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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바다

레무이 2017. 1. 15. 16:54

대학교 2학년의 여름.


나는 대학 선배와 함께 바다로 갔다.


내리쬐는 태양과도, 수영복 차림의 여성과도 거리가 먼 살짝 추운 밤바다로.


나는 선배가 조종하는 소형선의 뱃머리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생각하고 있었다.


눈 밑에는 찰랑대는 수면만이 존재했고, 그 깊이는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때때로 내 얼굴이 흐물흐물 일그러지며,


파도 속에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의 옆얼굴이 보이는 듯 했다.


먼 육지의 그림자는 기분나쁜 실루엣을 드리우고,


때때로 희미한 등대 불빛이 은막 같은 구름을 하늘 밑에 떠오르게 하고 있었다.


 


“바다 소리를 녹음하러 가자.”


라는 선배의 유혹은 항거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오컬트 스승이기도 한 그 사람의 콜렉션 중에는 수상한 카세트 테이프가 있었다.


스승님이 들려준 테이프에는 기분 나쁜 신음소리나, 흐느껴우는 듯한 소리,


어느 나라의 말인지도 모르는 속삭임 등이 줄줄이 녹음되어 있었다.


다 들은 후에 “너무 들으면 수명이 줄어들어.”


라는 소리를 듣고 완전히 겁을 먹어서,


두 번 다시 듣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왠지 모르게 얼마 지나면 다시 듣고 싶어졌다.


잘 알아 들을 수 없는 소근대는 목소리를


“무슨 말을 하는 걸까?”라는 마이너스의 기대감으로 쫓게 된다.


그런 내 모습을 재미있어 하며 스승님은


“이건 바다의 소리야.”라고 하고선 밤바다로 나를 이끌었다.



아는 사람의 보트를 빌린 스승님이 익숙한 모습으로 모터를 조종해서 바다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페리라면 모를까, 이런 작은 배로 바다에 나온 적이 없는 나는


처음부터 다리가 움츠러들어 있었다.


“조종면허 갖고 계세요?”라고 묻는 내게


“등록된 길이가 3미터 이하라면 소형선박 조종면허가 필요없어.”라고 큰소리를 치며


스승님은 어둡고 파도치는 수면 위로 배를 몰았다.


어느 정도 바다를 달렸을까,


스승님은 갑자기 엔진을 멈추고는 들고 온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바람은 멎어 있었다.


모터가 회전하는 소리가 그치자, 주변은 조용해졌다.


아니, 얼마 지나자 어디선지 알 수 없는,


바다의 소리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흘러왔다.


조수의 흐름에 몸을 맡긴 보트는 파도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뱃머리에서 얼굴을 내밀어 바닷속을 들여다 보고 있으려니,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물 속에서 물고기의 배로 보이는 하얀 것이 때때로 빛나고는 사라져 갔다.


스승님은 입을 다문 채로 수평선 부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옆얼굴을 훔쳐 보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희미한 바람 소리가 귀를 어루만지고, 배의 바닥에서 둔중하게 울리는 듯한 바다의 울림에,


나는 불안하고 고독한 기분이 들었다.


“녹음되고 있는 건가요.”라고 묻자,


스승님은 입에 손가락을 대고 “쉿”하고 입술을 움직여서 대답했다.


뭔가 들리는 듯한 기분도 들지만, 확실히는 알 수 없었다.


일단 바다 위에서 도대체 무엇이 그 테이프 같은 속삭임을 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어둠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쏴아쏴아하는 뜨뜻한 바닷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멍하니 있으려니,


갑자기 사람의 형체 같은 것이 눈 앞을 가로질러갔다.


무심코 눈으로 쫓자, 확실히 사람의 형체로 보였다.


표류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린애 키 정도나 수면 위로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굳은 채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흔들리며 멀어져 가는 어두운 사람 형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여기는 바다 한 가운데이고,


나무도 불가능한데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수심이 있을 리가 없었다.


시계는 좁았고, 천천히 사람 형체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지만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저건 뭘까요, 하고 물었다.


스승님은 고개를 흔들며, “바다는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야.”라고만 중얼거렸다.


회중전등을 키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뭔가 공연한 것을 보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킬 수가 없었다.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고, 시대착오적인 녹음기의 녹음 버튼이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자동적으로 되감기가 시작되고, 샤아~하는 소리가 몹시 크게 울렸다.


스승님이 녹음기 쪽으로 이동하는 기척이 느껴지며 살짝 배가 흔들렸다.


“들어볼래?”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나는 무리다. 나나 스승님의 방이라면 괜찮다.


아니, 최대한 양보해서 보통의 심령 스팟 정도라면 괜찮다.


하지만 여기는, 육지에서 멀어져서 파도 사이에서 떠도는 여기는,


수면보다 위도 밑도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피부감각이 있었다.


천애고독(三界に家無し)이라는 단어가 왠지 머리에 떠올라,


의지할 곳이 없는 불안함이 맹렬하게 나를 덮쳐왔다.


무언가가 변덕을 일으켜 이 조그마한 배를 뒤집어도


이 세상은 그것을 용서할 듯한, 그런 의미불명한 오한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배의 가장자리를 혼신의 힘으로 움켜잡았다.


그런 나에겐 상관 않고, 스승님은 철컥하고 버튼을 눌렀다.



무의식적으로 귀를 막았다.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다리를 벌려 버틴 채로 내 세계에서 소리가 사라지고,


녹음기 앞에 쪼그려 앉은 스승님이 정지 버튼이 눌려진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슴이 막힐 듯한 바다 비린내.


판자 한 장 밑은 지옥.


아아, 어부에게 있어 저 세상은 바다로구나, 라고 생각했다.


파도에 맞춰 흔들리는 스승님의 어깻죽지에 사람 형체 같은 것이 보였다.


다시금 바다에 선 그림자가 배의 바로 옆을 스쳐가려 하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손이고 어디가 발이라는 윤곽조차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것이 사람 형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스승님이 이쪽을 보았나 싶더니, 갑자기 뭔가 큰소리로 호통을 치며 배에서 반쯤 몸을 내밀었다.


엄청난 서슬이 퍼랬다.


배가 순간적으로 기울어져서, 나는 반사적으로 반대방향으로 몸을 기울였다.


사람 형체는 선 채로 어둠 속으로 가라져 가려 했다.


스승님은 내밀었던 몸을 다시 배로 되돌려, 배 끝의 모터로 갔다.


나는 균형을 잃고 무심코 귀를 막고 있던 양손으로 배의 가장자리를 잡았다.


뭐야 저거, 뭐야 저거.


스승님은 상기된 목소리로 숨도 쉬지 않고 말하며 엔진 시동을 걸려고 하고 있었다.


배를 돌려서 돌아갈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 손에 매달려서, 안돼요 돌아가요라고 외쳤다.


스승님은 나를 뿌리치고 말했다.


“당연하지. 꼭 붙잡고 있어.”


금방 엔진의 커다란 소리가 울리고, 배는 급가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짭짤한 물보라가 얼굴에 튀는 와중에 나는 안경을 거칠게 닦으면서,


희미하게 보이는 등대 불빛을 쫓았다. 


뒤를 돌아볼 용기는 없었다.



후일, 스승님이 그 날의 녹음 테이프를 들려주마, 라고 말했다.


결국 나는 아직 듣지 않았었다.


목구멍만 넘어가면, 이라는 생각으로 어슬렁어슬렁 스승님의 집으로 향했다.


“말도 안 되는 게 녹음되었으니까.”


그런 소리를 들으면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테이블 위에 카세트 라디오를 놓고 재생 버튼을 누르자, 낮게 신음하는 듯한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가 멀리서 울려왔다.


귀를 가까이 대고 듣고 있으려니,


그 속에 섞여서 뭔가 다른 소리가 들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볼륨을 올려 보자 확실히 들려왔다.


쏴아쏴아도, 쿠쿠쿵하는 소리도 아닌, 뭔가 규칙적으로 연결된 소리.


그것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좀 더 볼륨을 올리자 소리가 째지면서 오히려 들리지 않았다.


잘 조정을 하면서 계속 귀를 기울이자, 그것이 두 개의 단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 목소리로도, 자연의 소리로도 들리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울림.


그 단어를 알아들은 순간, 나는 무의식 중에 반쯤 몸을 일으키며 숨을 삼켰다.


그것은 틀림 없는 나와 스승님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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