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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장례식

레무이 2017. 1. 16. 19:52

대학교 2학년의 가을 초입의 일.


써클의 선배와 함께 편의점에 먹을 걸 사러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였다.

주택가의 큰길에서 옆으로 꺾어지는 좁은 길이 있었다. 그 앞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가벼운 귀울림이 일었다.

그 직후 눈앞의 도로 위에 희미한 그림자가 보인 기분이 들었다.

멈춰서서 안경을 닦았지만 역시 사람정도 크기의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뭔가 현실감이 없다.

네다섯개 정도의 그림자가 흔들리면서 좁은 길 쪽으로 휘어져있었다.

그림자가 휘어진 방향은 흔해빠진 대낮의 주택가의 광경이였다.

선배가 그림자가 휘어진 좁은 길을 들여다 보았다.


“저건가”


나도 선배를 따라 목을 길게 뺐다.

집들이 늘어선 방향에 장례식에나 쓰일법한 검고 흰 줄무늬의 휘장이 보였다.

그리고 몇갠가의 그림자가 불안한 움직임으로 그곳을 향해 이동하던 중이였다.

마치 뛰어내려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본것 같이 기분이 나빳다.


“그러고보니 장례식장이 있었네요.”

“응...”


성의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을 지극히 일상적으로 보는 사람에게 이런 광경은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하는 걸까.


“저걸 볼 수 있게 된 건가”


작년 이맘때쯤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얕봤다는 듯한 어조에 그것이 나에 대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 정도는 존경하지만 반 정도는 전혀 아닌, 내가 스승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은 내게 보이지 않는 것을 굳이 알려주지 않는 사람이였다.

싫은 성격이다.


“저게 뭐에요?”

“뭐라고 할까? 뭐 일단 유령의 종류지만 빛을 보고 몰려드는 벌레라고 말하는게 맞을까.”


벌레라니 그건 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저만치 있던 앞뒤도 구분 못 할 옅은 그림자가 하나가 이쪽을 향한 기분이 들었다.


“‘장례식은 죽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라는 이미지가 일본인의 정신세계에 있는 한 

 매년 생기는 죽은자들에게도 이곳은 특별히 신경쓰이는 장소야”


벌레라면서요.

스승은 휘장이 보이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도 스승을 따라서 그 좁은 길에 들어섰다.

조금 걷기 힘들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희미한 그림자가 있던 장소가 끈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건물이 보였다.

멀찍이 멈춰섰다.

고별식을 시작하려는지 입구에서 누군가 재촉하는 손길에 아주머니 몇 분이 종종걸음으로 우리 앞을 지나갔다.

검은옷의 사람들에게 섞여들어 윤곽이 불분명한 그림자들도 장례식장에 들어간다.


이물 異物


그런 단어가 떠올라 심할 정도로 기분이 나빠졌다.

스승은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불현듯 어린 시절의 불가사이한 일이 떠올랐다.


‘장례식에 가는 거란다’라고 말하는 어머니에게 끌려 사람이 엄청 많은 장소에 갔던 기억이 있다.

처음보는 아저씨 아줌마들과 인사를 나누는 어머니 옆에만 붙어 있었다.

하지만 점점 지루해져 ‘화장실’이라고 말하곤 그 장소를 빠져 나왔다.


혼자서 걸어가다보니 양쪽으로 늘어선 커다란 꽃의 그늘에 여자아이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같이 놀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둘이서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고 놀만한 장소를 찾아 여기저기 탐험을 하고 다녔다.

그러다 결국 어머니에게 들켜서 '분향해야지'하고 끌려갔다.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하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무부스러기 같은 것이 타고 있는 향로를 향해 숙였던 고개를 드니 짙은 향의 꽃들에 둘러쌓인 영정사진 속에 아까까지 함께놀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죽는다는 것이 뭔지도 모를 시절이였지만 어쩐지 조금 슬펐다.



그런 기억에 잠겨 있을때, 장례식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1시간도 지나지 않은것 같은데 고별식이 끝난 듯 했다.

옛날에는 스님의 독경이 이어지는것이 지루할만큼 길다고 생각했는데.

이런것도 시대에 따라 변한 걸까.


나와 스승이 보고 있는 앞에서 출관을 위한 영구차가 들어왔다.

언제봐도 웃기지도 않은 모양새다.

이윽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흰나무로 만들어진 관이 차에 실렸다.

그 중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옆얼굴을 가만히 지켜보니 그것도 연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그 순간 손수건을 쥔 손에 옅고 윤곽이 불분명한 그림자가 들러붙는 것처럼 보였다.

집중해서 살펴보니 상복을 입은 사람들의 손 주변에 그림자가 달라붙어 있었다.



토할것 같은 기분에 입을 막았다.


그림자는 느릿느릿 움직이며 손 중에서도 손가락, 그것도 엄지손가락을 만졌다가 잡았다가 하고 있었다.


만져지고 있는 사람은 모른다.

영구차가 출발하려고 하자 각자 슬픈 얼굴로 그쪽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스승을 보니 “시시해”라고 말하곤 어깨를 움츠렸다.


영구차를 보면 엄지손가락을 숨겨라.


확실히 그런 미신이 있다. 나도 어릴 적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알고 있었다.

미신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의 광경에 발이 떨려왔다.


스승이 나를 보곤 말했다. 


“미신이랄까 뭐랄까”

“일본인의 상식이라면 죽은 사람에게도 상식이야.”


아슬아슬하게 사람의 모양새를 흉내내고 있는 그림자들이 한낮의 도로에 꿈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줄지어 앉은 사람들의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논다. 

갑자기 매우 슬퍼졌다.


“오야마다 토모키요(小山田与清)라고 하는 에도시대의 수필가가 ‘송옥필기(松屋筆記)’에서 이렇게 말하지. 

 ‘엄손가락의 손톱사이에서 혼백이 드나들기 때문에 무서울 때는 쥐어서 감춘다’라고. 

  옛날부터 있던 미신인데, 저녀석들은 왜 감추는지 부분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네. 가르쳐주면 분명 좋아할걸?”


기꺼이 엄지손톱의 사이로 들어오려고 할거야.


기분이 나빴다.

꿈틀대는 그림자. 시끄러운 클랙션의 소리. 속보이는 눈물. 검고 흰 막.


나는 참기 힘든 토기를 상대로 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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