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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태풍이 온다고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회사 기숙사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태풍이 직격한다고 해서 베란다의 빨래 장대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빨래 장대 끝에 더러운 하이힐이 한쪽 만 걸려 있었다.


기숙사는 남자 기숙사였고, 슬프게도 나에게는 여친 따위 없었기 때문에 왜 이런 것이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내 방은 최상층(5 층)의 귀퉁이 방이었으니까, 옆 방에 사는 동기(친구)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서, 옆쪽에 던져서 되돌려 놓았다.



그 후, 점심때 즈음에 옆방 친구가 당황한 모습으로 내 방에 와서


"○○(← 내 이름) 어떡하지! 베란다에 하이힐이! 투신한 사람의 유품일지도 몰라!"


라면서 안색을 바꾸어 떠들길래,


나는 '그럴 리가 없잖아. 나를 놀라게 하려고 연기하는구나.'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정말 안색이 새파랗게 되어 쓰러지는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기 때문에, 점차 나도 연기가 아니라는걸 느끼고 내가 하이힐을 녀석의 집에 던졌다고 말했다.



이유를 말했을 당시에, 처음 친구는 누구의 물건인지도 모를 물건을 던져 넘겼다고 분노했지만, 점차 진정하면서,


"그럼 이 하이힐은 어디에서···"


라고 말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친구가 너무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도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나도 기분이 나빠져서 1층의 관리인실에 분실물로 가지고 가기로 했다.



관리인실의 할아버지는 신문을 읽으며 잠시 우리들을 눈치채지 못했는데, 분실물을 주웠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천천히 다가왔다.


할아버지는 "아~ 분실물이야, 이건 어디에서 주운건데?"라며 귀찮은 듯이 하이힐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 방 베란다에서 주웠다는 것과 내 방 번호를 알려주자 갑자기 할아버지의 움직임이 민첩해지며,


"하나 뿐인가? 다른 하나는 없는거야?"등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나는 "엑, 내가 입주하기 전에 정말로 자살자라도 있었나봐···"라고 어안이 벙벙해졌고, 친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는데, 할아버지는 멍한 우리들을 무시하고,


"잠깐 옥상을 보고 올테니. 너희들은 거기 있어봐."


그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우리들은 할아버지가 돌아올 때 까지 말없이 몇 분 동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온 할아버지 왈,


"옥상 입구는 몇 중으로 잠궈놓았고, 아무도 출입한 흔적은 없었다. 자살자도 [지난 몇 년간]은 없어."


···할아버지 너무 엄청난 이야기 하시는데.


"자살자라고는 해도 한명 뿐이었고, 14년 전의 일이니까, 여기가 △△(← 회사 명)의 기숙사가 되기 전이야. 내가 그때부터 여기 관리인을 하고 있고 말이다. 그런데 그 때는···."


갑자기 입을 다문 할아버지.


나는 궁금해서, "무슨 일이 있었던겁니까!?" 라고 물었다.






"자살한 날이 태풍이 불던 날이었는데, 유서와 신발이 모두 날아가버렸어··· 결국 발견된 것은 유서와 신발 (하이힐) 한쪽 뿐이었지···."


뛰어내린 곳은 저수조 옆(← 내 방의 위) 근처라고 한다.


···이러면 너무 무섭다구.


"유족은 남은 한쪽 신발을 찾지 못해서 마음 아파 했었는데. 음. 그때의 신발과 비슷해···."





거기에서 어떻게 방까지 왔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샌가 내 방에서 친구와 둘이 멍하니 있었다.



그 친구는 곧 이사했지만, 나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3년 정도 거기에 계속 살았다.


다행히 공포 체험같은건 하지 않았다.



결국 그 하이힐은 유품이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던 모양이며, 일단은 절에다가 공양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관리인 할아버지가 놀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뛰어내린 날와 발견 한 날이, 둘 다 태풍이 부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아직도 조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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