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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나무

레무이 2017. 1. 16. 19:28

대학 2학년의 봄이었다.


근처를 지나가는 김에, 오컬트 스승의 집에 예고 없이 방문했다.


아파트 문을 노크하고 열자, 방 안에는 스승이 다다미 위에 앉아 무엇인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다가가자, 뒤를 돌아본 채의 스승과 눈이 마주쳤다.


“여어”


탁상 거울이라고 하기에는 크고, 전신 거울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어중간한 크기의 거울이었다.


살짝 기분나쁜 예감이 들었다.


“거울입니까.”


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을 묻자, “응”이라고 끄덕이고 거울에서 시선을 돌려 정면을 물끄러미 보았다.


나는 그 옆에 앉아 그런 스승을 아무 말 없이 관찰한다.


뭘 하고 있는 걸까.


일단 평범하게 생각하자면, 오컬트스러운 사연 있는 거울을 입수해서 만족해하는 모습.


그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그냥 자기 얼굴을 보고 있는 거.


둘 중 하나겠지.


거울은 세로로 긴 타원형으로, 도자기인 것처럼 보이는 받침대 중앙에 지지대가 붙어있어 링 형태의 틀과 이어져있었다. 거울은 틀의 좌우에서 솟아있는 봉에 지지되어, 상하로 빙글빙글 돌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는 것 같았다.


오래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오싹한 인상은 느끼지 못하였다.


“뭐하고 있는 겁니까.”


거울을 지켜보는 스승에게 견디지 못하고 내가 묻자, 그제서야 앞으로 기울였던 몸을 일으켰다.


“생각하고 있었어.”


그렇게 말하고 숨을 내쉰다. 마치 호흡하는 것을 이제야 떠올렸다는 듯한 느낌으로.


“거울에 대해서 말인가요?”


그렇게 묻자, ‘후’하고 웃으며 천천히 이쪽으로 돌아앉는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나무가 쓰러졌다. 그럼 그때 소리는 났을까, 나지 않았을까.”



아.


들은 적이 있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나무가 쓰러졌다면, 그 소리를 들은 사람도 없다는 것이 된다.


관찰자인 사람을 빼놓고서 소리가 존재할 수 있느냐란 문제.


“그거, 사실 잘 모르겠지 말입니다. 소리가 난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애초에 관찰자가 없다고 하면 나무가 쓰러졌다고 하는 부분부터 의심해봐야 할 건데, 그걸 전제로 한다면 소리도 났겠지요.”


“그래도 달은 거기에 있다, 라고 말한 건 아인슈타인이었었나. ……뭐 아무래도 좋아. 그 명제는 ‘소리’를 진동 그자체로 받아들일 것인가, 진동이 생물의 청각기관에 지각되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은 달라지지만, 소리가 났다, 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답이겠지.” 


스승은 거기까지 말하고 다시 거울에 손을 뻗어 검지로 뒷면을 눌러, 회전시켰다.


“그럼, 다음 문제는 어떨까.”


거울을 이쪽으로 향하게 한 상태로 딱 멈춘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나무가 쓰러졌다. 그 나무 앞에 거울이 놓여있었다. 그 거울에는 쓰러진 순간이 비쳤을까 아닐까.”


그건 처음 들어본다.


일단 상상해본다.


숲 속. 말라가는 나무. 나무 앞에 있는 거울. 거울에는 좌우 반대로 나무가 비쳐있다.


나무가 쓰러진다. 거울 안의 나무는 쓰러진다.


쓰러진 나무.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쳤을 겁니다. 소리랑 똑같아요. 사람이 보지 않았다하더라도 비쳐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죠.”


그걸 듣고 스승이 씨익 웃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기린 인형을 꺼내와, 거울 앞에 놓았다. 본 적이 있었다. 최근 판매된 식완인가 그랬을 거다.


거울을 가리키며 말한다.


“어때, 무엇이 비치고 있지.”


거울 앞의 기린이 여기로 엉덩이를 향하고 서있다. 그리고 거울 안의 기린은 여기로 얼굴을 향하고 서있다.



“기린이네요.”


“그렇지.”


스승은 기린을 툭 쳐서 쓰러뜨린다.


거울 안의 기린이 쓰러진다.


뭐가 하고 싶은 걸까.


스승이 장난끼을 감추고 있는 듯한 얼굴로 내 어깨를 치며, 좀 비켜봐, 라고 하는 제스처를 취해서, 일어나 앉아있는 장소를 바꿨다.


거울 정면에서 50센티 정도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어떻지, 뭐가 비치고 있지.”


거울을 향하자, 대각선에서 보고 있으므로 당연하게 비춰져있는 풍경이 달라진다.


“코끼리입니다.”


어느새 놓았는지, 왼쪽에는 코끼리 인형이 서있어서 그것이 거울 안에 비치고 있다.


“그럼 좀 더 이쪽으로.”


스승은 내 위치를 더 오른쪽으로 옮겼다.


“뭐가 비치고 있지.”


이번에는 상당히 거울의 각도가 꺾여서, 보기 어려웠긴 하지만 악어가 비쳐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악어입니다.”


그렇게 답한 순간, 뭔가 이상한 공간에 빠져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


어째서 악어가 비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왼쪽을 보자 확실히 거울에 비치고 있는 부근에는 악어 인형이 놓여있다. 그렇지만 기묘한 위화감이 신체 내부에서 솟아오른다.


탁, 하고 어깨에 손이 닿아 깜짝 놀랐다. 방구석까지 이동하라는 지시를 한다.


지시 받은 대로 벽 가장자리에 앉은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스승의 목소리가 어두운 분위기를 띤다.


“자, 무엇이 비치고 있지.”


거울의 각도가 없어져, 지금은 내가 정확히 옆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위치에 있다.


거울은 평면이라고 하기에는 선분에 가까워져, 어두운 금속의 색만이 보인다. 악어도 코끼리도, 물론 기린도 비치고 있지 않았다.



“자, 방을 나갈까.”


스승의 말이 그렇게 권유한다.


눈을 뜬 채로 유체이탈이라도 한 듯이 나는 스승에게 이끌려 방을 나왔다. 몸은 방에 남겨둔 채로.


스승은 서슴없이 거리를 걸어간다. 나는 따라간다.


멈출 때마다 스승은 나에게 묻는다.


“무엇이 비치고 있지.”


답할 수 없다. 아파트의 문만 보인다.


“무엇이 비치고 있지.”


답할 수 없다. 아파트조차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비치고 있지.”


답할 수 없었다.


곧 두 사람은 숲 속에 들어가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마른 나무 앞에 선다.


나무 앞에는 거울이 놓여있다. 나무쪽으로 놓인 거울.


스승은 묻는다. 그 거울의 뒤편에 서서.


“무엇이 비치고 있지.”


거울의 뒤는 검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 무엇이 비치고 있지.”


모르겠다. 모르겠다.


내 시선은 거울의 뒤편에 박혀있었다. 그 맞은편에 조용히 서있는 마른 나무가 시야에는 들어와 있는데, 거울의 검은 뒤편, 그 반대편에 비치고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머릿속을 휘저어놓은 것처럼, 엄청나게 기분이 나쁜 것도 같은, 마음이 편한 것도 같은…… 


탁, 하고 어깨를 두드려졌다.


“다시 한 번 묻지.”


단숨에 스승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내가 벽 가장자리에 앉아있는 채였다는 것을 재인식한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나무가 쓰러졌다. 그 나무 앞에 거울이 놓여있었다. 그 거울에는 쓰러진 순간이 비쳤을까 아닐까.”


아까 전과 완전히 똑같은 질문이었는데, 느낌이 기묘하게 비틀려있었다.


거울 앞에는 기린이 아까와 같은 모습으로 쓰러져있다.


“모르겠습니다.”


겨우 그것만을 짜내어 말하자, 스승은 만족한 듯이 기린과 코끼리와 악어를 주워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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