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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추적 (2/2)

레무이 2017. 1. 16. 19:44

“그래서 들어가는 거야?”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에 오히려 긴장되어온다.


청바지 주머니에 꽂아 넣어 상당히 구겨진 ‘추적’을 펼치고 “들어갑니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이라고 말하는 나를 잡아당기듯 그녀는 안쪽으로 들어간다.

나는 이 시추에이션에 심장이 두근거리면서도 따라간다. “205호실”이라고 나에게 말하게 하고 그녀는 손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서 뭔가 카드를 받아들었다.

터벅터벅 복도를 걸어 방 번호의 불이 들어온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마자 털썩하고 그녀는 침대위에 엎어지듯 쓰러졌다. 다리가 피곤해, 같은 걸 말하면서 한숨을 쉬고 있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장난칠 생각으로 스승의 이름을 부르며 옷장이나 서랍을 열어보았다.

베갯맡의 작은 상자는 열어보고 싶지 않다.

욕탕의 문을 열었을 때, 순간, 넓은 욕조 안에 스승의 창백해진 얼굴이 떠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증기 안에 정말로 물이 틀어져있는 상태인 것을 알아채고 

출렁하고 욕조에서 물이 넘치는 소리가 난다. 조금, 예쁜 소리였다.

이건 청소담당자가 잠그는 걸 잊어버렸는지 그런 서비스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지만 적어도 그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방에 돌아오자 그녀가 엎어져 고개만 들고 있어, 두근거린다.

“실마리는?”

“머리카락입니다.”

욕탕의 샤워 노즐에 얽혀있었던 제법 색이 빠진 금발을 집어 보였다.

긴 머리카락이었다.



그 다음에 그녀가 아무말도 하지않자 그것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제 나가자. ……더치로.”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제가 낼게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더치가 이 상황에서는 베스트 탈출방법이었다.

먼저 돈을 낸 그녀에게 1/2을 잔돈까지 확실히 건네고, 화남과 부끄러움 때문에 나는 (네네, 빨라서 미안하다.)라고 머릿속에서 반복하면서 그녀 앞을 걸어 호텔을 나왔다.

나도 잘 모르지만, 어딘가에 있을 감시 카메라에 부딪혔을지도 모른다.

호텔 거리를 빠져나와 ‘추적’을 펼쳤다.

“다음엔 레스토랑을 향하는가 봅니다.”

순서가 반대잖아, 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한낮에 호텔이라니, 마치 돈이 없는 학생 같잖아.

아니 말그대로 돈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 사람은.


  레스토랑까지 50m정도 남았을 때 보도에서 혈흔을 발견한다.


페이지 중반정도에 그 문장을 보았을 때, 순간 발이 멈춘다. 그리고 급하게 자전거를 타고 레스토랑에 가는 길에 있는 혈흔을 찾았다.

있었다.

가로수 사이. 차도에 가깝다. 일부러 찾지 않는 한 눈치 채지 못했을 그것은, 이미 말라있었다.

누구의 피지?

주변을 보지만, 해가 져감에 따라 퇴색해가는 혼잡함에서는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었다.



단지, 수 미터 떨어진 앞에 오른쪽으로 꺾인 뒷골목이 왠지 신경 쓰였다. 차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이에, 또 바로 직각으로 꺾여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 한 명 없어지기에는 딱 좋은 경로가 아닌가.

그런 망상이라고도 할 수 없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혹시 몰라 레스토랑까지 가서 스승의 생김새에 대해 말해보았지만 점원 중에 기억하고 있는 이는 없었다. 데이트는 여기까지였나 보다.

확실히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

“다음은?”

그녀가 재촉해서, 페이지를 넘긴다.


  그리고 나는, 운전수에게 ‘인면창’을 알고 있는지를 물어본다.


인면창?

어째서 그런 단어가 여기서 나오는 거지.

당황하면서도 계속 읽어보았지만, 아무래도 이 페이지는 택시로 이동하는 부분밖에 써있지 않은 것 같았다. 풍경에 대한 것 같은 쓸모없는 묘사가 많다.

나는 택시를 멈추고, 탄다.

그리고 운전수에게 인면창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그 남자는 “왜 그런 걸 물으십니까. 손님, 괴담이야기에는 약합니다.”라고 말하며 하얀 장갑을 낀 왼쪽 손을 얼굴 앞에서 흔든 후에 “인면창은 잘 모르지만, 얼마 전에 손님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라며, 묘하게 기쁜 듯이 택시에 관한 괴담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괴담을 좋아하는 손님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서비스인지 그렇지 않으면 원래는 그런 이야기를 엄청나게 좋아해서인지는 몰랐지만, 여하간 그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여, 나도 뭔가 거기에 힌트가 감춰져있지 않은가하고 진지하게 들었지만, 곧 틀에 박은 듯 흔한 결말뿐인 이야기가 이어져 입을 다물고 시트에 몸을 묻었다.



택시는 교외의 길을 달렸다.

내릴 장소만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앉아있기만 하면 되었다.

‘인면창’이라는 건 몸 일부에 사람의 얼굴 같은 부스럼이 생기는 현상이었다.  아니, 병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오컬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일반 사람들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겠지. 

그러고보니 스승이 인면창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제법 최근의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이야기했었던가. 꽉 눈을 감아보지만, 아무리해도 기억이 안 난다.

옆에는 무릎 위에 작은 가방을 올려놓은 그녀가 어딘가 어두운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곧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져있었다.

요금은 둘이서 내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운전수가 갑자기 목소리를 줄이고는 “그렇지만 손님. 어떻게 알았습니까”라고 말하며 왼쪽 손의 장갑을 천천히 벗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순간 내가 숨을 멈추자 금세 그는 농담입니다라고 쾌활하게 웃으며 “빈차” 표시를 하고 차를 발진시켜, 가버렸다.

아무래도 원래 괴담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두 번 다시 타지 않도록 택시의 넘버를 기억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는?”

그녀가 주변을 본다.

공원의 입구 근처로 가로등이 하나 지금이라도 꺼질 것 같이 깜빡이고 있다. 펜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린다.

나는 펜 라이트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추적’을 편다.

언제 어떤 때 그 사람이 변덕을 일으킬지 모르니, 최저한의 광원은 웬만하면 가지고 다니고 있으려 한다.



“여기에서 동쪽으로 걷습니다.”

라고 말은 해보았지만 두 사람 다 지리에 밝지 않아 곤란해졌다. 가까운데서 주변 지도를 그려놓은 간판을 찾아, 그 현재위치에서 겨우 방향을 알아내었다.

페이지 안을 읽어 나가면, 아무래도 폐공장에 도착하는 것 같다.

얼굴을 들지만, 아직 그 실루엣은 보이지 않았다. 강이 가까운 것 같아, 조금 눅눅한 공기가 뺨을 쓸고 간다. 추위에 윗옷 깃을 여민다.


  뒷모습을 발견한다.


갑자기 그런 문장이 나온다. 앞뒤를 읽어도 잘 모르겠다. 확실히 뒷모습을 본다고 하는 걸까.

주택가인걸까, 쇠퇴한 곳이라 우리들 이외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엔 잡초가 난 공터가 있어서 왼쪽에는 높은 담이 이어져있었다. 빛이라고 해도, 가끔씩 떠오르는 것처럼 수십 미터 간격으로 가로등이 서있을 뿐이다.

그 길 저편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암흑 속에서 적당한 체격을 가진 남자의 등이 보였다.

확실히 여기를 향해서 걸어오고 있는데, 이건 아무리봐도 뒷모습이었다. 옷만 거꾸로 입은 것이 아니다. 밤에 이런 사람도 없는 장소에 뒤로 걷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다.

나는 보지 못한 척을 하며, 그것을 지나치려고 길 끝 쪽에 붙어서 빠른 발걸음으로 지나갔다.

그리고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거야 하고 슬쩍 돌아보자, 오싹하고 등줄기에 차가운 것이 흘렀다.

뒷모습이었다.



뒷모습이 아까와 똑같은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옆을 지난 순간에 방향을 바꾼 것일까. 아니, 그런 기척은 없었다.

발걸음을 멈춘 나에게 그녀가 왜 그러냐고 물어본다. 저건, 이라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 라고 말한다.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내 시계에서 뒷모습은 천천히 사라진다. 어둠 속으로.

‘추적’에서 읽은 것에 의하면 스승이 가는 곳과는 관계없는 것 같다. 그런 대충 읽고 넘어가도 될 것 같은 부분이었는데, 내 간은 완전히 작아졌다.

폐공장의 어둑어둑해진 실루엣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이미 다리가 떨려서, 정말로 이런 곳에 스승이 있는 걸까하고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서? 공장에 도착한 것 같은데.”

다 무너져가는 벽돌담 안으로 들어가, 그녀가 돌아본다. 계속 읽으라고 하는거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펜 라이트를 들고 페이지를 넘긴다.


  부름에 응답하는 소리를 따라, 안쪽으로 향한다.


그대로 읽어나가, 마음의 준비 운운하는 문장이 없어서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긴다. 

정말 이걸로 스승을 찾아낼 수 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공장 부지로 들어가 스승의 이름을 외쳤다.

갑자기 바람에 판자가 휘는 소리에 섞여, 작게 답이 들려온 듯한 기분이 든다. 비어있는 창고를 몇 개 지나, 부지 구석에 있던 조립식 주택 앞에 선다.

펜 라이트의 약한 빛에 비쳐져 스프레이나 페인트의 낙서 투성이인 벽이 떠오른다. 그 전면에는 담쟁이가 얽혀있어, 폐허의 서글픈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작은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불러본다.

그 순간, 안에서 찰캉하고 있는 금속제 물건이 쓰러지는 소리가 나며 “여기다”라고 하는 힘없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발로 찬 흔적인지, 누군가의 발자국이 잔뜩 찍힌 입구 문은 금세 찾았지만, 문손잡이를 비틀어 보니 역시 열쇠로 잠겨있었다.

“소용없어. 그 녀석들 왜인지 열쇠 가지고 있거든”이라고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뒷 창문으로 들어가면 되잖아요”라고 답하자, 스승은 조금 침묵한 뒤에 그녀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렇습니다라고 답한 뒤에 나는 조립식 주택의 뒤로 돌아간다.

제법 높은 위치에 창문이 있지만, 벽에 걸쳐있는 폐자재를 어떻게든 이용해서 올라간다. 깰 필요도 없이 이미 유리같은 건 남아있지 않은 창에서 몸을 내밀어본다. 안은 어둡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입에 문 펜 라이트를 아래로 향하자, 어떻게든 디딜 데가 있어보였다. 녹이 슨 뭔가의 뼈대를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여기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빈틈없이 플라스틱이나 강재 같은 것이 흩어져있어, 발 밑을 조심하며 걸어가, 드디어 스승으로 생각되는 사람과 만났다.

철제 기둥을 안고 있는 듯 하여 주저앉아있다.

잘 보자, 그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자신의 손과 수갑이 기둥을 감싸고 있는 듯이 원을 만들고 있어, 자유를 빼앗긴 것이다.

얼굴을 라이트로 비추자 ‘눈부셔’라고 해서 바로 치웠지만 상당히 지쳐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맞은 듯이 얼굴이 부어있는 것도 알아챘다.

“곡괭이 같은 게 있을 거예요.” 라고 말하자 스승은 조금 생각하듯이 머리를 흔든 뒤에, “저 근처에 있었을지도”라고 방구석을 턱으로 가리켰다. 어두워서 잘 안보였으므로 반쯤 손에 닿는 감각으로 찾는다. 녹슬어 이가 빠진 금속조각에 손가락을 다쳤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하여, 드디어 목적하고 있던 걸 찾았다.



기둥 쪽으로 돌아와 가능한 한 손을 안쪽으로 집어넣으라 지시하며 수갑의 쇠사슬 부분을 노린다. 어두워서 몇 번이고 궤도를 확인하면서 50%의 힘으로 곡괭이의 앞을 내리쳤다.

찰캉하는 소리와 함께 팍하고 불꽃이 튀어 스승에게서 “다시 한발”이라는 말을 들었다.

수갑이라고 해도 어차피 싸구려 장난감이다. 다음 한발로, 쇠사슬은 완전히 부서져 날아가버렸다.

“어깨, 빌려줘.”

라고 하는 스승을 부축하며, 입구를 향한다.

문은 닫혀있었지만, 안에서는 수동으로 열 수 있었다.

겨우 조립식 주택에서 나왔을 때는, 들어가서 20분정도 경과해있었다고 생각한다.

밖에는 그녀가 기다리고 있어, 스승이 한 손을 들고 “항상, 미안”이라고 말했다.

어두워서 그녀의 표정까지는 보지 못했다.

스승이 헌팅한 여자와 호텔까지 간 건 좋았지만, 나와서 같이 레스토랑으로 향하던 도중에 갑자기 그 여자의 남자친구한테 들켜서, 화난 그 녀석한테 뒤에서 둔기 같은 것으로 맞아 차로 끌려왔다고 한다.

그 이후에 이 폐공장을 아지트삼고 있던 남자들과 그 친구들한테서 맞고 발로 차이는 폭행을 당한데다가, 수갑까지 채워져서 감금당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발견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어있을까라고 생각하니, 오싹하다.

“힘이 안들어가”라고 하는 스승을 짊어지는 듯한 모습으로, 반 정도는 끌면서 나는 빨리 그 장소에서 떠나려고 걷기 시작했다.

뜨겁다.

감기에 걸려있는지 스승의 몸은 상당히 뜨거웠다. 무리도 아니다. 옷을 빼앗기지는 않았지만 이 추운 날씨에 청바지에 긴팔 티셔츠 1장인 행색이었으니까.



그녀가 웃옷을 벗어 스승의 등에 걸쳤다.

우리는 아무 말도 안하고 걸었다. 어딘가 택시를 잡을 수 있는 곳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곧 스승은 열이 올랐는지 반쯤 자면서 헛소리같은 것을 중얼중얼 반복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쨌든 이걸로 전부 해결되었다고 안도하면서도 ‘추적’의 뒷내용이 신경 쓰였다.

폐공장에 도착하고 나서 읽은 4페이지로 스승의 구출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지막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기 전에 다음 페이지를 펼치지 않는 편이 좋아.


그 뒤에 대체 뭐가 있다고 하는 걸까.

나는 스승이 미끄러지지 않게 고생하면서 한쪽 손으로 ‘추적’을 꺼내어 들어 입에 문 펜 라이트를 비춘다.

마음의 준비…… 

뭘 위해서일까.

또 두근거리기 시작한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그는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그가 헛소리로 여자의 이름을 말하자마자, 그 등을 예리한 칼날이 파고들었다.


오싹했다. 순간적으로 자세가 흔들린다.

날카로운 칼.

그런 게 어디서 파고든다는 거지.



정해져있다. 여기에는 나와 스승 외에는, 그 사람밖에 없었다.

저벅저벅하고 발소리가 뒤에서 따라온다. 등 뒤의 스승이 방해되어 뒤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그 사람밖에 없지 않는가.

모든 게 연결된다.

‘추적’의 주인공은 혼자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그러니까 현실에서 동행한다고 말한 그녀의 역할은 단지 관찰자에 지나지 않아야했다.

그러나,

묘하게 위화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 나왔던 게임 센터의 스티커 사진.

그것까지도 괜찮다. 혼자서 찍는 이상한 녀석도 있으니까.

잡화점이나 찻집, 볼링장도 혼자서 들어가도 괜찮다.

그렇지만, 러브호텔만은 어떤가. ‘추적’의 주인공은 과연 혼자서 방에 들어갔다고 하는 걸까.

‘추적’은 극단적으로 간결한 문장을 쓰고 있지만, 혹시나 의도적으로 다른 한명의 동행자의 존재를 숨기고 있는 건지 모른다.

즉, 그녀의 역할은 이레귤러한 관찰자 같은 게 아니라 엄연한 등장인물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나는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장소는 알지 못해도, 방금 ‘뒷모습’과 만났던 공터 전이다.

스승은 중얼중얼하고 헛소리를 반복하고 있다. 그 말은 불명료해서 거의 들리지 않는다.

머리 뒤에 느껴지는 스승의 숨이 뜨겁다.

‘추적’은 스승이 찔리는 장면에서 당돌하게 끝나고 있다.

배드 엔드다. 암담하다.



그녀가 정말 그것에 쓴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 마지막 페이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순서대로 읽어나가야 한다고 말한 게 아닐까. 그렇지만 그녀는 지금 칼같은 걸 들고 있는 걸까. 아니, 작은 가방뿐이다. 그리고 그녀가 잡화점에서 산 건 뭐지? 피가 물든 뿅망치를 관두고, 결국 선택한 건 뭐였지?

생각과 의혹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돈다.

걸음을 왠지 멈출 수 없다.

그녀는 지금 뒤에서 뭘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결정적인 때가 왔다. 스승의 헛소리가 한층 더 커져서, 나에게도 확실히 들릴 수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야……”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들고, 내 심장 소리만이 들렸다.

그녀가 발소리를 울리며 다가온다.

그리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야”

스승은 잠들어 버린 것 같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두근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스승이 이 상황에서 그녀의 이름을 중얼 거린 것에 신비한 감동까지 느꼈다.


훗날, 상처가 나았다고 하는 스승의 아파트에 갔다.

“폐를 끼쳤군. 미안하다.”

머리를 숙이는 스승에게 뭐예요 그런 타입이 아니잖아요라고 농담을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전 있었던 일의 전말을 자세하게 들었다.



아무래도 스승은 ‘인면창이 있는 여자’라는 소문을 어디선가 듣고 어떻게라도 보고 싶어졌는지, 찾아내어 헌팅했다는 것 같다.

하루만에 잘도 호텔까지 데리고 갔다 싶다.

“그래서 있었습니까. 인면창.”

“아니, 그건 그냥 화상의 흔적일거야.”

그렇게 용무는 끝났으니 그녀가 가고 싶어 하여 예약해놓은 레스토랑을 어떻게든 취소하고 당장이라도 헤이지지 않을래라고 간계를 펼치고 있던 때, 그녀의 남자친구와 만나 이런 꼴을 당했다고 하는 것 같다.

“최악이었어.”

최악은 당신이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사건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천벌이잖아.

나는 문득 떠올라, 어제 막 알아챈 것을 스승에게 말했다.

“‘추적’ 작자의 펜네임, 카이=로아나크였어요.”

광고지 뒤에 볼펜으로 이렇게 쓴다.

  KAYI ROANAKU 

“아마도 이렇게 쓰는 거예요. 로아나크 섬의 괴이에서 따왔다고 해도 조금 무거운 느낌이 들었던 건, 쓸 수 있는 문자가 정해져있기 때문이었어요.”

라는 건, 이라고 이어서 나는 그 아래에 연이어 다른 이름을 쓴다.

  쿠라노키 아야 KURANOKI AYA 

“아야씨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걸 둘 다 알파벳순으로 순서를 바꾸면……」 

  AAAIKKNORUY 

  AAAIKKNORUY 

“봐요, 아나그램이죠. 이건.” 

스승은 끄덕인다.

“거기에 아야씨의 현재 펜네임도 똑같이.” 

  카야노 아리쿠 KAYANO ARIKU 

  ↓ 

  AAAIKKNORUY 



“어떻습니까.”

자랑스럽게 말하는 나에게 별로 감탄한 모습도 보이지 않고 “카이=로아노크를 관두고 싶으니까 다른 걸 생각해줘라고 해서, 머리를 써 지금의 이름을 만든 게 나니까 말야.”라고 말한다.

예상했던 거였다.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서 엄청난 발견이었던 것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텐션이 내려간다.

그 때문인지 조금 심술궂은 말을 하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잘도 그 상황에서 아야씨의 이름을 말했네요. 이렇게 말해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다른 여자의 이름을 말하면 찔린다고? 그런 일로 찔린다면, 이미 죽어있어.”

아아, 역시 이사람은 안되겠다.

“그렇지만 아야씨의 에지능력으로 쓰인, 말하자면 예언서에 있던 거예요. 그 운명을 바꾼 기적적인 한마디였던 게 아닙니까.”

‘뭐 어차피, 소설이니까.“

그 소설 덕에 살아난 게 누구냐고 말하고 싶어졌다.

“거기에다 그걸 읽고 있었던 건, 혼자만이 아니니까.”

툭 던진 마디에 수수께끼에 빠진 기분이 든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추궁하려는 나를 제지하고는 스승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을 때, 나도 뒤에서 보고 있었거든. 등 뒤에서. 그래서 이건 위험하다 싶어서, 역시 원만하게 해결될 것 같은 이름을 말야.”

자는 척 한거냐 이 자식.

나는 왠지 통쾌한 기분이 되어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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