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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무서울지 모르겠지만,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철이 들 무렵부터 "장작"을 도져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 나무를 쪼갠 토막 말입니다.
견딜 수 없었다는게 뭐냐면,
예를 들어 드라마('북쪽 나라에서' 같은)에서 장작이 나오면 엄청난 혐오감이 밀려오고 토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보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일은 거의 없지만,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에서 장작이 나오면 기분이 나빠져 바로 채널을 바꿉니다.
이 상태가 그럭저럭 20년 이상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장작을 견딜 수 없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그저 깨달았을 때는 이미 장작을 혐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건 찜찜하잖아요? 그래서 몇번이나 부모님과 형에게 물어봤죠.
"내가 장작을 혐오하는 이유 몰라? 내가 어렸을 때 뭔가 있었어?"라고.
에, 뭐, 예상대로 랄까, 부모님도 형도 "모른다" 라고.
그래도 끈질기게 물어보면 "시끄러!"라고 꾸중을 듣습니다.
그런데, 분위기로 알 수 있거든요. 부모님도 형도 뭔가를 절대로 알고 있다는걸.
저도 이제 31살이니까.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고 감당할 자신도 있어서,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물어봤는데도 여전히 '모른다'만 반복하는 겁니다.
아, 나는 이대로 영문도 모르고 장작을 혐오하고 살아가야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 했죠.
그 장작을 혐오하는 이유, 알아 버렸습니다. 3일 전의 일이었어요.
이야기는 지금부터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때의 일.
우연히 그 친구의 아는 사람이 왔는데, 함께 마시지는 않았지만 명함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정신과 선생님이었고 인품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에,
"언제 한번 상담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라고 부탁하고 2일 후에 연락을 했어요.
상담이라는 것은 물론 장작에 대한 것.
가능한 상세하게 설명하고 "이미 2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일인데, 정신적인 원인일까요?" 라고.
선생님의 대답은, "아마 그럴거예요"라고.
"어떻게 하면 기억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유도 최면이라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각오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것.
(최면에 대해 조금 보충하자면.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은 최면 "술"이라고 부르지 않고 유도 최면이나 최면 요법이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과학적으로 설명 할 수 있는 것이므로 "술"이 아니라고)
그 선생님도 (N씨라고 하겠습니다) 어느정도는 유도 최면에 대해 배웠다고 하는데,
"만약 반드시 기억하고 싶다면, 성공할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네요."라고.
그런 이유로 3일 전 N씨의 일이 끝난 후 집을 방문해서, 조용한 방 (거실)에서 유도 최면을 해주었습니다.
N씨 왈,
"얕은 최면 상태에서는 자신이 한 말을 잘 기억하지만, ○○씨의 경우는 퇴행 최면을 유도해야하고,
퇴행 최면 → 깊은 최면 상태가 되므로 기억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행 내역을 테이프로 녹음할게요."
그리고 저는 유도 최면을 받고 여러가지 이야기 했습니다. (시간으로 3시간! N씨 감사합니다)
단, N씨가 말하는대로 퇴행 최면이 시작되고 나서는 거의 무엇을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면이 풀린 뒤, "이유를 알아냈나요?"라고 N씨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N씨, 굉장히 슬픈 얼굴을 하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라고.
그 표정이 불안했지만 "테이프 받아도 될까요?"라고 물어봤는데···.
"좋아요. 그런데 ○○씨,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것은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부류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일은 환자의 마음의 병을 제거하는 것이고, 마음의 어둠을 들추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알고 싶나요?"라는 물음에 잠시 생각 후 "예"라고 대답, 테이프를 받았습니다.
다음은 퇴행 최면이 시작되고 나서의 내용입니다.
테이프 들으면서 썼으니까 거의 원문과 다름없게 씁니다.
17 살
N "○○군, 당신은 장작이 싫습니까?"
나 "싫어요···"
12 살
N "○○군, 당신은 장작을 싫어합니까?"
나 "싫어요···"
9 살
N "○○군, 당신은 장작을 싫어합니까?"
나 "싫어요···"
8 살
N "○○군, 당신은 장작을 싫어합니까?"
나 "싫어요···"
7 살
N "○○군, 당신은 장작을 싫어합니까?"
나 "싫어하지 않아요."
8 살로 돌아옵니다
N "○○군, 너는 장작을 싫어하잖아. 왜 싫어진거야?"
나 "······"
N "이유를 형에게 가르쳐주지 않을래?"
나 "싫어"
N "왜?"
나 "무서워서 (울먹)"
N "괜찮아. 형이 옆에 있잖아. 무섭지 않으니까 이야기 해볼래?"
20초 미만의 침묵
나 "그게 말야···"
6살의 제가 말한 내용으로 모두 기억났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씁니다.
우리 집은 토치기의 시골이었습니다.
집은 일본 옛날 이야기에 나올 법한 일본식 집이었는데, 집도 땅도 넓었습니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나는 어머니의 심부름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목욕은 가스였지만, 우리 할아버지가 "밥은 장작으로 지어"라고 주장하셔서, 밥은 항상 부뚜막에서 지었습니다.
내가 유치원에서 돌아와 저녁이 되면 엄마가 "○짱 장작 부탁해."라고 하시며 바구니를 주셨습니다.
나는 바구니를 받아 안채에서 50m정도 떨어진 장작 오두막으로 달려가, 그날 마음에 드는 것들을 10개 정도 골라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다시 안채까지 달려와서, 어머니에게 "여기요!"하고 건네드렸습니다.
엄마가 장작을 아궁이에 넣고 신문에 불을 붙여, 장작이 타닥타닥 타오르면, 밥이 다 지어질 때까지 나를 업고 노래를 부르면서 천천히 집을 한바퀴 돌아주셨습니다.
나는 그 어부바가 즐거웠고, 어머니의 등이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저녁이되면 가족이 모두 모였습니다.
나는 거기에 "오늘도말야, 내가 장작을 골라서 가져왔다구!"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빠도 "○짱 대단하구나. 그래서 이렇게 밥맛이 좋구나."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게 기뻤습니다.
8살이 되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올라가도 장작을 나르는 것은 내 역할이었고, 저녁이되면 엄마가 바구니를 주셔서 장작 오두막까지 달렸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바구니를 받아 장작 오두막까지 달렸습니다.
장작 오두막은 4첩 정도의 네모난 작은 오두막이었는데, 문을 열면 좌, 우, 정면에 나무가 가득 쌓여있었습니다.
그래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는 1첩 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그날도 당연한 듯이 문을 열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정면의 좁은 오두막에는, 이웃집 형이 목을 매달아 죽어있었습니다.
좁았기 때문에 거리 따위는 거의 없었고, 정말로 눈앞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파란 파자마 차림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입에서 침을 흘리고 아래에는 오줌으로 보이는 웅덩이.
마침 철이 들던 시기에 사람의 죽음을 이런 형태로 보았던 나는, 반쯤 미쳐버린 거죠.
나의 비명을 들은 온 가족이 달려와서 이웃집 형의 시체를 발견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 후, 경찰과 이웃 사람들이 몰려와서, 시골에서 목을 매 자살한 사건으로 북새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조금 이상해져 버렸습니다.
거의 입을 열지 않고, 한밤 중에 갑자기 큰 소리로 우는 등, 손을 쓸 수 없는 아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손자를 불쌍하게 생각한 할아버지가 나를 외할머니의 집에 1년간 맡겼습니다. 학교는 휴학.
(이 쯤의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어머니로부터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사이에 장작 오두막과 부뚜막을 헐어버렸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집에 돌아온 나는, 그 사건을 싹 잊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잊은 것이 아니라, 극도의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의해 마음이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기억을 봉인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전부 봉인 하지는 없었고, 장작을 보면 이유없이 굉장한 혐오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이 사건의 전말입니다.
여기에서 여담입니다.
인간의 뇌는 굉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플래시백이라는 것인가요, 떠올린 순간, 선명한 영상과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이웃집 형이 입고 있던 옷, 오두막의 모습, 당시의 가족의 얼굴, 풍경,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을 그대로 봉인했기 때문에, 떠올릴 때도 선명한 걸까요.
뭐, 지금은 침착하게 쓸 수 있습니다만, 기억했을 때는 가볍게 패닉이 발생했습니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기억해내서 다행이라는 마음,
기억하지 못했어야 했다는 마음,
형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
형을 원망하는 마음,
향수와 그리움,
후회,
공포,
여러가지 감정이 넘쳐 와서 1시간 이상 큰 소리로 울어 버렸습니다.
8살 때의 저와 지금의 제 감정이 연결된 걸까.
그래서 어제의 일입니다만, 어머니께, 전부 말했습니다.
일단 서론으로, 충격이었지만 견딜 수 있었던 것,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업어달라고 했던 어린시절이 정말 행복했다, 등등.
어머니는 조용히 오열을 하셨습니다. "그건 말이야,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어."라고.
어머니 말씀은 형이 자살하고 나서, 제가 이상해져버렸고,
그것을 알고 이웃집 형의 부모님이 매일 무릎 꿇고 사과하러 왔다고 합니다.
제가 외할머니 댁에 가고 나서도 그것은 얼마동안 계속 되었다고 하고요.
"그러니까 기억이 났더라도 ○○씨를 원망해선 안된단다."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를 말했지만, 생략합니다.
어제 10년 만에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러드렸습니다.
이상입니다.
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서 미안합니다.
오컬트라기 보다는 심리학이나 정신쪽의 이야기지만,
25년간 기억이 날아가 버렸다는 것은, 저에게는 오컬트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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