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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칼 (1/2)

레무이 2017. 1. 16. 19:56

스승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대학교 2학년의 봄의 끝물이었다.

나는 스승의 아파트의 문을 노크했다. 오컬트도의 스승이다.

기다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잠겨있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여성의 방. 역시 평소라면 주저해버릴 테지만, 방금 전 이 방을 막 나왔던 참이다.

망설임없이 문을 열어젖힌다.

방의 한가운데에서 스승은 자고 있었다.

그 날은, 아침무렵은 아직 그렇게까지 덥지 않았지만 낮즈음부터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 어제 내린 비 탓도 있어 맹렬한 찜통더위였다.

그 방은 빈말로라도 그리 좋은 물건이라고는 할 수 없어서 이런 기온 변화는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스승은 방바닥 위, 엎드린 채로 축 늘어져서 방석에 얼굴을 묻고 있다.

나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서 그 쪽에 다가가 말을 걸었다.

"……"

뭔가 대답은 있었지만, 웅얼거려서 알아들을 수가 없다.

"스승님."

다시 한 번 말하면서 어깨를 두드린다.

간신히 방석에서 얼굴이 아주 약간 떠올랐다. 굉장히 나른해보인다.

또, 뭔가 말했다.

귀를 기울인다.

"괴물을 보는 것 말고는, 하기 싫어"

하아?

"잠깐만요"

나는 다시 방석에 얼굴을 파묻은 스승의 몸을 흔들었다.

"이거 말이에요, 이거"

그렇게 왼 손에 든 종이봉투를 바삭바삭 머리위에서 흔들어보인다.

"잠깐만요. 좀 봐주세요, 이거"

스승은 엷게 흘린 땀을 뺨으로부터 닦고 얼굴을 반쯤 이 쪽을 향하고, 잠들기 직전의 거의 감긴 눈으로 중얼거렸다.

"괴물 말고는, 보기 싫어."



그러니까.

그런 선언은 아무래도 됐으니까, 돈 주세요. 제가 대납한 돈.

애당초 방금 지불을 부탁한 건 그쪽이잖아.

나는 질려서 종이봉투에서 인감을 꺼내어, 아직도 얼굴을 방석에 파묻고 있는 스승의 앞에 흔들어보였지만, 반응이 없는 관계로 목덜미에 찍어눌러주었다.

큰일났다.

빨간 게 묻었다. 가게에서 시험삼아 찍었을 때의 잉크가 남아있었나보다.

스승은 그제야 그 감촉에 모든 것을 기억해낸 것인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런가. 부탁했었지. 얼마였어?"

주문해뒀던 인감이 완성되었을테니까 가지러 다녀와달라는, 부탁이라기보다도 반쯤 명령이었다.

"비쌌어요."

내가 말한 가격에 콧방귀를 뀌고 원망스러운 듯이 지갑을 뒤진다. 이윽고 난처한 듯한 얼굴이 되었다.

"또 돈이 없어요?"

기분 탓인지 야위어보인다.

"아니, 돈 들어올 곳은 있어. 오늘만 해도…………오늘?"

지갑을 뒤지던 손을 멈추고 내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곧장 전화로 달려들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상대가 받는다.

"죄송합니다. 잊고 있었어요."

입을 떼자마자 하는 말이 저거다.

나는 대신 냈던 인감값이 돌아올 수 있을지 불안해졌다.

잠시 대화를 주고받은 끝에, 스승은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머리를 긁으면서.

"사무소 가는 걸 잊어버렸어."

사무소라는 것은 스승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흥신소를 가리킨다. 이름은 코가와조사사무소라고 한다.

스승은 가끔 그 곳에서 의뢰를 받는다. 대체로는 다른 흥신소를 거치고 거친 끝에 찾아오는 기묘한 의뢰 뿐이다.

그런 기묘한 의뢰가 이번엔 지명해서 찾아왔다는 것 같다.

소문을 들은 거겠지.

요즘에는 그런 지명에 따른 의뢰가 많아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나름대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걸까.



나는 그 조수를 하고 있다. 어깨너머 견습이지만 의외로 재미있는 탓에 어느새 스승이 말을 걸어오는 것을 기대하게되어있었다.


"만나기로 한 의뢰인, 돌아가버렸다는 것 같지만 소장이 이야기를 들어뒀다니까, 지금부터 사무소로 가자."


물론 따라간다. 인감값이 걸려있으니까.


사무소에 도착하자마자, 소장인 코가와씨는 스승을 혼냈다. 물론 미팅을 땡땡이친 것에 대해서다.


이런 작은 흥신소로서는 한 건 한 건이 소중한 건수니까, 비록 어떤 이상한 의뢰라도 마음을 다해서 소중히 다뤄야 한다.적어도 의뢰인 앞에서는. 항상 그런 마음가짐을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운운.


코가와씨는 초연한 듯 하면서 포기할 점은 포기하고 있다.


스승은 잠자코 듣고 있었지만, 적당한 시점에서 설교도 끝나, 이야기는 의뢰 내용으로 옮겨갔다.


"그렇다곤 해도 이 건은 어떠려나. 기대에 부응할지 어떨지 미심쩍은 기분이 드는데."


코가와씨는 지친 모습으로 손을 벌려보였다.


의뢰인의 이름은 쿠라데라라고 했다. 남성으로, 칠십줄의 노인. 도검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라고 한다. 의뢰는 그 도검에대해서였다.


"돈 좀 있을 것 같은 이름."


하고 스승이 툭 중얼거렸다.


쿠라데라씨는 전날, 어떤 일본도에 관한 스터디 모임에 참가했다. 스터디 모임이라곤 해도 도검연구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선생의 강의 후, 각자가 가져온 자랑스러운 수집품을 내보이면서 전원이서 이러쿵 저러쿵, 딱히 목적이랄 것 없는 잡담으로시간을 보내는 모임이랜다.


그 사람들 중에 곧잘 이런 모임에서 마주치는 동년배의 남자가 있어서, 전에 없이 밉살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노라니, 소중한 듯이 한 자루의 칼을 꺼내고는 말을 시작했다.


도는 신신도, 아이즈의 명공, 미요시 나가미치. 케이오(메이지 전) 시대의 물건이라고 하므로, 아마도 팔대째.


도신의 길이는 이 척 칠 치 오 분. 막부 말기 스타일의 장도로, 비상하게 돋보이는 모습.


작은 엇결의 접쇠무늬에, 담금질무늬(하몬)는 니오이(마르텐사이트의 입자가 작은 것)의 오오구노메미다레(하몬 형상의하나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파상의 무늬를 구노메라고 하고, 이 무늬가 불규칙하게 변화하는 것을 구노메미다레라고 함. 그 파상이 큰 경우가 오오구노메미다레). (http://www.weblio.jp/cat/culture/token 참조)



다소 갈려 닳긴 했지만, 손잡이 쪽의 칼등의 두께(모토카사네)는 삼 분이나 되는, 박력이 넘치는 한 자루.


라는둥 실로 자랑스러운 기색이다.


미요시 나가미치라고 하면 초대는 아이즈 코테츠라고 일컬어지는 사이조오오와자모노(최상대업물最上大業物. 야마다 아사에몬의 가이호켄자쿠에서 붙인 도검의 계급을 나누는 기준에서 최상급)를 만든 명공. 상태가 좋은 것은 감히 손댈 엄두도 내지 못할높은 가격이 붙는다.


하지만 시대를 건너며 대를 물려내려오면 그렇게까지는 아니게 된다.


도신이나 만듦새 등을 아울러서 총합적으로 보면, 좋은 물건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렇게까지 자랑하고 싶어질 정도의 것일까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이전에 내보였던 카와치노 카미쿠니스케 쪽이 훨씬 좋은 물건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장도를 가져온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 박력, 야취, 과연 볼품좋은 데서만 오는 것일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하고, 주위가 주목한다.


그러자 남자는 이 칼의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지만, 요약하면 이 미요시 나가미치는 막부 말기에 오즈번의 한 가로(무가의 가신단 중 최고의 지위에있었던 직책으로, 여러 명이 있어 합의에 따라 정치, 경제를 보좌, 운영했음)의 집에 있어, 그 때쯤 근왕양이로 굳어진 번의 분위기 속에서 그 가로의 가족 중에, 쵸슈가 일으킨 금문의 변에 호응해 사병을 거병하려고 한 자가 있었다.


팔월 십팔일의 정변 후의 아슬아슬한 정치 정세의 속에서 용서될 수 없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던 탓에, 가로는 이것을 강하게 말렸지만 도무지 듣지 않아, 슬픔 속에서 할 수 없이 비밀리에 그를 베어 집안의 안녕을 지켰다고 한다.


그 가로의 가족인 젊은 반역자를 참수한 칼이 여기 있는 미요시 나가미치다, 라고 하자 스터디 모임의 사람들은 저마다 호오하고 감탄을 올렸다.


칼은 사람을 베기 위한 것이지만, 사람을 벤 칼이라는 물건은 꽤나 보기 어렵다. 정확히는, 베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감정서에는 그런 사실은 쓰여있지 않다.


미요시 나가미치를 가져온 남자는 이것을 각별히 지내는 만담가에게서 받았다고 한다. 만담가의 가계는 그 가로로 이어져있어,가보의 칼과 함께 집안의 비밀로 그 일화가 전해져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그것을 들은 도검 취미의 사람들은 흥미진진한 기색으로 저마다 눈앞의 미요시 나가미치를 추켜세웠다.


"그렇게 말하고 보면, 과연 다른 칼에서 찾기 힘든 굉장함이 있다"는둥, "칼끝에 은은한 요기같은 것이 감돌고 있다"는둥떠들고는 한 번 만져보는 것을 허락받았고들 있었다.



도검연구가인 선생까지도 "젊은 혈기를 채 이루지 못하고 베인 원념이 담겨 있는 것 같다"며 감개무량하게 말하자,쿠라데라씨는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서명은 진짜라도 그 일화의 진위는 알 도리가 없는 것을, 하고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내는 것은 주저했다.


그 자리에 찬물을 끼얹었다간 자칫 못된 놈으로 몰릴 것 같아서.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기분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아 소장하고 있는 일본도를 모두 꺼내와서 늘어놓아보니, 이것들 중에도 사람을 벤 적이 있는 칼이 섞여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졌다고한다.


"그래서 난가"


"그런 거지."


쿠라데라씨는 『귀신 전문』인 스승의 소문을 듣고, 감정을 의뢰해왔다고 한다.


감정!


나는 순간 뿜을 뻔 했다.


으~음, 이것에는 키리스테고멘(무례를 당했을 경우 평민을 베어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무라이의 특권)으로 죽은 평민의 영혼이 씌여있군요-, 같은 걸 하는 건가.


옆에서 보기에도 수상쩍기 한량없다.


"칼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좀."


스승은 곤란한 기색으로 한숨을 쉰다.


"나도 마찬가지야. 카타나시, 랄까"(카타나시 = 형편없음, 쓸모없음 / 카타나 = 칼 의 유사성을 이용한말장난)


코가와씨는 농담이랍시고 한 건지 분간이 안 되는 익살을 던지고는 손바닥을 든다.


"그저, 실제로 뭔가 집에서 이상한 기척이 난다거나 소리가 나거나, 심령현상인가 생각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같아."


"......기분 탓이겠지."


"글쎄. 어쨌든 그런 일도 있으니 한 번 전문가에게 와서 봐주길 바란다고 해."


전문가말이지, 하고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스승은 흥미가 생긴 눈초리를 했다.


"벌써 받은 거야?"


"내일 연락하기로 돼있어."


스승은 생각에 잠기는 듯한 모습을 하고 문득 생각난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미요시 나가미치란 이름,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걸"


나는 무의식중에 끼어들었다.



"곤도 이사미의 애도잖습니까. 신선조의. 이케다야 사건의 공적을 치하해서 교토수호직의 마츠다이라 카타모가 내린물건이에요. 곤도 이사미라고 하면 코테츠 쪽이 유명하지만, 그 쪽은 위명이라고들 말하고 있죠."


스승은, 뭐야 너는?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잘도 아네."


코가와씨는 갑자기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본가에 잔뜩 있어서요. 검이라든가 와키자시(예비용 칼)라든가. 어깨 너머로 줏어들은 정도지만."


그렇게 말하는 내 어깨에, 스승은 난폭하게 손을 놓았다.


"좋아, 받지. 그 의뢰."


에엣, 하고 소리내 버렸다.


설마, 뭔가 실패하면 내 탓으로 돌리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싹텄다.


"받아들여 준다면, 빠른 편이 좋다고 하더라. 집까지 와달라고."


"그럼 아예 오늘 간다거나 해도?"


"2, 3일은 거의 대부분 집에 있다고 하는군."


스승은 달리 생각할 것도 없이 선언했다.


"오늘, 지금부터 간다고 전화해줘."


"오케이"


영세흥신소의 유일한 사원이자 소장은, 지각해온 아르바이트의 제멋대로인 요청을 흔쾌히 승낙했다.


"한가하지?"


스승은 거부할 수 없는 웃는 얼굴을 이쪽으로 향했다.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흥미가 있다.


그 후 코가와씨는 쿠라데라씨에게 전화를 해서, 지금부터 지명하신 사원이 조수를 한 사람 데리고 간다고 전달했다.


그리고 가택 지도를 확인하거나 상대에게 줄 계약서 등에 대해 스승과 간단한 확인 작업을 한 후에, 안절부절 못하는 듯한 기색으로 묘하게 말을 망설였다.


왜 그러는 걸까 하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아-" 하고 약간 시선을 위로 향하고서 "뭐어, 그러니까" 하고 말을꺼냈다.


"방금 전엔 좀 말이 지나쳤지. 잘못했다. 언제나 이상한 의뢰만 맡겨서, 미안해."


코가와씨는 스승에게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훗, 하고 스승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아냐, 약속을 펑크낸 건 변명할 도리가 없지. 조심하겠습니다."



"그렇지" 하고 말하고, 코가와씨는 넥타이 끝을 비틀었다.


"뭐, 그런 걸 아예 하지 말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대낮부터는 좀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응? 하는 얼굴을 했다. 나와 스승 동시에.


코가와씨는 자신의 목덜미를 가리켜 보였다. 무의식중에 둘이서 그 목 부분을 바라보았다. 가는 목이다.


핫, 하고 깨달은 표정을 하고, 스승은 자신의 목덜미를 만져보곤 손가락에 시선을 향했다.


연하게 붉은 색이 묻어있다. 목덜미에도 문질러져서 넓어진 둥글고 엷은 붉은 흔적.


아, 인감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 얼간이!!" 하는 노성과 함께 스승의 발이 명치로 날아왔다.


 


아야야.


왼팔을 문지르며 사무소의 계단을 내려가고 있으려니 스승이 뭔가 생각난 듯


"잠깐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하고 혼자서 되돌아갔다.


사무소 아래의 카페 앞에서 안면이 있는 웨이트리스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기쁜 얼굴을 하고 스승이 내려왔다.


"뭐라도 먹고 가자."


그렇게 말하고, 천 엔 지폐를 몇 장 팔랑팔랑거렸다.


아무래도 조사비를 선불로 받았나보다. 하지만 집에 가서 칼을 보는 것 뿐인 일로 조사비따위 쓸 데가 있는 걸까.


의아하게 생각되었지만, 뭐 준 거니까 써도 되겠지.


"하지만 지금부터 간다고 막 전화한 참이잖아요."


하고 말리자, 스승은 분한 듯한 얼굴을 하고 "그럼 냉큼 정리해버리고 오자" 며 나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복사한 지도를 보며 자전거에 함께 타고 목적지로 향한다.


찌는 듯한 더위에 몇 번이나 땀을 훔치며 페달을 밟기를 이십분여. 오래된 집이 늘어선 가택가의 귀퉁이에서 쿠라데라씨의 집을 발견했다.


"헤에" 하고 말하며 스승이 뒷바퀴의 안장으로부터 내려선다.


상상했던 것보다도 훌륭한 전통 가옥이다. 다실문 사이로 보이는 뜰이 상당히 넓었다.


문의 옆에 붙은 인터폰으로 도착을 알리자, 쿠라데라씨 본인의 목소리로 "들어오시지요" 하고 대답이 돌아왔다.



뜰이라기보다도 정원이라고 해야할 풍경을 바라보며 포석의 위를 걸어 현관에 도착하자, 끼익하고 문이 열리며 전통복차림의 노인이 맞아주었다.


"쿠라데라입니다."


마른 몸에서 긴장된 표정의 얼굴이 뻗어 있다. 칠십 연배라고 들었지만 정정한 모습이 좀더 젊게 보였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감정하듯이 스승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안내한다.


나는 긴장했지만 스승은 담담하게 신을 벗고 쿠라데라씨의 뒤를 따랐다.


시원한 소리를 내는 판자바닥의 복도를 지나, 우리들은 뜰에 면한 넓은 전통식 방으로 안내되었다.


"차를 내오겠습니다" 하고 쿠라데라씨가 사라지고, 잠시 뒤 돌아왔을 때에는 쟁반 위에 고급스러운 화과자도 함께담겨있었다.


주인과 손님이 각각 자세를 정돈하고, 다시 한 번 자기 소개를 했다.


나도 어물어물 명찰을 내밀었다.


"사카모토씨."


아직 그 울림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가명을 사용하는 것은 소장이 억지로 갖다붙였기 때문이지만, 언제나 이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을까 불안해진다.


나의 장래에 대한 배려인 듯 하지만, 그런 귀찮은 일에 휘말려들 가능성을 두려워할 거라면 애초에 이런 스승같은 사람에게 붙어다니거나 하진 않을텐데......


"저는 조수라고 할까, 저, 단순한 동행입니다."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스승이 "당당하게 행동해" 하고 눈에서 전파를 쏘아내며 내 다리를 찔렀다.


"급작스럽지만, 의뢰하신 물건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계약에 관한 대화를 마치고, 스승은 그렇게 말을 꺼냈다.


"네, 지금 바로."


쿠라데라씨는 양 손을 짚고 일어섰다.


단 둘만 남은 방에서 나는 스승에게 목소리를 죽이고 말을 걸었다.


"뭔가 느껴지나요?"


고요한 일본식 가옥은 바깥의 찜통 더위가 왠지 완화된 듯한 공간으로, 조금씩 땀이 가셔가는 것이 기분좋았다.


스승은 바닥으로부터 벽, 그리고 천장의 네 귀퉁이에 이르기까지 쳐다보고는 "아무 것도" 라고 말했다.



나도 동감이었다. 심령현상의 기척따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쿠라데라씨의 기분 탓일 가능성이 높은 것같다.


라는 건, 자신이 수유한 수집품들 중에 사람을 벤 검이 있기를 바란다는 그의 바람이 얼마나 강한지를 암시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조금 마음이 무거워졌다.


얼마 전의 스터디에서 금전적 가치를 초월한 그 부가가치의 존재를 인식해버린 것이 그의 정신에 준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이 의뢰의 난이도에도 관련된 문제였다.


만약 칼을 보아도 스승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면, 그대로 고하고 끝나는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쿠라데라씨의 엄격한 얼굴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 당본인이 돌아와서 자리에 앉았다. 상상과 달리 그 손은 빈 손이었다.


그런 우리들의 시선에 반응해 가볍게 웃음을 띄운다.


"감정해주실 물건은 다른 방에 준비해두었습니다."


그 전에, 하고 쿠라데라씨는 여운을 남기듯이 조금 간격을 두었다.


"귀하의 평판을 듣고 상담한 차이기는 합니다만, 이러한 일은 저도 처음이고, 텔레비전 등에서 영능자분을 배견하는 일은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사람마다 각각 방식도 다르거니와 말씀하시는 것도 다르더군요.


뭐라고 할까요, 뭐, 저도 그런 분과 만나뵐 기회도 없어서, 대체 어떻게 된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있어서말이죠."


스승의 표정이 흐려졌다.


빙빙 도는 말투지만, 요컨대 증거를 보여보라는 것이다. 사람을 벤 칼인지 어떤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힘으로 감정하는것이니, 그것이 아무 능력도 없는 인간에게 적당한 거짓말로 속아넘어갈 수는 없다는 것일까.


자신이 부탁하러 와놓고는, 만만찮은 자다.


어떻게 할까 생각해서 보고 있자니 스승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괜찮겠죠" 하고 말했다.


"저는 죽은 자의 영혼과 교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사람을 베어 죽인 칼이 있다면 그 곳에 스며든 사자의영혼을 볼 수가 있겠지요. ......이를테면 당신의 등 뒤에 지금도 맴돌고 있는 부인분처럼."



공기가 변했다. 쿠라데라씨의 얼굴이 긴장으로 떨린다.


"어떻게 아내와 사별한 걸...?"


"보이니까요. 그리고 사모님은 저에게 여러가지 것들을 가르쳐주십니다. 당신은 선대로부터 이어져오는 식료품의 도매업으로 훌륭한 집안을 세우셨습니다. 이제는 아드님께 회사를 양보하고, 유유자적하게 지내며 취미 생활을 즐기고 계시죠. 이웃해있는 집이 그 아드님 부부의 집이로군요."


콜드리딩이다!


나는 흥분했다.


아마 부인의 영혼이 보인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바로 아까까지만 해도 이 집에서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던참이니까.


그 말인즉슨 스승은 실제로 눈으로 본 것이나, 상대방과의 대화로부터 정보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사기꾼 영능력자와 같은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신용을 얻어내려고 하고 있다.


어떻게된 사람이.


나는 경외와 어이없는 기분이 섞인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 스승이 어디서 정보를 얻은 것인지 눈을 쟁반처럼 뜨고 쿠라데라씨가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나 방의 구석구석, 가구 등을 살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대화를 떠올려본다.


그러고보면 쿠라데라씨가 직접 차를 날라온 것 등은 지금 현재 독신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때마침 부인이 외출중이었다거나, 병원에 입원해 있다거나 하는 케이스도 생각할 수 있다.


나는전혀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어떻게해서 스승은 여기까지 추리할 수 있었던 건지.


"자식부부는 확실히 이웃에 살고 있습니다만, 지금도 자식이 경영하고 있는 식료품 도매상의 상호는 제 성씨와 같습니다. 넓어보이면서도 좁다면 좁은 거리입니다.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쿠라데라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래도 애쓰고 있다.


"아뇨, 유감이지만. 그리고 사모님은 당신의 지병을 염려하고 계시군요. ……심장이 아닌가요? 쓰러지신 적도 있으신 듯하고."


"음"


쿠라데라씨는 숨이 막힌 듯한 목소리를 흘렸다.



"이 이상은 이번 의뢰 내용에서 탈선하기 때문에, 다른 기회에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만. 믿어주실지 말지는 마음대로하시죠."


스승은 훗, 하고 힘을 뺀 표정을 지어보이고 말을 이었다. "사모님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분이군요. 성함이 미나코씨,되시나요"


긴장된 공기가 깨어지고, 쿠라데라씨는 "잠시 실례" 하고 가슴께를 누르며 방에서 나갔다.


나도 놀랐다. 기분나쁜 것을 보는 눈으로 스승을 보게 돼버린다.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았어요."


조심조심 물어보자, 스승은 시치미떼는 얼굴로 말했다.


"원래알고 있었으니까."


그럴 리는 없다. 의뢰인의 이름도 오늘 막 들었을 뿐이다. 그것도 스승 자신은 약속을 펑크낸 탓에 바로 직전까지 그쿠라데라씨와 말 한 마디 나눠보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스승의 영능력인 것은 아닐까 하고, 오한이 드는 기분을 맛보고 있자니 코웃음치는 듯한 말이쏟아졌다.


"저기 말이지. 이런 영능력을 기대하는 의뢰인이랑 만날 때는, 만나기 전부터 정보 수집을 해두는 게 기본이라고."


만나기 전부터? 그런 말도 안 되는. 스승은 나랑 계속 함께 있었지 않았나. 나는 그런 정보, 들은 적 없다.


옆에서 시험당하는 듯한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핫 하고 깨달았다.


그렇다. 사무소에서 나올 때, 스승만 잠깐 되돌아갔다. 바로 그 때다.


돈을 조르러 간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만약 그 소장과의 교섭이 단숨에 끝났다고 하면, 내가 아래에서 웨이트리스와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공백이 생기게 된다.


"이번 의뢰, 내 소문을 듣고 지명해왔다고 했었지.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도 뭐하지만, 나같은 건 전혀 유명하지 않고 말야. 그런 소문을 말하고 다닐만한 건, 전에 의뢰를 받았던 사람인 게 뻔하지.


그 중에 일본도에 취미가 있는 칠십 넘은 할아버지와 교우관계가 있을법한 사람은 한정되어있어. 라기보다, 대체로 그런 소문을 퍼뜨릴 사람이라면, 그 와타나베씨인 게 당연하잖아."



스승은 구체적인 이름을 한 명 꺼냈다. 이전, 심령현상에 관계된 어떤 사건을 해결하고부터 꽤나 스승이 마음에 들었는지, 감사와 부성애의 셈인가 여러 장소에서 부탁도 하지 않은 선전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사무소에서 전화해서, 그 와타나베씨로부터 될수있는 한 얘기를 들었지."


지루한 듯이 말한다.


콜드 리딩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사기 영능력자가 곧잘 사용하는 기술로, 보다 직접적이자 멋도 맛도 없는 잔기술. 핫 리딩이었던 거다.


그리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과의 교신을 연기해보였다는 건가.


굉장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뭔가 수법이 노련한 탓에 기분이 나빴다.


이 사람, 그 쪽 방면으로도 잘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버린다.


"실례했습니다."


맹장지를 열고, 다시 쿠라데라씨가 돌아왔다. 약이라도 마시고 온건지, 다소 창백하긴 했지만 진정한 기색이었다.


"매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기분이 상해하지 마시길"


우리들보다 아득하게 연장자인 노인이 머리를 숙이는 것을 보고, 왠지 뒤가 켕기는 기분이었지만, 그렇다고 쭈뼛쭈뼛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되도록 무표정하도록 애썼다.


"그럼, 칼을 봐도 될까요?"


"네, 네. 이쪽입니다."


안내를 받으며 방을 나서, 복도를 쭉 걸어 다른 방에 들어갔다.


전의 방과 같은 구조의 전통식 방이었지만, 삼, 사량은 족히 넓다. 그리고 실내에는 칼 받침대가 몇개나 늘어서있어, 어느 것에도 존재감있는 일본도가 걸려있었다.


세어보니 크고작은 걸 합쳐서 열 자루. 상당한 광경이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쿠라데라씨는 뭔가 깨달은 듯한 얼굴로 방에서 나갔다.


남겨진 우리들은 그 자리에 선 채로 도검이 늘어서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기, 저거, 잘못됐네"


스승이 웃긴 듯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길래, 뭔가 하고 보니 그 쪽에는 흑칠이 된 한 자루 용 대에 걸린 검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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