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무서운 꿈

레무이 2017. 1. 15. 16:55

유령을 본다.


큰 부상을 입는다.


변질자에게 습격당한다.


어떤 공포체험도, 밤에 꾸는 악몽 하나에 이길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한다.


실은 어젯밤, 이런 꿈을 막 꾼 참이다.


 


내가 목만 남아서 집 안을 방황하고 있다.


뭐라도 좋으니 오늘이 몇월며칠인지 알고 싶어서 달력을 찾고 있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어슬렁어슬렁 나아간다.


그 시선이 평소보다 낮아서,


아아 나는 역시 목만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그게 무척이나 슬펐다.


으앙~하고 외치면서 부엌으로 가자, 어머니가 이쪽에 등을 돌리고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방금 전의 일인데 어째선지 이미 잊어 버렸지만,


나는 뭔가 굉장히 무서운 말을 하면서 어머니를 뒤돌아 보게 했다.


그러자 그 얼굴이   였다.



라는 꿈.


이런 꿈이라도 체험한 사람은 몸이 얼어붙는 공포를 맛본다.


하지만 그것을 남에게 전하는 것은 어렵다.


4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눈이 뜨이기 직전의 장면 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무서웠다는 감각만이 물구덩이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 공포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어서 사람은 불완전한 꿈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잘 전해지지 않고 “무서웠다”는 주관만을 늘어놓는다.


흔히 그런 이야기는 재미없다. 물론 무섭지도 않다.


그것을 경험상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무서운 꿈 이야기를 남에게 잘 하지 않는다.


아니,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무서운 꿈 얘기를 한다는 것은, 남 앞에서 벌거숭이가 되는 것과 같다고


마음 속 어디선가에서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은 한심하고 부끄러운 것일게다.


꿈 속 공포의 재료는 모두 자기자신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에 겁을 내는 것과 같으니까.



대학교 2학년의 봄.


나는 아침부터 빠칭코를 하러 가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명종까지 세팅해 두고, 실로 근면한 나님이다.


그 정열의 지극히 일부라도 대학 수업에 쏟았다면


좀 더 제대로 된 인생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슬프다.


바지를 입으려 했을 때 전화벨이 울렸고


순간 움찔한 후에 수화기를 들자 “당장 와.”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컬트 동료인 쿄스케씨라는 사람이었다.


“쿄스케”는 인터넷 닉네임이다.


곤란한 일이 있어서 이쪽에서 전화를 거는 일은 자주 있었지만,


저쪽에서 전화를 걸어오는 건 실로 드물었다.


나는 빠칭코에 가는 예정을 취소하고, 쿄스케씨의 집으로 향했다.


몇 번인가 찾아간 맨션의 문을 노크하자,


금연 파이프를 입에 문 쿄스케씨가 청바지 차림으로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두근두근하면서,


그리고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집 안에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뭐, 들어봐, 라고 말하며 쿄스케씨는 테이블의 의자에 양반다리로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굉장히 무서운 일이 있었어.”


목소리가 들뜨고, 진정이 안 되는 듯한 그 모습은


평소의 표표한 쿄스케씨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혼자서 볼링을 치고 있는데, 계속 거터만 나오는 거야.


  왜 이렇게 컨디션이 안 좋은지 생각하고 있는데,


  화장실 앞에서 누군가가 손짓을 하고 있었어.


  뭐야 저거 하면서 계속 치는데 또 거터가 뜨더라구.


  넌 잘 모르겠지만 난 에버리지 180은 된다구. 말도 안되는 상황이란 거지.


  그래서 또 살짝 화장실 쪽을 봤더니, 누군가가 안으로 스윽하고 사라지고 있었는데,


  그 손이 또 너울너울 손짓을 하고 있는 거야.


  궁금해서 그쪽으로 가봤더니 청소 중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어.


  하지만 확실히 안에 누가 들어갔으니까 청소 중이고 뭐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이 어떻게 되어 있었는지 알아?


  분명히 여자 화장실이었는데 왠지 남자 화장실이 되어 있었고,


  게다가 좀비 같은 놈들이 변기 앞에 주욱 늘어서 있는 거야. 그것도 열을 지어서.


  완전히 혼란에 빠져서 비명을 질렀더니


  그 놈들이 일제히 이쪽을 돌아보고,


  뭘 봐, 임마 같은 소리를 하면서 이쪽으로 다가오려고 하기 시작했어.


  눈이 반쯤 매달려 늘어진 놈 같은 것도 있고,


  그 놈들이 전부 가죽이 주르륵 벗겨진 손을, 이렇게, 쭉 늘여서……"


 


거기까지 듣고 나는 쿄스케씨를 제지했다.


“잠깐, 잠깐 기다려 주세요.


그건 어쩌면, 이랄까 당연히 꿈이죠?”


“그래. 엄청 무서운 꿈.”


쿄스케씨는 양손을 가슴 앞에 뻗은 자세 그대로 멍하니 있었다.


그 무렵부터 남의 꿈 이야기는 무섭지 않다, 라는 달관을 해온 나는


엉덩이 부근이 근질근질해지는 감각을 맛보고 있었다.



자기가 꾼 무서운 꿈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상대의 반응이 안 좋으면 이상하게 힘이 들어가서 더 반응이 안 좋아지게 마련이다.


“뭐, 들어봐. 그 좀비들한테서 도망친 후가 굉장했다구.”


이야기를 억지로 재개한 쿄스케씨의 모험담을 나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자기가 꾼 무서운 꿈 얘기를 하려고 나를 불러낸 듯 했다.


전혀 평소의 쿄스케씨답지 않았다. 아니, 쿄스케씨다운 건가.


꿈 이야기는 계속됐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이윽고 눈물을 떨궜다.


“……그래서 내 방까지 도망쳐 왔는데, 어이. 왜 울어.


어이. 울지마. 왜 우는 거야.”


나는 자연스럽게 넘쳐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시선 끝에는 물이 빠진 커다란 수조가 있었다.


쿄스케씨를 오랫동안 괴롭혀 온, 그 수조가.


“울지 말라니까, 어이. 아놔 이것 참. 울지 말라구.”


나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알았던 것이다.


작년 여름부터 계속된 연이은 악몽이 끝났다는 것을.


결국 나는 마지막은 아무 관련도 없이, 아무 도움도 못된 채,


쿄스케씨나 그녀를 도왔던 사람들의 긴 밤을,


나는 다음 날 아침 빠칭코를 하는 꿈으로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 참. 울 정도로 무서운 거냐. 어린애냐 넌.”


울고 싶을 정도로 한심하고, 부끄러워서,


그리고 주머니에 넣어둔 액막이 부적을 모두 던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쿄스케씨가 꿈을 꾼 아침이 너무나도 기뻤다.

'퍼온 괴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승시리즈 - 빗소리  (0) 2017.01.15
스승시리즈 - 목소리  (0) 2017.01.15
스승시리즈 - 바다  (0) 2017.01.15
스승시리즈 - 거울  (0) 2017.01.15
스승시리즈 - 도플갱어  (0) 2017.01.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