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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괴담

[394th] 목욕

레무이 2017. 8. 28. 14:56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


"어느 쪽이 오래 잠수할 수 있는지 대결하자!"라고 하셔서, 시작! 하고 바로 잠수했다.


그런데 20초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올라가는 기색이 있어서, 오늘은 유난히 빠르네 생각하고 나도 올라가려고 하자,


갑자기 굉장한 힘으로 머리를 짓눌려서, 깊히 잠겼다.



영문을 모른 채로 숨이 막혀왔기 때문에 마구 허우적댔는데, 아버지가 힘을 풀 느낌이 전혀 없었다.


어린 마음에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을 때,


어머니가 수건과 갈아입을 것을 가지고 탈의실에 들어온 모양이다.


그것을 눈치 챈 것인지, 아버지의 힘이 빠졌다.


"지금이다!"라고 생각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머리 위에 있던 아버지의 손을 뿌리쳐내고 욕조에서 튀어나올 기세로 상승.


거친 호흡을 하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무표정이었다.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하지만 목소리만은 밝게 어머니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공포와 혼란 속에서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도 채 나오지 않았고,


숨을 쉬고 있는데도 괴로움이 더해가는 것처럼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고, (실제로 두, 세 마디 정도였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어머니가 탈의실을 나가서 문을 닫은 순간,




아버지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슬슬 올라 갈까"


라며 웃는 얼굴로 말을 꺼내셨다.




이상하게도 그 미소를 본 순간 공포와 혼란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호흡도 안정되고 몸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탈의실에서 아버지가 머리를 닦아주시는데,


"이제 아버지와 목욕은 졸업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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