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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괴담

[1320th] 허수아비의 신

레무이 2023. 3. 9. 18:00

시골에 사는 나는 통학할 때 항상 논두렁 옆길을 지나다녔다.
그 날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평소처럼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논둑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논에 분홍색 조리복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 모내기라도 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자세히 보니 움직임이 이상하다.
한쪽 다리로 허리를 구부리면서, 하얀 비닐 끈 같은 것을 마치 리듬체조를 하는 것처럼 몸 주위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
뭐랄까, 훌라후프를 하는 것 같은 그런 동작.
이상한 땀이, 내 몸에서 보글보글 솟아나왔다.
게다가 저것은 한 발로 콩콩 뛰면서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석양빛 논에서 나는 왜인지 움직이지 못하고 저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를 구불구불하면서, 펄쩍펄쩍 뛰며 이쪽으로 오는 저것에게 얼굴은 없었다. 아니, 보이지 않았다.
흔들린 사진처럼 얼굴을 심하게 흔들고 있다. 그런 느낌.
몸은 정상적으로 보이는데, 마치 얼굴 부분만 흐릿하게 보인다고 할까....
'내 눈이 흐려진 걸까?'라는 생각에 몇 번이나 눈을 비벼봤지만, 저것의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미 눈앞까지 다가와 있다.
"아,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
그런 생각과 동시에 눈물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눈이 아파서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그 고통과 공포로 기절해 버린 것 같았고,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집의 이불 속에 있었다.


그곳에는 나를 둘러싸고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동네 스님이 있었는데, 어떤 염불 같은 것을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왠지 그 상황이 웃겨서 '부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는데,
할머니가 내 몸을 꾹꾹 눌러주며 "가만히 있어!" 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그 상황은 내가 깨어난 후 한 시간 정도 지속된 것 같다.
나중에 할머니한테 들은 얘기로는 내가 만난 그 녀석은 '허수아비의 신'이라고 하는데,
그 허수아비는 외로웠는지 뭔지 모르겠지만, 나를 자신의 동료로 삼으려 했던 것 같다.
"데려가면 평생 진흙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어요.
덕분에 지금도 논에 허수아비가 서 있으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후일담)
아버지에게 전화로 여러 가지를 물어봤습니다.

기절해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은 동네 사람이었다.
논둑길에 사람(나)이 쓰러져 있어서 '설마...'하고 다가갔더니 눈물을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나.
그 앞에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는 허수아비.
'역시나'라는 생각에 할아버지와 스님에게 알렸다고 합니다.

예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몇 번 있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사히 살아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발견 당시 눈앞에 있는 허수아비를 바라보며 계속 빙글빙글 웃고 있는다거나,
허수아비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고 합니다.


더 안 좋은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게, 옛날에 식량난이 심할 때 그 마을에 쓸모없는 사람을 죽여서 식량을 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냥 죽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논밭을 망치는 짐승을 막기 위해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흰 옷을 입혀 논에 세운 십자형 나무에 묶어 놓는다.
한쪽 다리와 양손 등을 묶여 거의 움직일 수 없는 그 사람은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비틀며 몸을 움직인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은 '저렇게 되면 2~3일 정도 버틸 수 있다'고 말한다.
묶인 사람은 대부분 굶어 죽거나 일사병? 로 죽지만, 일부는 곰이나 들개 등에게 잡아먹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짐승의 방비가 되어있지 않다...)

뭐, 그런 비도덕적인 짓을 하면 귀신인지 뭔지, 그 마을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라서, 산 채로 허수아비가 된 사람을 '신'으로 모셨다.
(자세한 것들은 아버지도 할아버지에게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우리 아버지도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도 술을 좋아하셔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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