 없어서 교복을 벗으며 나중에 먹겠다고 대답한다.

뭐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았지만 적당히 흘려넘겼다. 제대로 대답도 하기 싫은 기분이었다.



사소한 말싸움이더라도 점점 강도가 심해지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 방을 둘러보며 쿠션에 기대 앉은 채 한숨을 쉰다.

작은 테이블 위에는 수요일에 산 『세계의 괴기현상 파일』이 엎어져있다. 그 주위에는 어제 선배에게 빌린 폴터가이스트 현상에 관련된 오컬트 잡지 종류가 난잡하게 굴러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 옆 책장에는 중학교 때 잔뜩 사 둔 점술에 관한 책이 늘어서 있다. 공부를 한 흔적도 없는 책상 위에는 수상한 돌덩어리…… 

대체 뭐 방이 이래?

내 방이긴 하지만 참으로 부끄럽다.

요즈음의 여고생 방이라고 치기엔 「참혹」스럽기까지 한 꼬라지를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테이블 아래에 뭐가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종이 봉투다. 백화점 포장이다.

뭐더라, 싶어서 별 생각 없이 손에 든 후 입구를 봉해둔 스티커를 떼냈다.

안에서 가위가 나왔다.

녹색의, 매우 흔해빠진 가위.

그걸 본 순간 얼음이 온 몸을 가두기라도 한 것같은 오싹오싹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뭐야, 이건?

가위다. 그냥 가위. 언제 샀더라? 그래, 돌 비가 내렸던 수요일이다. 백화점에서 『세계의 괴기현상 파일』을 샀을 때 같이 산 것이다.

잠깐, 좀 이상하다. 생각해봐. 애당초 나는 백화점에 그 책을 사러 간 게 아니었다. 가위를 사러 간 거였지. 돌 비가 내리는 현장을 본 후 그 근처의 상점가의 잡화점에서 다 팔렸기에 일부러 백화점까지 가서……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가위를 사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엔 확실히 그랬다.

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가위를 사서 돌아간 날 나는 뭘 샀는지도 잊어버리고 이렇게 방치해두었다.



필요도 없는 걸 대체 뭐하러 샀지?

갑자기 머릿 속에서 꿈의 기억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꿈 속에서 나는 발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현관을 향해 발돋움을 해서 문의 체인을 벗긴다. 얼굴을 내민 어머니의 목줄기에 날붙이를 긋는다……


토할 것 같아서 입가를 눌렀다.

날붙이다. 그 꿈 속에서 내가 갖고 있는 날붙이는 대체 뭐지?

그저 어렴풋해서 내가 뭘 쥐고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반짝 그것이 빛난 순간만이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거, 혹시 가위가 아닐까.

최악의 상상이 머릿속을 뱅뱅 돈다.

꿈 속에서 소녀가 된 나는 가위로 어머니를 찔러들었다. 그 "기억해 낼 수 없었던" 기억이 잠재의식의 밑바닥에서 내 행동을 조종해서 반은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가위를 사게 한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벌떡 일어나 가위를 손에 들고 방을 뛰쳐나와서 「잠깐 밖에 좀 다녀올게」라고 거실 쪽에 소리친 후 현관을 나섰다.

자전거에 타고 달린다.

중간에 지나친 쓰레기장에 가위를 던져버린다.

「씨발!」 

자신이 너무 머저리같아서 마음 깊속한 곳에서 화가 치솟는다.

바깥은 어둡다. 지금 몇 시지? 가게는 아직 열려있나? 정신이 산만해서 페달을 헛밟을 것만 같다.

인기척이 별로 없는 근처 상점가에는 아직 드문드문 불빛이 보였다.

자전거를 세우고 어렸을 적 자주 갔었던 잡화점으로 뛰어든다.



숨을 헐떡이며 들어온 나를 보고 놀란 표정으로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뭐 필요한 거 있니?」 

그 말에 숨을 고르며 겨우겨우 나는 가위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쩌나, 다 팔렸는데.」라고 말했다.

예상하긴 했지만 오싹 닭살이 돋는 감각이 엄습했다.

「누가 대량으로 사 가기라도 했어요?」 

「아니. 이번 주에는 이상하게 잘 팔려서 어제 재고가 다 떨어진 통에 주문해놨지. 내일에는 들어올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이 사 갔냐고 물어봤지만 젊은 사람 뿐만 아니라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도 샀다는 모양이다.

「어떻게 할래? 내일 올 거면 빼둘게.」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급히 쓸 거라 다른 데서 살 거라 대답하고 가게를 나왔다.

나는 가위를 팔고 있을 만한 가게란 가게를 모조리 뒤졌다. 벌써 문 닫을 준비를 하는 가게도 있었지만, 반쯤 닫아 둔 셔터를 억지로 파고 들어가 가위를 팔아달라고 말했다.

그 모든 가게에서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매진』이라고.

마지막으로 나는 그저께, 즉 수요일에 가위와 책을 샀던 백화점으로 갔다.

폐점 시간이 다가와 한산해진 손님 사이를 뚫고 달려 아직 열려있는 잡화 코너로 뛰어들었다.

중간 쯤에 있는 일상용품 코너에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모든 일용잡화가 늘어선 가운데 격자 모양의 선반 중 일부만이 텅 비어있는 것이다.

커터도, 연필도, 자도, 지우개도, 수정액도, 스테이플러도, 컴퍼스까지 여러가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데도.

가위만 없었다. 단 하나도.

나는 그 앞에 멈춰 서서 마른 침을 삼켰다.

가위가 마을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건 아니다. 주머니 밑바닥에 숨어서 사용될 때만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건 오늘 일어날 일일지도 모르고, 내일 일어날지도 모른다.

꿈을 꾸고 있는 소녀가 어머니를 죽이자고 결정한 날, 우리들은 그 살의에 습격당해 자신의 어머니에게 날붙이를 휘두르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좋지? 어떡하면 좋냐고!

속으로 몇번이고 되물어가며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뭘 해야할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하지.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헛도는 사고를 어떻게 추슬러서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도 확실치 않다.

어떻게든 집으로 들어와서 현관으로 슬금슬금 들어오는 꼴을 엄마가 보고 말았다.

「너 어딜 나갔다 왔어. 이젠 엄만 모르겠으니까, 네 멋대로 먹어.」 

부엌에는 랩으로 싸인 요리가 놓여 있었다.

식욕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뱃속에 우겨넣었다. 체력이야말로 기력의 원천이다. 머리는 그다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영양을 부어넣어 줘야만 한다.

다 먹고 나서는 목욕을 했다.

오늘은 학교가 끝나고 나서 전혀 쉴 틈도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것도 한 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그래도 욕조에 푹 몸을 담그지 않고, 거의 샤워만 해서 땀을 씻어내서 얼른 욕실에서 나왔다.

다음으로 목욕을 하려는 여동생과 탈의장에서 마주쳤을 때 동생은 「언니, 뭐 이렇게 빨리 나와? 하여간 여자도 아니라니까!」라며 나를 놀려댔다.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방으로 돌아간다.

문을 닫고 책상 서랍에 넣어둔 타로카드를 꺼낸다. 애용해 왔던 것이다.

타로를 손에 든 채 가만히 생각한다.

시계 소리가 째깍째깍 방 안에 울렸다. 흘러내린 머리가 이마에 찰싹 달라붙는다.

이래선 안되겠네.

나 따위가 점을 쳐서 뭐 통할 상황은 아니다. 좀 더 빠른 단계였다면 이 사태에 이르기 까지 취해야 할 지침 정도는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에키드나를, 어머니에게 살의를 품고 있는 소녀를 찾아내기 위한 구체적 방법이다.

혹은 찾아내지 않고도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이다.



나는 책상 위에 던져 둔 가방에서 주소록을 꺼냈다. 오늘 점심 시간 동안 알록달록한 지도를 완성시키기 위해 활약한 자료였다.

팔락팔락 책장을 넘겨 마사키 쿄코의 연락처를 찾는다. 거기에 쓰여 있는 전화번호를 메모하며 방에서 나와서 계단을 내려간 후 1층 복도에 놓여있는 전화 쪽으로 간다. 다행이다. 아무도 없다. 거실 쪽에서 텔레비젼 소리가 들려왔다.

메모에 쓰인 전화번호를 누르고는 신호음을 센다.

하나, 둘, 셋, 넷…… 

「여보세요.」 

일곱인가 여덟까지 세니 상대방이 받았다.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다. 안심했다. 다행이다.

가족이 받으면 어쩌나 싶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가정부 같은 사람이 전화를 받는 것까지 상상하곤 긴장했던 것이다. 그녀의 묘하게 고상한 화법을 보자면 전근대적인 저택 같은 집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 집에는 분명히 그녀를 「아가씨」라고 부를 가정부 따위가 있을 게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우선 그 상상은 잠시 관두기로 한다.

「아, 나, 야마나칸데. 너랑 같은 학년.」 

조금 머뭇대며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도 전화를 걸고 만 것을 사과한다.

수화기 너머의 마사키 쿄코는 침착한 목소리로 신경쓰지 마, 전화해줘서 기쁜데, 등의 말을 깔끔한 발음으로 고한다.

어떻게 말을 해야하나 망설이고 있자니 그녀는 말했다.

「에키드나를 찾고 싶은 거지.」 

가슴이 뛰었다.

내 이미지 속에서 마사키 쿄코는 몇 번씩이나 그 단어를 입에 담았지만 실제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괴물들의 이름을 들어 공통점을 찾으라고 한 그녀의 수수께끼가, 정말 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괴현상을 이해한 것을 전제로 하여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나는 다시금 확신했다.

대체 이 여자는 무엇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어머니를 죽이는 꿈을 꾸지도 않았다는 그녀가 어째서 그렇게나 빠르게 마을을 들쑤시고 있는 괴현상이 단 한 사람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고 추리할 수 있었던 걸까.

나처럼 여기저기를 찔러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괴현상의 정체를 공포스럽고 강대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고 꿰뚫어본 데다가, 『FAlls FROm The SKIES』라는 말에 휘둘리지 말라는 등의 충고를 해 준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던 걸까.

「……맞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넌 알고 있겠지. 그걸 막고 싶어. 힘을 빌려줘.」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마사키 쿄코는 맑은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의식적인 것이라고 결론짓고는 오늘 하루동안 내가 한 일, 그리고 알아낸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재밋다는 듯이 말한 후, 그녀의 숨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진다.

수화기에서 입이 멀어진 것 같은 기척이 나더니 곧 콜록, 콜록하고 기침하는 조그마한 소리가 났다.

「왜 그래?」 

내가 묻자 조금 후에 「괜찮아. 지금 좀.」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와서 좀 뭐하지만 그녀가 병결이나 조퇴를 자주 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상기해낸다. 그녀는 나보다도 키가 크지만 선도 가늘고, 투명하게 비쳐 보일 듯한 흰 피부도 포함하여 딱 보기에도 병약해보이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그러고보니 오늘도 조퇴했었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아까 전 「돌아다니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혹시. 혹시, 말이다. 혹시 그녀의 병결이나 몸 상태가 안 좋다는 이유로 해대는 조퇴가 모두 거짓말이었다면.

그녀에게는, 충분히 시간이 있다.



수요일에 점심부터 학교를 땡땡이 친 것 말고는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던 나(수업을 받는 태도는 뭐 됐다고치고)보다 더 많이, 그녀에게는 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조사할 시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마치 동정을 꾀하는 듯한 기침은 오히려 내 마음 속에 의심을 싹트게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억측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여자에게 방심해선 안된다는 것 만큼은 다시 한 번 제대로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에키드나를 찾고 싶어. 알고 있는 걸 전부 이야기해줘.」 

단도직입적으로 부탁했다. 그러나 이것도 흥정의 일종이다. 딱 보기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녀의 언동은 듣는 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사실은 진리의, 어떤 내측을 깨닫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것 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쓸데없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만약 거짓믈을 한다 하더라도 그건 진실의 뒤를 더듬어 내놓는 말인 것이다. 의미는 분명히 있다. 그것을 놓치지 않도록 잘 가려 들으면 된다.

「……찾아서 어떻게 할건데.」 

멈추고 싶어.

전화를 처음 할 적에 입 밖에 낸 그 말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하려고, 자신에게 물었다. 정말로 그런걸까. 그리고 마음 속에서 나타난 다른 말을 잇는다.

「발견하고 싶어.」 

「그건 찾는다는 거하고 똑같은 말 아니니.」 

「말장난 할 생각은 없어. 그냥, 정말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정말 재밌다, 너.」 

그리고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전화가 놓여 있는 조용한 복도와는 대조적으로 거실 쪽에서는 변함없이 텔레비젼 소리가 들려온다.

「솔직히 말해서, 네 가위 이야기는 좀 놀랐어. 사람을 죽이는 꿈을 꾸더라도 그게 현실 세계의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니 생각지도 못했는걸.」 

생각해라. 이건 거짓인가, 진실인가.

입을 다문 나에게는 안중에도 없이 그녀는 말을 잇는다.

「나도, 꿈 속에서 쥐고 있었던 날붙이의 감촉이 잘 기억이 안나. 그게 가위라고 한다면, 확실히 이건 말의 앞뒤가 맞네.」



거짓말이다!

이건 거짓말이다.

마사키 쿄코는 그런 꿈은 꾼 적 없다고 말했다. 아니면 오늘 아침 내게 말을 한 후, 오늘 밤 사이에 그녀가 잠이 든 후 에키드나가 꾸는 꿈과 동조하여 어머니를 죽이는 꿈을 체험했다는 걸까.

쿡, 쿡, 쿡…… 

콜록, 콜록, 콜록…… 

숨죽여 웃는 소리와 기침 소리가 교대로 들려온다.

「나는,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아. 단지 네가 『어머니를 죽이는 꿈을 꿨느냐』고 묻길래 『꾸지 않았다』고 했을 뿐인걸.」 

「어디가 거짓말이 아니란 거냐? 너도 날붙이를 휘두르는 꿈을 꿨잖아!」 

목소리가 거칠어지는 나에게 담담한 목소리가 충고하는 듯이 떨어진다.

「내가 꾼 꿈은, 『모르는 여자를 죽이는 꿈』이야.」 

뭐라고?

예상 외의 대답에 나는 한 순간 사고 정지 상태가 된다.

「월요일이었나, 아니면 화요일이었나? 체인을 벗기고, 문에서 고개를 내미는 본 적이 없는 여자의 목덜미에 날붙이를 휘두르는 꿈을 꿨어. 한 번 보고 난 후로는 매일 꾼 것 같네. 다른 사람들은 그게 어머니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마사키 쿄코에게만은 꿈 속에서 죽인 상대가 어머니가 아니었다는 건가? 왜지.

「이상하지 않니? 꿈에서 나오는 체인이 걸린 문도 그렇고, 손을 뻗어 발돋움을 하는 감각은 다들 실제 자신이 한 경험이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개인을 초월한 공통언어 같은 건데, 죽인 상대의 얼굴은 현실 속의 자신의 어머니의 얼굴이라니 말야.」 

잠깐.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건 "어머니"라는 이미지 그 자체를 지각하고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걸 기억해내려고 했을 때 자신의 안에 존재하는 어머니의 시각정보를 끼워맞춰서 기억 속에서 재구축한 걸지도 모른다』고.

「체인이 달린 문」이나 「닿지 않는 팔」이라는 기호가 그 모습 그대로 나왔더라도 그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어머니」라는 기호가 혹시 만약에 자신이 모르는 다른 여자의 얼굴로 나타났더라면, 그것은 본질을 상실했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머니」를 표현하기 위해서, 어머니의 가면을 쓰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마사키 쿄코가 본 「모르는 여자」란…… 

「난 어머니를 죽이는 꿈을 꿀 수 있을 리가 없어. 난 엄마의 얼굴을 모르니까.」 

조용히, 그녀는 말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에 돌아가셨어. 집에는 사진도 남아있지 않아.」 

수화기에서 담담하게 도자기가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본 적이 없어도, 그렇게 못생긴 여자가 우리 엄마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어.」 

자신의 미모에 대해 은연 중에 말하고 있는데도 전혀 자랑하는 것 같지 않은 자연스러운 어조였다.

마사키 쿄코의 경우, 어머니와 별거하고 있다는 폴터가이스트 현상 겸험자였던 선배와는 명백히 그 배경이 달랐다.

선배는 집에 안 계신 게 분명한 어머니를 죽이는 꿈을 『실제로 일어날 리 없는 꿈』이라고 불렀지만 죽인 상대의 얼굴은 「어머니」의 얼굴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지금 현실 속에 어머니가 안 계신다 하더라도 그 얼굴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다.

마사키 쿄코는 그 얼굴도 모르기에 「모르는 여자」가 「어머니」라는 의미를 갖기 위한 가면을 씌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마사키 쿄코의 꿈에 나타난 그 여자야말로 에키드나에게 살의를 품게 한 어머니 그 자체가 아닐까. 「어머니」라는 가면 아래의 맨 얼굴이다.

「그렇구나. 그 여자가, 괴물들의 어머니의 어머니. 죄가 깊은 가이아로구나.」



잡았다.

드디어 잡았다. 마사키 쿄코만 협력해준다면 에키드나를 발견해낼 수 있다.

혹은, 오늘 돌아다닌 집들의 주부들 중에 누군가가 그 어머니였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의 얼굴은 아직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기도하는 듯한 나의 질문에 그녀는 상냥한 말투로 대답했다.

「기억하고 있어. 초상화라도 그려줄까. 나, 그림은 잘 그리는데.」 

됐다. 됐어!

나도 모르게 수화기에 키스할 뻔 했다. 의외로 이 녀석은 꽤나 괜찮은 놈이잖아. 마사키 쿄코.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한 거지만, 나란 놈은 참으로 단순했다.

「어쨌거나 분명한 건 이런 밤에는 찾을 수 없다는 거야. 그림은 내일 그려갈게.」 

또 콜록, 콜록 기침소리가 들린다.

「아, 고마워. 무리하지 말고. 몸 조리 잘해라.」 

그럼, 내일 학교에서 보자.

그렇게 말하고 나는 수화기를 놓았다.

내일이다.

내일엔 찾을 수 있다. 눈을 감고서 상상한다.

「무리하지 말고. 몸 조리 잘해라아.」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자 여동생이 복도에서 꾸물꾸물 몸을 움직여가며 내 흉내를 내고 있었다.

남자하고 통화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에키드나라거나 모친살해 같은 수상한 부분은 못 들은 모양이다.

「빨리 자라, 애새꺄.」 

「지도 아직 애면서.」 

「내 캐미솔 내놔.」 

「어, 싫어, 좀만 더 빌려줘!」 

그런 쓰잘데기없는 대화를 나눈 후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피곤하다.

털퍼덕 침대에 엎어졌다.



몸을 굴려 위를 보고 누운 후 오늘 있었던 일들을 순서대로 정리해본다.

두 번째 꾼 『어머니를 죽이는 꿈』. 학교에서 정보 수집. 원형 지도 완성. 선배를 화나게 한 거. 중심지에서 조사. 헛짓거리. 사고서 방치한 가위. 가위가 사라진 마을. 마사키 쿄코와의 전화…… 

(그러고보니 선배네 방에도 가위가 있었지.)

선배가 사이 바바의 흉내를 낼 적에 손에 들고 있던 가위.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긴 했지만 손바닥에서(나한테는 옷 소매에서 꺼낸 것처럼 보였지만) 보석이나 재를 꺼내보인다는 기적을 재현해 보일 때 쓸데없이 감추기 힘든 가위는 쓸만한 물건이었을까. 지우개나 뭐 그런 게 훨씬 더 나았을텐데.

(새 거 같았는데, 그 가위도 어쩌다보니 산 걸까.)

그게 왜 필요한지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서…… 

문득 전화로 주의를 해 주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안된다. 아직 화가 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데다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까지 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해서는 아마 진지하게 들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어? 그러고보니 나도 아직 가위는 갖고 있잖아.

책상 서랍 어딘가에 옛날부터 쓰던 게 있다.

그것도 버리고 오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 그치만 졸려…… 

내일 해야지…… 

내일……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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