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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각성

레무이 2017. 1. 16. 19:30

대학 1학년때 이야기다.

그 무렵 아파트에서 자취를 하던 나는 잘 때 늘 꼬마전구를 켜고 잤다.

본가에 있을 때는 그조차도 켜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아파트에 하나 밖에 없는 베란다쪽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이 달려있었는데 밤에는 언제나 커튼을 빈틈없이 여몄다.

그래서 꼬마전구까지 꺼버리면 밤중에 잠에서 깼을 때 주변이 온통 캄캄한데, 

그 속에서 전등끈을 찾기 위해서도 손을 더듬는데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게 싫었던 거겠지.


어느 날 밤, 늘 그렇듯 불을 끄고 꼬마전구만 켠 채로 침대에 드러누워 잠들었다.

심야 12시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얼마나 잠들었던 것일까.

의식의 공백기간이 갑자기 끝나고, 머리가 반쯤 각성했다. 눈을 뜨는 것으로 자신이 깨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주변은 밤바다의 바닥처럼 조용했다. 천정의 꼬마전구가 가늘게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몇시쯤 되었을까.

벽시계를 보았다. 안경을 쓰지 않아 바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시침이 심야 세 시 쯤을 가리키고 있는 듯 보였으나

베갯머리 어디쯤 두었을 터인 안경을 찾는 것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머리가 깨어있어도 몸은 아직 명령을 거부했다.

멍하니 왜 잠에서 깨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전화나 알람이 울린 흔적은 없었다. 화장실에 가고싶은 것도 아니다.

최근 수면패턴을 생각해보아도 실로 규칙적으로, 이렇게 어중간한 시간에 깨어날 필연성은 없었다.

언제나 비교적 금방 잠들고 오밤중에 몇 번이고 깨는 일도 없이 아침까지 푹 자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때때로 잠을 깨고 마는 이런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술렁이는 것을 느꼈다.

이유는 없었다.

어쩌면 무방비한 의식을 끊어버리는 것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

그저 밤이 무섭다, 고 하는 그 본능이 깨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침대 위에 누운 채 다시 한 번 눈을 붙이려 눈을 감았다.

깊게 숨을 들이쉬자 잠기운은 내 바로 곁에 있었다.


다음날 스승을 만났을 때 문득 생각한 것을 얘기해 봤다. 오컬트에 관해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이다.


“잠에서 깼을 때 눈을 뜨려고 생각했는지 어땠는지 말이지…”


스승은 그다지 재미도 없다는 듯이 반복했다.



“네. 어제 밤 중에 깼을 때 생각했는데요.

눈을 뜨기 전에 먼저 의식이 각성해있어서 그 각성한 의식이 ‘눈을 뜨자’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눈을 뜬 순간 의식이 각성하는지.

어느 쪽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무렴 어때,라는 얼굴을 했지만 일단 생각하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는 눈을 감은채 ‘아, 지금 꿈에서 깼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거 같네. 하지만 사람에 따른거 아냐?”

“뇌 어딘가의 반사신경으로 눈을 뜨고 그렇게 눈을 떴기 때문에 의식이 각성한다,던가”

“글쎄다. 하지만 그렇다면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거지?”


그런가. 그런 사람들은 꿈에서 깨어도 어둠 속이다. 즉 잠에서 깨는 계기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보통 시각에 의존하는 우리들이 그 시각을 상쇄당하면 어떻게 되는가.

안구가 외부공기에 닿지않도록 테이프나 그 무언가로 완전히 눈뜰 수 없게 한 뒤 잠들면 잠에서 깬 순간은 어떤식으로 지각하는 걸까?

생각해보자 흥미가 생겨 다음에 시험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눈을 뜨는 것이 각성의 계기라면 계속 깨지 못할지도 모르지.”


스승이 수상쩍게 말했다. 그러나 그건 그나름 재밌겠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었다.

‘하지만’하고 스승이 말을 자르고,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말했다.

“평소 숙면을 취하는 사람이 밤중에 갑자기 잠을 깨는 이유라면 알고 있지”


그 겨울 방학, 나는 본가로 돌아갔다.

세탁과 식사 준비 등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본가의 감사함을 만끽하는 나날이었다.


어느 날 밤, 내가 머무는 다다미 방에서 이불을 깔고 잠을 청했는데 밤중에 잠에서 깨어났다.

천장의 나무결이 어렴풋이 보였다. 꼬마전구가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점점 또렷해지는 의식은 여기가 아파트가 아니라 본가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또 깨버렸다. 요근래 이러지 않았는데.

머리를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서 눈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이불에 들어갔을 때 그대로였다.

내가 집을 나온 것을 빌미로 가족들이 짐을 쌓아놓아 좀 창고같은 상태가 되어있었다.

그 뒤죽박죽인 의류상자와 박스, 쓰지 않게 된 선반 등이 시간이 멈춘것 처럼 조용히 서있었다.

그것을 보고있자니 내 속에서 어떤 감정이 솟아오는 것을 느꼈다.

또다.



어디에선가 어쨌거나 솟아오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심. 어떤, 게 아니라, 그저, 무서웠다.

그런 때는 베갯머리의 안경을 찾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보게되는 것보다도 뿌연 밤바다 바닥세계가 그나마 나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스승의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밤 중에 갑자기 잠을 깨는 이유라면 알고 있지”


…………

분명 그렇게 말했다.

밤 중에 깨어나 대체 왜 깼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램수면과 논램수면의 반복 속에서 잠에서 깨기 쉬운 시간이 있는건지.

아니면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피로로 수면이 얕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밤 중에 갑자기 눈을 뜨는건 집 밖에 누군가 찾아왔기 떄문이야.”


그 말에는 세상에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를 밝히는 것 같은 기묘한 울림이 있었다.

이불 속에서 굳은 채, 호흡이 조금 빨라졌다.

조용했다.

몇 시쯤일까. 벽시계는 방 안 쪽이다. 꼬마전구로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스승의 말의 의미를 생각했다.

누군가 집 밖에 와있다. 그래서 잠에서 깬다.

그런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밤중에 깨어나도 이유가 없으면 또 잠들 뿐이다. 일부러 밖을 보러갈 일도 없었다.

그랬는데.

심장소리가 온몸에 울려펴졌다. 이불이 무거웠다. 위에서 덮쳐오는 것처럼.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안경은 바로 옆에 있었다. 공기가 들러붙듯이 방을 뒤덮고 있었다.

공포심.

항상 있는, 그저 밤을 무서워하는 원초적인 것이 아니었다. 좀더, 무언가, 무시무시한 것.


천천히 일어나, 저린 다리로 다다미를 밟는 소리를 들었다.

끼익….끼익…끼익….

정원에 맞닿은 창문 언저리는 판자가 덧대어져 있었다. 창에 걸린 무거운 커튼이 바깥과 안쪽을 나누고 있었다.

숨을 멈추고 커텐을 잡았다.창문 끝에서 바깥을 훔쳐보았다.



한순간, 유리창 표면에서 밤의 냉기가 흘러들어왔다. 내뱉는 숨으로 유리에 하얗게 김이 서렸다.

잠옷 소매로 그것을 닦자 아담한 정원과 나무, 그리고 담벼락 건너편의 도로가 보였다. 조용한 주택가.

꼬마전구의 어두운 노란 불빛과는 다른 가늘고 바늘같은 달빛이 희미하게 그것을 비추고 있었다.


정원을 횡단하는 돌다다미길. 그것을 둘러싼 키작은 잔디. 그 건너편에는 현관문.

누군가 있었다.

차갑게 높아가는 고동을 들으며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했다. 차가운 공기가 뺨을 어루만졌다.

문의 돌기둥 앞에 선 채로, 초인종을 누르는 것도 아닌, 정원에 들어오려는 것도 아닌, 

그 누군가는 움직임 하나 없었다.

“밤 중에 갑자기 눈을 뜨는건 집 밖에 누군가 찾아왔기 떄문이야.”

………

한번도 밖을 본적은 없었다.

실은 그 때마다 이렇게 누군가 밖에 서 있었던 걸까.

내뱉는 숨이 차가웠다. 온몸에 오한이 덥쳐왔다.

구름의 흐름이 바뀌어 한순간 그 누군가의 얼굴을 밝은 달빛이 비췄다.

공허한 얼굴. 남자. 기억에는 없지만, 어쩐지 그리웠다.


그러고보니 초등학교 동급생중에 비슷한 얼굴을 한 아이가 있었던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성장하면 이런 얼굴일까.

남자는 달빛에 겁먹은 듯이 얼굴을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돌아서 어꺠를 늘어뜨리고 걸어 떠났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듯이.

근처 숲속에 사는 산 새의, 꾸륵꾸륵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잠들어 있기만 하면, 그리고 잠자리에서 나오지만 않았더라면 아무도 몰랐을 터인 광경이 그렇게 끝났다.

커튼을 되돌려 창가에서 떨어져 다시 한 번 이불 속으로 향헀다.

몰라도 되는건 모르는 채로 있자.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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