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야, 이것 좀 봐봐. 쌓인 먼지랑 그을음에 희미하게 밟고 지나간 흔적이 있어.”
“그야, 이 집 사람이 옛날에 왔다 갔다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위에서 본 집 상태는 완전 폐허였으니 이 계단도 사용 안한지 꽤 되었을 거라고. 그을음이야 그렇다 쳐도 먼지는 쌓여있어야 할 거 아냐. 그 위에 어떻게 발자국이 찍히지?”
누군가 이 아래에 있는 건가.
지금도 여기를 오르내리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이 세상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신음소리가 들린다’라는 소문. 그것은 이 계단을 빠져나가는 바람소리가 아니었다는 건가.
아니, 그때 나는 동시에 전혀 다른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것은 방향을 꺾는 횟수를 세고 있는 동안 뇌리에 스친 불길한 생각이다. 몇 번인가 떨쳐내려 했지만 지금 눈앞의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발자국을 보니 그것이 더욱 선명해진다.
이것은 ‘우리의 발자국은 아닐까’하고.
그 순간 등줄기에 돋는 소름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위쪽 좀 보고 올게요.”
스승에게 그렇게 말하곤 내려온 계단을 다시 오른다. 마치 벽처럼 앞을 가로막는 높은 계단들을 양손을 짚으며 올라간다.
1번. 2번. 3번. 4번.
몇 번을 더 꺾어져야 원래 있던 벽장으로 나갈 수 있는 걸까.
우리는 계속 내려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쿵쾅 소리를 내며 뛰어올라간다. 힘들다. 숨이 차오른다. 그리고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이런.. 손전등을 빌려올걸 그랬다.
몇 번 꺾어졌더라. 갑자기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래쪽이다.
스승의 이름을 외치며 발을 돌려 다시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나는 다리가 걸려 발을 헛디딜 뻔하면서도 서둘러 내려갔다.
우당탕하고 결국 엉덩방아를 찧으며 반은 미끄러져 떨어지면서 스승이 들고 있을 손전등 빛을 찾았다.
“어, 어떻게 된 거에요.”
얼굴을 찌푸리며 겨우 그렇게 말한 나에게 스승은 조금 멋쩍은 듯이 ‘아니, 거미가..’하고 천장 구석에 줄을 친 거미를 비춰보였다. 나는 휴우, 하고 숨을 내쉬면서도 그 커다란 거미의 등 모양이 사람의 얼굴로 보여서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있잖아.”
스승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위쪽에도 거미가 있었잖아. 거미줄도 무지 많았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하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여기도 그렇고, 거미줄들이 전부 천장이나 기둥 위쪽에 있었지 우리 얼굴에 들러붙거나 하진 않았잖아.”
그랬다.
그렇긴 했는데, 듣고 보니 확실히 어딘가 이상하다.
“사람이 지나는 공간에만 거미줄이 없다는 건 말야, 누군가 거기를 지나다니고 있다는 거 아니냐?”
예를 들면, 여기도.
스승이 다시 아래로 뻗은 계단을 비춘다.
딸꾹, 하고 목이 울렸다. 그것은 나였을까 아니면 스승이었을까.
아, 이 느낌은 위험하다.
스승이 ‘돌아갈래?’하고 속삭인다.
나는 ‘계속 가죠.’하고 대답한다.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출 수 없는 감각. 그것은 분명하게 나의 수명을 줄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끼익,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다시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미줄을 올려다보며 코너를 도니 계단은 아직도 아래로 이어져 있다.
대체 뭐지 이건.
아무리그래도 너무 깊다.
이정도로 지하에 구멍을 파내려 가면 물이 나올 터였다. 커다란 수맥에 닿지 않더라도 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여러 겹의 벽을 세워야 할 거다.
그런 번거로운 작업을 해서까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만드는 게 뭐에 이득이 되는 걸까. 그것도 대충 어림잡아도 메이지시대 이전의 공법으로.
벽에 닿아 꺾어진다. 벽에 닿아, 꺾어진다.
이 과정을 얼마나 반복했을까. 도중에 횟수를 세는 것을 잊어버렸다.
밖은 밤이다. 맑은 여름밤일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공간이었다. 밖이 흐리던 비가 내리던, 아침이던 낮이던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겠지. 10년 전도 20년 전도, 일본이 전쟁에 패한 때에도, 이 지하공간은 이 모습 그대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바람이 뺨을 스치는 숨결처럼 더 깊은 지하의 존재를 속삭인다.
나도 스승도 자연스레 숨을 죽이고 나아간다.
“저기 말야.”
앞서 걷는 스승이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지도 않고 말한다.
“이 집말이야.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없었지?”
“네.”
대답하면서, ‘문을 부수라고 시킨 게 누군데.’하고 속으로 불만을 토로한다.
“이 집을 방치한 사람들은 어디로 나온 거지.”
아아. 그런 것은 지금은 잊고 싶다.
오싹한 떨림이 등줄기를 휘감고 지나간다.
확실히, 빗장이랑 막대 같은 것은 전부 안쪽에 있었다. 요새 같이 밖에서 여닫는 열쇠는 없었다. 그럼 문단속을 한 마지막 한 사람은 어떻게 밖으로 나왔는가...
마치 모든 것이 폐허 속 주민의 존재를 가리키고 있는 모양새가 아닌가.
그 말은 곧 이 계단이 이어지는 곳에 ‘그것’이 있다는 얘기다.
나는 숨을 삼키며 계속 걸음을 옮기며 빨리 이 계단 앞의 벽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계단의 높은 단차에 머리가 위아래로 연이어 흔들리면서 의식은 점점 몽롱해져간다.
끝나지 않는 계단은 마약처럼 뇌를 중독 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디까지고 깊이 내려가는 감각이 점차 안락하게 느껴진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계단이 삐걱거리고 벽이 삐걱거리고 천장이 삐걱거린다. 후드득 떨어져 내리는 먼지가 손전등 빛에 작은 그림자를 만든다. 온몸에 시커멓게 먼지가 앉았겠지.
시야의 아래쪽에서 스승의 머리가 흔들린다. 시험 삼아 계단을 하나하나 세어본다.
.....50을 넘은 시점에서 그만둬버렸다.
불현듯 어릴 적 할아버지 댁 광 지하에서 체험한 일을 떠올린다.
어쩌면 나도 스승도 어느 틈엔가 죽어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디까지고 깊숙이 내려가는 좁은 계단에서 ‘언제’가 그 순간이었는지도 알지 못 한 채.
마치 이 계단 자체가 호흡을 하는 것처럼 바람이 희미한 신음소리를 싣고 몸을 스쳐 지난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 이젠 위쪽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염없이, 밑으로. 밑으로...
기분이 안 좋다. 바닥 같은 건 없으면 좋을 텐데.
“어?”
스승의 목소리가 나의 의식을 깨운다.
코너를 따라 몸을 돌리려던 스승이 멈추어 선 채 오른편을 보고 있다.
나도 그 옆으로 가 고개를 빼고 손전등이 비추는 곳을 본다.
더 이상 계단은 없었다.
사방을 벽이 둘러싼 비좁은 복도가 수평방향으로 뻗어있다.
스승이 숨을 죽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스승의 등 뒤로 숨듯이 뒤를 쫓아간다.
손전등의 둥그런 빛이 말라비틀어진 것 같은 나무문을 어둠 속에서 비추어 냈다.
“조심해.”
그렇게 말하며 스승이 왼손으로 가볍게 민다.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뭐야, 여기는.”
스승이 안으로 신중하게 발을 옮긴다.
그곳은 다다미방이었다. 다다미 8장정도 될까.
스승이 손전등을 8자 모양으로 휘두르면서 방 안을 조금씩 비췄다.
키가 작은 일본풍 장롱이 벽 쪽에 덩그러니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녹슨 촛대.
벽 표면의 일부가 무너져 흙이 바닥을 구르고 있다.
휑한 방이었다. 인기척은 없었다. 생활한 흔적도.
다다미에서 곰팡이 냄새가 피어오른다.
천장에는 거미줄.
지하에 방이 있다고 안 시점에서 칸막이를 친 감옥 같은 방을 상상하고 있던 나는, 오히려 기분 나쁜 이질감을 느꼈다.
마치 이 집 식구 중 한명에게 주어진 평범한 방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그 긴 계단만 없다면.
'퍼온 괴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승시리즈 - 10엔 (0) | 2017.01.15 |
---|---|
스승시리즈 - 오래된 집 (4/4) (0) | 2017.01.15 |
스승시리즈 - 오래된 집 (2/4) (0) | 2017.01.15 |
스승시리즈 - 오래된 집 (1/4) (0) | 2017.01.15 |
스승시리즈 - 집울림 (0) | 2017.01.15 |
- Total
- Today
- Yesterday
- 실종
- 괴담
- 공포 괴담
- 초등학생
- 번역 괴담
- 영능력자
- 심령 스팟
- 저주
- 일본 괴담
- 여동생
- 2ch
- 아르바이트
- 행방불명
- 할머니
- 무서운이야기
- 체험담
- 번역
- 자살
- 교통사고
- 초등학교
- 스승시리즈
- 어린이 괴담
- 무서운 이야기
- 사람이 무섭다
- 장례식
- 공포
- 심령스팟
- 2ch 괴담
- 담력시험
- 일본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