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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대로 지쳐 마지막 기력을 쥐어 짜내어 자전거를 달리던 나는 집까지 얼마 남지 않은 곳까지 온 상태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으로 힘이 빠질 것만 같은 다리를 질타해가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양 쪽에 집이 늘어선 주택가였지만 가로등의 수가 부족한 건지 밤에 지나가면 조금 초조해지곤 하는 부근이었다.
그 어두운 밤길 저 너머로 녹색 빛이 보인다.
공중전화 부스다. 어렸을 적의 경험 때문에 귀신 전화라고 부르고 있는 그 부스.
지금, 그 전화부스에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DiLiLiLiLiLiLi……DiLiLiLiLiLiLi……하고, 숨을 쉬는 듯.
그걸 알아차렸을 때 한 순간 가슴이 두근하고 울렸지만 금세 그 정체를 짐작해낸다.
또 그 여자다.
내가 돌아갈 시간을 계산해서는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지금도 내가 갈 곳을 어딘가에서 엿보고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건 간에 주변에 민폐다. 이런 밤 중에.
무시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한숨을 쉬고 자전거에서 내린다.
안 쪽으로 구부러지는 문을 지나 부스 안으로 들어간다. 전화 벨 소리가 커졌다.
녹색의 둔중해보이는 그 모습을 일별한 후 수화기를 든다.
그리고 귀와 턱을 수화기에 갖다 댄다.
「여보세요.」
내 목소리에 수화기 저편에서 누군가의 숨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여보세요?」
다시 한 번 되풀이한다. 귀를 기울이고 조금 기다린다.
드디어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누구니?」
마사키 쿄코가 아니다.
단번에 긴장했다. 손끝부터 머리까지 전류가 통과한다.
「넌 누굴까. 어린 애네. 비슷한 나이일까.」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다. 그러나 상대는 젊은 여성이라는 것 만은 알 수 있었다.
「뭐, 됐어. 말해야 할 걸 말할게. ……너는 지금,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하지만 그러면 안돼. 끝나지 않았어.」
담담히 말하는 그 어조는 과연 이 세상의 것일까. 내 뇌가 자아낸 환각이 아닐 거라는 보장은? 이름이 뭐였더라, 그 근처에 살던 남자 애. 귀신 전화에서 목소리가 들린다면서 겁먹어 도망친 애.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누가, 지금 당장 이리로 와서, 내 대신 수화기에 귀를 대 줘.
「넌 시체의 얼굴을 봤지. 완전히 피가 빠져나간 것 같은 흙빛 얼굴이었던. 대체 죽은 지 얼마나 된 걸까. 6시간? 반나절? 하루? 어느 쪽이더라도, 분명 네가 들이닥치기 훨씬 전에 죽었을거야. 응, 사취도 맡았을테고.」
뭐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네가, 너희들이 마지막으로 꾼 꿈은, 대체 누가 본 광경일까.」
손 끝부터 머리까지 전류가 지나간 곳에 이번에는 차가운 금속을 흘려넣은 듯한 오한이 발생한다.
「끝나지 않았어. 뚝 끊겼을 그 의식에는 더 이어지는 게 있었어. 그 불쌍한 아이의 영혼은 육체의 껍질에서 벗어나서 지금은 어둠 속을 헤매이고 있어. 그리고 조금씩, 무척이나 무서운 것으로 다시 태어나려 하고 있어. 그것은 껍질 속에 있었어도 온 마을에 손이 닿을 만한 힘을 갖고 있었지. 이름은 아직 없어. 괴물에, 이름을 붙여서는 안돼. 분명히 돌이킬 수 없게 될테니까.」
얘, 듣고 있니?
수화기 저편에서 누군가가 고개를 갸웃한다.
「넌 다시 한 번 그걸 만나게 될거야. 그리고 질병과도 같은 낙인이 찍히고, 솜으로 숨통을 조이는 듯한 고통 속에 몸을 던지게 될거야. 잊지 마. 오늘 만난 사람들은 분명 네게 도움이 될거야. 얼굴을 잘 기억해두렴. 아, 하지만 안돼. 한 사람은 없어질거야. 『대가 바뀔』 거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단지 이런 전화를 걸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이야. 꿈 속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그걸 재현하고 있는 거지. 운명을 바꿀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 두는 게 중요할 때가 있잖아.」
쿠라노키, 라고 그녀는 이름을 댔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꿈을 꾸다니 참 이상하네. 분명 언젠가 너와 나는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어. 그 무렵의 나는 오늘 밤 건 전화는 잊었을 테지만.」
그럼, 잘 자렴.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가 끊어졌다.
혼란스러운 머리를 안고 나는 전화 부스를 나온다.
꿈.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뭐가 현실일까.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집점이었던 소녀가, 에키드나가, 괴물들의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무서운 괴물을 낳았다는 걸까. 그것이 마침내 내게 고통을 초래할 거라고? 대체 뭐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야. 눈을 감고, 1초를 세어보자. 눈을 떠 보면 아무렇지도 않고 흔해빠진 토요일 아침이기를.
그 때였다.
눈을 감은 내 안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감각이 생겨났다.
그것을 굳이 설명하자면, 어딘지 모를 장소에서, 뭔지 모를 것이, 갑자기 커져만 가는 듯한 감각.
내 오감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저 편에 있었을 가로등은 벌써 꺼진 채 보이지 않는다.
커지고 있다. 또 커지고 있다.
열이 났을 때 이불 속에서 느낀 적이 있는 감각이다.
코끼리 정도? 고래 정도? 더 크다. 훨씬 크다. 빌딩 정도? 피라미드 정도?
좀 더. 좀 더, 크다.
나는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날 것 같은 감정에 휩싸였다. 이것은 공포일까. 슬픔일까.
길 한 가운데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
커다랗다. 터무니없이 커다랗다. 산 보다도. 천체보다도. 그 어떤 것보다도 크다.
밤에, 비늘이 돋아난 것 같은.
아연히 멈춰 선 나의 아득히 먼 상공을, 납빛 비늘같은 것이 번쩍이더니 소리도 없이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
얼핏 눈을 뜨고, 하얀 시트에 다시 눈을 감는다. 토요일 아침. 커튼에서 새어들어와 침대 위에 쏟아지는, 상냥한 빛.
창 밖에서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체 참새는 무엇을 위해서 지저귀고 있는 걸까.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킨다.
이 나는 어제까지의 나일까.
하품을 한 번 한다.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어본다. 기분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아침이 왔다면.
『운명을 바꿀 수 있을 지는 잘 모른다』는 말이 어제의 기억에서 되살아나 날개가 돋친 듯 주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자리에 엎드려 누워 시트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쓴다.
fate
잠시 그것을 바라본 후, 또 하나의 문자를 붙인다.
no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웃었다.
무서운 꿈은 꾸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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