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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다. 어두운 기분. 진흙탕 밑바닥에 가라앉는 듯한 감각.
나는 이상하게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있었다.
어질러진 벽가에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바깥에서 발 소리가 들려와 나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현관에 서서, 문에 귀를 대고 숨을 죽인다.
어두운 기분. 죽여버리고 싶은 기분.
발소리가 밑쪽에서 올라오고 있다.
나는 그게 엄마의 발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침내 그 소리가 문 앞에서 멈춘다. 똑똑똑 문을 두들기는 진동.
발돋움을 하고 체인을 벗긴다.
그리고 잠금장치를 찰카닥 연다.
손에는 단단한 것. 내 손에 딱 맞는 조그마한 날붙이.
문이 열리고, 슬그머니 창백한 얼굴이 들여다본다.
엄마의 얼굴. 본 적이 없는 표정. 보고 싶지 않은 표정.
문 너머, 엄마의 등 너머로 달이 보인다. 새카만 빌딩의 실루엣에 반쯤 가려져있다.
어디선가 공기가 새고 있는 듯한 소리가 난다. 그건 내 숨소리일까.
아니, 내 몸에는 분명 어딘지 모를 곳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어디선가 틈새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것일테지.
나는 들어오려는 얼굴에 말을 걸지도, 웃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다만 손 안에 있는 단단한 것을 움켜쥔 채 어두운 기분을 한층 더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윽」
비명이 들렸다.
그건 내가 지른 것이라고 깨닫는다.
심장이 거칠게 뛴다. 숨이 거칠다.
꿈이다. 꿈을 꾸었다.
몸을 일으킨다. 침대 위에 있었다.
천장에서 내리쬐는 빛이 눈부시다. 불을 켠 채로 잔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어느 새 새벽 한 시 반이었다. 옷을 입은 채 어느 샌가 잠들어버렸던 것이다. 손에는 끈끈하게 땀이 배어 있다. 아직까지 무언가를 쥐고 있었던 것만 같은 감각이 있다. 몇 번인가 손을 쥐엄쥐엄해본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딱히 이상한 건 보이지 않았다. 소름이 돋는 한기만이 몸을 뒤덮고 있다.
그 때 바닥에 놓아둔 라디오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척이나 늘어지는 소리로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 밤의 집은 무척이나 조용하다. 커튼을 닫아 둔 2층 창문 저편에서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라디오만이 늘어지는 웃음 소리를 내뱉고 있다.
나는 주저않고 콘센트로 달려가 코드를 뽑아버렸다.
뚝 하고 라디오가 멎었다.
켠 적 없어. 나는 자기 전에 라디오 따위는 틀지 않았어.
대체 뭐야, 이게.
가전제품의 이상. 마치 폴터가이스트 현상같다.
나는 책상 서랍을 멈칫멈칫 열고는 엉망으로 쑤셔넣어 둔 문방구 속에서 가위를 찾아냈다.
중학교 때부터 사용한 조그마한 가위. 손에 쥐어보았지만 딱히 이상한 구석은 없다.
우선 안심하고는 서랍을 닫는다.
대체 무슨 일일까.
지금까지의 꿈은 새벽녘, 눈 뜨기 직전에 꾸는 명석몽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체험담도 모두 비슷하다. 그러나 지금은 첫 번째이거나 두 번째의 렘 수면때 꾸는 꿈이다. 사실 지금까지도 잠이 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도 이런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잊어버리고 있었을 뿐.
하지만 지금 이 리얼한 느낌은 대체 뭐지? 지금까지 꾼 꿈과는 명백히 다르다. 가위를 쥐는 감촉도 확실히 남아있다.
나는 왼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설마 이 쪽이 꿈은 아니겠지.)
어머니에게 가위를 들이대려 하는 소녀야말로 진정한 나 자신이고, 지금 이렇게 생각에 잠겨있는 나야말로 그녀가 꾸고 있는 꿈이 아닐까……
뭐더라, 이게. 한문 수업에서 들은 적 있는데. 호접지몽 이던가?
그럴 리가 없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꾼 꿈과는 긴박감이 한층 달랐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도중에서 눈을 떠버렸으니까.
(꿈…… 맞지?)
나는 무서운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한밤 중의 방 안이 추워지는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든다.
지금까지는 집점이 된 그 소녀가 꾸던 살의가 넘치는 꿈이 한밤중의 마을에 넘쳐나온 것이고. 지금 꾼 건, 현실의 그 검은 살의가 실시간으로 내 머리 속에 간섭한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그렇다면, 아까 본 광경 다음에 이어질 장면은?
혹시 꿈을 꾸며 그녀의 살의에 동조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나처럼 그 타이밍에서 눈을 뜨지 못했다면?
나는 안절부절하며 방 안을 뱅글뱅글 돌았다.
방심한건가. 내일에라도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냥 자 버린 내 탓인가.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않았나. 그렇게 늦은 시간에 마사키 쿄코네 집까지 가서 초상화를 받아서 손에 쥐고 또 그 주택가를 돌아다녀야 했다는 건가?
하다못해 집이 어디 있는지라도 알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시선을 비스듬히 아래로 떨궜다.
잠깐만.
문 너머의 광경. 달이 반쯤 가려져있던 빌딩의 실루엣. 꿈 속의 시선.
그 빌딩은 어딘지 알아.
시내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분명히 그 누구나 알고 있다. 가장 높은 빌딩이니까.
빌딩의 위치와 달의 위치. 그것만 알고 있다면, 장소를, 빌딩과 달이 현관 안에서 문 너머로 보이는 집을, 거의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방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자고 있는 가족들을 깨우지 않도록 계단을 내려가는 기세를 늦춘다.
집안은 무척이나 조용해서 아빠가 이를 가는 소리만 조그맣게 들려온다.
나는 현관으로 가려고 발을 잠시 멈추고는 응접실 쪽을 들여다보았다.
원래 엄마는 2층에서 주무시지만 요즘에는 잠자리가 별로 안 좋다며 바람이 잘 통하는 응접실에서 주무시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장지문을 조용히 열고는 알전구 아래에 깐 이불이 규칙적으로 위 아래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확인한다.
다행이다. 아무 일도 없어서.
그리고 발을 돌리려고 했을 때, 어둠 속에서 둔하게 빛나는 게 보였다.
그건 내 오른손에 쥐어져있다. 아까부터 오른손이 묘하게 부자유스러운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걸 눈치채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그게 아니라면 못 본 척, 눈치채지 못한 척 여기까지 와 있다.
가위다.
책상 서랍을 닫을 때 가위를 집어넣지 않은 거다. 오른 손에 쥔 채로.
마치 역재생이라도 한 것처럼 기억이 되살아난다.
전신의 털이 거꾸로 솟는 듯한 한기가 느껴지고, 눈 앞이 어두워지는 것 같은 현기증이 나고, 나는 가위를 그 자리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가위는 다다미 위에서 조그만 소리를 내며 굴러가고,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현관 쪽으로 달려갔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끼익, 하고 쓸데없이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습기를 머금은 미지근한 밤공기가 뺨을 쓰다듬었다.
밖은 어둡다.
현관문에 늘 놓아두는 회중전등을 손에 들고 주차장으로 간다. 그리고 자전거 바구니에 그걸 던져넣고는 안장에 걸터앉는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리고 금세 힘을 넣어서 단숨에 가속한다.
(가위를 들고 있었어! 그것도 무의식적으로!)
혼란스러운 머리를 바람에 부딪힌다. 아니, 바람이 부딪혀오는 걸까.
나는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그 모든 일을 자기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젠 질렸다. 이따위 일따윈 이제 하고 싶지 않다.
잠들어있는 밤거리를 가로질러 페달을 미친듯이 밟아댄다. 하늘은 맑고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약간의 구름이 달빛에 비치고 있다.
이 하늘 아래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살의에 물든 손이 무수한 가지를 뻗으려 지금도 꿈틀대고 있는 것인가.
그 살의에 닿지 않도록 몸을 비틀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뚜――――
귓 속으로 바람소리와는 다른 그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소리.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소리.
밤의, 전화소리다.
자전거의 속도를 줄이는 내 눈 앞에 어두운 가로등이 뚝 떨어져 서 있는 저 너머, 공중전화 부스가 나타났다.
소리는 그 전화부스에서 나오고 있었다. DiLiLiLiLiLiLi……DiLiLiLiLiLiLi……, 숨을 쉬는 것마냥 그 소리는 계속된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뛴다.
귀신 전화다.
그런 말이 머릿 속 어딘가에서 들려온다.
아무도 없는 한 밤중의 전화부스.
나는 자전거를 옆에 세우고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비틀비틀 그쪽으로 다가가는 자신을 왠지 현실감이 없는 느낌으로,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양 바라보고 있었다.
스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가니 문은 저절로 닫히고 녹색의 전화기가 천장 형광등 불빛을 받으며 불쾌한 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오른 팔을 천천히 뻗어 수화기를 쥔다.
훅이 올라가는 소리가 나더니 Lin, 하는 소리를 끝으로 전화벨소리는 뚝 끊겼다.
저 수화기 너머에 있는 건 대체 누굴까.
멍한 생각과는 다르게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다시 한 번 말하자.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웃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가면 안돼.」
이 목소리는.
그렇게 생각한 순간 뇌 기능이 재기동하기 시작한다.
마사키 쿄코다. 이 너머에 있는 건.
「철들에 둘러싸여 잠들고, 식물 속에서 눈을 뜨고, 동물 속에서 걷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알겠니?」
차가운 목소리가 노이즈와 함께 들려온다.
「왜. 어떻게 여기다가 건거야.」
침묵.
「너도 꾼거지. 그 꿈. 왜 가지 말라는 거냐.」
콜록, 콜록, 콜록, 차갑게 웃는 듯한 기침소리가 들려온다.
「……그 전화기의 왼쪽 아래를 보렴.」
그 말대로 시선을 떨군다. 거기에는 은색 스티커가 붙어 있고, 전화번호가 새겨져있다. 이 전화기의 번호일까.
「의외로 다들 모르더라고. 공중전화에도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걸.」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사고의 밸런스가 무너져가는 느낌. 이 전화 너머에 있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일까? 아니면, 인간세계에는 속하지 않은 그 무엇일까.
「꿈을 꾸고, 네가 거기로 갈 거라는 것은 금방 알았어. 그러려면 그 전화 부스 앞을 지나가겠지 싶었어. 단 한마디만, 주의를 주고 싶어서, 전화를 건 거야.」
「번호는 어떻게 안거야.」
「난 너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알고 있어.」
미리 조사해두었다는 걸까. 언제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이런 공중전화 번호까지.
「가면 안돼. 나도 조금 얕잡아보고 있었어.」
「뭘 말야.」
다시 침묵이 돌아온다. 조그맣게 들려오는 숨소리.
「그래도 안되겠네. 넌 가겠지. 그러니까, 나도 빌어줄게. 무사하기를.」
통화가 끊겼다.
뚜-, 뚜-, 소리가 오른쪽 귀에 되풀이된다.
나는 마지막에, 말하려고 했다. 전화가 끊기기 전에, 급하게 말하려고 했다.
그래서 아연해졌다.
같이 가자.
그렇게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의지할 것이 없는 이 밤의 어둠 속을 함께 걸어갈 누군가의 어깨가 필요했다.
수화기를 후크에 다시 걸고는 전화부스에서 나온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가로등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거의 꺼지기 직전인가. 나는 자전거의 핸들을 쥐었다.
가자. 혼자서라도, 꿈의 다음 장면을 알아내기 위해서.
자전거는 가속한다. 귀의 모양을 따라 바람이 뱅글뱅글 돌며 복잡한 소리 속에 나를 가둔다.
돌아보아도 전화부스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전화기에서 점점 멀어짐에 따라 아까 받았던 전화가 정말로 생겼던 일인지 실감도 따라서 엷어진다.
몇 번째인지 모를 코너를 돌아서 잠시 더 나아가자 도로의 한 가운데에 무언가가 놓여있은 것이 보였다.
속도를 줄이고 잘 보았다. 그것은 콘이었다. 공사현장에서 곧잘 보이곤 하는 그 원추형 모양의 그것이다. 파이론이라고 하던가?
도로 안쪽에는 민가의 콘크리트 담장이 늘어서 있다. 저 멀리까지. 아스팔트 위에 단지 잘못 놓여있기라도 한 것처럼 화려한 노랑과 검정 줄무늬 콘이 하나, 덩그라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저 편에는 공사장이 보이지도 않았다. 누가 장난이라도 친 걸까.
그 옆을 스쳐지나 앞으로 더 나아간다.
500미터 정도 가니 도로 한 가운데에 삼각형 실루엣이 보였다. 또 콘이다.
피해서 나아가자, 이번에는 10초 정도 더 간 곳에서 콘이 또 나타났다. 그걸 지나치니 또 다음 콘이……
그것은 기묘한 광경이었다.
인영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심야의 주택가에 어떠한 위험을 알리는 물건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도 가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콘만이 길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점점 묘하게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별 생각 하지 않으려 애쓰며 바퀴의 회전에만 의식을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그 커다란 실루엣을 볼 때에는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던 탓에 전신에 충격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콘이 아니다. 가늘고 긴데다 머리 부분이 둥글다. 길에서 곧잘 보곤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한 밤중의 도로 한 가운데에 있는 광경이란 정말이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출입금지』를 나타내는 도로표식이 그 콘크리트 토대째로 뽑혀 도로 위에 놓여있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원래 표지판이 있었을 만한 구멍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누가, 그리고 어디서 가져온 걸까.。
오싹오싹 떨려오는 어깨를 누르며 『출입금지』된 그 저 너머로 나아간다.
이것도 폴터가이스트 현상일까?
그러나 지금까지 일어난 괴현상들과는 명백히 그 성질이 다른 것만 같았다. 돌 비라거나, 전신주나 가로수가 뽑혀나간 사건, 내용물을 다 떨어뜨리는 책장이나 빌딩의 이상한 정전 등에는 "의도"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 어떻게 보면 의미가 참 단순한 장난질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길에 놓인 콘이나 도로표식은 그 통일된 의미도, 집요함도, 누군가의 "의도"를 나타내는 것만 같았다.
오・지・마.
이 세 음절을, 머릿 속에서 재생한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나타나는 방식이 변했다. 왜 이렇게 된 건지는 알 수 없다. 나타나는 방식이 바뀌었다기보다도 「막이 올랐다」고 해야할까. 이런 건 RSPK, 반복성우발성염력 따위의 어설픈 게 아니다. 좀 더 무시무시한 그 무언가……
나는 날숨에 힘을 넣는다. 눈은 앞을 강하게 쳐다본다. 무서워해서는 안된다.
붕붕 경치가 뒤로 지나가고 방과후에 들렀던 오렌지색 원의 중심지에 있는 주택가에 도착한다. 결국 도로표식은 그 이후 나타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최후의 경고라고 해야할까.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달빛에 비친 빌딩의 그림자를 찾는다.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그림자다.
그리고 달이 그 빌딩에 반쯤 가려질만한 시점을 찾아, 숨을 죽이며 자전거로 천천히 나아간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집에 잠들어 불빛도 새나오지 않는다. 여러가지 모양의 지붕이 묵묵히 사방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다.
마침내 나는 낮은 울타리 앞에 도착했다. 마을에 뻥하니 뚫린 구멍 같은 공간.
저 너머로 은색 가로등이 보인다. 차폐물이 없는 장소를 골라서 지나가는지 바람이 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
공원이다.
나는 가슴 속에 소용돌이치기 시작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예감과 함께 자전거를 입구에 세우고는 스탠드를 내리고 나서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 아래에 부드럽게 밟히는 흙의 감촉. 은색 빛을 받아 검게 윤곽이 보이는 놀이기구들. 올려다본 달은 빌딩에 가려져있지 않았다. 여기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 시선 끝에는 가로등 아래에 선 두 인영이 있는 것이다.
꿀꺽, 입 안에 얼마 남지 않은 수분을 삼켰다.
인영들도 점점 다가오는 나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복수의 시선이 확실히 느껴진다.
바람이 귓가에서 신음소리를 내고는 지나갔다.
「또 왔다.」그림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대체 뭐 어떻게 된 거야.」
드디어 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경을 낀 남자다. 흰 셔츠에 바지 차림이다. 넥타이를 매고 있진 않았지만 샐러리맨인 것 같았다. 신경질적인 그 얼굴은 한 서른 정도 된 걸로 보였다.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 오는 걸 보면 우리들하고 같다는 걸테죠.」
목소리는 젊은 편이지만 외견은 50을 넘긴 아주머니였다. 평범한 카키색 상의에 스커트. 약간 통통한 그 체형이 이상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저기, 당신들은, 여기서 뭘……」
거기까지 말하니 말문이 막혔다.
「그러니까 말했잖냐. 똑같다고. 너도 꿨지? 그 꿈 말야.」
옆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얼굴을 그 쪽으로 돌린다.
낮은 철책 너머에 그네가 하나 있고, 거기에도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끼익끼익 소리를 내가며 발로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너, 고딩이냐?」
얕잡아보는 듯한 말이 그 입에서 튀어나온다.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지만 목소리와 복장을 보아하니 젊은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벅지가 드러나는 핫팬츠에 티셔츠라는 무척이나 시원해보이는 복장이다. 딱히 질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뭐, 여기까지 왔다는 건 평범한 놈은 아니라는 거네.」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내 체내의 혈액이 서서히 뜨거워진다.
똑같다. 이 사람들은. 나하고.
그들은 마을에서 일어난 괴기현상과 모친살해몽의 비밀을 풀어 여기에 모인 사람들인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함과 불안감을 안고 달렸던 며칠 간이,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체험이었을 터인 며칠 간이, 나란히 달리는 복수의 사람들의 체험과 겹쳐졌다는 것에 나는 환희와 한기, 그리고 고양감을 느꼈다.
「얘야, 아까 그 꿈, 어디까지 꿨니?」
아주머니가 이쪽을 보더니 물어보았다. 나는 내가 꾼 꿈 그대로 이야기했다.
「역시나.」조금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다들 비슷한 데서 눈을 떠버리나봐.」
「이, 이제 됐어. 여기서 언제까지 수다나 떨고 있어봤자잖아.」
안경을 낀 남자가 팔을 벌려 요란하게 흔든다.
「그래도 말이지, 이 이상 뭘 어떻게 찾아낸담.」아주머니는 뺨에 손바닥을 댄다. 「달하고 빌딩의 위치만 가지고는 범위를 어느 정도밖에 줄일 수 없는데다가, 시간도 좀 지나서 더 알기 힘드네.」
「이러고 있어도 더 알 수 없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일단 근처까지 가면 뭘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런 대화를 들으며 나는 지난 주 한문 수업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질풍이 불고 나서야 강한 풀을 안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마도, 강한 바람이 불고 나서야 바람에 지지 않는 강한 풀을 가려낼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이 흔들리고 나서야 처음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두각을 드러낸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낮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왕래하는 이 마을에서, 그 누구나 자신들의 사소한 상식 속에서 호흡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가령 그늘에 숨어 걷는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러나 이런 마을에도 이렇게 밤이 되면 상식의 껍질을 깨고 이 세상의 원칙의 그늘을 돌파해내는 기묘한 사람들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서로 길에서 스쳐 지나가도 알 수 없다. 각자 자신의 개인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이렇게 같은 비밀을 향해 이 곳에 모였다. 밋밋한 익명의 가면을 벗고.
그 사실에 가슴이 점점 크게 뛰었다.
「네 명이나 있으니까 좀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는데.」
아주머니가 한숨을 쉰다.
야구모자를 쓴 여자가 코웃음을 치며 「네 명이라고? 다섯 명이잖아.」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들 그 쪽을 본다. 커다란 은행나무가 하나 가로등 옆에 서 있다. 그 나무 줄기의 그늘에 숨어서 희고 조그마한 얼굴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게 영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아서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은 쇼크를 받았다.
그러나 그 얼굴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부끄러운 듯 나무 뒤로 숨는 것을 보고 얼레? 싶었다.
「어머나? 아이고. 여자애니?」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른다.
「잠깐만, 너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전혀 눈치를 못 챘는데. 」안경을 낀 남자가 말하고는 얼굴에 흐른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낸다.
「얘야, 너 여기 근처에 사는 애니? 이렇게 늦게까지 밖에서 놀고 있으면 어떡하니.」
아주머니가 상냥한 목소리로 불러 세우자 여자애가 얼굴을 빼꼼 내민다. 열 살 정도 되었을까.
「어머나, 저 애 외국인인가?」
그 소리를 듣고 잘 보니 눈이 파랗게 빛나고 있다. 가로등 불빛 탓은 아닌 모양이다.
「돌아가라. 여긴 위험해.」
안경을 낀 남자가 빠른 말투로 말하고는 가까이 가려고 한다. 여자아이는 또 나무 뒤로 숨었다. 남자가 팔을 앞으로 뻗으며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자, 그 아이는 그 움직임을 따라 뱅글뱅글 반대편으로 돈다.
「아, 뭐야 요녀석. 뭘 도망가고 앉았어, 얀마.」
안경을 낀 남자가 짜증이 난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그네를 흔들며 모자를 쓴 여자가 비웃는다.
「당신 혹시 로리콘이야?」
「시끄러.」
「잠깐만, 그만해요. 애가 겁먹었잖아.」
아주머니가 남자를 달랜다.
「대단하네. 저 애, 이렇게 어린데 우리들하고 똑같은 걸 봤다는 거잖아.」
모자를 쓴 여자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럴 수가. 이렇게 조그마한 애가 나하고 똑같은 걸 생각하고는 여기까지 왔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어떤 이변을 포착했다.
「시」라고 누군가가 짧게 말한다.
숨을 삼키는 우리들의 귀에 새가 우는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까악깍깍깍……
까마귀다.
나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공원 쪽이 아니다.
모두 전신을 긴장시킨다.
우는 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곧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네 녹슨 소리를 내며 모자를 쓴 여자가 그네에서 내렸다.
「뭐라는 것 같아?」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그렇게 묻는다.
「경계하라, 고.」
그녀는 내 얼굴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왠지 모르게 데자뷰 같은 게 느껴졌다. 발소리를 죽이고 모두 함께 공원의 출구 쪽으로 간다. 행동으로 옮기는 게 빠르다. 주저하지 않는다.
나도 심호흡을 하며 뒤를 따라간다.
공원 부지를 나오자 아스팔트에 스치는 신발 소리가 쓸데없이 크게 울리는 걸 금세 눈치챘다. 안경을 낀 남자의 가죽 구두다. 다들 발 소리를 죽이고 있는데.
복수의 노려보는 듯한 시선을 눈치채지도 못한 듯 그는 선두에서 공원 옆의 도로를 오른쪽을 향해 전진한다. 달빛에 비추어지는 아무도 없는 밤길을 다섯 명의 그림자가 달려간다. 다섯 명? 뒤를 돌아보자 조그마한 소녀가 두꺼운 옷을 팔락이며 조금 떨어져서 오고 있었다.
푸른 눈이 달빛에 젖은 듯 수상하게 빛나는 것 같다.
저것도 육체를 지닌 인간일까. 어째서인지 오늘 밤 이 마을에서는 이 모든 것이 허상만 같다. 그리고 지금부터 뭔지 모를, 좀 더 무시무시한 것을 보고야 말 것 같은 느낌이 나 발을 멈추고 싶어진다. 그것은 낮 이후에 계속되는 밤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뽑혀나간 도로표식과는 또 다른, 자신의 안의 양식을 일부, 그리고 확실히 정정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것을.
나는 어느 샌가 현실과 똑 닮은 이계에 떨어지고 만 걸까. 신중하게 발을 움직이며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길고 가느다랗게 뻗어있는 녹지가 주택지의 구획을 나누고 있고, 그 중 한층 높은 포석으로 깔린 보도 위에 커다란 나무가 가지를 사방으로 뻗고 있었다. 우거진 이파리가 달빛을 가리고, 그 바로 아래에 생긴 어둠에 녹아들듯 작은 동물이 꿈틀대는 그림자가 보였다.
멈춰선 우리들의 눈 앞에 까악까악 불길한 소리를 내며 그 그림자가 두 개 날아올랐다.
까마귀다. 두 마리는 둔중한 날개를 떨치며 눈 깜짝할 새에 밤하늘로 사라져간다.
우리들은 숨을 죽이고 까마귀들이 있던 장소를 들여다본다. 어둠 속에 그것이 있었다.
아아, 역시 이쪽이 꿈일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에서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에에에에에에에……」
약하디 약한 소리를 쥐어짜내며 몸을 뒤트는 그것은 마치 둥지에서 떨어지고 만 까마귀 새끼같았다. 아까 전의 두 마리는 걱정이 되어 들여다보던 부모였겠지. 하지만 아까 전 그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는 자식을 살피는 부모님의 소리같지는 않았다.
경계하라. 경계하라. 저 이물(異物)을, 경계하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에에에에에에에에……」
이런 매우 작은 신음소리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그마한 사람의 얼굴에서 흘러나온다. 아가처럼 생긴 그 얼굴 아래에는 더러운 깃털에 싸인 까마귀 새끼의 몸이 들러붙어있다.
그것은 태어난 것 그 자체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롭기라도 한 양 조그마한 신체를 비틀며 벽돌 위를 기어가고 있다.
그것을 내려다보는 사람들 누구나 다 숨을 삼키고 움직이지 못했다.
갈라진 신음소리가 계속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매우 작은 아가의 얼굴은 꾹 닫힌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구깃구깃 일그러진 채 조금씩 떨고 있다.
마침내 그 신음소리가 점점 변조되어 들리는 부분과 들리지 않는 부분이 슬슬 나뉘어지기 시작한다.
「이, 이건, 이봐, 이게, 뭐야……」
안경을 낀 남자가 입을 누른 채 벌벌 떨고 있다.
「가만히 좀 있어봐요.」
그 옆에서 아주머니가 짧게, 그러나 강한 어조로 말한다.
바람이 불고 머리 위의 이파리가 들썩인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우리들은 자연스레 얼굴을 가까이 댔다.
「…………불…………하…………게……………」
아이의 머리를 가진 그것은 신음하며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뭐라는 거지? 귀를 기울여보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이 그 귀를 막으려 한다. 아니, 그 손은 위험을 감지하는 내 안의 어떠한 부분에서 뻗어나온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들려온다.
불・쌍・하・게・도.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물을 흘리며, 고통으로 몸을 뒤틀며, 그것은, 불쌍하게도, 불쌍하게도, 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쿠단, 이다.」
안경을 낀 남자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쿠단? 쿠단이란 건 사람 얼굴에 소 몸을 가진 괴물이다. 태어나서 곧장 재앙에 관한 예언을 남기고 죽어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의 머리와 동물의 몸을 가졌다는 대목밖에 맞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신체가 두 종류 이상의 동물로 구성된 괴물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지. 왜 그랬더라. 아득히 먼 옛날 일처럼만 느껴진다. 맞다. 그건 마사키 쿄코가 낸 수수께끼였다. 공통점은 뭐게? 괴물을 낳은 것은 누구?
사고가 빙글빙글 회전한다.
「뭐가 온다!」
모자를 쓴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뒤돌아보자 검은 덩어리가 이쪽을 향해 뛰어들어왔다.
가장 뒤에 쭈그리고 있던 파란 눈의 소녀가 재빠란 몸놀림으로 그걸 피하더니 그 여세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나를 포함한 네 사람도 순식간에 몸을 돌려 그 덩어리의 태클을 피했다.
검은 덩어리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잇몸을 보인 채 우리들을 위협하는 듯이 으르렁대고 있다.
개다. 목줄도 하지 않았다. 들개다.
눈은 충혈되어 있고 마치 초점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지면에 손을 대고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개로부터 떨어졌다. 다른 사람들도 뒷걸음질치며 나무 아래에서 멀어진다. 아주머니가 엉덩방아를 찧은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소녀를 안아들고 서둘러 도망간다.
개는 멀어져가는 인간에는 별 관심 없이 침을 흘리며 나무 뿌리 근처의 어둠으로 목을 뻗는다.
그리고, 그르르르르 하는 신음소리와 고기를 씹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온다.
「머, 먹고 있어.」
10미터 이상 떨어진 장소에서 허리가 빠진 상태인 안경을 낀 남자가 절구(絶句)했다.
나무 아래에서 들리던 사람의 목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다만 고기와 뼈가 씹혀 부숴지는 소리만이 밤그늘에 안긴 듯 울릴 뿐이다.
나는 어쩔 도리도 없이 기분이 나빠져 저쪽을 직시하지도 못할 정도의 오한에 전신이 떨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그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그 앞에서 서서히 개가 내는 소리가 작아지고는 마침내 습기가 있는 숨소리만 남았다.
공복이 진정된 모양인지, 개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원만한 움직임으로 혀를 내밀더니 입 주변을 핥기 시작한다. 보인 건 아니다.
개는 저 쪽을 보고 있는 채였다. 다만 그러고 있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음이 할짝할짝 들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육식의 여운을 맛본 후, 개는 한 번 짖더니 나뭇가지를 돌아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마지막으로 들려온 그 소리의 음색은 무척이나 기분이 나빠 귀에 들러붙기라도 한 양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떨어지질 않았다.
불쌍하게도.
라고, 내게는 확실히 그렇게 들렸다.
개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게 되자 주택가 안의 녹지는 다시금 조용해졌다.
「뭐였을까.」 아주머니가 소녀의 손을 잡은 채 목소리를 쥐어짜내었다. 안경을 낀 남자는 주춤주춤 나무 쪽으로 다가간다.
「먹혔어.」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뻗었지만 거기에는 검은 핏자국과 흩어진 깃털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기형, 이었나?」자문하듯 안경을 낀 남자가 내뱉는다. 야구모자를 쓴 여자는 그럴 리 없잖냐고 비웃으며 받아쳤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기형이건 뭐건 간에 자연계가 그런 모독적인 존재를 허용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환각?」
내 말에 전원의 시선이 모인다.
「그래도, 다들 똑같은 걸 봤잖아. 그…… 쿠단 같은 걸 말야.」
「잠깐만. 당신만 소를 본거야?」 야구모자를 쓴 여자가 말참견을 한다.
「자, 잠깐만. 그럼 저런 걸 뭐라고 하란 말야, 저렇게 인간 머리가 달린 걸.」
「그러고 보면, 예전에 인면견이란 게 있었지.」라며 아주머니가 조금 헛나간 소리를 한다.
「쿠단이면 예언을 할 거 아냐. 전쟁이라거나, 질병 같은 걸.」모자를 쓴 여자가 양 손을 벌려보인다.
「말을 했잖아.」
「불쌍하게도, 가 예언이냐? 대체 누가 불쌍하단거야.」
그 말에, 말한 본인도 포함한 전원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부스럭부스럭 나뭇잎이 술렁인다.
그렇다. 불쌍한 건, 누구?
뇌리에 몇 번이나 꿈에서 본 광경이 압축되어 빨리감기라도 한 것처럼 재생된다. 이 장소에 온 이유를 잊어버릴 뻔 했다.
얼른 하늘을 바라본다.
달은 구름에 숨지도 않고 빛나고 있다.
달의 위치. 그리고 가장 높은 빌딩의 위치.
가깝다. 고 생각했다.
「달은 어디서 떠서 어디로 지지?」 안경을 낀 남자가 모두에게 묻는다.
「태양하고 똑같잖아. 저기서 떠서 저기로.」모자를 쓴 여자가 손가락으로 아치를 그린다. 「아, 한 시간에 몇 도 움직이더라? 까먹었다. 야, 넌 현역이잖아?」
갑자기 가리키는 바람에 동요하긴 했지만 「아마, 15도.」라고 대답한다.
「1시간하고 조금 더 지난 거 같긴 하지만, 지금.」이라면서 안경을 낀 남자가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어 달을 바라본다.
「15도는 얼마만큼이지.」
손으로 만든 고리를 눈에 댄 채로 중얼대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꽤나 가까워진 것 같아.」아주머니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흩어져서 찾아볼까.」안경을 낀 남자의 제안에는 아무도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런 시간에 일반인을 두들겨 깨우면서 돌아다니면 경찰한테 신고 당하겠는데.」라며 혼자서 결론을 내리고 한숨을 쉰다.
잠시동안 기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정체의 시간이 찾아왔다.
모자를 쓴 여자와 아주머니가 작은 소리로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안경을 낀 남자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고 있다가 나무 뒤에 숨어가며 따라오고 있던 파란 눈의 소녀한테 「너도 뭐라고 좀 해봐.」라고 말을 던졌다.
소녀는 몸을 움츠리고는 잠자코 눈을 깜빡깜빡대고 있다.
나는 아까의 플래쉬 백에서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 들어 다시 한 번 꿈 속에서 본 광경을 회상하려고 한다. 그것은 무척이나 사소한 것 같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디지? 흔들리는 기억의 바다에 얼굴을 담근다.
날붙이의 감촉? 아냐.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 체인을 벗기기 위해서 한 발돋움. 저편에서 두들기는 문. 아니다. 좀 더 앞이다. 발소리. 그 발소리는 엄마의 발소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발소리는, 밑에서 올라온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
확실히, 발소리는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어째서 그걸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
2층보다 위다. 2층 이상의 장소에 현관이 있다는 건, 집합주택이다. 맨션이거나 아파트.
나는 밤거리를 달려갔다. 다른 사람들의 놀란 얼굴을 등 뒤에 남기고.
생각해라. 평평한 장소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아니다. 올라오는 소리였어. 맨션이라면 방 안에서 통로 끝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가 들려올까. 끝방이라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가령, 계단이 방의 현관 바로 앞에 배치되어 있는 것 같은 아파트라면, 좀 더……
내 시선 끝에 그것이 나타났다.
비교적 낡은 집이 늘어서 있는 한 편에 조그마한 목조 2층 아파트가 조용히 서 있다.
1층에 방이 세 개. 2층에도 방이 세 개. 현관이 길 쪽으로 나 있다. 간단한 난간 너머에 문이 여섯개 평면으로 늘어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1층 오른 쪽의 문 앞에서 2층 왼 쪽의 문 앞으로 뻗어 있다. 붉게 녹이 슬어 있는 싸구려 철제 계단이다. 올라가면 캉, 캉, 하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날테지.
멈춰선 나를 겨우 다른 사람들이 따라잡았다.
「왜 그래!」「잠깐만, 아, 발소리였나.」「이 아파트가 거기인가?」「……」
아파트 부지에 들어가 계단 옆에 붙어 있는 노란 전등 불빛을 의지하여 주차장 옆의 우편함을 들여다본다.
상하로 세 개씩 늘어선 은색 상자에는 101부터 203까지의 숫자가 새겨져 있다.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그리고 101과 201, 그리고 203의 상자에는 전단지가 금방이라도 넘쳐나올 듯이 쑤셔박혀있다. 깨끗하게 정리된 번호의 방에는 현재 제대로 살고 있는 입주자가 있다는 거겠지.
2층에서 깨끗한 건 202호 뿐이다.
그래서 엄마의 발소리란 걸 알았을 것이다. 계단을 올라올 사람이 그 외엔 딱히 없으니까.
그 의미를 이해한 사람들의 숨을 삼키는 기척이 전해져온다.
계단을 올려다보며 그쪽으로 걸어가려고 하자 갑자기 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쪽을 보니 파란 눈의 소녀의 앞에서 한 마리의 지저분한 고양이가 도망가려던 참이었다. 부지 구석에 설치된 쓰레기장 같은 장소다. 검은 비닐 봉지나 종이 박스가 겹쳐져 있다.
파란 눈의 소녀는 고양이가 떠난 쓰레기장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 이상한 기척을 눈치챈 나도 그 쪽으로 향한다.
끈적하게 땀이 배어나온다. 아까 달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두운 예감에 공간이 휘청휘청 휜다. 나의 코는 미약한 냄새를 느끼고 있었다. 고기의 냄새. 썩어가는 냄새.
쓰레기장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한다. 잡초가 발에 엉켜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어디서부터 들려오는지도 모를 거친 숨소리. 그리고 그 속에 섞여 불쌍하게도, 불쌍하게도 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환청이다. 잡초도 짧다. 쓰레기장도 움직이거나 하지 않는다.
이성이, 장애물을 하나, 하나 뿌리쳐나간다.
하지만 그 썩는 냄새만큼은 여전했다.
내용물이 꽉꽉 들어찬 검은 쓰레기봉투가 공간의 한 가운데에 버려져있다.
이중, 아니 삼중으로 싸여있기라도 한지 이상하게 탄탄했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어깨가 겨우 서로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로 모두들 늘어서 있다.
가슴에 못이 단속적으로 박히는 듯한 느낌. 손을 거기에 댄다.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눈을 뗄 수 없다.
안경을 낀 남자가 허리를 뒤로 뺀 채 쓰레기봉투의 윗부분에 생긴 틈새에 손가락을 건다. 아까 그 고양이의 짓일까.
부스럭부스럭대는 소리와 함께 내용물이 달빛 아래에 나타난다.
흙빛 피부.
눈을 감은 채 입을 반쯤 벌린 어린 여자아이의 얼굴이 쓰레기봉투의 틈새로 보인다. 살아있는 인간의 얼굴은 아니었다.
그걸 본 순간 전신의 피가 거꾸로 흘렀다.
발이 흙을 차고 무의식적으로 계단 쪽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앞으로 뻗어나온 누군가의 손에 어깨를 붙잡힌다. 사정없는 힘이었다. 눈 앞에 얼굴이 나타난다. 모자 아래로 보이는 험악한 표정.
「진정해.」
바로 그 옆을 안경을 낀 남자가 뭐라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가려고 한다.
모자를 쓴 여자는 잽싸게 오른 발을 걸어 안경을 낀 남자가 엎어졌다.
「대체 뭐하는 거야!」아주머니가 외치며 내 등을 누른다. 그 힘은 나의 전진하려는 힘과 겹쳐져 야구모자를 쓴 여자가 질질질 뒤로 밀린다.
「진정해. 뭘 할 작정이야.」
뭘 할 작정이냐고? 뻔하지. 복수해야만 한다. 똑같은 꼴을 당하게 해 줄테다.
애를 쓰레기처럼 버려놓고, 202호실 문 저편에서 당당히 살아갈 그 어머니를.
「비켜!」라며 아주머니가 갈라진 목소리로 모자를 쓴 여자에게 소리지른다.
바로 옆에는 안경을 낀 남자가 일어나려고 하고 있다.
「씨발!」모자를 쓴 여자가 신음하며 오른 발로 남자의 얼굴을 찼다. 제대로 맞지는 않았지만 안경이 튕겨나가 풀숲 사이로 사라졌다.
안경을 낀 남자는 우왓, 하고 소리를 지르며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다리를 올린 탓에 균형이 무너진 모자를 쓴 여자가 자세를 고치기 전에, 나는 붙잡힌 어깨를 뿌리치며 단숨에 돌진했다.
순간 되누르는 것 같은 강한 반동이 있었지만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그 벽이 무너진다.
세 명이 얽혀 훼까닥 뒤집히는 바람에 그 여세로 모자를 쓴 여자의 측두부가 계단 밑부분의 콘크리트에 부딪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지면에 팔꿈치를 세게 부딪혔다. 아파서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금세 일어나려했다.
그러나 뭔가가 허벅지 뒤에 올라타있다. 거슬린다. 아주머니의 몸인가. 아프다고 신음할 때가 아니다. 빨리 방으로 가야만 한다. 이 머리를 뒤흔드는 술렁임이 어딘가로 가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누가 내 옷을 갑자기 당겼다. 뒤에서 당긴 거다. 고개를 돌려보니 푸른 눈의 소녀가 덜덜 떨며 내 웃옷을 양 손으로 붙잡고 있다. 고개를 저으며 어떤 부정의 의미를 표현하려고 하고 있다.
「이거 놔.」
그렇게 말한 순간, 뭔가 뱀같은 것이 목에 엉겨붙었다. 그리고 찰싹, 그 본체가 내 목덜미 부근에 접착된다.
「미안.」
목소리가 귓가에서 속삭이더니 얽혀있던 것이 내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기도를 노린 게 아니다. 경동맥이다.
얼른 팔을 등 뒤로 돌리려고 했지만 좀 더 강한 힘이 내 몸과 팔을 통채로 얽어맨다.
의식이 점차 멀어진다. 밤하늘에는 달이 차갑게 빛나고 있다. 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어둡다. 달도 어두워진다. 괴롭지만, 조금 편해진다.
거기서 세계가 뚝 끊어졌다.
눈이 떠졌을 때 나는 벤치에 누워있었다. 이마 위에 적신 손수건이 올라가 있다. 손가락으로 집으며 몸을 일으켜보니 은색 빛이 눈에 들어왔다.
공원이다. 주변은 어둡다. 가로등이 비추고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그림자가 이쪽으로 뻗어있다. 끼익, 끼익, 그네가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일어났군.」
그네가 멈추더니 그쪽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다행이다. 눈을 못 뜨면 어쩌나 싶었어.」 아주머니가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그냥 잠든 거라고.」
모자를 쓴 여자가 지친 듯한 동작으로 오른 손을 펴 보인다.
슬슬 기억이 되살아난다. 맞다. 나는, 슬리퍼 홀드(역주 : 레슬링 기술인데 어떻게 잘 표현을 못 하겠어ㅠㅠㅠㅠ 미안미안)로 기절했던 거다. 저 여자 때문에.
나는 눈을 감고 시커먼 감정이 내 안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만큼이나 목표를 파괴하고 싶었던 충동이 전부 몸 바깥으로 흘러나간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었다.
「우, 우리들은 그 아이의 사념에 너무 많이 동조해 버린거야.」안경의 남자가 말했다. 「하, 하마터면, 살인자가 될 뻔 했어.」
「진짜 힘들었다고. 3대 1이었으니까. 아, 저 파란 눈의 아가씨도 넣어서 3대 2인가. 뭐, 난폭하게 굴어서 미안.」
힘없이 웃는 모자를 쓴 여자에게 안경을 낀 남자가 고개를 숙인다. 「아니,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그 안경테는 조금 찌그러져있었다.
나는 그 때, 모자를 쓴 여자의 뺨에 검은 선이 보이는 것을 눈치챘다. 관자놀이부터 뻗어나온 마른 핏자국이다. 넘어졌을 때 계단 밑부분에 부딪혔던 부분인가.
「아, 이거. 찰과상이야.」
「흉터가 안 남아야 할텐데.」아주머니가 걱정되는 듯한 기색으로 말한다.
「다른 데도 엄청 나 있고, 이 정도야 별 거 아냐.」
그런 대화를 들으며 나는 중요한 것을 생각해냈다.
「그 애는, 어떻게 됐나요.」
한 순간, 바람이 차가워진다.
야구모자를 쓴 여자가 천천히 입을 연다.
「현상유지한 채 후퇴. ……야, 또 빡치지 마라. 여하간, 더 이상은 경찰이 할 일이야. 우리들이 움직여도 될 만한 단계는 끝났다고.」
그 애를, 그 애의 시체를, 쓰레기 봉투에 넣은 채 방치한건가.
나도 모르게 벌컥 소리쳤다.
「그 애는,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어. 죽이는 꿈을 꿨어도, 죽이지 않았다고. 마지막까지, 살해당할 때까지, 죽이지 않았어. 아슬아슬한 곳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고. 우리들이, 이 마을의 사람들이, 이렇게 조용하게 밤을 보낼 수 있는 것도 다 그 덕분이야!」
주택가의 빛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여름 밤 밑바닥에 잠들어 있다.
「여기에 오지 말 걸 그랬어. 그 애는 그런 경고까지 했던 거 아닐까. 다 끝난 일이다. 이끌려 오는 침입자는. 눈을 감고 떠나야 한다.」
야구모자 아래의 진지한 눈이 스윽 밑을 향했다.
경고. 그런가, 그 콘이나 도로표식은 그거 때문에 있었나.
그렇다면 그, 까마귀와 사람이 섞인 듯한 불길한 생물은?
그 누구도 그 답을 갖고 있진 않았다. 모른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바로 옆에서 아무리 눈 비비고 봐도 보이지 않는 기묘한 것들이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어렸을 적부터 점을 치는 걸 좋아했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선 그런 게 맞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계속 했던 것은 예감과 비슷한 게 있던 걸지도 모른다. 100번 부정되어도 101번째로 진실의 전모를 엿볼 수 있다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존재의의가 반전된다. 그런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변하고 있는 중, 같은데.』
그렇다. 나는 변하고 있다. 어째서인지 몸이 덜덜 떨리는 것만 같은 술렁임에 감싸인다.
그 순간, 등줄기에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도 강렬한 시선이다. 아무도 없을 등 뒤의 공간에서.
야구모자를 쓴 여자의 몸이 거의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여 내가 앉아있는 벤치 끝쪽에 발을 올렸나 싶더니 전신의 탄력으로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어둠의 일부를 쥐어뜯 듯 그 오른손에 허공을 찢는다.
한 순간 공기가 튕기는 것 같은 감각이 들더니 이명이 머릿속에서 날뛰기 시작하고, 곧 사라졌다.
모자를 쓴 여자의 몸이 떨어진다. 그리고 흙 위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다.
「놓쳤어.」
일어나며 손가락을 튕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다들 멍하게 보고 있다.
「지금, 허공에 눈이 떠 있었잖아?」
아무도 본 적 없다. 고개를 젓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없이 그녀는 말을 잇는다.
「방금 건, 이번 일하고는 상관없어. 개인적인 일이야. 너한테 붙어 있었던 거야. 마음에 짚이는 데, 있어?」
그녀가 나를 가리키는 통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확실히 누군가가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들었다. 선배님의 집에서 폴터가이스트 현상 이야기를 들었던 밤. 아니, 그 감각은 그 전부터 알고 있다. 뭐지? 시선. 차가운 시선. 웃고 있는 듯한 시선. 표정을 바꾸지도 않은 채 미소가 조소로 바뀌어 가는 듯한……
내 안에 어떤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여자는 나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발로 뛰어 조사한 것들을 마치 앞지르기라도 한 양 전부 알고 있었다.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히.
「마음에 안들어. 이렇게, 현미경이나 보고 앉았는 것처럼 구는 새끼들은.」
모자를 쓴 여자는 입꼬리를 올려 송곳니를 드러냈다.
「귀찮은 놈이면 내가 처리해줄까.」
강한 의지를 감춘 불꽃이 눈동자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나는 순간 그것에 홀리고 말았다.
「뭐, 힘든 일이 생기면 말해. 나는 언제나――」
밤을 방황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비뚤어진 모자를 다시 깊게 고쳐쓰더니 우리들에게 등을 돌리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말야.」
갑자기 생각난 듯 급히 멈춰서더니 뒤돌아본다.
「키가 한 이 정도 되는 젊은 오빠, 누구 본 적 없어?」
우리들처럼 이 주택가까지 도달한 인간이라는 의미일까?
모두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 바보.」모자를 쓴 여자는 그렇게 토해낸다.「그럼 요~렇게 생긴 눈썹의, 뚝뚝하게 생긴 놈은?」
다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 새끼가-」
라며 이상하게 웃던 여자는 또 보자며 발걸음을 돌려 걸어간다.
「아, 맞다. 경찰에는 전화해둘게. 도망가는 편이 나을거다. 우리들같은 놈들은 이런 일에 얽히면 귀찮아지잖아. 이래저래.」
앞을 본 채 높이 올린 오른 손을 흔들어보인다.
그 그림자가 공원의 출구로 사라져가는 것을 바라본 후 남아있던 우리들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나, 나도 돌아갈래. 내일은 아침부터 회의가 있어. 그, 그럼.」
안경을 낀 남자가 발길을 돌리려한다. 그 회전이 딱 멎고 다시 한 번 그 얼굴이 이쪽을 본다.
「나는, 이상한 걸, 곧잘 보곤 하는데, 귀신 같은, 뭐, 그런 거 뿐만, 아니라, 뭐라고 해야하나. 그, 또 한명의 네가, 있네.」
두근 했다. 비밀을 보이고 만 느낌이 들어서.
「그거, 분명 나쁜 건 아니야. 그냥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럼, 하고 말하더니 그는 떠나간다.
「어머, 그러고보니 아까 그 외국인 꼬마애는?」아주머니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바라본다.
은행나무 그림자에 두 개의 빛이 보였다. 그 순간, 두꺼운 줄기의 뒤편에 슥 하고 숨는다.
「잠깐만. 집까지 바래다 줄게. 나하고 같이 가자.」
아주머니가 둥치를 따라 뒤편으로 돌아간다. 마치 안경을 낀 남자가 처음 그랬던 것 같은 광경이다.
그러나 바라보는 눈 앞에서 아주머니만 반대편으로 나온다.
여자아이의 모습은 안 보인다.
「어머? 없네.」
여우에게 홀리기라도 한 표정으로 나무 뒤편을 보려고 아주머니가 다시 한 번 돌아가려 한다.
여자아이가 잘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니다. 내 눈에도 아주머니가 빙글빙글 나무 주변을 돌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자아이는 홀연히 사라진채였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아주머니는 멈춰선 채 고개를 갸웃대고 있었지만 마음을 다잡은 듯 내 쪽을 보았다.
「나는 시내에서 점을 치고 있으니까, 다음에 만나면 공짜로 점을 쳐 줄게.」
그렇게 말하며 윙크를 한 후 아픈 듯 허리를 문지르며 공원 출구를 향해 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사건이 머리속에서 소용돌이를 그리며 가벼운 혼란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방이 가로등에 부딪혀 기분 나쁜 소리를 내고 있다.
여러가지 말이 뇌리를 달려 눈이 핑글핑글 돌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어떤 말이 무거운 채도로 시야를 덮어나가고 있다.
「구해내지 못했다.」
그 말을 입에 담아보니 쓰레기봉지에서 보이던 흙빛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그 시커먼 기분이 점점 마음 밑바닥에 침투되기 시작한다. 쓰레기장에 아무렇게나 버려지다니, 시체를 감추려는 의도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진짜 쓰레기를 버린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어떤 가정이고, 어떤 엄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정신감정 같은 걸로 죄를 묻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를 죽였는데도. 아니, 직접 손을 댔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죄를 물어야만 할 것이다.
울컥울컥 시커먼 감정이 가슴 속에서 들끓는다.
안돼.
고개를 들고 심호흡을 한다. 숨을 쉬는 수 만큼 시계가 분명해져가는 느낌이 든다.
또 똑같은 잘못을 범할 뻔 했다.
정신을 차려야한다. 이젠 나밖에 없으니까.
천천히 흙을 밟으며 공원 출구로 향한다. 그리고 주차장 옆에 두었던 자전거에 올라탄다.
끝났다. 전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밤 길을, 돌아가야 할 집을 향해 핸들을 꺾었다.
구름에 가려졌는지, 달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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