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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한 번 대체 왜 거미가 싫은지 물은 적이 있다.
카나코 씨는 꼭 듣고 싶으냐며 짐짓 무게를 잡은 후, 아니, 후회할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도 보였던 것 같기도 한데, 여하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에어컨도 틀지 않은 밤 중의 아파트 안은 앉아 있기만 해도 끈적하게 땀이 배어나와 어쩐지 괴담을 듣기에 딱 알맞은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괴담일 것이란 보장은 없기도 했지만……
「어렸을 적에 말야, 장난아니게 끔찍한 거미 시체를 본 적이 있거든. 그 때부터 진짜 싫어.」
장난아니게 끔찍했다는 것이 좀 신경쓰이긴 하지만 의외로 평범한 이야기다. 괜히 더 더워져 부채를 올려다본다.
「근처에 쓰레기집이라고들 하던 집이 있었는데, 거기에 이상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좍 난 아저씨가 살고 있었어. 맨날 반바지를 입고 있고, 위에는 때가 낀 셔츠 한 장. 히쭉히쭉 웃으면서 아무 볼 일도 없는데 그 근처를 뱅글뱅글 돌아다니는거야. 일 같은 건 안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연금으로 먹고 살고 있다고들 하더라고. 그런데 꽤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도 그 어머니를 본 적도 없고 해서 사실은 옛날에 죽어버렸는데 그 시체를 감추고 있다고 하는 소문이 돌았어. 물론 연금을 계속 받아먹기 위해서 말야. 여하간에 근처 커뮤니티 중에서도 위험인물 넘버 원. 절대로 따라가지 말라고 어른들이 엄하게 주의를 주곤 했어.」
「……따라가셨군요.」
「엉.」
그럴 만도 하다. 할머니의 시체를 찾아낼 작정이었던 게 분명하다.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나. 돌아다니던 아저씨를 미행했을 때, 갑자기 이쪽을 돌아보고 그러더라고. 『우리 집에 맛있는 게 있어.』」
「……따라가셨군요.」
「엉.」
그럴 만도 하다.
나는 아저씨의 뒤를 따라갔다. 만약 가까이에 어른들이 있었더라면 주의를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평일 낮이라 그런지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뚜벅, 뚜벅, 마이페이스로 걷는 아저씨의 등을 바라보며 잠시 나아가자 곧 그 쓰레기집에 도착했다. 대체 언제부터 모아두었는지 모를 검은 쓰레기 봉투에 들어있는 것부터, 들어있지는 않지만 더러워 보이는 것까지가 정원까지 넘쳐나고 있다. 주변에는 이상한 냄새가 풍기는 통에 이래서야 시체가 있더라도 사취따위 분별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쓰레기에 이끌려 우글우글 모여든 길고양이들의 그 무수한 눈동자가 일제히 이쪽을 노려보았다.
그저 쓰레기를 낚으러 오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크기가 다양한 접시에 캣 푸드 같은 것들이 널려있었기 때문이었다. 키우고 있는 모양이다. 그 중에는 뭔지 모를 고기를 문 채 이쪽을 향해 그르렁대고 있는 녀석도 있다.
아저씨가 이쪽이라고 말하며 쓰레기를 헤치고 집 안으로 들어가길래, 혹시나 고양이가 뛰어들지 않을까 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따라갔다.
현관에는 제멋대로 벗어던진 신발이 몇 켤렌가 있고, 반은 쓰레기 산 아래에 깔려 있다. 아저씨가 신발을 벗길래, 생리적으로는 벗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공간을 찾아내서 신중히 신발을 정리했다.
「여기.」
부엌으로 가나 싶었지만 복도 중간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걸음을 멈췄다.
양말이 어째 마루에 끈적끈적 달라붙어 기분이 나쁘다. 그렇지만 아저씨가 멋대로 계단을 내려가기에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내려갈 적에 눈치챘다.
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집 바깥쪽도 야옹야옹 시끄러웠지만 이건 분명히 지하에서도 들려오고 있다. 한 두 마리가 아닐 뿐더러, 어째 번민하는 것처럼 들린달지, 여하간에 평범한 울음소리는 아니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어스름이 깔린 지하실에 선반이 가득 늘어서 있다. 각각 천정에 거의 붙어 보일 만큼 높다. 그 안에 뭔지 영문 모를 것이 꽉꽉 차 있다.
유모차. 깨진 삼면경. 낡은 통. 곡괭이. 석고로 만든 지장. 더러워진 조화. 암호같은 것이 갈겨 쓰여진 골판지. 그리고 검은 천을 씌운 새장 같은 것이 몇 십개정도. 고양이의 이상한 울음소리는 그 검은 천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따라가서는 안될 인물 넘버 원이란 말은 헛 것이 아니라는 실감이 들었다.
그리고 병. 매실주를 담글 때에 사용할 만한 크기의 병이 선반 아래 쪽 열에 늘어서 있는 것이 천정의 누런 빛에 어렴풋이 비치고 있다. 기분 나쁜 색의 내용물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저씨가 나의 시선이 간 병 하나를 잡고는 히죽히죽 웃으며 「먹을래?」하고 물어왔다.
처음에는 갈색의 만쥬가 꽉꽉 들어차 있는 것처럼 보여다.
하지만 한 입 크기로 치기에는 묘하게 작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 아저씨가 뚜껑을 열고는 아기처럼 포동포동한 손가락을 푹 집어넣어, 하나를 집어보였다.
어째 미끈미끈하면서도 시들시들한, 갈색이며 둥그런 것.
아저씨는 그것을 입에 털어 넣고는 쩝쩝 소리를 냈다.
다시 병에 손을 넣고, 또 하나를 꺼내 내 입가로 갖다 댄다. 갈색의 만쥬 표면의 묘한 모양과, 솜털 같은 것이 보인 순간에 알아차렸다. 알아차리고 말았다.
아, 거미의 배다.
그것도 커다란 거미. 그것이 한아름이나 되는 병의 반 이상 꽉꽉 들어차있다.
손을 내밀지 않는 내 쪽을 향해 히죽히죽 읏으며, 아저씨가 다시 자기 입에 그것을 털어넣는다. 쩝쩝. 쩝쩝……
「잠깐만요!」
이야기하는 도중에 나는 손까지 저어가며 끼어들었다.
공기. 공기를 마시고 싶다. 아니, 공기는 있다. 창 밖의 공기가 마시고 싶다.
카나코 씨는 그런 나를 바보취급이라도 하는 양 보고 있다. 방심했다. 이 사람의 트라우마 씩이나 될 정도의 일이 그렇게 흔한 이야기일 리가 없었다.
「뒷 이야기가 더 있다고. 아직 내가 도망치지 않았으니까.」
◆
아저씨는 조그만 여자아이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다 드러내 놓은 것이 흥분되는지 눈이 형형히 빛나고 숨결도 거칠어졌다.
「그치만 이건 아냐. 이건 그렇게 맛이 없거든.」
그는 병을 다시 집어넣더니 안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검은 천이 씌워진 새장같은 것의 앞을 지나갈 적에, 고양이의 신음 소리가 커졌다. 멈춰서고 만 내게 아저씨가 왜 그러냐고 묻는다.
「고양이가.」그렇게 말한 내게 기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이빨에 아까 그 거미의 배의 일부가 들러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고양이가 변신을 한다고들 하잖니, 어떤 식으로 변신하는지 실험해봤어. 이것저것 했었어. 그러다가 눈치챈거야. 죽기 전에 말야,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고양이가 있는거야. 50마리 중에 한 마리 정도. 어떤 고양이가 그렇게 되는 건지, 아직 연구중이긴 한데, 진짜 멋진 소리로 울어. 봐, 이런 식으로.」
아저씨가 가까이 있는 검은 천을 걷어냈다.
그 아래에 있는 것은 대나무로 된 골조로 짜인 새장.
텅 빈 새장.
하지만 이상한 기색이 부풀어오른다. 울음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오른쪽, 왼쪽, 위, 아래, 숨을 삼켜가며 선반에 늘어선 검은 천을 바라본다. 아저씨는 기분 좋은 듯이 천을 벗겨낸다.
텅 비어있었다. 전부 다. 그런데도 모든 새장에서 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신음하는 듯한 소리. 전율하는 듯한 소리. 귀를 막고 싶어지는 소리가.
아저씨는 굳어버린 내게「자, 고양이는 이제 됐지. 맛있는 건 저 쪽에 있어.」라며 안 쪽으로 나아간다.
머리가 멍해서 어째 꿈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비틀비틀 따라갔다.
천장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누런 빛이 늘어서 있다. 이윽고 벽에 마주쳐 코너를 돈다. 또 선반이 양 옆으로 뻗어 있다. 조금 좁아진 것만 같다. 가장 안 쪽에는 거대한 얼굴이 보인다. 벽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아저씨가 허리를 숙이고 부스럭부스럭대는가 싶더니, 더러운 항아리를 안고 왔다. 아까 그 거미의 배가 들어 있던 병과 같은 정도의 크기였다.
무척이나 낡아보였다. 둥그렇고 오므라든 입구 근처에 유약이 늘어진 것같은 모양이 생겨 있다. 그 입구를 죄고 있던 끈과 천을 아저씨가 신중한 손놀림으로 풀어나간다.
「북쪽에,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마을에, 텐구 전설이 있어.」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높은 산이 있긴 한데, 그 산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늪에 얽힌 이야기야.」
뭐가 그렇게 웃긴지 어깨를 부들부들 떨어가며 낄낄낄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낸다.
텐구? 머릿 속에 붉은 얼굴에 코가 높고, 수행승같은 차림을 한 모습이 떠오른다. 손에는 잎사귀로 만들어진 부채.
아저씨는 말한다.
「산이 아니라 늪에 있는 텐구라는 게 신기하지. 낡은 신사가 있는데. 거기에, 옛날 옛날에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하는 텐구가 모셔져 있대. 어째 좀 얼빠진 이야기지? 덜렁대는 텐구.」
등의 조그마한 날개로 회오리바람에 타고는 기분 좋게 하늘을 날던 텐구가, 잎사귀부채를 떨어뜨려서 쫓아가다가 지면에 추락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아저씨의 어조가 바뀌었다. 소곤소곤 중요한 비밀을 고하려는 듯 목소리를 낮춘다.
「그 신사의 구전에, 텐구를 모시게 된 유래가 있는데, 그게 좀 이상해. 이러더라고. 『그 상처입은 모습, 어떠한 짐승과도 닮지 않고, 피부는 검푸르며, 야윈 몸, 울음소리는 꿩과 같도다』」
씨익 웃으며 아저씨는 나의 반응을 확인한다.
「아가씨가 알고 있는 텐구하고는 다르지? 얼굴도 안 빨갛고, 나막신도, 수행승 차림도, 그리고 높은 코 이야기도 안 해. 그런데도 『텐구』로 모시고 있는거야.」
확실히 이상한 것 같다.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텐구라는 존재의 성립에 대해서 조금 설명해야해. 텐구가 지금의 모습으로 정착된 것은 카마쿠라 시대 이후라고들 하지. 수행승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그들은 수험도(修験道)의 행자로 대표되는 산 사람들의 상징이야. 그리고 밀교가 융성해진 11세기 이후, 불교의 적대자라는 성질이 추가되지. 국가와, 그걸 수호하는 불도에 좌우되지 않는 고고한 존재. 그리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교만한 마음의 화신으로서 밀교에 도전하고는 꺾이고 마는 존재. 그런 불교 전설의 안티 히어로가 즉 텐구들이지. 그건 밀교 스스로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는 호국불교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 요괴라는, 그러니까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제물로서 휘두른, 수많은 일본 고유의 신들 중 하나인거야.」
아저씨의 등 뒤의 책장의 내용물이 전구 불빛에 희미하게 보였다. 민화나 귀신에 관한 책이 꽉꽉 들어차있는 것 같았다.
항아리를 가슴 앞에 안은 채 아저씨는 말을 이었다.
「아가씨는 몇 살이지? ……그래, 귀엽군그래. 『텐구(天狗)』라는 글자를 쓸 수 있으려나. 텐은 천국(天国)의 텐(天). 구는 짐승변에 구독점(句読点)의 구라고 써. 콧쿠리상(狐狗狸(コックリ)さん, 분신사바와 비슷한 일본 놀이) 혹시 해 본 적 있어? 한자로 쓰면, 여우(狐)하고 너구리(狸) 사이에 이 구(狗)가 끼어있어. 이 글자는 개라는 의미지. 야산이나 들에서 인간을 현혹하는 짐승들. 근데, 아까 그 텐구를 모시는 신사 말야. 사실은 무척이나 오래된 신사야. 카마쿠라 막부릐 성립보다 200년 이상이나 전에 세워졌다고 하더라. 헤이안 시대지. 즉 텐구가 지금의 모습으로 정착되기 전이야. 그럼 자만심 때문에 코가 높아지기 전의 텐구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냥 수행승? 아니, 텐구는 수험도가 성립되기 훠어얼씬 오래 전에 나타난 놈들이다. 일본의 신화를 다룬 일본서기라는 책을 들어본 적이 있니? 헤이안 시대보다도 훨씬 오래전, 나라시대에 만들어진 책이야. 그 속에, 텐구에 대해서 다룬 대목이 있어. ……어느 날 동쪽 하늘에서 커다란 소리를 내며 별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놀라서 유성이다, 유성이다, 하고 소란을 피웠어. 그러나 어떤 법사는 이렇게 말했지. 『유성이 아니니라. 저것은 텐구니라.』」
등 뒤에서 들려오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는 깜짝 놀라 목을 움츠렸다. 텐구라는 익살스런 낱말의 울림이 점점 어째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으로 변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늘에 장대한 꼬리를 끌며 흐르는 불 덩어리. 그냥 유성이 아니라, 인간에게 어떤 중대한 의미를 가진 전조. 하늘을 달리는 여우(키츠네). 아마키츠네(天狗를 달리 읽은 독음)인거야.」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며 항아리의 표면을 쓰다듬는다.
「구(狗)라는 글자는 말야, 키츠네라고도 읽을 수 있어. 무척이나 오래된 독음이지. 하지만 이 텐구는 일본에서 태어난 게 아니야. 중국의 오래된 서적에도 그 모습이 보이지. 기원전에 쓰여진 『산해경(山海経)』이라는 책에는 텐구의 정체는 불덩어리라고 쓰여있어. 『사기(史記)』에는 유성처럼 보이지만 지상에 떨어지면 여우(狗)랑 비슷하고 불꽃을 발한다고 쓰여 있지. ……어떨까나. 코가 높고 붉은 얼굴을 지닌 수행승하고는 전혀 다르지. 일본에는 텐구 신사라는 신사가 무척이나 많지만, 거기서 모시고 있는 텐구는 사루타히코(猿田彦)라는 신의 분령(分霊,제신(祭神)의 혼령을 나누어 다른 신사(神社)에 모시는 것)이야. 코가 높은 신이지. 그 코가 높은 부분이 카마쿠라 시대 이후의 텐구하고 일맥상통하니까 동일시된 거라고. 너무한 이야기지. 자만심 때문에 코가 뻗어오른 불교의 원수 역 따위가 신도의 신이 되어버렸어. 원래는 여우가 변해있던 거야.」
호들갑스러운 억양으로 말한다. 전구가 지지지……, 기분 나쁜 소리를 낸다. 아저씨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저도 모르게 한 발 뒤로 피한다.
이 아저씨의 정체를 알았다ㅡㅡ 이 아저씨는 교고쿠도였던 것이다 입닥치게 교고쿠도ㅡㅡ
「그렇지만 사실은 여우도 아니야. 여우랑 닮은 유성처럼 생긴 불덩어리니까. 헬리혜성이라고 알고 있어? 조금 있으면 지구로 다가오는 혜성이야. 텐구별이라고도 하지. 혜성이나 유성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기도 해. 여기에 옛날의 잔재가 보이지. 그리고 『오잡조(五雑俎)』라는 옛날 중국 책이 있어. 다섯개의 잡다한 도마라고 쓰는 책이야. 거기서는 텐구별이 떨어진 후에 발견되는 것을 『텐구』라고 하더라.」
아저씨는 눈을 빛내며 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꿀꺽 침을 삼키며 다시 한 발 뒤로 물러난다.
「슬슬 알아차렸으려나. 내가 하려는 말이 뭔지. 늪으로 떨어졌다는 텐구를 모신다는 신사의 구전은 이렇게 말했지. 『그 모습, 어떠한 짐승과도 닮지 않고』라고. 즉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건 점점 변화해가는 그러한 『텐구』라는 낱말의 이미지에 잠식된 우화적 존재가 아니라, 진실된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거야.」
상상해보렴.
아저씨는 조용히 말했다.
「천년도 더 된 옛날의 소박한 농촌의 외곽. 늪지에, 어느 날 고요를 찢어내고 하늘을 찢어발기는 빛이 떨어져내려왔다.」
어둑어둑한 지하실의 천장에 빛이 달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굉음과 함께 거대한 불덩어리가 떨어져오는거야. 무시무시한 천변지이에 마로 지은 소박한 옷을 입은 마을 사람들은 우왕좌왕했겠지. 이윽고 불덩어리는 지상에 격돌하고는 지면을 치고, 늪의 물을 한 순간에 증발시키고는 날뛰는 여우불처럼 불이 대지를 기어다녔다. 그리고 어느샌가 불은 꺼지고, 사람들이 조심조심 가까이 가 보면 지형이 바뀔 정도의 터무니없는 충격이 있었던 것을 드러내는 흔적 속에 불덩어리의 잔해같은 것이 흩어져 있어. 그 안에서 사람들은 상처입은 짐승의 모습을 발견했다. 피부는 검푸르고, 비쩍 곯은데다, 우는 소리는 꿩같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을 잡은 사람들은 지도자 급이었던 신사의 궁사(宮司)에게 물었지. 이건 대체 뭐냐고. 궁사는 신화에 빗대어 말했어. 『유성이 아니니라, 이것은 아마키츠네(天狗)이니라.』」
그리고……
아저씨는 항아리에 시선을 주었다. 거칠거칠하게 부풀어오른 부분을 천천히 쓰다듬고 있다.
「하늘에서, 불을 뿜는 덩어리에 타고 떨어진 이방의 생물은 마을 사람들의 손에 소금 절임이 되고 말았다. 어째서 보존하려고 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군. 소금 절임이 되어버린 생물의 신체는 그 신사에 모셔져서 대대로 궁사들에게 전해져내려왔다.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인어 고기의 전설처럼, 그 고기를 먹으면 몸 안에 영력이 깃든다는 소문이 생겨났지. 그것을 듣게 된 토지의 영주에게 고기의 일부가 헌상된 적도 있다고 해. 카마쿠라, 무로마치, 에도, 메이지로 시대는 점점 바뀌고, 아마키츠네는 텐구가 되었고, 마침내 이 텐구의 고기는 궁사 일족과 일부만이 아는 비밀의 신체(御神体)로서 구전으로 전승되어왔다. 내가 어떻게 이걸 손에 넣었는지는 비밀이야.」
끈을 풀어헤치고, 항아리의 입구를 덮은 천을 슬슬슬 벗겨내어간다.
나는 그 항아리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일본의 신화나 민화에는 요괴나 귀신 등의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존재를 먹어서 그 힘을 손에 넣는다는 이야기가 몇 개인가 보여. 그 자체는 그렇게 드문 건 아니지. 그렇지만 말이다. 이 텐구의 고기를 먹으면 몸 안에 깃든다는 영력이란 것은 인어의 고기와 마찬가지로 불로장생의 힘이라고 하더라. 이게 참 재밌어. 예나 지금이나 텐구의 고기를 먹어서 불로장수를 얻는다는 전설은 거의 듣기 힘들어. 애당초 텐구는 인어보다 무척이나 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존재야. 텐구다오시(天狗だおし, 깊은 산 속에서 갑자기 원인불명의 무시무시한 큰 소리가 울리는 현상), 텐구츠부테(天狗つぶて, 돌이 하늘에서 갑자기 비처럼 내리는 현상), 텐구사라이(天狗さらい, 텐구 때문에 아이가 갑자기 행방불명 되는 것), 텐구와라이(天狗わらい,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리는 현상)…… 사람의 지혜가 채 미치지 않는 괴이한 현상인 텐구를 쓰러뜨려서 먹는다는 발상 자체가 애당초에 없는거야. 턴적인 밀교의 스님들은 계율 때문에 육식을 할 수도 없고. 그런데 이 신사에 모셔진 텐구는 그런 후세의 텐구가 아니라, 사실은 아마키츠네야. 그 어떤 짐승하고도 닮지 않았고, 꿩같은 소리를 내며 우는 생물. 텐구라서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아마키츠네라고 불렸다. 이건 연역법이 아니라 귀납법이야.」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알 수 없어서 두근두근 대고만 있는 내게 아저씨가 웃음지어보였다.
「자. 약속했던 맛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천을 벗겨내고 항아리 안에 한 손을 찔러넣는다. 그리고 고기가 뚝하고 찢어지는 미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항아리에서 빠져나온 그 손 끝에 시커먼 무언가가 잡혀 있다.
눈 앞에 들이밀어진 그것을 직시하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얼굴을 피했다.
「괜찮아. 오래 되긴 했어도 제대로 소금에 절여두었으니까 아직 먹을 수 있어. 좀 짜긴 해도.」
그렇게 말하며 아저씨는 자신의 입 쪽으로 손가락을 훑고는 편육같은 것을 씹었다.
짭짭, 내게도 소리가 들리도록.
그 순간, 부들부들 아저씨의 얼굴 전체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났다. 정말 몇 초이긴 했지만, 그 순간 아저씨의 눈동자도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나, 맛있는데.」
얼굴의 경련이 멈추어도 눈동자는 여기저기로 계속 움직이고 있다. 나는 어쩔 수도 없이 무서워져서 뒷걸음질친다.
「이야기를 하다 말았군. 귀납법. 귀납법이라고. 텐구의 고기니까 불로장수하는 게 아니야. 궁사들이 관찰한 결과, 이 고기를 먹으면 불로장수를 얻을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된 거야.」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지만 아저씨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다만 끝도 없는 광기를 품고 있었다.
뒷걸음질 치는 만큼 다가온다. 항아리를 안은 채로.
「플레이저가 말했던 유감주술(類感呪術)이야. 유사한 것에는 유사한 힘이 깃든다. 관찰된거야. 귀납법이야. 유사한 것은 서로 영향을 미쳐. 부부의 사이를 원만하게 만들고 싶다면 원앙을 먹으면 돼. 자식복을 바란다면 자식복이 있는 여자를 먹으면 돼. 먹는 행위는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주술이다.」
점점 가까이 온다.
항아리에 다시 한 번 한 손이 꽂힌다.
뿌직.
고기가 뜯기는 기분 나쁜 소리. 머리가 멋대로 그 소리를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재생한다.
검은 것. 싫은 것. 무시무시한 것이, 그 손가락에 쥐여있다.
아저씨가 내미는 그것을 피하려고 몸을 뒤틀었지만 딱딱한 것이 등 뒤에 닿는다. 책장으로 ㄷ자로 둘러싸인 움푹 패인 곳에 나는 있었다. 안 쪽의 책장에 등을 눌려, 그 이상 도망칠 수 없는 나는, 어쩔 수도 없이, 단지 그 소리만을 머릿속에서 재생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듣고 말았다.
아저씨의 팔에 안긴 항아리 안에서.
Ku…………
조그마한, 신음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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