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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빗소리

레무이 2017. 1. 15. 16:57

대학교 2학년 가을 끝 무렵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계속 쏟아져서, 젖은 아스팔트 표면은 안개처럼 뿌옇게 되어 있었다.

이런 날에는 우울해진다. 기분이 침체하고, 생각은 깊게 가라앉는다.

오른쪽에는 강이 있어, 하얀 가드레일 너머도 흐려져 뿌옇게 보인다.

찰칵거리며, 자동차의 비상등 소리만이 무척이나 크게 울린다. 그것만이 세상의 리듬이 된다. 모든 것이 그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다시 한 번 강을 봤다.

그 가드레일 이쪽에는 비가 내리고, 저쪽에도 똑같은 비가 내리고 있다. 길로 떨어지는 물과, 강 표면에 떨어지는 물.

올려다보면 어둡고 낮은 하늘에서, 그래도 수백 미터의 높이에서 천천히 떨어져, 지면에서 불과 몇 센티의 차이로 운명이 갈린다.

그 이미지가 묘하게 재밌어서, 운전석에서 핸들에 턱을 괴고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귀찮다는 듯이 입을 연다.

「이승과 피안의 상징인가. 확실히 이 세상과 저 세상 같은 건 그저 그만큼의 차이야.

그렇지만, 땅에 스며들든 강으로 흘러가든, 언젠가는 바다에 도달하지」

바다.

내게 오컬트를 가르쳐 준 스승이 말하는 그「바다」는, 분명「허무」와 같은 뜻이겠지. 그는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사후 세계란, 지옥이나 천국 같은, 이 지상이 아닌 세계다. 어째서 인정하지 않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완고하게 그렇게 믿고 있는 건 확실했다.

해가 지기에는 아직 조금 이르다.

나와 스승은 차 안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다. 예전에 비 내리던 날에, 스승은 여기서 무언가 재밌는 걸 본 것 같다.



「좋은 비가 내리고 있다구」

그렇게 말하며 나를 불러냈고, 그리고 여기에 있다.

마치 형사가 잠복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호빵을 한 입 베어 먹고, 우유팩을 기울였다.

왼쪽에는 공터가 있고, 풀숲 속에 누군가 버리고 간 일륜차가 비를 맞고 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다.

갑자기 스승이 입을 열어,「만약에, 태어났을 때부터 지하실에서 자란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지하실 밖에서 스스로 체험하기 전까지 비라는 걸 알지 못할까」라고, 무서운 말을 한다.

「불보다도 비는 역사가 깊어. 인간이 원숭이였던 무렵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땅 표면에서 사는 모든 생물에게 비의 기억이 머물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유전자 속 깊숙한 곳에……

그렇게 말하며 부스럭부스럭 편의점 비닐봉지를 뒤진다. 이제 호빵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단념하지 않고 휘젓고 있다. 자기가 호빵만 산 주제에.

비의 기억인가.

생각이 다시, 깊이 침강해간다.

동물은 천성적으로, 자신에게 위험한 것을 분별하는 힘이 있다. 포식해야 하는 것들 역시. 그것들과 마주했을 때, 유전자에 기억된 반응이 일어난다. 조금 더 원시적인 생명에게 있어선, 주광성이나 주수성이 그렇겠지.

그와 같이, 비에 대한 반응도 태어났을 때 이 몸속에 잠들어 있을 것인가. 아득한 과거로부터, 끊기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기억이.

처음으로 비를 체험했을 적을 떠올려보려고 한다.



물론 그런 것을 지금의 나는 기억하고 있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다.

『처음으로 겪어본 비는 어땠습니까』라고.

분명 아무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 체험했을 텐데도. 어쩐지 유쾌하다.

다시 한 번, 자신의 기억을 찾아본다.

비 냄새는 언제나 그립다. 그 그리움이, 어디선가 온 거겠지.

두서없는 일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스승의 하품에 문득 현실로 돌아왔다.

「왔어」

빗줄기로 뿌연 길 끝에, 사람 그림자가 나타났다.

스승은 뿌예진 앞유리를 소매로 닦았다. 나는 집중하며 앞을 응시한다.

빨간 우산이 보였다.

이어서 그 우산을 쥔, 여성의 그림자가 떠오른다. 표정까지는 알 수 없다. 30세 정도일까. 옷차림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무언가 싫은 느낌이 들었다. 곧바로 그 혐오감의 정체를 눈치챈다.

우산을 쓰고 걷는 여자의 바로 뒤를, 5~6살 여자아이가 따라 걷고 있다. 분홍색 구두. 노란 모자.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지극히 평범한 엄마와 아이로 보였을 거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상한 광경이었다.

우산을 쓴 여자. 그 1미터 뒤에 고개를 숙이고 걷는, 우산이 없는 아이.

우산 아래로, 서로 붙어서 걸어가면 아무 위화감도 없었을 터. 단 1미터로, 마치 이승과 피안이다.



「비 때문인가, 냄새를 못 맡겠어」

스승은 그렇게 말하며, 뚫어지게 그 둘을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차 옆을 지나가고, 둘은 다시 빗속으로 흐려지듯 사라져 간다.

「저건,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냐」

내게 묻고 있다.

몰랐다. 스승도 모르는 듯하다.

이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도 딸도 살아있는 몸.

 어머니는 살아있고, 딸은 영혼.

 어머니는 영혼, 딸은 살아있는 몸.

 어머니도 딸도 영혼」

스승이 그다지 감정을 담지 않은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느 쪽이든 슬프다.

왠지, 몹시 슬펐다.

숨이 막혀서 조수석 창문을 조금 내린다.

쏴-하고 치밀한 빗소리가 차 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비상등의 찰칵거리는 순간을 새기는 소리가 작아진다.

소리도, 풍경도, 마음도, 모든 게 비로 들이치고 있다. 이런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처음으로 체험하는 비가 언젠가는 그친다는 걸, 그 때 알고 있었을까.

문득, 모든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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