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괴물 (전)

레무이 2017. 1. 15. 16:30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크레이프를 먹으면서 상점가 길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석양이 벽돌로 포장된 길을 물들여 이런저런 모양의 그림자가 보인다. 길 가는 사람들의 옆 모습은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 못하는 것만 같았다. 모두 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감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앞을 스쳐지나간다.

숨을 내쉬고는 마지막 한 입을 갉아 먹는다. 그 어떤 사람의 표정도 내 마음을 투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로르샤하테스트다. 웃는 얼굴을 제외하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 따위 원체 없으니까.

결국 그 도서관에서 책이 낙하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이 어제, 즉 수요일부터 오늘까지 마을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일어나고 있는 일들 보다는 이 일련의 사건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더욱 신경쓰였다. 대체 어떤 카타르시스를 맞이하게 될까.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에키드나를 찾아라.』 

그 말을 듣고 나니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아까 전 부터 계속 그것만 생각하고 있다.

크레이프의 포장지를 휴지통에 던진다.

나에게 이 힌트를 던져 준 마사키 쿄코는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괴이한 현상을 괴물에 비유했다. 그리고 그 괴물들을 낳은 것은 살무사 여자, 에키드나다. 이건 대체 뭘 은유하고 있는지 확실치가 않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적어도 마사키 쿄코는 척 보기엔 아무런 상관 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괴한 현상이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도, 뭐시기 현상이라거나 뭐시기 효과라는 포괄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믿기 어렵지만 그것은 단 하나의 "인격"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존재에 속해있는 것만 같았다.

하.

이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을 턱이 없다.



정말로 혼자 있는 게 좋네. 절실히 느꼈다.

암울한 기분 탓인지 돌아가는 길이 더욱 멀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현관 앞에 섰을 때 눈치챈 거지만, 역시 그 날의 저녁밥은 카레였다.

「물만 그렇게 많이 마시면 소화가 잘 안돼.」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카레를 스푼으로 섞어 물로 대충 마셔버린다.

「오늘 아침 어디서 공사한 데 없었어?」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았지만 「그러고보니 어디서 하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네.」라며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빠는 「모른다.」고 말하며 석간을 읽고 계신다. 여동생은 몸을 돌려 접시를 든 채 거실의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

아버지가 신문을 다 보시는 걸 기다려 석간신문을 대충 훑어보았지만 딱히 이상한 기사는 실려있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방으로 올라왔다.

불과 라디오를 켜고는 방 한 가운데에서, 구석에 굴러다니고 있던 쿠션을 끌어당긴다.

솔직히 말하자면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우선 어제 FAlls FROm The SKIES에 대한 부분만 읽고 아무렇게나 방치한 『세계의 괴기현상 파일』을 죽 읽어보기로 했다.

라디오에서 별 쓸데 없는 화제에 큰 소리로 웃고 있는 소리가 나기에 스위치를 꺼버리고 적당히 CD을 틀었다.

그리고 묵묵히 책장을 넘긴다.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듯한 괴기현상만이 열거되어 있긴 했지만 정보의 양과 질에는 상당한 편차가 있었기 때문에 FAlls FROm The SKIES 항목처럼 상세한 해설이 실려있는 건 그다지 없었다.

그러던 중, CD의 7번째 곡이 막 끝났을 쯤인가. 나는 반쯤은 대충 넘기고 있던 문장 속에서 어째 마음에 걸리는 것을 느끼고 무심코 자세를 바로 했다.

그것은 『폴터가이스트 현상』 항목이었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예에는 실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나거나,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가구가 움직이거나, 접시가 공중에 떠다니거나, 스위치를 켜지 않은 가전제품이 움직이는 등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부터,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돌이나 물이 떨어져 내리거나, 불씨도 없는 곳에서 물건이 발화하는 등의 괴현상 등을 들 수 있다……」 

나는 긴장했다.

돌이 떨어지는 현상!

그러고보니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제재로 한 드라마였나 영화에서 실내에서 돌이 내려오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마사키 쿄코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FAlls FROm The SKIES』라는 말에 휘둘리지 말라고.

어설펐던 나 때문에 화가 났다.

돌 비가 내리는 현상에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씨발!」 

책을 던져버리고 일어난다.

폴터가이스트 현상 항목은 명백히 대충 채워넣은 듯, 정보량으로 따지자면 나라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도밖에는 실려있지 않았다.

가방에서 전화번호수첩을 끄집어내고는 번호를 찾는다.

중학교 때의 선배다.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렸을 적에 주변에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이 계속 일어났다고 했으며, 마침내 그 현상이 없어지고 난 후에도 종종 이야깃거리로 써먹곤 했다. 만날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던 터라 사실 좀 질리긴 했지만 2년 정도 지나고 난 지금 와서는 의외로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밤 중에 죄송합니다. 그것도 갑자기 전화드리기까지 하고. 좀 알려주셨으면 하는 것이 있는데요.」



갑자기 전화를 걸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가 반가웠는지 「전화로 하지 말고, 지금 우리 집에 올래?」 라고 말해주었다.

「금방 갈게요.」

전화를 끊고는 복도에서 거실에다 대고 「잠깐 나갔다 올게」라고 큰 소리로 알리고 나서 집에서 뛰쳐나왔다.

미적지근한 공기가 밤의 침묵을 메우고 있다. 하루 종일 열 에너지를 흡수한 아스팔트가 아직 식지 않은 것이다.

자전거에 타고 서둘러 주택가의 길을 달린다.

가로등이 달랑 홀로 서 있는 어두운 커브길로 막 들어왔을 때, 콘크리트 담장의 옆 설치된 공중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옛날부터 좀 별로였다.

어렸을 적에 「귀신 전화」라는 괴담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공중전화에서 어떤 9자리 번호로 전화를 걸면 저 너머에서 귀신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하는 두서없는 소문이었지만 나는 근처에 살던 남자애와 함께 이 공중전화로 실험해 본 적이 있었다.

조금 애매한 기억이긴 하지만 아마 그 때 그 남자애가 들린다면서 울어버리는 통에 수화기를 뺏어든 내가 귀를 대 보니 뚜- 뚜- 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랬는데도 그 애가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고 울부짖으며 전화박스에서 뛰쳐나오는 통에 홀로 남


겨진 나도 괜히 무서워져서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 이 길을 지나갈 때에는 무의식적으로 그 공중전화를 외면하고 만다.

꺼림칙하긴 했지만 지금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쳐 서둘러 발을 옮긴다.

선배네 집까지는 15분 정도 걸렸다.

선배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어준 덕분에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밤 9시 즈음이기에 「밤 늦게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자 선배는 어머니는 지금 별거중이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언제나 늦게 오시니까 진짜 괜찮다고 웃으며 말했다.

형제자매도 없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집에 혼자 있다고 한다.

선배의 방에서 쿠션을 엉덩이에 깔고 앉고선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자니 그녀는 쓴 웃음을 지으며 나를 비난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인사 하러도 안 오고 말야.」 

조금 놀랐다.

그러고보면 중학교 때 2학년 위의 선배인데도 어느 고등학교로 갔는지는 몰랐다. 설마 같은 학교의 3학년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선배는 몇 번인가 학교 안에서 나처럼 보이는 학생을 본 적이 있는 모양이고, 신입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잠시간 학교에 대한 시덥잖은 대화를 나눈다.

솔직히 말하자면 빨리 하고 싶은 이야기로 넘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선배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딴 길로 새기만 한다. 단 하나, 「학교 안에 딱 한 곳, 좁은 범위에 비가 내리는 장소가 있다」는 기묘한 소문만은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였다. 다음에 확인해 보자. 나는 속으로 정했다. 

「아, 물어보고 싶다는 건 뭐야?」 

선배가 부엌에서 보리차를 가져와서 각자의 컵에 따른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선배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엥? 너한테는 이야기 자주 한 적 없었나?」 

아뇨, 들었습니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아주 자알 들었습니다.



선배가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었을 무렵 집 안에서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식기가 선반에서 멋대로 날아올라 지면에 떨어져 깨지거나, 창문의 커텐이 바람도 안 부는데 팔락이며 들춰지거나, 방 안 어딘가에서인지도 모르게 무언가가 튕기는 듯한 소리가 단속적으로 울리거나, 어떤 때엔 가족들의 눈 앞에서 꽃병에 꽂아두었던 꽃이 둥실둥실 공중으로 떠 올라 갑자기 무서운 기세로 천장에 처박힌 적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수일 간격으로 몇주 씩이나 계속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뚝 하고 멈췄나 싶으면 얼마 되지도 않아 갑자기 일어나기 시작한다. 곤혹스러웠던 부모님은 결국 유명한 기도사(祈祷師)를 소개받아 집의 액막이를 부탁드렸다.

그 후 물건이 움직이거나 하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무언가가 튕기는 듯한 소리나 지붕 밑을 누군가가 기어다니는 듯한 소리는 가끔 들려오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지금 와 있는 이 집 이야기다.

무심코 방의 천장 부근을 올려다보았지만 이상한 느낌이 나는 곳은 딱히 없었다.

「돌비가 내렸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어요.」 

「돌? 집 안에?」 

「집 밖이라도 괜찮은데요.」 

선배는 기억을 더듬는 듯 시선을 움직인 후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럼 꼭 돌이 아니라도 괜찮은데요, 집 안에 없었던 게 분명한 게 어디서부턴지도 모르게 갑자기 나타나거나 한 적은 있어요?」 

「……접시나 과일 같은 게 이래저래 막 날아다니거나 떨어지거나 한 적은 있는데, 전부 집에 있던 물건이었던 것 같은데. 없는 물건이 나타난다니 어째 좀 굉장하잖아. 사이바바 같아.」 

선배는 재미있다는 듯이 요새 텔레비젼에서 봤다는 "사스야 사이 바바(역주 : 사티아 사이 바바라고도 하는데 네이버에 쳐 보니 인물 정보에 사스야라고 나와서 앞으로는 사스야라고 번역할까 해.)의 어포트(물건 소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요렇게 말야, 손바닥을 뱅글뱅글 흔들고 난 다음에 불러내는 거야.」 

선배는 테이블 위에 있던 집게를 손으로 쥐고 그 모습을 실연해보였다. 

나는 약간 실망했다.



「폴터가이스트가 그렇게나 궁금해? 나도 요샌 전혀 안 그러긴 하지만, 옛날에 신경이 쓰여서 조사해봤으니까 거기에 대한 책은 있어. 읽고 싶으면 빌려줄게.」 

꼭 읽고 싶다고 말하자 선배는 잠깐 기다리라며 방 안의 책장을 뒤적여 몇 권의 책을 꺼내주었다.

모든 책이 오컬트에 관련된 잡지 종류였다. 각각 폴터가이스트 현상에 관한 부분에 메모가 붙어있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서 슬슬 돌아가려던 찰나, 선배가 나의 얼굴을 무척이나 진지하게 들여다보았다.

「너, 조금 변했구나.」 

선배야말로 검도부에서 후배들을 잡고 있었을 때와는 달리 꽤나 살이 붙으셨네여.

그런 소리를 완곡하게 돌려 말해봤지만 선배는 자기 이야기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양 투덜투덜 입 안에서 중얼대고 있다.

「변했다고 해야하나, 변하고 있는 중, 같은데.」 

그 순간 등줄기에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돌아볼 뻔 했다.

「아, 미안해. 신경쓰였어? 뭐,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하자구.」 

뭐지, 지금 이 느낌은.

그 혐오감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현관에서 나와 집 앞에서 배웅해주는 선배에게 마지막으로 딱 하나를 더 물어보았다.

「요즘 무서운 꿈을 꾸진 않으셨나요.」 

선배는 얼굴을 굳히는가 싶더니 온화한 미소로 그 표정을 금세 감춰버린다.

「그러고보니 오늘 아침에 꿨었지. 이상한 꿈이었어. 일어날 턱이 없는 꿈.」 

선배는 잘 자라며 손을 흔들어주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집으로.

나는 자전거에 타고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집에 도착하는 게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엄마의 잔소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별을, 하늘을 보며 서둘러 밤길을 달렸다.



『폴터가이스트 현상 사례 중 유명한 것은 1848년 뉴욕 주 하이즈빌의 폭스 가를 덮친 괴현상이 그 필두로 거론된다. 또한 최근에는 1967년 독일의 로젠하임에 있는 아담 변호사 사무소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1977년 이후 런던 북부 엔필드의 하버 가에서 일어난 이변도 널리 알려져있다.』 

그런 설명을 읽고 있자니 문득 '학교 교과서도 이렇게나 열심히 읽으면 성적도 오를 것 아냐.' 하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밀려온다.

시간은 12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선배에게 빌린 책을 빨리 읽어보고는 싶었지만 분량이 상당히 많았다. 내일도 학교에 가야 하는 데다가 적당한 타이밍으로 그만 하고 빨리 자는 쪽이 더 낫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이즈빌 사건에서는 폭스 가의 차녀 마가렛(15)과 삼녀 케이트(12)의 주변에서 벽이나 천장을 두드리는 것같은 기묘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와 어떤 신호에 의하여 교신하는 방식으로 영과의 의사소통에 성공했다고 한다.

로젠하임 사건에서는 전화기의 이상을 시작으로 형광등이 떨어지거나 전구가 깨니고, 금고나 떡갈나무로 만든 캐비닛이 저절로 움직이는 등의 괴현상이 일어났다.

엔필드 사건에서는 딸인 자넷(11)이 방에서 「무언가를 질질 끄는 소리」를 들은 것을 시작으로 유리구슬이나 집짓기 장난감이 둥둥 떠다니거나, 옷장이 혼자서 몇십 센티 씩이나 움직이거나, 자넷이 자려고 하면 침대에서 트램펄린처럼 튕겨나가는 이상한 일이 1년 씩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 사이에 이웃 주민이나 언론, 소셜워커, 영국 심령현상연구협회 회원 등 30인 이상의 인간이 이러한 현상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 외의 여러 사례의 소개를 보고 있자니 책의 총론으로 해설해 주지 않아도 대부분의 경우 그 현상의 집점은 십대의 젊은이, 그것도 여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로젠하임 사건에서는 변호사 사무소의 비서인 안네마리 슈나이더가 현상의 중심에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당시 아직 18살이었으며 괴현상은 그녀가 출근했을 때에만 일어난다는 사실을 초심리학연구소의 한스 벤더 교수가 지적했다. 안네마리가 해고된 후 괴현상은 완전히 멈췄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란 그 이름 대로 폴터(소란스러운) 가이스트(영) 가 일으키는 현상이라고 간주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저주파나 수격음(水撃音) 등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설이나, 유명해지기 위해 날조한 짓이라는 설도 있다. 혹은 초심리학자 등은 이것을 초상현상(超常現象)의 일종이라고 규정한다.

이 초상현상설에는 현상의 집점이 된 것이 젊은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춘기 전후의 그녀들이 압박당한 욕구불만의 배출구로서 무의식적으로 사이코키네시스 현상을 발동시키는 것이리라 한다. 

초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RSPK(반복성 우발성 염력)이라고 부른다.

무의식적으로 일으키는 PK이기 때문에 그 당사자도 기본적으로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인식하고 있다. 엔필드 사건에서는 집점이 되었던 자넷 자신이 침대에서 튕겨나가 잘 수 없다는 피해를 입었다.

그 순간을 포착했다는 사진이 책에 실려 있었지만 이건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사진이다. 허공에 떠 있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이 튀어 오르는 것처럼도 보인다.

「RSPK라.」 

중얼, 하고 입 밖으로 내어보자 왠지 모르게 낯간지러웠다.

이런 이상한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좀 더 단순한 해석이 있는 것만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사춘기의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일어난 현상이라면 가장 먼저 장난을 친 게 아니냐고 의심할 터이다.

실제로 하이즈빌 사건에서는 이후에 폭스 자매가 그 소리는 관절을 꺾어 소리를 내는 등의 트릭을 낸 거라고 고백한 모양이다.

한 사건이 트릭이라고 해서 모든 사례가 트릭이라고 단언하는 것도 좀 억지지만, 의심할 만한 일이다.



단 로젠하임 사건에서는 사무소의 비품이 파손되거나 전화선을 뽑아둔 게 분명한 전화에 다량의 전화세가 청구되는 등의 실제 피해가 있었기 때문에 전기계통의 기술자나 물리학자, 경찰 등이 조사를 했었다. 그러나 합리적인 설명은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노이로제를 일으킨 것 같았다던 안네마리가 장난을 쳤다고 하기엔 여러 인간의 눈 앞에서 움직인 180kg짜리 캐비닛은 너무 무겁다.

이 때문에 로젠하임 사건은 가장 신빙성이 높은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사례인 모양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것이 문제다.

책을 덮고 어제 하루동안 이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하나 하나 생각해본다.

소리만 들리는 공사.

책장에서 튀어나온 도서관의 책.

편의점 안의 괴현상.

역 앞 빌딩의 기묘한 정전.

뽑혀나간 가로수.

주유소의 흔들리는 급유호스.

시계 바늘이 미친듯이 움직이는 아케이드의 큰 시계.

그리고 돌 비.

그 어떤 것도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예에 포함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내용이다. 바꿔 말하자면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그만큼 범위가 넓으며 갖다 붙이면 뭐든 그럴싸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리라.

선배는 경험하지 못한 돌이 내리는 현상도 과거의 사례를 보니 해석할 수 있었다. 돌이 내리는 현상은 어느 쪽이냐 하면 심령현상이라기보다는 RSPK설을 보강하는 현상이라고 할 법 하다.

단 어제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 중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고 부르기엔 좀 이상한 부분이 있다.

그건 공사 소리와 가로수, 큰 시계, 그리고 돌 비. 이 네 가지다.

이것들은 모두 방 안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은 기본적으로 집 안에서 일어나는 것인데도.



어쩌면 주유소의 사건도 야외라고 생각해도 될 지도 모른다.

장난이건 RSPK건 간에 바깥에서 영향을 일으킨 「집점」은 대체 누굴까. 큰 시계에는 뭔가 장치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대체 누가 단시간에 아무도 모르게 가로수를 뽑아버리거나 100미터 씩이나 걸쳐 길바닥에 돌 비를 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게 어제 단 하루동안 일어난 사건이라는 사실.

내 안에서 어떤 기분 나쁜 가정이 성립되려 하고 있었다. 그 가정은 나의 망상의 깊은 안개 속에서 기괴한 오브제로 나타났다. 아직 그 전체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희미하게 들여다본 그것은 한없이 불길한 모습이었다.

어제 하룻동안 일어난 괴현상이 각각 우발적인 개별적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나는 벌떡 일어나 창문 커텐 틈을 손가락으로 벌렸다.

그 너머, 어둠 속에는 아직 깨어있는 집의 불빛이 점점히 빛나고 있다. 그것은 밤바다에 떠오른 덧없는 작은 배의 불빛처럼 보여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눈을 감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 밤의 끈적끈적하고 단 향기를 코로 들이마신다.

마사키 쿄코는 에키드나를 찾으라고 고했다.

나는 꼭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

괴물들의 마리아를.


악몽을 꾼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다음 날, 금요일 아침. 나는 잠이 모자란 눈을 비비며 자명종을 두들겼다. 어제는 몇 시에 잤더라. 온 몸이 나른하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침대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머릿 속에 손가락을 찔러넣는다. 천천히 기억이 되살아난다.



나는 새벽녘 꾼 꿈 속에서 어머니를 죽였다.

어제 꾼 꿈과 똑같이.

  꿈 속에서 나는 발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현관으로 가서 발돋움을 하고 문의 체인을 벗긴다. 

  얼굴을 내민 엄마의 목덜미에 날붙이를 긋는다. 가슴에는 증오와 슬픔하고 비슷한 감정이 서로 섞여 소용돌이치고 있다.

  피를 간헐천처럼 뿜어내며 무너지듯 쓰러지는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자기 자신이 내쉬는 숨을

  어딘지 먼 곳에서 부는 틈새바람처럼 무심히 듣고 있다…… 

「아차!」 

침대 위에서 쥐어짜내듯 말했다.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완전히 똑같은 꿈.

그 자체가 괴현상의 일부다. 혹은 그 본체에 가까운 그 무엇인가.

애당초 내가 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변을 확실히 눈치챈 것은 이 꿈이 계기였다. 무서운 꿈을 꾸었다는 기억만 있는데도 그 내용을 어떻게 생각해 낼 수가 없다. 그런 인간이 아마 이 마을의 구석구석에 있을터였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 꿈이 아침 햇빛 속에 남아있게 되었다.

그 의미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반 안에서 속삭이는 기묘한 소문에 신경이 쏠려 그 누구에게도 꿈 이야기에 대해 묻지 않았다. 마치 그 꿈을 잊어버리지 않은 아침부터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 이변이 마을에 넘쳐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그 괴현상의 정체에 도달할 방법을 나는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 손실이 치명적이 아니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제기랄!」 

어제부터 몇 번째인지 모를 욕설을 베개에 쏟아붓는다.

치명적?

그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말에 나는 무심코 오싹했다.

직감이, 이 마을에 무언지 모를 무서운 일이 일어나려는 것을 고하고 있기 때문일까.



짝, 하고 양 손으로 뺨을 두들긴다.

파자마를 벗고 서둘러 옷을 입는다.

스륵스륵 피부 위를 스치는 천의 감촉.

머리는 오늘 해야만 하는 일을 냉정히 생각하고 있다.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서 문을 나선 후 우선 여동생의 방으로 향했다.

「들어간다.」 

여동생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 꿈지럭꿈지럭 파자마를 벗고 있던 참이었다.

「뭐, 뭐야.」 

경계하는 태도도 신경쓰지 않고 앞에 서서 내려다본다.

「꿈 꿨냐?」 

「뭐? 꿈? 안 꿨어.」 

아마도. 라고 덧붙인 여동생은 수상하다는 듯 내 눈을 바라본다.

요새 엄마가 이상하게 짜증나지 않냐고 물어보자 「안 그런데?」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OK.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곧장 방에서 나온다.

즉 받아들이는 쪽에도 강약이 있는 모양이다. 수신 안테나의 성능이라고 하면 될까. 파장이 맞는 인간만이 강제적으로 어떤 감정을 품게 된다.

계단을 내려가 주방으로 향한다. 엄마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고 있었다.

「좋은 아침.」「잘 잤니.」 

서로 자연스레 인사를 나눈다.

괜찮다. 엄마를 증오하는 마음은 잠잠해져있다. 적어도 죽여버릴 것 같은 느낌은 아니다.

무사히 아침밥으로 빵과 우유를 다 먹고는 서둘러 집에서 나온다.

어제 들리던 공사 소리는 오늘 아침엔 들리지 않았아. 오늘도 더워질 듯 햇빛이 강했다.

나는 걸어가며 조간 신문에 실려있던 기사를 떠올린다.

〔UFO인가? 시내에서 연이어 목격되다〕 

이런 표제 아래에 눌린 것처럼 잘 찍히지 않은 사진이 곁들여져 있었다.



어제 오후 6시 좀 넘어서 많은 사람들이 북쪽 하늘에 수수께끼의 발광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관측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도서관에 가 있었던 시간인가. 봤으면 좋았을 걸.

하지만 이런 사건에는 더 이상 가치가 없다.

뿔뿔히 흩어져있는 조각들에 얼굴을 딱 붙이고는 들여다보아도 아무 것도 보일 턱이 없다. 나는 어제 얻은 강력한 가설을 바탕으로 이 괴현상의 전체상을 포착하려는 거니까.

학교에 도착했다.

교문 안에서 사람들이 무리지어있다.

가까이 가 보자 교내 지면에 20cm 정도 깊이의 푹 패인 자국이 있었다. 그 주위 1미터 사방으로 마치 거대한 해머로 힘껏 두들긴 듯한 금이 가 있다.

어제까지는 이런 건 없었다. 밤 사이에 이렇게 된 모양이다.

선생님들에게 쫓겨나 다들 소곤소곤 속삭이며 출입문으로 빨려들어간다.

이상한 일이지만 이것도 단순한 노이즈같은 것이다. 실체가 아니다. 속아서는 안된다.

교실에 들어가자 한층 더 묘하게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조례에서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너무 들떠있는 것 같은데,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해라」는, 정말이지 막연한 설교를 자신없는 어조로 말했다.

선생님 자신도 어떻게 주의를 주면 좋을지 몰랐기 때문일테지.

1교시 수업은 생물이었다. 전혀 내용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오늘은 금요일인가.)

정보를 수집하기에는 휴일보다 평일이 낫다. 오늘 하루 동안 얼마나 정보를 모을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곧장 오늘 아침의 교문 옆의 푹 패인 지면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데에 억지로 끼어들어 나는 차례로 질문해갔다.

「무서운 꿈을 꾼 적이 없냐」고.

그 누구도 망설이면서 표정을 굳힌 채 대답한다.

대부분은 「꾼 적 없다」는 대답이었지만, 드문드문 「꿨다」는 대답도 섞여 있었다.



평소에는 반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개인적인 영역으로 끼어들어 오는 것이 불쾌한 모양인 무리들로부터 어떻게든 중요한 부분을 들어내고 만다.

「꿨어. 엄마를 죽여버리는 꿈.」 

그런 대답을 한 아이가 몇 명 있었다.

역시나.

다들 똑같은 꿈을 꾸고 있다.

세부 사항까지 똑같다. 문의 체인을 벗겨내고 맞이한 엄마에게 날붙이를 휘두르는 꿈이다.

나는 어제와 오늘 반복된 꿈 속에서 현실과 다른 장면이 두 개나 이어진 것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 집 현관문에는 체인 따위는 없다.

그리고 발돋움을 해서 그 체인에 손을 뻗은 것. 그건 정말이지 이상하다.

170cm가 넘는 내가 발돋움을 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어렸을 적 갖게 된 기억도 아니다. 나는 계속 그 집에 살고 있었으니까.

따라서 그 발돋움을 해서 체인을 벗겨내는 감각은 내 안이 아니라 어딘지 모를 외부에서 온 것이다.

그렇다. 예를 들어 어머니를 증오하고 죽여버리고 싶어하는 아동의 의식이, 혹은 그 때문에 꾸고 있는 엄마를 죽이는 꿈이, 그 아이의 조그마한 두개골에서 흘러넘쳐 밤 중의 어둠을 헤매이고, 침식하고, 융해되어 우리들의 꿈 속으로 혼선을 일으키듯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은 밤마다 우리들의 심층의식에 토할 것 처럼 어두운 감정을 찰박찰박, 찰박찰박 새기고 있다.

나는 교실 한 가운데에서 무릎을 안은 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무섭다.

누가 이 떨림을 좀 멈춰줘.

반 아이들의 시선이 무자비하게 내게 꽂힌다.

이상한 놈같지?

나도 그런 것 같다.

잠시동안 굳은 채 호흡을 가다듬는다. 공포심이 안개처럼 엷어지는 것을 기다린다.



좋아.

다시 힘 낼 수 있다.

그리고 걸어나간다.


그 날의 점심시간. 나는 내 자리에서 노트를 펼치고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우선 아까 물어보고 다녔던 「무서운 꿈」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다음과 같다. 모두들 상당히 예전부터 「악몽을 꾸고 있다」는 막연한 기억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어제, 즉 목요일 아침에 나처럼 처음으로 그 꿈의 내용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는 애들이 몇 명 정도 있다는 것.人かいる。 

그 꿈이란 어머니를 죽이는 꿈.

기억의 선명도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대개 같은 내용의 꿈이었다. 즉, 현실의 현관문에 체인이 있는 애도 없는 애도 한결같이 꿈 속에선 현관문에 체인이 있었으며, 그것을 열고 어머니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얼굴은 각자의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틀림없이 자신의 엄마였는지 물어보자 모두 말을 얼버무린다. 그것은 "어머니"라는 이미지 그 자체라는 것을 지각하고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걸 다시 생각해내려던 순간 자신의 안에 존재하는 어머니의 시각정보를 끼워맞춰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꿈 속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마의 얼굴, 아니, 그 표정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실제의 엄마와 똑같이 생겼지만 윤곽이 애매모호한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위화감.

『위화감』이라고 노트에 쓰려다 한자가 헷갈려 고치고 있는 사이에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대충 직직 갈겨 지웠다.

모든 애들은 주변에 엄마를 죽이는 꿈을 꾸었다고 말 한 적이 없다.

확실히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다 해도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닐테지. 그래서 서로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것이다.

어떻게 하지? 주의를 주어야하나.

그 방안은 금방 기각했다. 의미가 없다. 적어도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혹은 아무 일도 없을지 알아낸 후에 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무서운 꿈」을 꾸었다는 막연한 인식이 있던 애도 있지만 그런 의식이 없었던 애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애들 중에서도 어제, 즉 목요일부터 꿈을 기억하고 있는 애도 있지만 오늘 처음으로 기억났다는 애도 있는데다가 어째 무서운 꿈을 꿨는데 잊어버렸다는 애도 있는 것이다.

이 개인차는 어쩌면 영감이라고 불리는 것의 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영감"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틀림없을 터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요소가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가방에서 접어서 쑤셔박아 둔 시내 지도를 꺼냈다.

그리고 그저께부터 일어나고 있는 여러 괴현상의 출현 포인트를 지도 위에 오렌지색 마커로 표시해간다.

어제 하루 동안에도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난 모양이다. 지금까지 쉬는 시간에 미친 듯이 긁어 모은 정보만으로도 상당한 수의 이변을 확인할 수 있다.

바람도 불지 않는 공원의 허공에 커다란 모포가 둥실둥실 천천히 날아가고 있는가 싶더니 갑자기 뚝 낙하해 강으로 떨어졌다는 사건.

자격시험 때문에 간 예비학교에서 강사의 마이크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음소리를 수신하는 바람에 수업을 할 수 없었다는 사건.

주택가의 전신주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뽑혀나가 그 자리에서 콘크리트 담장에 걸쳐져 있었다는 사건.

이런 기묘한 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는 단순한 착각이나 누군가의 장난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 하나 취재하여 확인할 여유는 없다. 여하간 나는 이렇게 제보된 장소를 지도에 계속 표시해나갔다.

「다 됐다.」 

얼굴을 노트에서 떼고 위에서 내려다본다.

점점히 박힌 오렌지색. 척 보기에는 아무런 법칙도 없는 그것을 신중히 손가락으로 덧그려본다.

가장 오른쪽, 즉 동쪽 끝에 있는 지점에 샤프심을 세워 그 왼쪽 비스듬히 위에 있는 점까지 선을 긋는다. 그대로 천천히 뻗으면 다음 점이 나온다. 종이를 긁는 샤프 소리.



그렇게 지도 위의 가장 바깥쪽의 오렌지색을 묶어가자 거기에는 조금 일그러진 모습의 「원」이 나타났다.

다른 오렌지색은 모두 그 안에 있다.

상상이 현실이 되어가는 것이 오싹오싹하다.

그 다음으로 나는 집에서 가져온 동급생의 주소록을 가방에서 꺼낸다. 설마 싶으면서도 어제 세운 가설에 도움이 될까 해서 준비한 것인데 곧바로 사용할 국면이 왔다.

처음으로 펴보는 주소록을 한 손에 들고 오늘 들은 「무서운 꿈」을 꿨다는 아이의 집 근처를 하나 하나 형광펜으로 칠한다.

목요일에 꾼 애. 금요일에 꾼 애. 그리고 아직 내용을 기억해낼 수 없는 애. 각각 빨강, 파랑, 초록의 세 가지 색으로 분리해서 칠한다.

각각의 색과 오렌지색과의 관련성은 찾아낼 수 없었다. 가까이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떨어진 곳에 있는 것도 있다. 오렌지 원 바깥에 있는 것조차 있다. 그러나 빨강, 파랑, 녹색에는 명백히 관련성이 있었다.

빨강이 원의 중심에서 가장 가깝고, 파랑, 녹색 순서로 점점 멀어져간다.

좀 더 빨리 꿈을 기억해낸 사람일수록 원의 중심에 가까운 장소에 살고 있는 것이다.

후우, 하고 숨을 내쉬고 펜을 놓는다.

어제 폴터가이스트 현상에 대해서 책을 읽으며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가령 마을에서 일어난 괴현상이 각각 개별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가령 이 괴현상의 집점이 되는 것이 단 한사람의 인간이라면. 가령, 평소에는 폐쇄적인 집 안에서만 영향을 미칠 터인 폴터가이스트현상이 벽을 넘어 바깥까지 그 힘을 떨치고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가령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정체가 RSPK, 반복성 우발성 염력에 의한 무의식의 자기현시성과 폭력성의 발로라면…… 

터무니없는 힘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무서운.

시내 전역의 거의 반을 그 영향하에 두고 있다니.

한기가 머리 속을 기어 올라간다.

『에키드나를 찾아라』 

마사키 쿄코의 목소리가 뇌리를 스친다.



괴현상을 괴물에 비유한 그 여자는 비상계단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어제의 그 시점에서 이미 나와 같은 추론에 도달했을까.

설마 그 녀석이 한 짓일까, 하고 생각했으나 주소록에 쓰여 있는 마사키 쿄코의 주소는 시외의 외곽인데다 오렌지색 원의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다.

아니군. 그 녀석은 아니다.

그 무엇보다 「무서운 꿈」과의 정합성을 찾아낼 수 없다.

아마도 생각에 생각을, 아니 망상을 거듭하고 있긴 하지만 「무서운 꿈」을 꾸고 있는 주체야말로 에키드나겠지.

그녀가 꾸고 있는 꿈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안개처럼 밤거리로 넘쳐흘러 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잠들어있는 우리들의 뇌 속 어딘가에서 포착해낸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꾸는 꿈인양, 그것은 악몽이 되어 재생된다.

넘쳐나는 꿈이 갑자기 강해지고 영향을 미치는 반경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그 타이밍은 괴현상이 마을에 속출하기 시작한 것과 거의 맞아 떨어진다.

나는 지도를 바라보며 빨강, 파랑, 녹색 순서로 밖으로 퍼져가는 점을 바라본다.

품어본 적도 없는 어머니를 향한 증오가 밤마다 쌓여간다. 그리고 그 악의가 살의로 변했을 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엄마의 목줄기에서 뿜어나오는 선혈의 기억.

위험하다. 예전부터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불안 따위보다 훨씬 더.

그리고 아마도 에키드나는 조그마한 아이일 것이다. 문의 체인을 벗겨내기 위해 발돋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특정한 이유로 엄마를 증오하고, 그 상황을 타파하지도 못한 채 그 곳에 있다.

그 스트레스가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원인이다.

그녀?

거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별 의식 없이 떠오른 삼인칭이다. 이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에키드나가 여자였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그 아이가 "되었기에" 알고 있었다. 꿈 속에서, 어두운 방에서 홀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는 여자아이다.

그 아이는 지금도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찾아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찾아낸다고 해도 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고등학생 1학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찾아내고 싶다.

장난질이건, RSPK건,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집점이 된 십대들의 마음의 외침은 아마 하나일 것이다.

『나를 봐 줘.』『내가 있다는 걸 알아줘.』 

입으로 말할 수 없었던 이런 목소리들이 세계에는 넘쳐나고 있다.

갑자기 슬픔이 가슴에 넘쳐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실에서는 점심 도시락을 다 먹은 반 아이들이 각각 무리를 지어 수다를 떨고 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무리를 피하기라도 하려는 양 혼자서 화장실로 간다.

알고 있다. 급우들과의 사이에 벽을 만들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쪽으로 들이고 싶진 않다. 혼자서 있는 한 그 누구에게도 배신당하지 않는다.

복도를 걸어가는 슬리퍼소리.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또 하나의 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타카노.」 

이름을 부르자 타카노 시호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섰다.

똑같은 광경을 요새 겪었던 것만 같다. 가벼운 데자뷰. 

「뭔데?」 

퉁명스러운 어조로 묻자, 그녀는 「아, 아냐, 딱히 그런 건 아니고,」라며 우물쭈물한다.

그러나 얼굴을 슥하고 들었나 싶더니, 「요즘 좀 이상하지.」라고 말했다.

이상하고말고. 반에 있는 것들처럼 수다나 떨고 싶으면 다른 데나 찾아보시지.

그런 의미의 말을 입에 담자 그녀는 손바닥을 이쪽을 향해 흔들며 말한다.

「아냐, 그게 아니라, 야마나카가. 뭐라고 해야할까, 평소에는 좀 더 주변에 흥미가 없어보인다고 해야하나.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다른 애들한테 말을 걸었잖아.」



짜증이 났다.

그딴 게 이 녀석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 표정에 돋은 짜증을 알아챘는지 타카노 시호는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그래도 굳게 결심한 것같은 얼굴로 계속 말을 이었다.

「야마나카는 뭔가를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래. 혹시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와줄게.」 

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고는 발걸음을 돌리려했다.

그 순간, 데자뷰의 정체를 갑자기 알아차렸다.

그 때에도 타카노 시호는 복도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나도 꿨었어. 무서운 꿈. ……야마나카. 혹시 점 쳐줄 수 있어?』라고 말했다.

그게 언제였지? 반 애들이 「기억나지 않는 무서운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걸 가장 처음으로 들었을 때다. 수요일? 아니, 수요일에는 학교를 빠져나와 돌 비 현상을 본 날이다. 그렇다면 그 전. 화요일이다.

내 안에서 아주 약간 마음에 걸리던 것이 갑자기 부풀어오른다.

타카노 시호는 내게 점을 쳐 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무엇에 대해? 당연히 꿈에 대해서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그녀는 내게 트럼프나 타롯카드로 점을 쳐 달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재료"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타카노, 엄마를 죽이는 꿈을 꾼거야?」 

타카노 시호는 놀란 표정을 지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

「화요일에 처음 꾼거야?」 

그녀는 조금 고개를 갸웃대며 기억해내려 애쓴 후 입을 열었다.

「월요일.」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침을 삼켰다.

모든 사람보다, 그리고 나보다 삼 일이나 빠르게. 내가 처음으로 꿈을 기억해 낸 것은 목요일의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이리 와.」 

라고 말하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교실로 끌고 들어왔다.



그녀는 「응? 어?」하고 망설이면서도 따라온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 내 책상에서 시내 지도를 꺼내서 펼쳐보인다.

「너희 집은 이 근처야?」 

이상하게 알록달록해진 지도를 앞에 두고 타카노 시호는 잠시 주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검지손가락으로 지도를 가리켰다.

오렌지의 점으로 만들어진 일그러진 원의 거의 중심을 가리키고 있었다.

원은 괴현상의 목격 포인트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샘플이 너무 적어서 정확한 원을 그리지는 못했다. 어차피 반 아이들의 소문만을 근거로 정보를 모았기 때문이다.

어쩌다보니 모르고 있었던 괴현상이 혹시 원주의 외측 부근에서 일어났다고 치자. 그것만으로도 원의 모양은 변하고 그 중심이 어긋나버리고 만다. 에키드나는 중심에 있을텐데.

그러나 이걸로 그 중심의 위치가 대충 판명되었다.

타카노 시호가 꿈을 꾼 월요일은 "너무 빠르다". 그렇기에 그녀는 중심에서 극히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는 것이다. 틀림없다. 적당히 그어둔 원주의 선을 봐도 거의 모순되지 않는다.

그곳에 있는 것은 갑자기 「무서운 꿈」과 괴현상이 영향을 확대시키기 전의, 조그마한 원이다.

그녀의 손가락 아래에 볼펜으로 스슥 원을 그렸다.

에키드나는 거기에 있다. 괴물들의 조그마한 마리아가. 지금도 어두운 방 안에서 웅크린 채.

나는 미소를 지으려고 애썼지만, 조금 실패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웃으며 말을 건넸다.

「살았다. ……고마워.」 

타카노 시호는 영문도 모른 채 감사인사를 받은 게 이상한 듯 했지만, 기쁜 듯이 응, 이라고 대답했다.

'퍼온 괴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승시리즈 - 괴물 (결: 下)  (0) 2017.01.15
스승시리즈 - 괴물 (결: 上)  (0) 2017.01.15
스승시리즈 - 괴물 (승)  (0) 2017.01.15
스승시리즈 - 괴물 (승)  (0) 2017.01.15
스승시리즈 - 괴물 (기)  (0) 2017.01.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