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10엔

레무이 2017. 1. 15. 17:07

대학교 1학년의 봄.


휴일에 나는 자전거로 시내에 나와 있었다.


아직 새로운 거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무렵이라서


보세집 같은 가게를 몰랐던 나는, 일단 중심가의 커다란 백화점에 들어가


남성복 등을 둘러보며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입점해 있는 가게들 중에 작은 애완동물샵이 있어서 별 생각 없이 다가갔더니


본 적이 있는 사람이 햄스터 코너에 있었다.


허리를 굽히고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작은 동물의 움직임을 열심히 눈으로 쫓고 있었다.


순간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금새 얼마 전에 오프모임에서 만난 사람인 걸 알았다.


지역 오컬트계 인터넷 게시판에 드나들지 시작했던 무렵이었다.


그녀도 이쪽의 시선을 알아챈 듯, 고개를 들었다.


"아, 얼마 전의."


"아, 안녕하세요."


일단 그런 인사를 나누었지만, 그녀가 검지를 미간에 대고서


"아, 뭐였더라. 닉네임."이라고 해서 나는 본명을 댔다.


그녀의 닉네임은 분명 쿄스케였다. 조금 연상에 키가 큰 여성이었다.


그녀가 쇼핑 중이냐고 묻기에 그냥 보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하자


"잠깐 나랑 같이 가자."라고 말했다.


두근거렸다. 남자가 봐도 멋있고,


함께 걷고 있는 것만으로 뭔가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 것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예."라고 대답은 했지만 "잠깐 기다려."라고 손으로 제지한 후,


그녀는 자기가 성이 찰 때까지 햄스터를 관찰하는 동안 나를 기다리게 했다.


이상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했다.



쿄스케씨는 "목마르네."라고 말하곤 백화점 내의 카페에 나를 데려갔다.


자리에 마주 앉아서 지난 번 오프모임에서 내가 당한 공포체험을 잠시 얘기했다.


싹싹한 분위기의 사람은 아니지만 듣기를 잘한달까, 그 서글서글한 맞장구에 이쪽이 하고 싶은 말이 스무스하게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그녀의 표정에 떠오른 그림자 같은 것을 느꼈고,


그것이 대화의 미묘한 위화감이 되어갔다.


이야기가 끊어지고, 두 사람 모두 자기 마실 것에 손을 뻗었다.


갑자기 주위의 잡음이 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가 낯을 가리는 편이고, 이런 긴장감을 잘 못 견디는 나는,


어떻게든 화제를 찾으려고 머리를 회전시켰다.


그리고 딱히 깊은 생각도 없이, 이런 말을 했다.


"전 영감이 강한 편인데요, 이 빌딩에 들어왔을 때부터


뭔가 목덜미가 따끔따끔하면서 이상한 느낌이 드네요."


거짓말이었다. 오컬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화제에 낚이지 않을까 하는,


단지 그런 의도였다.


그런데 쿄스케씨의 눈이 가늘어지고, 갑자기 긴장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뭔가 말실수를 한 건가 하고 불안해졌다.


"이 주변은 말야."라고 그녀는 커피를 테이블에 놓고 입을 열었다.


"이 부근은 전쟁 때 엄청난 공습이 있었어.


B29 편대가 하늘을 덮고, 소이탄 폭격에서 이 가게의 지하로 도망쳐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연기와 불꽃에 휩싸여서 도망칠 곳도 없이 모두 죽어갔지."


담담히 말하는 그 말투에는 비난의 어조도, 호기심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진지하게 말할 뿐이었다.


나는 그 때, 이 여성이 이곳 출신이라는 걸 알았다.


"아직 밤이 밝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해."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다시 컵에 손을 뻗었다.



후회했다. 무책임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다고.


스스로가 한심해서 풀이 죽었다.


쿄스케씨는 잠시 천장 부근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지만,


내 모습을 보고 "어이."하고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 "힘내라구, 소년."하며 웃고는,


"좋은 걸 보여 줄테니까."라며 청바지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뭘까 하고 생각하는 내 눈 앞에서 쿄스케씨는 검은 지갑을 꺼내고,


안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10엔 동전이었다.


아무런 이상한 점도 없어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서 손으로 집어 들어보자,


겉면에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10이라고 쓰여진 뒷면을 뒤집자 거기에 본 적이 없는 모양이 있었다.


쇼와(昭和, 일본의 연호. 역자주)5X년이라고 각인된 그 밑에,


뭔가 예리한 것으로 파여진 걸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다.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K&C"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건? 하고 묻자, 그녀는 자기가 새긴 거라고 했다.


범죄잖아 라고 생각했지만, 태클을 걸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던가. 15살이었으니까, 몇 년 전이지......6년 정도인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분신사바를 했어. 우리는 영혼님이라고 불렀었지만.


거기서 쓴 10엔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어봤겠지만,


우리들 사이에서도 바로 써야 한다고 해서 분명 빵집에서 주스 같은 걸 샀어."


나도 경험이 있었다. 내 경우는 분신사바에서 사용한 종이도


근처의 이나리(稲荷, 일본의 오곡의 신. 혹은 그 신을 모신 신사)에서 태우거나 했다.


"쓰기 전에 살짝 장난을 쳤어. 그 무렵에 유행한 얘기 중에,


그렇게 쓴 10엔이 몇 번이고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괴담이 있었어.


하지만 어떻게 그 10엔이 자기가 사용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는지가


항상 의문이었지. 그래서 돌아오면 알 수 있도록 사인을 한 거야."



그게 여기에 있다는 건......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돌아온 거야. 요즈음에."


4일 전에 편의점에서 받은 거스름돈 중에 이상한 상처가 있는 10엔짜리가 있나 싶었더니


바로 그 영혼님 의식에서 사용한 10엔이었다는 것이었다.


미묘하다.


라고 생각했다.


10엔 동전이 세상에 몇 개나 유통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같은 시내에서 생긴 일이다.


우리는 매일 같이 돈을 주고 받고 있다.


6년이나 지나면 한 번쯤은 같은 동전이 손에 들어오는 일도 있을 것이다.


보통은 10엔 같은 걸 개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을 뿐,


의외로 자주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히 그 사연이 있는 10엔 동전이, 라는 부분은 기묘하긴 했다.


"어디서 쓰여지고, 몇 명이 써서, 나에게 돌아온 걸까."


감개무량하게 쿄스케씨는 10엔을 조명에 비췄다.


나는 왠지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카페를 나올 때 "내가 낼게."라고 말하는 쿄스케씨에게


미안해 하면서도 얻어 먹으려 하고 있으려니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을 보았다.


카운터에서 그 10엔을 쓰려고 하는 것이다.


"잠깐, 잠깐,"하고 막으려는 나를 제지하고 "됐어."하며 쿄스케씨는 계산을 끝내 버렸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하는 점원에게는 어느 쪽이 낼 것인가로 싸우는 손님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걸어가면서 나는 "어째선가요."라고 물었다.


그도 그럴게, 그런 기적적인 사건의 증거니까


당연히 자기자신에게 있어서 10엔 정도의 가치가 아닌 보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쿄스케씨는 "또 돌아오면 재미있잖아."라고 시원스럽게 말했다.


듣자 하니 그 10엔짜리가 돌아왔을 때부터 정했던 거라고 했다.


다만, 10엔을 계산할 때 쓸 기회가 지금까지 없었을 뿐이라고.


보폭이 나보다도 넓었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쫓아갔다.


그 걸음걸이를 보며, 망설임이 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는


동경이라 하기에도, 존경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감정이 솟아 오른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녀를 따라잡아서 옆에 나란히 선 내게, 쿄스케씨는 기억난 듯이 말했다.


"내가 살 필요가 있었을까."


그런 소리를 이제 와서 해봤자.


"내 쪽이 연상이지만, 나는 여자고 그쪽은 남자야."


그녀는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철학을 말하는 듯한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그 커피만으로는 10엔을 쓰지 않았을 거야.


오렌지 주스가 더해져서 10엔짜리를 쓰게 되는 금액이 되지."


이건 노 페이트인지도 몰라.


그런 말을 중얼대고선 쓴웃음을 지었다.


그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말을 아주 예쁘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K&C라고 새겨진 10엔이 쿄스케씨에게 돌아온 것은,


그 후에 일어난 골치 아픈 사건의 전조였을지도 모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