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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영감이 비상하게 강한 동아리 선배와 만나고부터 쓸데없이 자주 심령 체험을 하게 된 나는,
오컬트에 목까지 잠긴 학생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예전, 초능력에 흥미를 가져 ESP 카드 등을 사용해서,
반쯤은 농담으로 ESP 능력을 개발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스승으로 받드는 그 선배 쪽은, 분야가 달라서 그런지, 초능력 쪽 이야기는 싫어하는 듯했다.
하지만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런 일화가 있다.
TV를 보는데, 러일 초능력 대결! 이라는 기획의 특집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 러시아 소녀가 눈가리개를 한 채로, 상자에 밀봉된 종이에 적힌 내용을 맞추는 실험이 있었다.
요컨대, 투시다.
소녀가 눈가리개를 한 뒤에 게스트로 참석한 탤런트가 종이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사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소녀는 훌륭하게 쥐 그림을 알아맞힌 것이었다.
하지만 TV를 보고 있던 스승이 말했다.
“이런 건 투시가 아냐”
얼마나 엄중하게 눈을 가렸는지 보았을 텐데도 그런 말을 꺼내길래,
“무슨 말이에요?” 하고 묻자, 몹시 진지한 얼굴로,
“이런 건 텔레파시 능력자한테는 간단해”
허를 찔렸다.
요컨대 정신감응(텔레파시) 능력이 있는 인간이라면,
종이에 그림을 그린 게스트의 사고를 읽으면, 이러한 곡예는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이다.
엄중하게 눈을 가려도, 상자에 감추어도,
그것을 준비한 인간이 있는 한,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스승은, TV에 나오는 투시능력자는 모두 사기꾼으로, 조금 텔레파시 능력이 있을 뿐인 일반인이라고 말했다.
“텔레파시 능력이 있는 일반인”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어서 웃고 말았다.
스승은 발끈 했지만, 내가 계속 웃은 데에는 달리 이유가 있었다.
러시아 소녀 옆에서 통역을 하고 있는 남자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기 초능력 쇼로 몇 번이고 업계에서 외면당한, 그 방면에서는 유명한 사기꾼이다.
나는 이번 투시실험의 속임수도 알고 있다.
가끔씩 “계속해도 되겠니” 라며 소녀의 몸을 만지는데,
만지면서 그림에 대한 정보를 암호화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전에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는, 그 남자의 통상 수법이었다.
마츠오 아무개씨가 저기에 있었다면 “통역도 눈을 가려라” 는 둥, 심술궂은 말을 꺼냈겠지.
나는 굳이, 이 소녀를 텔레파시 능력자라고 믿고 있는 스승에게
이 특집방송의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왠지, 조금 귀여웠으니까.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 스승이 내 자취방을 찾아와서,
“오늘은 복수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 방송이 나간 후에, 잡지나 TV에서 사기가 폭로되어 화제가 되었기 때문에,
스승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내가 다 알면서 바보 취급했다는 사실도...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방에 들이지 않을 수는 없다.
스승은 가방에서, 두꺼운 종이로 만든 작은 상자를 두개 꺼내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쪽을 A 상자, 이쪽을 B 상자라고 한다”
비슷해 보이는 상자에, 매직으로 그렇게 쓰여 있다.
무엇이 시작되는지 몰라 두근두근했다.
“A 상자에는 천엔, B 상자에는 만엔이 들어 있어. 이 상자를 너에게 줄게”
단, 하고 스승은 말을 이었다.
“돈을 넣은 것은 실은 예지능력자여서, 네가 A B 어느 쪽이든 하나만 선택할 거라고 예지했다면,
그대로 맞게 천엔과 만엔을 넣어 놓았어. 하지만 만약, 네가 두 개 다 선택하는 욕심쟁이라고 예지했다면,
B 상자에 만엔은 넣지 않았어”
자, 어떡할래?
그렇게 말하고는, 선택지를 읊었다.
“① A 상자만 고른다
② B 상자만 고른다
③ AB 모두 고른다
아, 그리고,
④ 어느 쪽도 고르지 않는다“
어떤 게임인지 잘 이해가 안 가지만, 머릿속을 정리해 본다.
요컨대 B만 고르면 확실히 만엔이 들어 있는 거니까,
2번 “B 상자만 고른다”가 가장 득 보는 선택지가 아닐까.
스승은 능글맞은 얼굴로, “정말 그걸로 괜찮겠어어?” 하고 말했다.
잠깐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그 예지능력자는, 진짜라는 설정인가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스승은 “질문은 안 받아” 하고 말할 뿐이었다.
눈앞의 상자를 보고 있자면, 어쨌든 여기 있으니까
얼마가 들어 있든 두 개 다 고르면 되잖아? 하고 내 안의 악마가 속삭인다.
잠깐 잠깐, 예지능력이 진짜라면 둘 다 고르면 B는 꽝이다.
A의 천엔밖에 못 받는다구? 하고 내 안의 천사가 속삭인다.
예지능력자가 가짜라면? 그렇게 예지해서 B에는 돈을 안 넣었는데
내가 B만 골라 버리면, 결국 돈은 전혀 벌지 못한다구. 하고 악마.
그렇다.
애초에 예지능력이라는 것 자체가 애매모호하다.
눈앞에 있는 상자의 내용물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돈을 넣는다는 행위는 이미 끝난 과거이니까,
지금부터 내가 무엇을 하든 상자 속 내용물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③의 AB 모두라는 게 최선의 선택지인 것일까.
“삼”
하고 말하려다가, 생각 끝에 그만두었다.
이것은 게임인 것이다.
어차피 스승이 준비한 게임이다.
하마터면 진심이 될 뻔했다.
아마도, 3을 고르게 해놓고 열어보면 B 상자는 비어 있어서,
“봐, 욕심을 부리니까 천엔밖에 못 벌지” 하고 웃을 생각이겠지.
왠지 화가 나기 시작했다.
2번, B 상자만 골라놓고,
“한 쪽밖에 안 골랐는데, 만엔 안 들어 있잖아” 하고 따질까 하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3번 모두를 고르면 최저 천엔은 벌 수 있는 거고,
그러면 다음에 집에서 송금해줄 때까지 잔금이 x천엔이 되니까... 하고, 자취생스러운 생각도 했다.
그러자 스승이 “곤란하지?” 하고 기쁜 듯이 참견했다.
“그러니까 힌트를 하나 줄게.
네가 만약, 투시능력, 혹은 텔레파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왔다.
또 이상한 조건이 나왔다.
예지능력이라는 가정 위에, 또 다른 가정을 얹는 거니까, 이야기가 복잡해질 듯했다.
그런 표정을 짓고 있자, 스승은 “간단해 간단해” 하고 웃는 것이었다.
“투시라는 건, 요컨대 안을 들여다보는 거잖아?
그러면 재현하는 건 간단해. 상자 옆면에 구멍을 뚫어서 보면, 어엿한 투시능력자지”
그, 그런 편법을 써도 되는 건가요, 하고 말했지만
“투시능력이란 건 그런 거니까”
그쪽이 OK라면 나야 전혀 상관 없다.
“텔레파시 쪽이라면 더 간단해.
넣은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니까.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는 설정으로”
뭐랄까, 이제 게임도 아닌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저는 초능력자가 되도 되는 건가요?”
“되지이. 단, 투시능력이나 텔레파시 중 1택.
이라고 하고 싶지만, 텔레파시는 넣은 본인이 여기에 없으니까 패스해줬으면 좋겠어”
본인이 없다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그 사람이 얽혀 있나요?
하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고, “나도 내용물은 몰라” 하고 말했다.
나는 창백해졌다.
스승의 여자친구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육감이 비상하게 날카롭다고 할까,
예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는, 그다지 얽히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진짜잖아요!”
나는 눈앞의 상자로부터, 무심결에 몸을 젖혔다.
이제 이건 그냥 게임이 아니다.
가령, 혹시 가령, 만일에, 백만에 일분의 확률로,
스승의 여자친구의 힘이 우연 레벨을 넘어서,
어쩌면 정말로 진짜 예지능력이었을 경우 이건 정말로...?
이제까지 몇 번인가 그 사람이 시험 문제를 예상해준 적이 있다.
너무 잘 맞아서, 뒷맛이 찜찜해서 요즘은 말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어때, 투시 능력 사용할래?”
스승은 커터칼을 들고, B 상자에 대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이야기가 달라진다.
랄까, 각오가 달라진다.
예지능력이 진짜일 경우, 상자를 모두 고르는 행위에 의해,
B 상자 속 내용물이 소멸하거나 혹은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모두 예지된 바라서,
내가 무엇을 고르는지도 이미 완전히 결정되어 있는 것일까.
“소가 어떤 풀을 먹을지는 완전하게 예측할 수 없다”
라는, 불확정성 원리라고 하는 복잡한 물리학의 예제가 뇌리를 스쳤지만,
제대로 알아두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
내가 고뇌하면서 고르려고 하는 이 모습을, 과거에서 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 의사 결정과 동시에, 상자에 돈을 넣는, 확정되지 않은 과거가 확정되는 것일까?
그 ‘동시’라는 건 무엇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서워진다.
인간이 건드려서는 안 될 영역 같다.
문제의 B 상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인데.
그리고 그 상자를, 고르기 전에 속을 들여다봐도 된다고 하니까, 뭔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무릎이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배어 나온다. 쥐어짜듯이 대답을 도출해냈다.
“4번, 어느 쪽도 고르지 않는다, 로 하겠습니다”
스승은 히죽 웃고는, 커터칼을 거두어들였다.
“전제가 하나 부족한 건 눈치 챘어? 한 쪽만 고를 경우에는 각각에 돈을 넣고,
모두 고를 경우에는 A에밖에 넣지 않아.
그렇다면, 어느 쪽도 고르지 않을 거라고 예지했을 경우에는?”
정해놓질 않아서, 나도 이 속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네.
스승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무렇게나 두개의 상자를 가방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나는 이 사람은 이길 수 없다고, 절실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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