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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검은 손

레무이 2017. 1. 15. 16:50

그 소문을 처음 들은 건 인터넷에서였던 것 같다. 


내가 살던 지방계 포럼을 출입하고 있으면, 허허실실의 소문들이 엄청나게 머릿속에 들어온다.


전부 다 재미없는 얘기들. 


그 속에 “검은 손”의 소문이 묻혀 있었다. 


 


검은 손을 만나게 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러기 위해선 검은 손을 1주일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설령 어떤 일이 있더라도.


 


“웃기고 자빠졌네.”


그 소문을 얘기하자 어떤 분께서 말씀하신 평가이다.


오컬트의 스승에게 그렇게 칼로 자르듯 부정을 당하면 풀이 죽는다.


“뭐, 불행의 편지의 아류구만. 어떤 일이 있더라도, 라고 다짐을 하고 있지.


그건 즉슨, 1주일 동안에 뭔가 일어납니다라는 소리겠지."


체인 메일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무렵이지만, “XX를 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 


라는 템플릿스러운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어서 인상에 남았던 거지만,


스승님은 이런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얼마 동안 내 머릿속 한켠에는 “검은 손”이라는 단어가 달라붙어 있었다.


흔히 있는 체인 메일과 경계선을 긋는 것은, 그 시작의 계기다.


“이 편지를 읽으면”


이 아니라,


“검은 손을 만나게 되면”


곧, 이야기를 들은 시점에서 강제적으로 룰의 준수를 요구받는 것이 아니라


계기가 따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무서워 하려고 해도 그 계기를 만날 수 없었다.


“검은 손을 만나게 되면”


나는 만나고 싶었다.



검은 손을 손에 넣었다.


라는 문장을 어떤 스레에서 봤을 때, 내 가슴은 고동쳤다.


평소에는 가지 않던 채팅룸에 출입했던 이유는, “자기 지방의 소문”을 얘기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검은 손”의 소문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매니악한 오컬트계 포럼에 푹 빠져 살았던 나에겐, 조금 레벨이 너무 낮은 것 같아서 멀리 하고 있었지만…


“보여줘. 보여줘.”


라는 레스가 달리고, 얼마 지나서 “좋아~”라는 답변이 달렸다.


그 온쿄(音響)라는 닉네임의 인물은, 몇 번인가 오프모임을 주최했던 행동파였던 듯,


“그럼 내일 토요일에 항상 모이던 곳에서.”라는 글을 남기고 “검은 손 오프모임”이 결정되었다.


뉴비인 나는 황급히 과거 로그를 찾아 읽고, 항상 모이던 곳이 시내의 패밀리 레스토랑인 것을 확인하고서


“처음인데 가도 될까요.”라고 글을 썼다.


당일이 되자, 아직 이런 오프모임이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도 있어서 긴장했다. 


지각을 해서 달음박질로 가게 안에 들어서자, 표식으로 지정된 검은 계통의 모자로 통일된 무리가 안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안녕~”하는 인사에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하고 자리에 앉자, 테이블 주위에 늘어앉은 사람들에게 묘한 어색함을 느꼈다.


인터넷의 글을 보고 있었을 때부터 상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어렸다.


아마 다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정도일 것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 고등학생이었다곤 하지만,


1살, 2살 연하는 다른 생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배인 척 으스대는 건 성미에 안맞았기 때문에, 여기선 연상인 걸 들키지 않도록 하자고 결심을 했다.


“그래서, 이건데 말야.”


그렇게 말하며 온몸을 검은색으로 통일한 16, 7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발 밑에서 상자 같은 것을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놨다.



오오~


하고 환성이 올라왔다.


온쿄라는 닉네임의 여자애는, 거드름을 피우지도 않고 테이블 한가운데까지 상자를 밀어 놓았다.


“학교 선배한테 받은 건데, 뭔가 갖고 있는 것만으로 소원이 이루어진대. 필요한 사람 있어?"


뭐? 주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


“검은 손이란 거, 정말로 새까매? 미이라라든가?” 


멤버 중에 경박한 느낌의 사람이 상자의 뚜껑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내 오른쪽 옆에 앉아 있던 얼굴이 갸름하고 세가닥으로 머리를 땋은 한 여자가 그 손을 굉장한 기세로 붙잡았다.


“그만둬. 이거 위험해.”


진지한 눈으로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짜증나. 뭘 그렇게 진지해 하는 거야.”


그 사람은 붙잡힌 손을 뿌리치고 노려보고선 내밀었던 몸을 뒤로 뺐다.


그 때부터 어쩐지 침묵이 찾아왔다.


영이 지나갔어.


누군가가 중얼거리자, “어~ 그거 천사가 지나갔다고 하는 거 아냐?”라는 반응이 있었고,


얼마 동안 상자에서 눈을 돌리려는 듯이 “영 VS 천사”의 논쟁이 이어진 후, 온쿄가 말했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 있어?”


또 다시 찾아온 침묵.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건데, 뭐야 이 분위기는.



검은 손을 만나게 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러기 위해선 검은 손을 1주일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설령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소문의 의미를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는 건가.


다만 그것도, 그 소문이 진짜이고 이 상자의 내용물이 진짜라는 전제조건이 있다.


근성없는 놈들. 난 달라.


왜 산을 오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이지.


“내가 가져도 될까요.”


전원이 이쪽을 보고, 다시 온쿄 쪽을 봤다.


“좋아. 멋있네~ 참고로 상자 째로 가져가. 열면 안된다는 것 같으니까.”


온쿄는 내 쪽으로 상자를 밀어 놓고 싱긋 웃었다.


“1주일 동안 가지고 있어야 한대. 하지만 결혼반지라도 사주면 그렇게 오래 안 걸릴지도 몰라. 


그 후에는 보통의 오프모임처럼 재미없고 시시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보냈다.


아무도 상자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그걸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인데.


모임이 끝났을 때, 상자를 껴안고 가게를 나가려는 나에게 아까 전의 세가닥으로 머리를 땋은 여자가 다가왔다.


“저기, 관두는 게 좋아. 그거 정말로 위험해.”


뭐야 이 여자. 영감소녀라도 된 척 하는 건가.


그녀는 주춤하는 내 귓가에 억지로 얼굴을 들이대고 속삭였다.


“나 말이지, 누구한테 손가락질을 당하면 알 수 있어. 설령 보이지 않는 뒤에서 당해도.


가끔 그런 감각이 있지 않아? 내 경우엔 싫어하는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 그만큼 싫은 느낌이 들어.


그래서 아까 상자가 나왔을 때 엄청나게 오싹오싹했어.


이런 느낌은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어.”



그러고 보니 세로로 긴 상자가 놓여졌을 때, 한쪽 가장자리가 그녀 쪽을 향하고 있었다.


상자 속에서 검은 손이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그녀의 묘하게 차가운 숨결이 귀로 흘러들어 왔다.


“그게 말야, 손가락질을 하는 건 상자 안에서가 아냐. 등 뒤에서 누군가에게.”


거기까지 말하고 그녀는 숨이 막히는 듯 급히 몰아 쉬며 도망치듯 떠나갔다.


가게 안에 혼자 남겨진 나는 상자를 껴안은 채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덜컥


하는 메마른 소리가 들리며 상자 안 내용물의 위치가 움직였다.


나는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뭐야 이 분위기. 설마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거야?


문득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자, 가게 밖에서 유리창 너머로 검은 원피스 차림의 온쿄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파트 방으로 돌아와서 상자를 새삼 바라보고 있으니 기분 나쁜 감각에 휩싸였다.


검은 손의 소문은 최근에 막 시작됐는데, 이 상자는 오래됐다. 너무 오래됐다.


그을린 듯한 나무 상자이고, 뒤쪽에 제작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가 있었다.


이 안에 정말로 검은 손이 들어 있을까.


들었던 소문에는 상자에 들어 있다는 얘기는 없었다.


온쿄라는 이름의 소녀에게 감쪽 같이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귀여운 여자애였어, 하고 무심코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 오늘은 오컬트가 좋아서 모인 게 아니라, 적어도 남자들은 온쿄를 보려고 참가한 게 아닌가하는 지레짐작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상자를 열라는 소리를 해댔었겠지. 검은 손을 보고 싶어서 모인 거였다면.


나는 상자의 뚜껑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나 감정들이 교차했다.


뭐, 지금 열 필요는 없잖아.


1주일이나 있으니까.


나는, 요컨대, 도망친 것이다.


그리고 상자를 책장 위에 올려 놓고, 읽다 만 만화책을 펼쳤다.



그로부터 2일 동안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3일째, 스승님과 심령 스팟에 가서, 또 녹초가 될 정도로 무서운 일을 당하고 돌아왔을 때,


방의 문을 열자 테이블 위에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건 반칙이다.


방 안은 안전지대. 이 룰을 지켜주지 않으면 심령스팟 순회 따위 불가능하다.


두근두근하면서, 어제 책장에서 테이블 위로 상자를 옮겼는지 기억해내려고 했다.


무의식적으로 했다면 모를까, 그런 기억은 없었다.


애써 무덤덤한 척 하며 상자를 책장 위로 돌려놓았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4일째 밤.


조금 열이 나서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누워 있으려니 신기한 감각에 휩싸였다.


엄청나게 큰 이미지와 엄청나게 작은 이미지가 교대로 찾아오는 듯한, 엄청나게 멀고 엄청나게 가까운 듯한, 그러면서도 주체와 객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듯한,


어렸을 적에 열이 날 때마다 느꼈던 그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런 환각 상태에서, 얼굴의 일부가 싸늘해지는 느낌이 들며 현실로 되돌아왔다.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오른쪽 뺨을 만져 보았다.


그곳만 아이스크림을 갖다댄 것처럼 온도가 낮은 것 같았다.


몸이 냉한 체질이지만, 뺨이 차가워지는 경험은 거의 없었다.


가려운 느낌이 들어서 계속 그곳을 만지고 있자, 그 온도가 낮은 부분이 어떤 특징적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삐뚤어진 5각형에 봉모양의 것이 5개.


나는 이불을 걷어차면서 벌떡 일어섰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고, 상자의 위치를 확인했다.



상자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어째서 주위를 둘러봐야 했던 건지, 그때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책장 위에 있었다. 놓아 뒀을 때 그대로의 상태로.


하지만, 내 뺨을 만진 것은 손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차가운 손바닥이었다.


무심코 상자의 뚜껑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옛날부터 나는 “열어선 안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열어 버리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건드리지 않으면 재앙도 없다(触らぬ神に祟りなし)라는 건 지극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껍질을 깨고 싶어서 스승님 뒤를 따라다니고 있지 않은가.


그래. 게다가 상자를 열면 안된다거나, 그런 말은 소문에 없었다.


온쿄가 말한 것 뿐이잖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어떤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나는 그걸 떠올린 순간, 주저없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부스럭거리는 종이가 있고, 거기에 싸여있는 듯이 검은 손이 한 개 들어 있었다.


마네킹의 손이었다.


하하하하, 하고 무심코 웃음이 치밀어 올랐다. 이런 걸 신주단지 모시듯 했다니.


손에 들고 치켜들어 보았다.


별다른 이상한 게 없는 검은 마네킹의 손이었다. 왼손이고, 그것도 손톱이 길게 만들어진 걸 보면 여성용이었다.


생각한 그대로였다.


그 때 온쿄는 확실히 말했다. “결혼반지라도 사주면…”


곧, 왼손이고 여성의 것이라는 거다.


“열지마.”라고 해놓고, 온쿄 자신은 상자를 열고 안을 보았다.


그렇게 확신했기 때문에 나도 열 수 있었다. 


뭐야 이 사기는.



나는 마네킹의 손을 내던지고 컴퓨터를 켰다.


지금쯤 그 스레에서는 보기좋게 속은 나를 비웃고 있을까.


울컥하면서 스레제목을 클릭하자, 예상외로 검은 손의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미 그들의 흥미는 다음 소문으로 옮겨가 있었다.


온쿄는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까하며 찾아봐도 글이 없었다.


과거 로그를 찾아봐도 그 후로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은 것 같았다.


도망친 건가, 하고도 생각했지만 그녀에게 도망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나에게 추궁을 당해봤자 “바보 멍청이~”라고 쓰면 그만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온쿄는 멤버들 중에서도 출현빈도가 높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많아도 두 번 정도로 글을 쓰는 페이스였다.


그 후로 4일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나타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갑자기 마우스를 잡은 손이 굳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 글을 쓴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멀어져 갔던 공포가 다시 돌아오는 듯한, 그런 오한이 들었다.


기분 탓인지 귀울림이 생기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과거 로그를 뒤졌다.


“검은 손을 손에 넣었어.” 일요일


내가 주목한 온쿄의 글이었다.


그리고 온쿄의 다음 글은…


“좋아~” 금요일


5일의 간격이 있다.


딱 그 정도의 페이스다. 그래서 이상했다.


그 다음 날인 토요일에 온쿄는 나에게 검은 손을 주었다.


그래서, 이상했다.


온쿄가 검은 손을 손에 넣은 날로부터 그 토요일이 6일째였다.



검은 손을 만나게 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러기 위해선 검은 손을 1주일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설령 어떤 일이 있더라도.


 


믿지 않는다면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을 터. 겨우 하루 밖에 안남았으니까.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역시 그건 그냥 소문이었어.”하고 말할 수 있으니까.


믿고 있다면 가지고 있어야 할 터. 겨우 하루 밖에 안남았으니까.


그래서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어째서 겨우 하루 밖에 안남았는데 가지고 있지 못한 걸까.


머릿속에 상자를 든 나를 패밀리 레스토랑의 유리창 너머로 계속 바라보던 온쿄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엔 그런 장르의 존재조차 몰랐던 고스로리풍의 복장으로, 확실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 인형 같은 얼굴이, 불안하게.


그냥 마네킹의 팔인데.


나는 무심코 만지고 있던 오른쪽 뺨에 움찔했다.


잊을 뻔 했지만, 방금 전의 차가운 손의 감각은 뭐였을까.


뒤를 돌아보자 상자는 테이블 위에 있었다. 검은 손은 상자 안에, 그리고 뚜껑 밑에.


순간 움찔했다.


나는 오싹오싹하면서 기억해내려고 했다.


“내던졌다.”는 건 물론 수식어고, 적당히 놓아뒀다는 게 올바르겠지만,


나는 과연 검은 손을 상자에 되돌려 놓았을까.


상자는 제대로 뚜껑이 덮여서, 당연한 것처럼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생각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뚜껑을 덮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다시 저 뚜껑을 열 수 없다는 것이다.


서서히 차가움이 옅어지는 뺨을 만지면서 꿀꺽 침을 삼켰다. 5각형과 5개의 봉.


1개만 굵고 5각형의 변 하나에 완전히 접하고 있다.


엄지 손가락의 위치를 알면 어느 쪽 손인지는 알 수 있다.


그 뺨의 차가운 부분은 오른손의 모양이었다.



다음 날, 5일째.


나는 스승님의 집으로 향했다.


온쿄는 5일째까지는 가지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6일째까지였지만, 적어도 5일째까지는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이제부터 일어날 일이 무서웠다.


아마도 상자의 위치가 바뀌거나, 뺨을 만져지거나 하는 건


말 그대로 겉만 만지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런 건 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게 최고다.


스승님의 하숙집 문을 노크하자, “열려 있어.”라는 맥빠진 소리가 들려와서,


“알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수염을 뽑고 있던 스승님이 이쪽을 돌아 보았다.


“돌려줘.”


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안되서 되묻자,


스승님은 “나 지금 뭐라고 말했던가?”하고 반대로 물어왔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검은 손이 들어 있는 상자를 스승님 앞에 놓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스승님은 “아하~”하며 부자연스럽게 중얼거렸다.


“이건가~”


과연 스승님. 감이 예리하셔.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내 여친이 “도망쳐.”라고 했는데, 이거였구만.”


그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된 스승의 여친은 이상하게 감이 날카로운,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뭐야 이건.”


라는 질문을 받고, 처음부터 설명을 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보통은 숨기기 때문에 다음 사람에게 넘겨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만은 숨기지 않는 쪽이 받아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일을 다 얘기하자, 스승님은 말했다.


“나 도망가도 돼?”


그리고 몸을 반쯤 일으켰다.


나는 당황해서 “잠깐, 잠깐 기다려 주세요.”하고 말렸다.


이 사람에게마저 버림받으면 난 어떻게 되는 건가.


“그래도 말야. 이거 너무 위험해.”


“제령이든 뭐든 해서 어떻게든 해 주세요.”


“난 스님이 아니라서 말야…”


그런 문답 끝에, 스승님은 겨우 “알았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거 아까운데.”하면서 장롱 안에 머리를 들이밀고 뭔가 뒤지기 시작했다.


“제령 같은 거창한 건 못하니까 말야,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보장 못하고, 거친 치료법이라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몰라.”


그렇게 짐짓 거드름 피우듯 말하면서 손에는 다 썩어가는 밧줄이 쥐어져 있었다.


“그거, 신사 같은 데서 결계를 치는데 쓰는 금줄인가요?”라고 물어보자 스승님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그 반대야.”


그렇게 말하며 스승님은 검은 손이 들어있는 상자를 그 밧줄로 둘둘 감기 시작했다.


“후지산 기슭에 말야. 수해(樹海)라고 하는, 자살 장소라고 할까, 공간이 있잖아.


거기서 어떻게 죽느냐면, 뭐 대개 목을 매서 죽어.


몇 년쯤, 까딱하면 몇 십년이나 지난 후에 시체가 목을 맨 밧줄에서 떨어져서 방치되면


그대로 풍화되어 산산조각이 나서 어딘가로 가버리게 되지.


하지만 밧줄만은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말야.


이제부터 목을 매고 죽으려는 인간이, 튼튼한 나무의 튼튼한 가지를 고르기 때문이겠지.”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무릎이 떨리기 시작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이 사람.


“한 개로는 부족하구만.”


다시금 장롱에서 똑 같은 밧줄을 꺼내왔다.


키~잉하는 귀울림이 들려왔다.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는 묻지마.”


이쪽을 보고 씨익하고 웃으며, 스승님은 상자를 멋질 정도로 둘둘 감아 버렸다.


그 와중에 스승님 방의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절대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스승님에게 묻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우~웅 우~웅하는 벌레가 떼를 짓는 것 같은 소리고 천장 부근에서 들려 왔다.


스승님은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작업을 계속했다.


이윽고 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더해지고, 전화까지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믿기 어려운 사태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스승님이 지금 하려는 것에 촉발되어 시끄러운 것들이 몰려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귀를 막아도 소용 없었다.


끼익끼익하고 문이 열리고 닫히는 듯한 소리가 더해졌지만, 쭈뼛쭈뼛 그쪽을 보아도 문은 열려 있지 않았다.


“시끄럽구만.”


스승님이 나직이 말했다.


“어이, 뭐라도 좋으니 말을 좀 해. 이런 건 조용히 있기 때문에 시끄러운 거야. 정적이 귀에 아프다는 말이 있잖아. 그거랑 같아.”


그 얘기를 듣고 나는 “그렇네요.”하고 대답한 후, 왠지는 모르지만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게 그거였지만, 일일은 일 일이는 이…


하고 외우고 있으니, 신기하게도 방금 전까지 그렇게 존재감이 있었던 소리들이 단숨에 세계와 격리되어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째선지 전화는 시끄럽게 계속 울리고 있었다.


“이건 진짜가 아닌가요?”


라고 말하며 내가 서둘러 수화기를 들려고 하자, 스승님이 “받지마.”라고 강한 말투로 제지했다.


그 순간, 전화는 울리던 것을 멈췄다.


나는 수화기를 들려고 했던 자세 그대로 굳어, 식은땀이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자, 다 됐어. 어디에 버릴까.”


상자는 밧줄로 완전히 꽁꽁 묶여, 군데군데 신기한 모양의 매듭이 맺어져 있었다.


생각한 끝에 스승님의 경차로 가까이에 있는 연못에 가기로 했다.


내가 조수석에서 상자를 껴안고 덜컹덜컹 흔들리면서 “나무아미타불”이나


“나무묘법연화경” 같은, 알고 있는 불경을 기억나는 대로 대충 외우고 있으려니


눈 깜짝할 새에 연못에 도착했다.


거기서 불쾌한 색을 띈 탁한 물 속에, 둘이서 하나 둘 셋하고 힘을 합쳐 던져 넣었다.


풍덩하고, 가장 깊어 보이는 장소에.


돌을 같이 묶어놨기 때문에 상자는 부글부글하고 공기를 내뱉으며 가라앉았다.


그 돌도 귀를 막고 싶어질 일화를 지니고 있었던 것 같지만, 나는 일부러 묻지 않았다.


모든 것을 끝내고 탁탁 손을 털며 스승님이 말했다.


“문제는 또 하나의 손이지만, 뭐 본체는 해치운 것 같으니 괜찮겠지.”


자동차의 시동을 걸면서 “그건 그렇다 치고.”하며 얘기를 이어갔다.


“도시전설이, 실체를 지니고 있으면 반칙이지. 정체를 알 수 없으니까 무서운 거잖아.”


나에겐 그 상자의 의미도, 검은 손의 의미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뭐, 이걸로 도시전설로서는 완성이지. 실존이 지양되어 메타레벨에 도달했다는 소리야.


검은 손을 만나게 되면, 인가. 확실히 조금 쿨하군. 그런데.”



스승님이 이쪽을 보았다.


“네 소원은 뭐였냐.”


아, 하고 생각했다.


[검은 손을 만나게 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말려들었다는 느낌이 강해서, 그런 전제를 잊고 있었다.


“이젠 상관없어요.”


그렇게 말하자 스승님은 “흐음.”하고 코로 대답하곤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로부터 딱 1주일째의 밤.


그러고 보니 그거, 어떻게 됐어?


라는 레스가 예의 스레에 있었다.


“아직 살아 있어~?”


라는 질문에 “그럭저럭”하고 글을 썼다.


“소원은 이루어졌어?”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


온쿄는 나타나지 않는다.


“누구 상자 필요한 사람?”


“그래 봤자 헛소문이잖아.”


…… 


이제 이 스레에 올 일도 없겠지, 라고 생각했다. 윈도우 창을 닫으려 했을 때,


“정말로,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어?”


끈질기게 묻는 녀석이 있었다. 나에게 경고해줬던 여자겠지.


“알고 싶다면, 검은 손을 만나면 돼.”


그렇게 쓰고 창을 닫았다.


그 후로, 단 한번도 검은 손의 소문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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