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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이야기이다.
“재밌는 이야기를 입수했어.”
스승은 목소리를 낮추며 그렇게 말했다.
내 오컬트 길에의 스승이다. 재밌는 이야기..라고 하는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현(*우리나라의 도 ex.경기도, 강원도) 경계 부근의 마을에 오래된 상가(*어감은 옛날 가겟집정도일까 :Q) 터가 있는데, 거의 폐가나 마찬가지지만 아직 건물은 남아 있어. 누구 소유의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허물지도 않고 방치되어 있지. 그런데 한밤중이면 아무도 살지 않는 그 집에서 이 세상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신음소리가 들려온다는 소문이 돌아서 말이야. 그 지역 사람들은 무서워서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아. 어때, 흥미가 좀 생겨?”
대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흥미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그때의 나는, ‘아아, 이번엔 꽤 멀리 나가나.’하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그해 여름은 1학년 여름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무서운 것, 두려운 것에 무턱대고 다가가는 매일이었다.
그런 일상은 완만하게 내려가는 경사면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보통 사람은 접할 수 없는 기괴한 세상을 들여다보며 무서운 체험을 할수록,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열쇠를 건네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열쇠는 당최 어떤 문을 열기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용해야 할 시점도 알지 못 한 채로 열쇠만이 쌓여갔다. 나는 그것을 주체 못하고 그저 마을로, 산으로, 숲으로, 도로로,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낸 어둠 속으로, 배회했다. 그런 나날이 머릿속 어딘가 중요한 부분을 마비시켜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든다.
어딘가 현실감이 없는, 마치 수조 속에 있는 듯한 여름이었다.
나는 덜컹덜컹하고 흔들리는 경차 조수석에서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스승의 집을 나선 게 오후쯤이었는데 어느새 해는 지고, 우뚝 솟은 산들이 검은 거인의 그림자가 되어 기분 나쁜 행렬을 만들어내고 있다.
편의점을 마지막으로 본지 얼마나 되었지.
한적한 시골길은 구불구불 구부러져서 산간의 밭 저편으로 이따금 민가의 불빛이 보일 뿐, 길 위는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불안한 가로등 빛이 전부였다.
자동차 라디오에선 아까부터 이나가와 쥰지의 괴담만 주구장창 흘러나오고 있다. 가끔씩 스승이 키득거린다. 나는 그 옆얼굴을 본다.
스승이 핸들을 잡은 채로 불현듯 이쪽을 보며 말했다.
“요전에 쿠단을 봤어.”
에? 하고 물어 봤지만 그녀는 다시 말해주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휙 돌리며 시선을 거두고, ‘역시 둔감한 놈한테는 안 가르쳐줄래.’하고 말한다.
석연치 않은 느낌이 남았지만, 스승은 항상 해석이 붙은 말만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새 길이 넓어지고 산이 좀 더 멀리 물러나 보인다.
길옆으로 방재주(*防災柱 무슨 기둥인 듯 :Q)가 보이고 곧바로 농협 간판이 보였다. 띄엄띄엄 민가나 작은 공공설비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쯤에 세워두자.” 스승은 토지건설회사의 자재보관소로 보이는 공간에 차를 세우고 엔진을 껐다.
인적은 전혀 없다. 스승이 계기반에서 손전등을 꺼내 바로 옆을 비춘다. 손으로 그린 지도 같았다.
“이쪽.”
탕, 하고 문을 닫으며 스승이 앞서 걷기 시작한다. 나도 뒤를 따랐다.
쥐죽은 듯 고요한 오래된 시골마을 안으로 걸어 나가며 움직이는 것이라곤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손전등에 비친 길 위로 가끔씩 무슨 표어가 쓰인 간판이 보이고, 저 멀리서 까악까악하는 새 울음소리가 간격을 두고 들려왔다.
손목시계를 보니 아직 자정이 되기 전이다. 여기는 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보다 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한적하니 오히려 사람이랑 마주치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긴장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희미하게 들려오던 개구리 울음소리가 커지더니 용수로 옆으로 논길이 나왔다. 그쪽으로 길을 따라 나아가니 노란 가로등이 우뚝 서있고 그 건너로 어두운 건물 그림자가 보였다.
“저건가?”
스승이 손전등으로 비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버려진 가옥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대체 언제 세워진 거지. 뒤편의 잡목림도 전혀 손질한 흔적이 없어 거뭇하고 거대한 손처럼 집 쪽으로 가지를 뻗고 있다. 주위에는 집이 서있었을 토대와 지붕도 없는 낡은 오두막 같은 게 널려있어, 이곳이 한때는 상가가 있던 곳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 세상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신음소리가 들린다, 소문을 떠올린 나는 귀를 기울여봤지만 들리는 거라곤 개구리 울음소리와 바람소리뿐이었다.
점점 불안해진 나는 ‘아무 것도 없는 모양이니 그만 돌아가죠.’하고 스승에게 제안하려 했지만 그녀가 눈 밑 언저리를 긁고 있는 게 보여서 입을 다물었다.
거기엔 오래된 상처가 있는데, 흥분하면 발갛게 피부위로 부어올라 따끔거리며 아프다고 한다. 나에게 있어 그녀가 상처를 만질 때는, 있어야할..아니 우리들이 마땅히 그러할 것이라 별 생각 없이 믿고 있는 세계의 구조가 뒤틀릴 때이다.
부스럭부스럭, 무성한 잡초를 헤치며 스승이 그 집으로 다가간다.
마침내 간장의 <간>자로 보이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집 정면의 판자를 손전등으로 비춘다. 옛날엔 간장 가게였는지도 모른다.
스승이 판자를 덜컹덜컹 잡아 흔들어 보지만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위쪽을 비추니 2층 정면으로 창문이 보인다. 격자가 끼워진 창에는 밑에 발판도 없고 들어갈 길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격자의 좁은 틈으로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공기의 흐름이 보인 것 같았다. 유심히 봤지만 2층은 금세 원래의 어둠속으로 묻혔다. 스승이 손전등을 내리고 ‘어디로 들어가야 하나.’하고 중얼거리며 뒤편으로 돌아들어가려는 게 보였다.
왜일까. 굉장히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한 번 더 귀를 기울여본다.
역시나 개구리 울음소리와 바람소리뿐이다.
돌아가 보니 흙벽이 둘레를 감싸고 있었지만 사람이 들어갈 만한 문이 있었다. 반쯤 부서진 나무문을 밀자 안쪽은 길게 자란 잡초 밭이 되어있었다.
“뒷마당인가본데.”
스승이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추니 쓰러진 등이며 메워버린 연못 터, 부서진 광, 화장실로 보이는 오두막 터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잡초를 헤치며 가옥의 뒤편으로 이동하자 여기저기 벗겨진 회벽에 덧문이 단단히 닫힌 부분이 있었다.
“뒷문이군. 그런데 이거 안 열리겠는데.”
스승이 나무판을 쿵쿵 두드린다. 나뭇조각들이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이쪽에 툇마루가 있어요.”
달빛에 물기를 머금은 듯 보이는 툇마루가 어둠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곳도 나무로 된 덧문으로 막혀있다.
둘이서 잡고 흔들어 보았지만 안쪽에 막대라도 걸쳐놓은 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스승이 혀를 차며 그곳을 벗어나 뒷마당 가장자리로 가더니 흙벽과 집 사이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우두둑하고 뭔가를 밟아 부수는 기분 나쁜 소리만 들려온다. 남겨진 내 주위로 어둠이 밀려온다. 조금 불안해 진다.
이윽고 스승이 욕지거리를 하며 그 틈에서 나왔다.
“퉷, 퉷. 뭐야 이거. 들어갈 데가 전혀 없잖아.”
그러게요.
그런 말을 뱉으며 나는 이 2층짜리 가옥을 올려다봤다.
이 구조물은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이곳에 서있었던 걸까. 메이지 때부터? 에도시대부터? 지금은 무기질한 인공의 빛으로 비추어지는 지저분한 하얀 벽이, 몰락한 집의 슬픔을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찌르르, 찌르르, 벌레가 운다.
스승이 ‘금속배트 가져올걸 그랬어.’하고 말했다.
순간 안 좋은 예감이 든 나에게 곧 가차 없는 말이 떨어진다.
“몸통박치기.”
에? 되물었지만 그녀는 한 번 더 그 단어를 되풀이하며 손전등으로 뒷문을 가리켰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지만 전부 마음속에서 끝나버리고,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처음엔 가볍게 어깨로 받아보았는데 무거운 충격이 온몸을 울릴 뿐, 문은 꿈쩍도 안했다.
“어중간하게 하면 쓸데없이 아프기만 하다, 너?”라는 스승의 무책임한 발언을 등으로 받아내면서, 나는 결심을 하고 충분한 기세로 몸을 부딪쳤다.
우지끈.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지고, 나는 그대로 안쪽으로 넘어졌다.
그 순간 곰팡이 냄새가 진동해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문이 부서진 게 아니라 안쪽에 자물쇠대신 걸어놓은 판자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문은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반동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를 잡아 일으킨 스승이 집 안을 비췄다.
발밑은 흙바닥이다. 개수대 같아 보이는 곳에 단지가 여러 개 늘어서있다. 나무의자가 쌓아 올려 진 한편으로 아궁이가 있던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발 디딜 틈 없이 어질러진 땔감들.
“야, 너 이런 집 잘 알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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