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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엘레베이터

레무이 2017. 1. 16. 19:51

대학 1학년의 가을이었다.

오후의 지루한 강의가 끝나고, 시끌벅적한 가운데 노트를 가방에 집어넣고 있자, 동급생인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너 말야, 뭔가 괴담같은 게 특기였지.”

갑자기 말을 걸어서 놀랐기 때문에, 조건반사적으로 끄덕여버렸다.

“아니 다르지, 그게 아니라, 괴담이야기를 하는 게 특기인 게 아니라, 아~, 뭐라고 하면 좋지.”

친구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 같은,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서운 거라든지, 아무렇지도 않지?” 

겨우 뭐가 말하고 싶었는지, 알았다. 그의 주변에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끄덕이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지.

“밖에서 들을게.”

아직 사람이 남아있는 교실에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나는 그 때는 아직, 될 수 있으면 평범한 학생으로 있고 싶었다.

해질녘의 자전거 주차장에서 자전거에 기대어 경위를 듣는다.

그는 교외의 맨션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완비된 10층 건물에 경치가 좋은 입지에 있는 곳이라고 했든가. 아버지가 변호사라 보내주는 돈은 넉넉하다고 하는 것 같다. 말투에서 자랑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낀 내가 “돌아가도 돼?”라고 하자, 그제야 그 맨션에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로 1층까지 내리려가려고 했는데 말야, 엘리베이터가 현재 어디 있는지 표시하는 램프가 위쪽 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거든. 그래서 우리 집이 있는 층까지 내려오면 열리려니 생각하잖아? 그런데 왜인지 그대로 통과해버리는 거야. 확실하게 버튼을 눌렀는데.”



그게 빈번하게 일어나서, 그는 관리인한테 전화를 했다는 것 같다. 고장난 게 아니냐고. 그렇지만 며칠 후 “업자한테 봐달라고 했는데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라고 대답. 다른 주민들한테 “최근, 엘리베이터 상태가 이상하지 않나요”라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글쎄요”라고 할 뿐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아래층에 있을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져.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도, 열리지 않고 지나가버려. 그래서 램프를 보면 위층에서 정지해있는 거야. 위층 사람이 먼저 버튼을 눌러서 엘리베이터를 불러도, 사이에 있는 층에서 나중에 버튼을 눌러도 제대로 멈추잖아. 백화점 같은 경우 말야. 뭐 그래도 설정이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짜증내며 기다리면 그제야 램프가 내려와서 우리 집에 있는 층에 멈추는 거야. 그래서 문이 스윽 하고 열리면……”

그가 거기서 말을 끊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없는 거야.”

조금 오싹했다.

확실히 이상하다.

자기가 있는 층을 지나가서 위층에서 멈춘 건 뭐였던 거지. 누가 타려고 엘리베이터를 부른 게 아니란 말인가.

“그런 게 계속되어서. 왠지 이젠, 기분이 나빠져서.”

우리 집, 4층이야…… 

그것이 뭔가 관련되어있는 것처럼, 그는 말한다. 

그것도, 5호실. 이라는 건, 1,2,3,4의 네 번째 방이야…… 

“최악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그런 수학적인 것에 신경 쓰는 타입인 것 같다. 축구부에 속해있는 그에게 쾌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그런 풀죽은 모습을 의외라고 생각했다.



나는 손목시계를 본다. 봐봤자 오늘은 이미 아무 예정도 없다는 것을 안다.

“지금부터 거기 가 봐도 될까?‘

친구도 나에게 옮았는지 의식적으로 손목시계를 본 뒤에, “괜찮아”라고 말했다.

내가 가봤자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는 생각안하지만 적어도 무엇인가 무서운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친구가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한 것도 의외로 해결해줄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막연한 ‘공유’를 위해서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나도 모르게 그런 중얼거림이 자조하듯 흘러나온다. 어젯밤, 만화에서 읽던 중에 그런 말이 나왔던 것이 또 머릿속에 들어붙어있던 것 같다. 나에게 딱 들어맞는 격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손에 닿는 거리에 있는 오컬트 같은 이야기를 무시할 수 있는 심리상태가 아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자제심이 아니었나.”

라는 친구의 바보 같은 말이 들려왔다.


해가 지는 때를, 자전거로 달렸다.

밀집된 주택가에서 조금 벗어난 교외에 친구의 맨션은 있었다. 위에서 본다면 그건 커다란 L자 같은 구조를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주차장에 자전거를 멈추고, 석양이 거대한 그림자를 늘어뜨리게 하는 그 위용을 올려다본다. 도저히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부지 내에는 작은 그네와 곤충 모양을 한 장난감이 흩어져있었다. 여기는 작은 아이를 둔 많은 가족들이 살고 있겠지.

“좋은 곳에서 살고 있네”라고 말하며, 친구 뒤를 쫓아 현관으로 향한다.

1층 플로어에 들어서자, 바로 정면에 엘리베이터가 나타난다. L자가 딱 굽어있는 근방이다. 우측과 등 뒤쪽에 집의 문들이 늘어서 있다.

“계단도 있는데, 저 쪽 구석이야”라고 친구는 등 뒤에 있는, L자의 짧은 쪽 구석을 가리켰다.



“조금 불편한 느낌.”

그렇게 말하며, 친구는 생각했던 것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엘리베이터의 위로 향하는 화살표 버튼을 눌렀다. 현재 층수표시로는 5층 램프가 켜져 있다. 그다지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램프가 내려와, 1층의 그것이 켜지자마자 바로 문이 열렸다.

“왠지, 예전 일이 있어서 그런지, 긴장하게 되는군” 그런 말을 하고 친구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도 뒤를 따른다.

‘4’ 버튼을 누르고 ‘닫음’ 버튼을 누른다.

문이 닫힌다.

닫히는 순간, 정면에 있는 회색 벽에 얼굴 같은 모습이 보인 것 같아 덜컹한다. 소리도 없이 엘리베이터가 상승한다. 숨이, 막힌다.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타고 있다든가 하려나.”

친구는 가벼운 말투로 그렇게 말한다. 살짝, 말 끝이 떨리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이, 엘리베이터는 4층에 멈췄다. 문이 열리고, 우리들은 밖으로 나왔다.

친구가 가볍게 어깨를 움츠리며 양손을 펼쳐보았다.

“탈 때는, 괜찮아.”

석양이 비쳐와 방문을 플로어의 끝까지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친구는 그 하나를 가리키며 “우리 집인데, 들렸다 갈래”라고 말한다. 작은 기동음과 함께 등 뒤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호출되어, 램프가 하나, 둘, 내려간다. 둘 다, 그냥 거기서 눈을 돌린다.

밖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와 달리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가슴께 높이의 벽에서 얼굴을 내밀어 아래를 보자, 몇 명의 초등학생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장난감 검 같은 것을 휘두르며 부지 내에 있는 벽돌 길을 왔다갔다 한다. 잠시 그것을 보다가 “정보수집 해보자”라고 말하며 나는 시선을 되돌려 검지를 아래로 향했다.

“오케이. 그렇지만 먼저 짐을 두고 올게.”



친구가 문을 열고 두 사람분의 가방을 현관 앞에 던져넣고 돌아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엘리베이터 현재 위치는 8층으로 변해있다.

이번에는 화살표 버튼을 한참동안 누르지 않았다.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슬쩍 말해본다. “그, 이상한 일이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되지?”

“아~, 다……다섯 번에 한번 정도일까. 아니, 열 번에 한 번일지도.……모르겠다.”

나는 질문을 바꿨다.

“어제랑 오늘은?”

“……있었어. 어젯밤, 술 사러 내려가려고 했는데 말야……”

그렇게 말했을 때 “잠시 죄송합니다”라는 목소리와 함께 40대 정도의 주부 같은 행색을 한 사람이 우리들이 서 있는 위치에 끼어들었다. 마치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는 우리들이 방해가 된다고 하는 것처럼.

뒤로 물러서 자리를 비켜준 우리들의 앞에서 주부가 아래를 향하는 화살표를 빠르게 눌러, 엘리베이터 상부 층수 표시 램프를 올려다보았다. 

7, 6, 5 램프가 내려와 4의 표시가 빛나려고 할 때, 우리들은 얼굴을 마주하고 (이 아줌마와 함께 내려가야 할 것인가)라며 잠깐 고민했다.

그렇지만,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4의 숫자가 빛날 타이밍이 와도 엘리베이터 문은 열릴 기색을 보이지 않고, 표시 램프는 그대로 4, 3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멍해진 우리들 앞에서 주부는 “칫”이라고 품위 없이 혀를 차나 싶더니 발걸음을 돌려 빠르게 계단 쪽으로 가버렸다.

남겨진 우리들은 다시 사람이 없어진 공간에 서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건가”

내 말에 친구는 신묘하게 끄덕인다.

오싹하고 등줄기가 서늘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역시 고장인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말을 꺼내려고 했을 때, 친구가 의외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 아줌마, 왠지 불편해. 아마도 9층에 살고 있을 텐데 4층에 친구가 사는지 가끔 지나치는거야. 왠지 인사해야할 것 같은 타이밍이라는 거 있잖아. 그게 왠지 어디도 들어맞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마치 무시하는 것처럼 되어서 말야. 그래서 이전에도 인사 안했는데 이번에 인사한다는 게 이상해서, 결국 매번 무시하는 것처럼 되어서. 아니, 그런 거 있잖아. 알겠지?”

확실히 안다. 나도 이웃이랑 친하게 지낸다든가, 잘 못하는 편이다.“

“얼마 전은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말야. 먼저 아줌마가 타고 있어서, 내 얼굴을 보자마자 칫이라고 혀를 찼어. 나한테 들리라고 한 건지는 몰라도, 인상이 나빠.”

친구가 고개를 돌려 불평을 토해냈다.

엘리베이터 표시는 1층에서 멈춘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 4층을 그냥 지나간 뒤에,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걸까. 타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호출한 것이라면, 1층에서 다시 올라 와 있을 터이니. 그렇다는 건, 방금 우리들 앞을 지나가버린 엘리베이터는 누가 타고 있었다는 게 된다. 대체 누가…… 지금부터 달려서 계단을 내려간다고 해도 분명, 이미 없어져있겠지. 나는 얼굴 부분이 검게 칠해진 인물이 이 맨션을 배회하고 있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리고는,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문이 투명한 엘리베이터라면, 이런 모호한 기분도 해소되었을지 모르는데.

“어쩔래, 계단으로 내려갈래.”

“아니, 엘리베이터로 하자.”

나는 다시 한 번 아래를 향하는 화살표 버튼을 누르려고 하다가 흠칫하고 손을 멈췄다.



화살표 버튼은 램프가 켜진 채였다.

“역시 고장 난 거 아냐?” 

‘이 층에 와서 문을 열어’라는 명령을 표시하는 램프가 켜져 있는데, 엘리베이터는 1층에 멈춘채니까.

나는 화살표 버튼을 연타했다. 아마 기계가 오래되어 본체의 반응이 나빠진 거겠지.

내 연타가 들어 먹혔는지 겨우 엘리베이터는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기 시작해, 우리들의 앞에서 문이 열렸다.

안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탄다.

조작판의 1층 버튼을 누르며, “닫음” 버튼을 누른다. 스윽하고 문이 닫히고, 떨어지는 듯한 감각이 시작된다. 엘리베이터 안에 옅게 남은 향수같은 향기에를, 코가 감지한다.

불쾌하다.

얼굴이 검게 칠해진 인물의 실루엣이 내 안에서 아줌마의 파마로 바뀐다.

1층에 도착했다.

순순하게 열린 문을 나와, 사람이 없는 엘리베이터 안을 돌아본다.

정말로 그냥 고장인 걸까.

석양이 비치는 속에서 문은 그림자를 만들며 닫혀간다. 완전이 문은 닫히고, 엘리베이터 안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문득 생각한다.

지금 이 장소에서 다시 한 번 버튼을 눌러 이 문을 열었을 때, 안에 누가 있으면, 어쩌지……

기분 나쁜 공상이다. 제 멋대로 공포를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다. 스스로도 나쁜 습관이라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전에 어떤 사람이 말한 것을 떠올린다.



‘공상이란 게 자발적인 것인 것만은 아니야. 도둑잡기의 마지막 선택에서 한 쪽만 잡기 쉽게 조금 빼어두면, 거기가 도둑이 아닌가라고 상상하곤 하지? 뭔가에 의해 유발되는 상상도 있다는 거야.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조커를 시각 이외의 무엇으로 지각했다면, 그것은 상상의 가죽을 쓴 채로 나타날지도 몰라.’

빙빙 돌려서 한 표현이지만, 나는 이것을 그 나름대로의 경고라고 받아들였다. 즉, 느낀 공포는 대충 넘어가지 말라는 거겠지. 그렇지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고 있지는 않다. 그런 상상자체가 망상이라는 거니까.

“그래서, 어쩔래.”

툭툭하는 소리가 나며, 돌멩이가 벽돌 길 위를 미끄러져 내려간다. 몇 명의 아이들이 그 뒤를 쫓아 달린다. 맨션 벽에 가려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어도 길게 늘어진 그림자만이, 뭔가의 희화처럼 꿈틀거리며 지면을 굴러다니고 있다.

나는 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말을 걸었다.

“이 맨션에서 사니?”

놀란 표정으로 전원의 움직임이 멈춘다. 6, 7명 있었을까.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생각되는 한명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무슨 일입니까”라고 말했다.

“조금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라고 빠르게 말을 꺼내어 이 맨션의 엘리베이터에 뭔가 이상한 점은 없느냐고 물었다.

순간 얼굴을 마주보는 듯하였지만 조심스럽게 한 아이가 대표로 나와 “몰라요”라고 답했다. 

엘리베이터가 아니라도 괜찮지만,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없니, 라고 재차 물어보자 이미 뒤쪽에 있던 몇 명인가는 돌멩이를 다시 차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대표로 나온 남자 아이가 그 쪽을 신경쓰며 안절부절 못하였다.

“뭔가 이상한 걸 봤다든가, 그런 걸 들은 적은 없어?”

남자 아이가 기분 나쁘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없어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몇 번인가 반복하고 바로 뒤에 있던 아이에게 “어이, 가자”라고 재촉 당해 빙글하고 등을 돌려 가버렸다.



“아~아”

친구가 한숨을 쉬었다.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 좋아할 것 같은데 라고 중얼거린다.

“어른들한테도 물어볼래?”라고 묻는 나에게 “음~”이라고 별로 내키지 않는 듯한 대답을하고, 그의 옆에 있는 그네에 발을 걸었다.

“대하기 힘들어. 이곳 사람들.”

“어째서.”

나도 다른 하나의 그네에 앉았다.

끼익끼익하고 사슬을 삐걱 이며 하며 친구는 “내 본가는 시골이라 말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웃 모두가 전부 아는 사이였다는 것. 이웃과 친하게 지내는 걸 잘하지는 못하였지만, 길에서 만나면 인사는 하고, 식사에 초대받는 일도 있고, 장난을 해서 발각되면 혼나거나도 했다. 좋든 나쁘든, 거기에서의 인관관계는 농밀했다.   

그렇지만 대학에 들어와, 여기에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이웃과의 교류가 전혀 없어졌다는 것.

“처음에는 인사했지만 말야, 반응이, 별로 없어서. 조용한 좁은 통로를 스쳐 지나도, 이렇게, 목례만 할뿐. 서서 이야기하지도 않고, 옆 집 아이가 둘인지 셋인지도 몰라, 나.”

친구가 말하고 싶어 하는 걸 나도 알겠다. 나도 지금 아파트에 이사하고 나서 같은 아파트의 주민과 거의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학생 대상이라고는 하지만, 생활 간도 모두 다르고, 옆 집 사람의 얼굴도 모른다. 알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스쳐지나가도 묘하게 어색함만이 느껴질 뿐이다.

“무관심해.”

친구는 중얼거렸다.

그렇다. 그리고 우리들도 그것에 물들어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밀집에서 살고 있자면, 모두 이렇게 되어가는 걸까. 문득, 고등학교 때 배웠던 메뚜기가 군생하는 형태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모르는 주민이랑 같이,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면 엄청나게 숨이 막혀. 백화점의 엘리베이터라면 그 정도는 아닌데.”

고개를 들자, 해가 져서 엷게 어두워진 맨션 안으로, 얼굴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빨려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끼익끼익하고 소리만이 울렸다.

익명이다. 모든 것이 익명이다. 익명인 채로 이 거대한 구조물 안을 무수한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그렇게 한 시간정도를 별 생각 없이 그네에 타고 있던 우리들이었지만,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배가 고파져서 이제 돌아갈까라고 일어나려고 했던 때였다. PHS에 착신이 있어, 받아보자 나에게 예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조커’의 충고를 한 사람에게서 부터였다. 내 오컬트 스승이었다. 

내일 갈 예정인 심령 스폿에 대해 확인하기 위한 전화였지만, 나는 덤으로 지금 있는 장소와 그 맨션의 엘리베이터에 대한 소문을 모르냐고 물어봤다.

“몰라”

그렇게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지역민도 아닌데도 이런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그라면 혹시라도,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역시, 라는 뉘앙스의 말로 끊으려고 했던 것이 거슬렸는지, 자세히 이야기하라고 한다.

거기서 나는, 친구가 체험했던 몇 번의 사례와, 오늘 있었던 일 등을 간단히 말했다.

스승은 잠시 침묵을 한 뒤에, “그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서 기다려”라고 말하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뭔가 알아낸 걸까?

전등이 켜진 맨션의 입구로 걸어간다. “뭐야? 누구?”라고 묻는 친구에게 “동아리 선배”라고만 설명하고 얼버무린다. 그가 무엇인지, 나 역시 알고 싶은 것이다.



탁하고 신발의 소리가 울린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맨션이라는 익명의 상자 안에 있는 하나 더 있는 익명의 공간. 지금 닫혀있는 이 문 너머에 누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층 표시 램프의 빛만이 흘러, 사람의 움직임을 상상한다. 거기에는 정말 사람이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니, 알 수 없게 되었다. 얼굴이 없는 환영이 방황하는 이미지가 혼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PSHS의 착신음에 정신을 차린다. 일정한 간격으로 뻗어있는 천장의 전등이 통로를 비추고 있다.

“기다렸지. 이것저것 적혀있는 표시판은 밖에 있어? 없으면 안으로 들어가.”

말하는 대로, 친구와 안으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다.

“조작판 안인지, 근처에 있는 뭔가 이것저것 적혀있는 씰이나 플레이트가 있지? 메이커명은 뭐라고 써져 있어?”

닫히려고 하는 문을 손으로 가드해서, “열기”버튼을 친구에게 눌러달라고 한다.

“어, 외제 같아요. 뭐가 메이커명이지……” 

아무래도 그럴듯해 보이는 문자를 발견해 읽는다.

스승은 전화기를 통해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OK. 그럼 다시 친구한테 3층에 가달라고 해봐.”

스승은 몇 개의 지시를 한 후, 전화를 끊었다.

우리들은 뭐가 일어나는 거지하며 불안했지만, 말하는 대로 하였다.

1층에는 나, 3층에는 친구라고 하는 위치에서 각각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리고 1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탄 나는, 지시받은 대로 안쪽의 조작판에서 5층과 “닫음” 버튼을 두 손가락으로 동시에 눌렀다. 그리고 통화중으로 해두었던 PHS로 친구에게 “눌렀어. 거기도 눌러봐”라고 말한다. 아까 지시받은 대로, 친구도 3층에서 아래쪽을 향하는 화살표 버튼을 눌렀을 터이다.

곧 문이 닫히기 시작한다. 반대편에 있는 벽의 모양이 역시 뭔가의 얼굴처럼 보인다. 시뮬라르크 현상, 시뮬라르크 현상이라며, 최근 막 알게 된 심리학용어를 불경처럼 머릿속에서 반복했다.



천천히 엘리베이터가 상승하는 느낌이 든다. 곧 3층에 정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기하였다.

그렇지만 엘리베이터는 3층에서 멈추지 않고 5층의 램프가 켜진 곳에 정지해서 문이 열렸다. 

밤바람이 침입해온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걸어 나와서, 멍해진 나를 남긴 채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계단을 뛰어 올라온 친구가, 가볍게 숨을 헐떡이며 통로의 끝에서 나온다.

“뭐야, 방금. 왜 그냥 지나간거야.”

“그 쪽이야 말로, 제대로 3층 버튼을 눌렀어?”

“눌렀어. 화살표 램프가 점등했고.”

친구가 체험했던 똑같은 괴현상의 재현이다.

스승한테서의 착신.

“뭡니까, 이거.”

목소리가 커지는 나에게 스승은 바보같군, 이라고 말하는 듯한 투로 “급행 모드”라고 말했다.

“외제 엘리베이터 중에는 있거든. 그런 편법이.”

이 메이커의 물건은 “닫음” 버튼과 목적하는 층의 버튼을 동시에 누르면, 그 뒤에 다른 층에서 호출 버튼을 눌러도 모두 캔슬된다는 것 같았다.

현재 층수표시를 올려다보니 5층인 채다. 이 문 너머에 아직 엘리베이터가 있다. 친구가 3층에서 누른 호출 버튼은 무시된 것이다.

“그렇다는 건……”

“그래, 그 맨션에 사는 녀석들은 그걸 알고 평소에 쓰고 있었던 거.” 

그렇게 말하고는 마지막에 “내일 늦지 마라”라고 덧붙이고 스승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짐을 친구 집에 두고 4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을 때, 위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왔을 텐데, 4층을 그냥 지나고 1층까지 가서 멈췄다.

그 때, 같이 있던 주부는 혀를 찼다. 그것은 급행 모드를 사용한 누군가에게 혀를 찬 것이었던 것이다.



친구가 저번에 그 주부와 같이 탔을 때, 그 때도 그녀는 혀를 찼다고 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같이 탔기 때문에 급행 모드를 사용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짜증이었던 것일까.

친구가 경험한 것을 하나하나 검증해 봐도, 모든 것이 그 급행 모드의 존재로 설명이 된다.

쉽사리 해결되어버린 “괴현상”의 정체에 우리들은 기운이 빠져 멍하게 서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 너머에 떨고 있었던 것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 아이들도 알고 있었던 걸까. 어쩐지 이야기를 꺼려한다 싶었다. 분명 부모한테서 비밀로 하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 이상 급행 모드를 아는 사람이 늘지 않도록.

그렇다. 자신만이 알면 된다. 다른 사람이 쓰는 급행 모드는 민폐일 뿐이니까.

“나, 역시 무서워.”

친구가 갑자기 말하였다.

다른 사람을 기다리게 해도 자신이 편리하면 그걸로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그 심리에, 나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그것도 익명이니까.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기다리게 되는 사람이 익명이니까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악의.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짜증내는 악의. 그런 사소한 악의가 이 맨션에는 충만해서, 그것이 우리들의 마음을 한없이 어둡게 가라앉게 하였다.


친구는 2학년으로 올라갈 때, 그 맨션에서 2층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사가기 전까지, 그는 계단만 사용했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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