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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사진

레무이 2017. 1. 15. 16:21

대학 2학년 봄 즈음, 오컬트길의 스승인 선배 집에 훌쩍 놀러 갔다.

문을 열자 좁은 방 한가운데에서, 무언가 고심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사진을 보고 있다.


“무슨 사진이에요?”


“심령 사진”


조금 질려버렸다.

심령사진이 그렇게 무서운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양이다.

다다미 바닥 가득히 앨범이 흩어져 있는데, 수백장은 있는 듯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이! 하고 묻자, “업자” 하고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오사카에 그런 가게가 있는 듯하다.

절이나 신사에 맡겨지는 심령사진은, 물론 제령お払い(*역주: 액막음, 한국 무속에서 말하면 굿)을

해달라고 의뢰하는 것이지만, 대개 처분도 같이 해달라고 부탁한다.

거기서 태워지지 않고 흘러나온 물건이, 매니아의 시장에 나온다고 한다.

믿어지지 않는 세계다.


몇 장인가 들고 살펴보았는데, 어느 사진도 강렬했다.

흐릿한 부분이 있을 뿐인, 그런 가벼운 것이 아니다.

공원에서 놀고 있는 어린애의 목이 없는 사진.

해수욕장에서 아무리 보아도 수심이 깊을 장소에서 무표정의 남자가 무릎까지밖에 잠기지 않은 채 서 있는 사진.

가족사진 중에 제단 같은 것이 맥락도 없이 찍혀 있는 사진...

나는 쭈뼛쭈뼛 스승에게 물었다.


“제령 처치 끝난 거지요?”


“...제대로 제령할 만한 스님이나 신주가 이런 걸 암시장에 흘리려나”


“그럼, 저는 이만”


나가려고 했지만, 스승이 팔을 붙잡았다.


“싫어-!”


이 방에 있는 것만으로 저주받을 것 같다.

설산의 산장에서 명탐정 10명과 조우하면 이런 기분이 될까.



체념한 나는, 방구석에 앉았다.

스승은 변함없이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사진을 보고 있다.

문득, 눈앞에 있는 사진 다발 중에 이상한 사진을 발견해서 집어들었다.

이상하달까, 이상하지 않아서 이상한 것이다.

평범한 풍경사진이었다.


“스승님, 이건?”


하고 보이자,


“아아, 이건 이 나무 뿌리 쪽에 여자 얼굴이... 어라? 없네. 사라졌네”


뭐, 이러기도 해.

라는 말을 들어도.

너무 무섭잖아!

나는 앉은 채로 오줌을 지릴 뻔했다.

그리고 방구석에서 가만히 있기를 한참.

문득 스승이 말한다.


“옛날에는 가운데에서 사진을 찍히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거나,

수명이 줄어든다고들 했었는데, 왜 그랬는지 알아?”


“가운데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선생님이라든지 상사 같은, 나이 든 사람이 많으니까

다른 사람보다 빨리 죽는 경우가 많지요.

옛날 사진을 보면서, 아아 이 사람도 죽었다, 저 사람도 죽었다, 하고 이야기하다보니까

자연히 그런 소문이 나게 된 거겠지요”


“그럼 이런 사진은 어떻게 생각해?”


스승은 그렇게 말하고, 낡은 흑백 사진을 내밀었다.

어딘가의 정원에서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3명 늘어서 있는 사진이다.

그 가운데에 있는 초로의 남성의 머리 위 부근에 안개 같은 것이 끼어 있는데, 그게 얼굴처럼 보였다.


“이걸 보면 영혼이 빠져나갔다고 생각하겠지?”


확실히.

본인이 보면 살아 있는 기분이 아니겠지.

스승은 “넋 나갔어?” 하고 시시한 말을 하면서 사진을 묶음 안에 되돌린다.



“영혼을 빼앗긴다거나,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뒤숭숭한 말을 하는데,

즉사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수명이 줄어든다는 것도 이상하지”


과연,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옛 사람들은, 영혼에는 양이 있어서 그 일부를 잃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런 이야기가 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영혼 그 자체인 영체가 사진에 찍히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심령사진을 말하는 건가요? 살을 에는 듯이 아프겠죠”


하고, 시시한 농담으로 대답했지만 잘 생각해보면,


“하지만 그건 결국 옛날 사람들의 착각이 밑받침된 거니까, 일반화는 할 수 없어요”


나는 한 방 먹였다, 하는 얼굴을 했다.

그러자 스승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옛날 사람의 영이라면?”


으음.


“어떻게 되려나요”


되찾으러 오는 거 아냐?

스승은 속삭이듯이 말하는 것이다.

그만둬 줬으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나를 괴롭히면서도, 스승은 다시 고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사진을 노려보고 있다.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똑같은 사진만 계속 반복해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지뢰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뭔가요” 하고 말했다.

스승은 말없이 사진 2장을 내밀었다.

나는 흠칫거리면서 받아든다.


“으악!”


무심결에 비명을 지르고 눈을 피했다.

잠깐 봤을 뿐으로, 잘은 모르겠지만, 맹렬히 위험한 느낌이 든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찍힌 사진에 똑같은 게 찍혀 있는 거야. 에-또, 분명히...”


스승은 리스트 같은 것을 뒤적인다.


“있다. 오른쪽이 치바 우라야스에서 찍은 디즈니 랜드에서의 가족여행 사진.

나머지 하나가 히로시마의 후쿠야마에서 찍은 길거리 풍경사진”


참고로 사진에 관한 정보가 있는 쪽을 가격을 높게 쳐줘.

하고 덧붙였다.


“물론 찍은 사람도 달라. 4년 전과 6년 전.

우연히 같은 업자한테 흘러들어갔을 뿐, 배경에 공통점은 없어. 아마”


나는 흥미가 자극되어, 실눈을 떠보려고 했다.


그 때, 스승이 “기다려” 하고 나를 제지하고, 창문 쪽에 다가갔다.


“밤이 됐어”


또 고심하는 듯한 얼굴로 말한다.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두근두근 거리며 사진을 덮어놓았다.

스승이 창의 커텐을 젖히자, 밖은 해가 완전히 져 있었다.

분명히 온 것이 5시 경이니까, 슬슬 어두워져도 이상하지는 않지

하고 생각하면서, 손목시계를 본다.

짧은 바늘이 9를 가리키고 있었다.


뭐?! 그렇게 시간이 지났단 말이야?


하고 놀라고 있자, 스승이 입술을 깨물고 “안 좋은데. 진짜 안 좋아” 하고 중얼거리고는

“몇 시 정도라고 생각했어?” 하고 묻는다.


“6시 반 정도일까, 하고”


확실히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 듯한 느낌은 들지만,

그만큼 사진을 보는 데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정오라고 생각했어”


그건 무리잖아!

하지만 스승의 눈은 웃고 있지 않다.

무엇인가가 체내 시계를 흐트러트렸다는 것일까.



스승은,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하고 말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방안에 온통 흩어진 사진을 정리하려고 하다가,

방금 뒤집어 놓았던 2장의 사진 앞에서 손이 멈추었다.


“똑같은 게 찍혀 있어” 라고 한 스승의 말도 마음에 걸리지만,

“안 보는 편이 좋아” 라고 말하는 육감이 반응한다.

그 때, 스승이 묘하게 기쁜 듯한 얼굴로 바닥을 둘러보았다.


“인간에게는 무의식적인 자기방위 본능이라는 게 있구나, 하고 실감이 드네”


또 무슨 소리지.


“동물원은 뭐 하는 데지?”


비약이 심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동물을 보러 가는 데겠지요”


“확실히, 우리는 돈을 내고 동물원에 가서, 여기저기 우리 앞에 서서 안의 동물을 보며 돌아다니지.

하지만 동물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우리 안에 있는 것만으로, 색색의 옷을 입은 원숭이들이,

부탁도 안 했는데 차례차례 자기 모습을 보이러 오는 거야”


동물을 심령사진으로 치환해서 이해하면 되는 것일까.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바닥을 보며 스승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둠을 들여다보는 자는, 어둠 또한 자기를 들여다볼 것을 각오해야 하지”


“니체인가요?”


“아니, 나야”


스승은 어디까지가 진담인지 모를 얼굴로, 바닥에 흩어져 있는 사진을 가리켰다.


“왜 뒤집어 놓은 거야?”


그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두근, 하고 울렸다.

아까 2장만이 아니다. 무수한 사진 중에, 몇 장인가 사진이 뒤집혀 있다.

완전히 무의식이었다.

완전히 무의식이었던 것이다.

사진은 전부 앞면이 위로 되어 있었을 터인데.

내가 뒤집은 것일까.

한기가 들어 온 몸이 떨렸다.


“괴물을 쓰러뜨리려고 하는 자는, 자기가 괴물이 될 것을 각오해야 해”


역시 니체잖아요.

나는 그렇게 말할 기력은 남아 있지 않았고,

괴물을 쓰러뜨리기는커녕 사진을 다시 뒤집어볼 용기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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