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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괴담

[1246th] 구관의 창고방

레무이 2023. 1. 1. 23:53

처음 쓰는 글이라 부족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희 친가는 대대로 신주(神主)를 해오는 집안이라, 본가의 저택이 구관과 신관으로 분리되어있고 낡은데다가 넓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구관의 2층의 회합용 큰 방은 상당히 넓었는데, 낡은 책과 제사 도구들과 가구 등이 난잡하게 놓여 창고 같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두 살 어린 남동생과 넓은 집에서 그 창고를 탐험하거나 보물찾기라고 부르며 잡동사니를 발굴하면서 놀았습니다.


어느 날 평소처럼 동생과 보물찾기를 하고 있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어 창고 안쪽 방구석으로 시선을 돌리자 흰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이쪽을 응시하며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을 봤는데도 어째선지 공포감은 별로 느끼지 못했고, 그보다도 먼저 왜인지 모르게 슬픈 감정이 들어서 그 여자에게 말을 걸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뒤에서 무언가가 머리를 제대로 후려쳤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동생이 제 몸을 잡아당겨 방에서 끌어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동생에게 물어봤는데 잡동사니를 찾아대다가 갑자기 방구석을 응시하기 시작하더니 "도망가지마"라고 헛소리를 반복해서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동생도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형?"이라고 말을 거는 순간,

갑자기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져서는 잡지를 찢어 미친 듯이 입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고.

동생은 그런 저를 멈추기 위해서 머리를 선반 서랍으로 때렸다고 합니다.



그 뒤로, 한동안 구관 2층은 가까이가지 않았는데, 제가 중학생 때 2층 대청소를 하게 되어 저도 그것을 돕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창고의 잡동사니를 모두 처분했을 때 부모님과 할머니가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어떤 옷 상자를 열고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그게 무엇인지 물어보니 옛날에는 그 창고방에서 결혼식을 치렀다는 모양인데, 그 때 사용된 예복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보통은 신부가 가져가는데 특수한 이유로 결혼식을 치르지 못한 사람의 예복은 신사 측이 보관하곤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궁금해서 잠시 예복을 봤는데, 초등학교 때 봤던 여자가 입었던 기모노를 쏙 빼닮았은 것입니다. 사정을 여쭤보니 결혼식 전에 신랑을 잃은 분의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에 드는 것에는 업이 깃든다는 말도 있는데, 상당히 신기했던 체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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