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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피 (전편)

레무이 2017. 1. 15. 16:07

대학 1학년 때, 오컬트의 길을 힘차게 나아가고 있던 나에게는 스승이 있었다.

그저 무서운 걸 좋아하는 것과는 선을 그을 정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분위기를 가진 남자였다.

그 스승과는 별도로 나를 또 다른 세계에 접하게 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오컬트계의 사이트에서 만난 친구로, 오프라인에서도 만나는 사이의 '쿄스케'씨라는 여성이다.

어느 쪽도 나와는 사는 세계가 다른 것처럼 보이는 굉장한 사람들이었다.

스승의 여자친구도 같은 사이트에서 만난 친구였기 때문에 그녀를 통해 면식이 있으려나 했지만

쿄스케씨는 스승을 모른다고 한다.

나는 그 두사람을 만나게 하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언제 한번 스승에게 쿄스케씨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다.


'만나보지 않겠습니까' 하고.


스승은 팔짱을 낀 채로 신음하더니 말했다. '요즘 교제가 뜸하다 했더니, 바람피고 있었던 거냐'

그렇게 질투하시면 곤란합니다.

하지만, 흑마술에 고개 디밀었다간 좋은 꼴 못 본다, 라고 일러주었다.

사이트에서는 흑마술계의 포럼에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거냐고 물어오길래 그렇게 흑마술스러운 건 하지 않은데요, 라고 답하던 와중, 어느 에피소드에 낚여 왔다.

쿄스케씨의 모교인 지방의 여고에 침입했을 때의 사건이었는데, 그 여고의 이름에 반응한 것이었다.


'잠깐, 그 여자의 이름은? 쿄코라던가, 치히로라던가 하는 이름 아냐?'


그러고 보니 쿄스케라는 닉네임밖엔 모른다.

말을 들어보니 스승이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쯤 같은 시내에 있는 여고에서 신문에서 화제가 된 엽기적인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여학생이 중증 빈혈로 구급차로 옮겨졌다는 건데, '동급생에게 피를 빨렸다'라고 증언해서 그 지방의 신문이 그걸 물고 늘어져 어느 정도의 소동이 되었다.

그 후, 경찰은 자살미수로 발표해, 사건 자체는 도중에 끝을 맺지 못한 채 잠잠해졌다.

그러나 그 후, 여학생 두 사람이 비밀리에 정학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우리 지방의 오컬트 마니아에게 그 사건은 핫이슈였지. ㅇㅇ고의 뱀파이어라고 말이야.

확실히 교내에서 유행했던 점술의 비밀 서클이 얽혀 있어서, 정학이 된 건 그 리더격의 두사람.

어디선가 얻은 정보에선 그런 이름이었어.'




흡혈귀라니, 요즘 세상에.

나는 스승에게는 미안하지만 배를 잡고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니야. 그 여자에겐 접근하지 않는 게 좋아'


예상도 하지 못한 진지한 표정으로 다그쳐왔다.


'그치만 쿄스케씨가 그 정학당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순 없잖아요'


나는 끝까지 한발 물러서서 그 이야기를 흘려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쿄코'라는 이름이 묘하게 머리 한 구석에 남아있었다.


그 지방의 대학에 다니는 것도 그렇지만, 그 여고출신의 사람이 내 주변에는 꽤 있었다.

같은 학과의 선배 중에 그 여고를 졸업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역시 나 자신부터도 꽤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쿄코씨? 물론 알지. 나보다 한살 많은. 그래그래, 정학 당했었어. 뭐시기 쿄코랑, 야마나카 치히로.

점술이랍시고 피를 빨아먹었대. 우아~ 징그러. 둘 다 머리 이상하다니까.

특히 쿄코씨 쪽은 이름을 입에 올린 것 만으로 저주받는다고 하급생 사이에서도 소문이 돌았을 정도로.

음~ 그러니까, 아 맞다맞다, 마사키 쿄코. 꺅, 말해버렸다.'



그 선배가 '쿄코'씨와 같은 학년이었다는 사람을 두사람 소개해 주었다.

두사람 다 다른 학부였지만 교내의 카페와 동아리방으로 몰려가서 이야기를 들었다.


'쿄코씨? 그 사람 위험해. 악마를 불러낸다고 이상한 의식같은거 했었다나봐.

고등학생이 그런 짓까지 하냐 싶을 정도로, 맛이 갔었지. 처음엔 점술같은거 좋아하는 무리들이 꽤 있었지만,

마지막엔 그 쿄코씨랑 치히로씨 이외엔 남아있질 않았지. 졸업해서 외지에 나갔다는 얘기는 들은 적 없으니까,

의외로 아직 시내에 있는거 아냐? 뭐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름은 거론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아니, 정말로. 농담삼아 뒷담화 하다가 사고 당한 애들 꽤 있었으니까.

진짜라니까요. 응? 맞아맞아. 숏컷에 키 컸었지~. 얼굴은 예뻤지만... 가까이 하기 어려워서, 남자친구 같은건 없을 것 같았어.'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길, 껌을 밟았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고등학교 때부터 부상자가 나올 만한 '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쿄스케' 씨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야마나카 치히로는 아마 쿄스케씨가 친했다고 하는 흑마술계 서클의 리더격 여자인건 아닐까.


마사키 쿄코.


머리 속에서 그 단어가 맴돌았다.




그로부터 며칠 간 인터넷에는 접속하지 않았다.

어쩐지 쿄스케씨와 이야기하는 것이 무서웠다.

어색한 티를 내버릴까봐.

어떤 의미로, 그런 쿄스케씨도 오케이~! 라는 마음도 있다.

딱히 잡아먹히진 않을테니.

재미있을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가까이 하지 마'라는 말을 단기간에 4명으로부터 들으면 조금 경계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문제를 질질 끌기만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껌을 밟았다.

보도의 가장자리에 비비고 있자니 그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순간 주위가 어두워 지더니 금새 다시 밝아지는 것이다.

구름에 가렸다던가 하는 그런 어두움은 아니었다.

순간이지만 캄캄한 암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잠시 그 자리에 굳어 있던 와중 또 같은 일이 일어났다.

팟팟 하고 주위가 깜빡이는 것이다.

마치 천천히 눈을 깜빡일 때와 같았다.

그러나 물론 자기가 눈을 깜빡여놓고 놀랠 바보는 아니다.

무서워져서 그 자리를 떠났다.



다음은 집에서 양치를 하고 있을 때였다.

팟, 팟, 하고 두번 암흑으로 시야가 차단되었다.

놀라서 입안에 있던 것을 삼켜 버렸다.

그런 일이 며칠 계속되어 노이로제에 걸릴것만 같았던 나는 스승에게 울며 매달렸다.

스승은 입을 열자마자,


'그러니까 말했잖아'


그런 소릴 들어도 뭐가 뭔지.


'그 여자 뒤를 캐고 다니니까 상대방에게 들키지. '그건' 명백히 눈 깜박임이야.'


대체 무슨 말이지?


'영시라고 있지? 영시당하고 있는 사람의 눈 앞에 영시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는 얘기, 들은 적 없어?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 눈 깜박임은 '보고 있는 쪽'의 눈 깜박임이라고 생각해'


그런 바보같은 일이.


'절 보고있다는 건가요'


'그 여자는 위험해. 어떻게라도 하는 편이 좋겠어'


'어떻게라도 라니,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스승은, 사과하러 다녀오는 건 어때? 라고 노골적으로 남일처럼 말했다.

'같이 가주세요'라고 울며 매달렸지만 상대도 해주지 않는다.

'무서운 건가요'라고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을 뽑아들어보아도 '여자는 무서워'라는 한마디로 피해버렸다.




쿄스케씨의 맨션에 향하던 도중 나는 비장한 각오로 밤길을 걷고 있었다.

자동차 바퀴가 펑크난 것이다.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또 껌을 밟았다.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길바닥에 비비려다가 문득 신발 바닥을 보았다.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았다!


껌은 커녕, 진흙도 더러운 것도, 아무것도.


그렇다면 그 발바닥을 당기는 것 같은 감각은 대체 뭐지?

'쿄코'씨의 뒤를 캐고 다니고서부터 자꾸 밟게 되었던 껌은 혹시 전부 껌이 아니었던건가?

그 자리에 우뚝 서버린 내게, 내 것이 아닌 눈 깜박임이 습격해왔다.

위에서부터 닫혀가는 세계의 저 끝에 순간, 정말 일순간, 까맣고 긴 것이 보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속눈썹?

그렇게 생각되었을 무렵, 나는 뛰쳐나갔다.

용서해주세요!

그렇게 마음 속으로 외치면서 맨션으로 뛰었다.



벨을 누르고 나서 '우~웅'하고 나른해보이는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죄송했습니다!'


쿄스케씨는 나를 내려다 보곤 바로 쪼그려 앉았다.


'어째서 갑자기 엎드려 비는거야'


뭐 어쨌든 들어와, 라고 말하곤 날 방으로 들어오게 했다.

나는 반쯤 울면서 사죄의 말을 하곤 지금까지의 일을 말했을 테지만,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내 요령없는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쿄스케씨는 한숨을 쉬곤 청바지의 주머니를 부스럭부스럭 뒤지더니 지갑으로부터 오토바이 면허증을 꺼냈다.


'야마나카 치히로'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나는 얼빠진 얼굴로,


'그, 그렇지만 키가 크고 쇼트컷에...'


라고 말했지만,


'난 고등학교 땐 계속 긴 머리였어'


바보냐, 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면, 마사키 쿄코라는 건...


'넌 죽는게 무섭지도 않은가 보구나. 그녀석한테만은 다가가지 않는게 좋아.'


어쩐지 안도감이 들더니, 그리고 금새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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