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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괴담

[485th] 소년과 할머니

레무이 2017. 12. 4. 23:37

올해 33세가 됩니다만, 무려 30년쯤 전에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옛날에는 절에서 유치원을 경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다니던 곳도 그랬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동산 옆에는 납골당이 있었고, 그 옆은 오래된 묘지였다.



저녁에 유치원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밖에는 나 혼자였다.


실내에는 몇명 정도는 사람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는 왜인지 나 혼자였다.


정글짐 위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소년이었다.


검은 바지에 검은 황금 단추가 달린 웃옷를 입고 있었다. 맨발이었다.


까까 머리였으니 초등학생 정도였을까. 나보다 두 세살 연상의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는 가만히 내 쪽을보고 있었다.


특별히 무섭다거나, 놀란 기억은 없었다. 그냥 왠지 공연한 외로움을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아이는 조용히 정글짐에서 내려와서, 납골당 옆을지나 묘지쪽으로 걸어 갔다.


나는 그 아이 뒤를 따라 갔다.


묘지라고는 해도 동산 옆이라 익숙한 풍경이었고, 평소 숨바꼭질을 하고 놀던 장소 였으므로, 별로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아이를 눈으로 쫓았다고 기억하는데, 어쩐지 지금 생각해내려고 해도, 그때의 광경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봤던, 이끼 낀 작은 무덤 만은 선명하게 뇌리에 새겨져있다.


오래된 묘지에 서있는 거목이 석양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은 어둑했다.


그 어둑함을 의식하는 순간, 몹시 겁이 나서 동산으로 돌아왔다.


시간으로는 1~ 2분 만의 일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굉장한 긴 시간이었던 듯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잠시 후, 할머니가 마중 나와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가 마중 나와 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 할머니의 얼굴을 본 순간의 안도감을 기억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무덤 쪽을 서글픈 얼굴로 잠시 바라보고는,


"○○야 (나)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려무나··· 할머니가 곁에 있으니까 말이야."


라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말하셨다.


둘이서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막과자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나는 별 생각 없이 들렀다 가고 싶었지만,


"오늘은 안돼! 오늘은 안돼! 빨리 돌아가야 하니까 안돼!" 라고 할머니에게 타일러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그날 자정이었다.



왠지 내게는 할머니의 죽음이 분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장례식에 친척이랑 아는사람이 집에 많이 왔고, 어수선했던 것은 기억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슬픔이 지금도 전혀 기억에 없다.




이듬해 나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도 유치원과 길을 사이에 두고 가까웠지만, 나는 그 일체 접근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접근 할 수 없었다.


의식하면 머릿 속에 이끼 투성이가 된 그 작은 무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동네 자원 봉사로 다시 유치원이 있는 그 절을 방문하게 되었다.


묘지는 정비되었기에, 오래된 무연고 사체와 묘비는 철거되어 이전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유치원도 신축 당시와는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절의 본당이 개축되는 모양이라, 오래된 짐과 쓰레기든지 청소가 자원 봉사의 일이었다.



주지스님이 수십 년 동안 절에 들여온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영정이 수십 장이나 있었다. 나와 친구에게 그것을 밖으로 꺼내도록 하셨다.


누르스름 한 신문지에 싸인 영정 중에 한 장, 싸여있지 않은 영정이 있었다.



나는 그 영정을 손에 들고 보는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었다.




그때 본 소년의 영정이었다.







그리고 그 소년의 뒤에서, 그 소년의 목을 이 세상의 표정이 아닌 모습으로 조르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이 있었다.







나는 기절했고, 깨어났을 때는 병원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공포로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나중에 사진은 주지스님이 공양하여 소각 처분했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주지스님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 소년은 전쟁 중 토지의 지주가 입양하여 거둔 아이인데, 상당한 냉대를 받은 뒤 병사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그 지주의 집에서 심부름을 했다는 모양이고, 꽤 그 아이를 귀여워했다고 한다.


그 소년은 아마도 나를 데려가기 위해 나타난 것일까, 그렇게 주지스님이 말 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고, 그 결과가 그 사진이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 후, 곧바로 이사했습니다만 지금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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