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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에서 마른 남자가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이야기를 읽고, 상당히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써봅니다.


나도 이 이야기의 남자와 같은 취미가 있어서 한밤 중에 집에서 밖을 내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내 집은 T자형 교차로에 딱 붙어있었고, 거기서 세로로 뻗은 도로를 바라보는 것이 취미였다.
길에는 가로등이 드문드문 이어져 있었고, 스포트라이트처럼 골목길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 잘라내는 광경을 보며 히죽대고 있었다.
이런 어두운 취미를 가진 나는 당연히 소심했고,
집 2층에서 밖을 내다보는 내 모습이 주변에 들키지 않도록 커튼을 단단히 닫은 틈새를 통해 내다보고 있었다.
물론 내 모습이 실루엣이 되지 않도록 방의 전등은 끄고 말이다.
객관적으로 써놓고 보니, 나름대로 꽤나 징그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밖을 내다보다가 전봇대 바로 옆에 한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자는 내가 보기에 옆을 돌아서서 전봇대에 글씨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서 전봇대까지의 거리는 20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일까?
신경이 쓰여서 쌍안경을 꺼내어 손에 들고 집중해 보았지만, 여자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어쩌다가 여자의 얼굴에 쌍안경을 들이대자 숨이 멎었다.
눈이 마주쳤어.
전봇대까지는 꽤 거리가 있고, 게다가 나는 커튼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밖에서 내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저쪽이 처음부터 이쪽에서 내다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한 말이다.
내심 꽤나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역시 여자는 나를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눈이 마주친 것 같지만, 그 여자도 우연히 우리 집 창가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뿐이다, 눈이 마주친 것은 아니라고.
그런데 여자는 양손을 둥글게 말아 양 눈에 대고 보여주었다.
"보이고있어."
듣지는 못했지만 입모양으로 알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아 커튼에서 몸을 움츠렸다.
소름과 식은땀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한 번 마음을 단단히 먹고 커튼 틈새를 들여다보니 여자는 이미 사라졌다.

그날 이후 한밤중에 밖을 내다보는 일은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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