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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병원

레무이 2017. 1. 15. 16:48

대학교 2학년 9학점. 3학년 0학점. 


전부 ABC의 B. 


내 성적이다. 


그 즈음 새끼 고양이를 아파트에서 기르고 있었지만, 소위 말하는 방 사육이라서 


일체 밖에 내놓지 않고 이런 소리를 해주곤 했다. 


“넌 엄청 커질 거야. 이 방의 반쯤 차지할 정도로. 날 잡아먹지는 말아주렴.” 


하지만 그런 교육의 보람도 없이, 새끼 고양이는 딱 고양이 사이즈에서 성장을 멈췄다. 


그 즈음. 지극당연히 고양이는 고양이가 되고, 


개는 개가 되고, 


봄은 여름이 되었다. 


하지만 내 대학생활은 방황을 거듭하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나아갈 곳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 해 여름이었다. 대학 2학년 때의 일. 


내 방황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선배의 소개로, 나는 병원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 선배란, 나를 오컬트로 끌어들인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분이다. 


아니, 그 분은 그저 단서일 뿐, 결국 난 자기 본능에 따라 내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승님, 뭔가 괜찮은 알바 없나요.” 


그 한 마디가, 그 해 여름도 오컬트 일색에 물들게 한 원인이 된 건 확실하다. 



병원의 알바라고 해도, 정확히 말하자면 “방문간호 스테이션”이라는 의료기관의 사무직이었다.


방문간호 스테이션이란, 재택요양을 하는 사람의 간호나 재활을 위해 


간호사나 이학요법사( PT), 작업요법사(OT)가 방문해서 그 행위를 하는 작은 기관이다. 


간호사 3명에 PT/OT가 각 한 명씩, 그리고 사무직 1명의 총 6명. 


그 6명이 있는 직장이 병원 내에 있었다. 


물론 경영모체는 동일하기 때문에 간호사나 PT 등도 그 병원 출신이고, 


독립된 의료기관이라고는 해도, 단순한 병원의 한 부서 같은 느낌이었다. 


그 사무담당 직원이 병으로 쉬게 되어,


복귀할 때까지 영수증 청구의 처리를 하기엔 도저히 손이 부족했기 때문에 


내가 일하게 된 것이었다.


간호사 중 한 명이 소장을 겸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스승님과는 지인이었던 듯 했다.


60이 가까운 나이였지만 활발한 사람으로, 원래 이 병원의 간호부장(지금은 간호사장이라고 하는 듯)이었다고 했다.


그 소장이 말하길, 


“밤에는 일찍 돌아가세요.”


당연한 말이다. 보통 근무표로 보면 오후 5시 반까지 하는 알바니까.


무엇보다, 스테이션이 있는 4층은 원래 입원환자들을 위한 병실이 늘어서 있었지만


경영축소기에 폐실이 되어, 그 후에는 달리 사용되지도 않고 그대로 방치되어 왔다고 한다.


지금은 너스 스테이션이 있었다는 방 하나를 개량해서 사무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층에는 스테이션 사무소 외엔 일체 사용되는 방이 없고,


한발짝만 밖으로 나가면 대낮에도 어두운 복도가 인기척도 없이 죽 안으로 이어지는,


뭐라 형언하기 힘든 기분나쁜 분위기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간호사들이 수근대는 바에 따르면


이 병동은 말기 환자의 침대가 많아서, 옛날부터 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간호사들도 밤에는 남아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근무경험이 있었던 사람이 무서워 하는 그 모습에는, 어떤 종류의 설득력이 있었다.



절대로 빨리 돌아가리라.


그렇게 결심했다.


하지만, 그건 현실을 모르는 결심이었다.


원흉은 매월 초에 있는 영수증 청구였다. 일단 업무인계 문서는 있긴 했지만


의료사무직의 자격도 없는 아마추어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특히 방문간호를 받는 사람은


복잡한 제도의 대상인 경우가 많아서, 도대체 몇 퍼센트를 어디에 청구하고


나머지를 어디에 청구하면 되는지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머리를 감싸쥐면서 어떻게든 애써 보았지만, 3일째쯤부터는 야근을 하지 않으면


무리라는 걸 깨닫고, 마감일인 10일까지는 완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매일 귀가시간은 점점 늦어져 갔다.


“고생이 많네.”


라며 일을 끝나며 돌아가는 간호사들에게 애교있게 웃으며 응수한 후,


아무도 없는 사무소에는 나 혼자 남겨졌다. 


이미 해는 저물고, 창문에서는 시원한 밤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조용한 방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아아, 싫다. 싫어.


옛날에는 이 방에서 한밤중에 호출벨이 곧잘 울렸다고 한다.


서둘러 달려가보면 일전에 돌아가신 환자의 방이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낮에 들었다.


한 때는 완전히 사람이 없었을 4층에서, 한밤중에 호출벨 소리가 울렸던 일도 있었다니.


호출벨 기계는 이미 옛날에 철거되었는데도.


확실히 병실은 괴담의 보고다. 하지만 현장에서 듣는 건 싫다.


나는 급히 대충 날림으로 어떻게든 그 날의 목표량을 끝내고 사무소를 나가려고 했다.


쭈뼛쭈뼛 문을 열자, 정적에 휩싸인 복도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사무소 바로 앞의 전등이 켜져 있을 뿐, 그것도 꽤나 빛이 작았다.


수전노들. 이래서 병원은 싫어.


복도를 조금 걸어가서 계단을 내려간다.


1층까지 내려가서 겨우 살았다는 느낌이 들지만, 뒷문에서 나오려고 할 때 최후의 관문이 있다.


도중에 영안실 앞을 지나치는 것이다.


뭔가 좀 지하실이나 복도 맨 끝 같은 곳에 있는 걸 생각했던 나에게는 의외였지만


있는 건 어쩔 수 없지.


“영안실”이라고만 쓰여진 플레이트가 붙은 문 앞을 지나쳐 가면서


왠지 꼭 접유리 너머에 시선을 던지고 만다.


안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어느 쪽이냐고 태클을 날리고 싶어진다.


안은 어두컴컴해서 물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뭔가 꿈틀거리고 있어도 분명 밖에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자신의 발상 자체에 겁을 먹고,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영안실 앞을 지나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수증 청구도 마감이 다가왔을 무렵,


저녁 방문을 끝낸 간호사 한 명이 사무소로 돌아왔다. 


문을 연 순간, 난 무심결에 눈을 감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간호사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침을 삼키는 내 앞을 지나쳐서 소장님 자리까지 가선


침통한 목소리로 “XX씨가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소장님은 “그래.”하고 말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간호사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임종의 모습을 듣고, 손을 합장하는 기척이 들린 후에 “수고하셨어요.”라고 말했다.


PT나 OT라는 재활 중심의 방문업무와 달리, 간호사는 말기환자를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서 죽는 것보다 자기 집에서 죽는 것을 가족이, 혹은 자기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이다.


많으면 일년에 10건 이상의 죽음을 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새삼스럽지만 병원은 사람의 죽음을 다루는 장소라는 걸 깨닫게 된다.


여러 번의 방문이 많았기 때문에 어렴풋이 예감한 적은 있었지만,


방금 전까지 그 사람의 영수증을 작성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충격이 너무 컸다.



그리고 지금 눈을 뜰 수 없었던 이유는, 거기에 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즈음은 이상하게 영감이 높아졌던 시기여서, 결코 바란 것도 아닌데 죽은 사람이 보이는 일이 자주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그렇게 많지도 않았는데,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영감이 높은 사람과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간호사가 돌아갈 준비를 하는 걸 소리만으로 듣고 있었다. 그리고 파리가 들끓는 듯한 귀울림이 사라지는 걸 잠자코 기다렸다.


두 개의 기척이 문을 지나서 복도로 사라져 갔다.


나는 겨우 깊은 한숨을 내쉬고 땀을 닦았다. 


아마 방금 전의 것은, 빙의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남아 있을”뿐.


내일이 되면 데려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남지 않았던” 것에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그 날도 밤늦게까지 야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다음 날.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렴.


삼가해야 할 것 같아서 죽은 사람에 대해 이것저것 묻지 못하고 있었는데,


소장님 쪽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 보이는 거지?”


가슴이 덜컥했다. 사무소에는 나와 소장님 밖에 없었다.


“난 말이야,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에 있다는 건 느껴.”


소장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스승님과 아는 사이였다.


“그럼, 어제 합장을 했던 건.”


“응, 하지만 그건 항상 하는 내 습관이란다.”


그렇게 말하고 살며시 합장하는 시늉을 했다.



나는 좀 무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꼭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저기, 밤중에 사람이 없는 침대에서 호출벨이 울렸다는 거, 진짜로 있었던 일인가요?” 


소장님은 한숨을 쉬고 대답해 주었다.


“있었어. 동료한테도 들었고. 나 자신도 몇 번이나 들었어. 하지만 전부가 이상했던 건 아니라고 봐. 기계의 접촉불량으로 울렸던 적도 확실히 있었으니까. 하지만 전부가 고장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도 확실해.” 


“그, 그럼 이건요?” 


하고 나는 소장님의 입이 닫혀 버리기 전에 지금까지 들었던 소문들을 차례차례 물어봤다.


소장님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하나하나 “그건 아냐.” “그건 있을 법 하네.”라고 성의있게 대답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흥미위주일 뿐인 실례되는 질문을 잘도 늘어놓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마도 소장님은 스승님으로부터 나를 소개받았을 때, 뭔가 스승님에게 귀띔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어떤 질문을 했을 때 소장님의 목소리가 변했다.


“그건 누구한테 들었어?”


나는 놀라서 무심코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해 버렸다.


“사과할 건 없지만, 누가 그런 소리를 한 거야?”


소장님이 강한 말투로 그렇게 얘기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떤 질문이었는지 확실히 생각나지 않지만, 이 병동에 관한 괴기스러운 소문이었던 건 확실하다.


신기하게도, 그 방문간호 스테이션의 알바를 그만 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소문에 대한 기억이 확실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방금 스스로 물어본 질문이었으니 당연하지만, 그래도 누구한테 그 소문을 들었는지는 그 때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간호사 중에 누구였던가. 아니면 PT나 OT인가. 병원의 직원인가…



소장님은 온화하지만 강한 말투로 “잊어버려.”라고 말하곤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홀로 남겨진 사무소에서 점점 마감이 절박해져 오는 영수증 청구의 작성과 씨름해야 했다.


꽤나 허둥지둥한 정신 상태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기분으로 줄어들지 않는 산더미 같은 서류를 마주하고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밤의 매미소리도 멎은 정적 속에서 혼자, 뭔가 엄청나게 무서운 환상이 다가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뿌리쳤다. 


설살가상으로, 다음 날은 마감일인 10일이었다. 아무리 늦어져도 영수증 작업을 끝내야 했다.


톡 톡 톡


하는 시계 소리만 방에 울렸고, 나는 시침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무서웠다.


분명 날짜가 바뀌었겠지, 하고 생각하며 점점 뇌의 활동이 느려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새 졸고 있었던가, 나는 쿵하는 충격에 눈을 떴다.


의식이 선명해지며, 그리고 방에는 팽팽하게 긴장된 듯한 공기가 있었다.


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창문 쪽을 보았다.


그 너머에는 어둠과, 멀리 보이는 민가의 불빛이 드문드문 있을 뿐이었다.


그 다음에 문을 보았다. 뭔가가 떠나가는 기척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오늘 소장님에게 질문한 것 중엔 없었던, 기괴한 소문이 새롭게 각인되었다.


멀리서 파리가 들끓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누구한테 들은거야?”


라는 건 그런 것이었던가.


“아무도 말할 리가 없는 이야기.”


혹은, “소장님 이외에 누구도 알고 있을 리가 없는 이야기.”


그렇다면, 소장님이 임종을 지켜본 사람의 이야기…



그런 얘기를 내가 했다면, 오늘 같은 태도를 취하는 걸까.


그런 소문을 나에게 얘기한 건 누구일까. 지금 어둠 속에 사라진 듯한 기척의 주인일까.


생생한, 그리고 방금 전까지는 몰랐던 기괴한 소문이 머릿 속에 가득 차 있다.


나는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절대로 무리다.


지금 저 문을 열고, 어두운 복도를 걸어, 사람이 없는 병실을 지나, 좁은 계단을 내려가, 영안실 앞을 가는 건. 


나는 벌벌 떨면서 이 알바를 하게 된 걸 후회하고 있었다.


복도의 어둠 속에, 무언가 속삭이는 듯한 기척의 잔재가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정적을 찢는 듯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 쪽의 소리라는, 그런 의미불명의 확신에 매달리듯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다행이다~. 아직 있었네. 저기, 거기에 ○○씨의 카르테 있지?” 


기억에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스테이션의 간호사 중 한 명이었다.


“정말 미안한데, 지금 ○○씨 집에서 연락이 와서, 위독하다는 것 같아.


정말 미안한데 지금 바로 카르테 가지고 ○○씨 집에 와주지 않을래?


나도 금방 갈 거지만, 사무소에 들렀다 가면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말야.”


나는 “예.”라고 말하고, 금방 카르테를 들고 달려나갔다.


문을 열고, 복도를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와서, 영안실 앞을 지나쳐, 미지근한 밤바람이 부는 하늘 아래로 뛰쳐나왔다.



그래봤자 결국은 임시 사무직이다.


하지만 그 날, 사람의 생명에 관련된 일을 했다는 확실한 감촉이 있었다.


우울하게 아래만 바라보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사람의 죽음을, 흥미위주로만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런 식의 밤의 긴급방문은 곧잘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선, 특별한 의미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카르테를 전해준 후에 다시 사무소로 돌아가서 영수증 청구를 전부 완성하는데 모든 힘을 쏟아 부을 수 있었던 것일게다.


 


 


다음 날, 거의 자지 못하고 눈을 비비며 출근하니 소장님이


“수고했어. 어제는 고생이 많았네.”라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아뇨, 이 정도야.”라고 대답했지만, 소장님은 고개를 흔들며


“역시 너에겐 안맞는 직장인지도 모르겠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후 2주일 정도 알바를 하고 그만두었다.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의 죽음을 그렇게나 받아들여야 하는 직장은 역시 나에겐 맞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날 밤, 카르테를 전한 사람은 그 날 아침에 사망했다.


그리고 임종을 지켜본 간호사는 금방 다음 방문지로 향했다.


또 그 어깨에 죽은 자의 일부를 남긴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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