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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전공은 불교미술이다. 오래된 상가 같은 건 수비범위가 아니다.

“그래도 분명히, 이런 걸 토오리니와(*通り庭 입구에서 뒷문까지 이어지는 통로 같은 걸로, 오사카지방의 상가에선 일반적인 구조였다고 함)라고 해요. 이쪽이 객실이고.”

나는 뼈대만 남은 장지문을 가리켰다. 이어서, 우리가 들어온 뒷문과 반대방향의 안쪽을 가리키며,

“저쪽이 가게겠네요.”

라고 말했다.

스승은 ‘호오.’하고 말하며 장지문을 열어젖히고 먼지가 쌓인 다다미방으로 들어섰다. 물론 신발을 신은 채로.

살림살이 종류는 전혀 없는 휑한 방이었다. 썩은 다다미만이 역한 냄새를 풍기며 먼지를 날리고 있었다.

“이 이상 들어가면 푹 꺼질 것 같아.”

스승은 그 자리에 서서 벽을 비춘다. 흙색 벽에는 판자를 덧댄 상좌 위쪽으로 족자가 걸려있던 흔적이 보였지만 지금은 벽의 흙이 떨어져나가 흉한 몰골이었다.

위를 보니 천장 구석에 커다란 거미줄이 있었다. 거미가 몇 마리 매달려있다.

“으엑.”

스승이 숨을 들이켰다.

믿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거미가 빛을 피해 대들보로 몸을 숨기는 게 똑똑히 보였다.

기분 나쁘다.

사람이 살지 않게 된 집 안에서도 벌레들의 삶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옆방도 비슷한 상태였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가게 쪽으로 들어갔다.

“거미 있어?”

갑자기 소극적이 된 스승이 어둠 속으로 나를 집어넣으려 한다.

밀었네 안밀었네 실랑이를 벌이다가 둘이서 입구에 선채 안을 들여다보니 낮은 진열대만 몇 개 있을 뿐, 달리 남아있는 건 없었다.



단지, 스승도 나처럼 여기저기서 빛을 피해 도망가는 그림자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사방팔방으로 다소 과하게 빛을 비추면서 ‘우윽.’하고 신음하고 있다.

가게의 정면 현관의 뒤편(<간>자가 쓰여 있던 문인가?)에는 역시나 튼튼해 보이는 막대가 몇 겹이나 걸려있었다.

만약 이 문으로 몸을 부딪쳤다면, 하고 생각하니 오싹해졌다.

그 뒤로도 둘이서 집안의 작은방 따위를 탐색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즉, ‘이 세상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신음소리가 들린다’는 소문과 관계된 일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인기척이 전혀 없네요.”

내 말에 스승이 ‘으음’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무언가 납득이 가질 않는 모양이다.

그야 여기까지 원정을 와서 불법침입까지 했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결말을 짓기는 납득이 안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스승이 고개를 기울인 채 툭하고 내뱉었다.

“2층엔 어떻게 올라가는 거야?”

오싹했다.

2층?

밖에서 보이던 2층의 격자. 그 안에는 방이 있을 터였다.

거기론 어떻게 올라가지?

이 집에는 계단이 없잖아.

못보고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한 번 더 집을 돌아본다.

그러나 계단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런 구조의 집은 보통 계단이 어디쯤 있지?”

스승의 질문에 답한다.

“대부분 가게 쪽 가장자리에요. 부엌 옆에 있기도 하지만.”

“아무데도 없잖아.”



이상하다.

줄사다리로 출입했나하고 천장을 살펴봐도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바깥에서 사다리를 걸치고 출입했던 건가. 그런 추측을 하고 있는데, 내 귀가 영혼 깊숙한 곳까지 얼어붙는 듯 한 소리를 잡아냈다.

     우우우우우우

.................

어디에선가 그런 신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무심코 몸이 굳었다.

기분 탓이 아니다. 그 증거가 바로 내 눈앞에 있다.

스승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딱딱한 표정으로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조용히.

스승이 내게 눈짓을 보내고 천천히 발을 끌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린다.

우리가 있던 가게 쪽에서 통로로 나와 손전등의 둥근 빛이 만들어내는 자욱한 먼지의 길을 숨죽이고 나아간다. 갑자기 어둠이 깊어진 것 같았다. 실내에는 하나의 광원(光源)으론 닿지 않는 어둠이 있다고, 새삼스레 절감한다. 잠시 눈을 뗀 사이에 그 어둠 속으로 무언가가 몸을 숨기는 상상이 부풀어 오른다.

     우우우우우우

................

미약한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스승이 걸음을 멈춘다.

처음으로 들어갔던 객실 앞이다.

천천히 다다미 위로 발을 옮기며 스승이 안으로 들어간다.

뒤틀린 다다미에 걸리는 듯, 뼈대만 남은 장지문이 덜컹하고 소리를 냈다.

“어이.”

나도 스승의 잔뜩 숨죽인 목소리에 재촉 받아 안으로 들어선다.



스승은 방구석의 벽장에 손전등을 비췄다.

떼어낸 것인지 문짝도 없다. 방안에 뻥 뚫린 구멍 같은 공간이었다.

신음소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것도 확실히 가까워진 듯하다.

스승이 벽장의 바닥을 더듬는가 싶더니, 스스윽.....하고 나무가 마찰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이 얼굴로 몰려왔다.

스승이 내 쪽을 돌아본다.

그리고 벽장 바닥을 비춘다. 빛은 어느 한 점에서 빨려들어 가듯 사라지고 있다.

거기엔 감춰진 뚜껑이 열린 구멍이 있었다. 사람이 쉽게 드나들 정도의 크기였다.

스승의 몸짓에 가까이 다가간 나는 그 구멍 안을 슬며시 들여다봤다.

지하로 뻗은 나무계단이 보였다.

공기가 뿜어져 나온다.

     우우우우우우

.................

공동을 빠져나가는 바람소리.

이게 신음소리의 정체인가.

꿀꺽 침을 삼키는 나에게 스승이 속삭인다.

눈빛을 빛내며, ‘자아, 가볼까.’하고.


나는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친할아버지 댁에 있는 오래된 광. 그 안에는 지하로 통하는 숨겨진 계단이 있다. 밑에는 비밀의 방이 있고, 거대한 항아리가 놓여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이끌려 그 계단을 내려갈 때 느꼈던 그, 눈치 채지 못 할 정도로 아주 서서히 자신이 죽어가는 듯한 감각. 장난에 대한 꾸지람을 들은 나는, 아버지에 의해 그 항아리 안으로 밀어 넣어지는 것이다.



항아리는 너무나도 조용히 자리하고 있어서 꼭 앉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던 게 누구였더라... 어찌되었건 노란 조명이 비추는 지하에서 홀로 항아리에 집어삼켜진 나는, 몸을 웅크린 채 무거운 돌이 하늘에 뚜껑을 덮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빛 한줄기 없는 세계에 갇혀버린 나는 멀어져가는 발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있는 곳이 지하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더 아래가 있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가는 것이다.


“왜 그래?”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스승이 손전등으로 아래를 비추며 계단으로 발을 옮긴다. 나도 뒤따른다.

끼익, 끼익, 오래된 나무가 삐걱 이는 소리.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과는 다르다. 설령 밖이 보이지 않는 건물 안이라도 지하로 들어가는 계단은 확실히 구분된다. 피부감각으로. 또는 장기(臟器)로.

계단은 가팔랐다. 한 계단 한 계단이 굉장히 높은데다 발판의 폭도 좁다. 밑을 보니 거의 수직으로 내려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미끄러지면 큰일 나겠군.

한걸음 한걸음 신중하게 나아간다.

금방 벽에 닿는다. 오른쪽으로 뚫린 공간으로 가니 또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냥 방향만 꺾였을 뿐이다.

“지하에 간장이라도 재어 놨나.”

스승이 중얼거리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간장을 습기가 많은 지하에 보존할리도 없고 무엇보다 입구가 벽장에 숨겨져 있다는 게 수상했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미약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얼마안가 또 벽에 닿았다. 스승이 천천히 빛을 오른쪽으로 비춘다.

“어이.”

하는 목소리.

나도 옆으로 가보니 아래로 뻗은 계단이 보였다.

더 아래가 있나봐. 하고 스승이 말한다.

아래쪽에 손전등을 비추니 또 비슷한 회벽이 빛을 반사해온다. 그리고 그 오른쪽으로 또 비슷한 공간이 빛을 빨아들이고 있다.

“어디까지 내려가는 거야.”

우리는 그 계단을 내려갔다. 끼익끼익하는 나무소리와 바람소리. 지저분한 회벽, 또다시 꺾여 이어지는 길.

2번. 3번. 4번. 5번. 6번.

꺾은 횟수를 세고 있던 나는, 머릿속에 벌레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기묘한 잡음이 섞여와 점점 다음 숫자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7번. 8번. 9번. 다음은 10번이다. 10번. 10번이다. 아. 또 계단이네. 이걸로 11번이니까 다음은.. 아니, 방금 게 10번 아니었나. 다음번이...

앞서 나가던 스승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손전등으로 천장을 비춘다.

“그을음이 있어.”

천장이라고 해봤자 낮고 아래로 경사진 나무판, 즉 우리가 내려온 계단의 밑판이 그대로 아래층의 천장이 되는 것이겠지. 그 천장이 까맣게 그을려 있다.

“몰랐는데, 발밑도 온통 그을음투성이야.”

머릿속에 촛불을 들고 이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대체 얼마나 오랜 기간 이 계단이 이용되었던 걸까.

스승이 몸을 굽히고 발판을 유심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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