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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괴담

[456th] 신약 5월 이야기

레무이 2017. 11. 6. 00:44

A는 초조했다. 그는 어느 상사의 영업부에 근무하고 있는데, 오늘은 오래된 고객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그래서 상사에게 부하의 앞에서 호되게 질책 당했다.


따지고 보면, 이 회사의 제품에 매력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인데, 상사는 평소에 쌓인 스트레스의 해소를 겸해서 A를 철저하게 혼냈다.


그래서 A도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했지만, 부하에게 풀어야 할 이유는 없었고, 퇴근하고는 정처없이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얼마간 운전하는 동안에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버려, 이제 슬슬 돌아 가지 않으면 내일 일에 지장이 될만한 시간이 되었다. 그 때 A는 자신이 태어나 자란 마을 근처까지 다다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도시의 외곽에 어렸을 때 살던 집이 있었다.



(···그립다. 매일 저녁이되면 여기에서 축구하곤 했지···)


풍화 된 기억을 연결해 맞추고는 조금 한숨을 쉬었다. 멍하니 생각하는 사이에, 기억은 가족에 대한, 특히 어머니에 초점을 맞추어 간다.


A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후부터 쭉, A를 혼자 키워 낸 것이었다.





(어머니, 잘 지내고 있을까)


상경 후 오랫동안 A는 어머니와 연락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숨가쁘게 변화하는 나날 속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집에 연락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조금 추억에 잠겨든 A는 자신의 생가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그 집은 교외에 위치하며 산길을 통해서 작은 샛길로 들어가면 바로보이는, 상당히 오래된 집이었다.


큰 편이며, 앞마당에도 뒤뜰에도 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A는 반쯤은 그 나무들이 제멋대로 뻗어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혹시 누군가 살고 있는건가? 그렇게 오래된 집에?)


A는 희미한 기대를 품고 차를 운전해 나아갔다. 그러자 익숙한 앞마당과 불빛이 켜져있는 생가가 눈앞에 나타났다.



A는 머뭇거리면서도 초인종을 울렸다.


"네, 누구세요?"


이 목소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졌고 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A는 침을 삼켰다.


"어머······"


그것이 어머니의 첫마디였다. A는 '돌아왔어요'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저 울면서 어머니를 껴안았다.



"뭐어, 좀 오늘은 힘들었어요."


"그랬구나."


"그런데, 엄마, 그 사람도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위에 서있는 사람은 한껏 발돋움하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발목을 잡히면 쓰러져 버리는거겠죠. 그래서 필사적인 거고요."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말씀은 가슴 찡하게 다가왔다. A는 된장국을 홀짝이며 어머니에게 감사했다.


"그런데 엄마, 혼자 이렇게 큰 집에 있으면 여러가지로 불편하죠?."


"정말 그렇구나."


어머니는 조금 회상하는 눈을 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젠 편하구나. 괜찮아."


"집, 이사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건말이야, 처음에는 그렇게 할까 생각했는데. 그런데 네가 돌아왔을 때, 아무도 없다면 외롭지 않겠니.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단다."


"네?"


"돌아와줘서 고맙구나."


어머니는 웃었다. 따뜻한 미소였다.




A는 잠시 생각하다가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어머니, 함께 살지 않을래요?"


"에···."


어머니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A를 보았다.


"나와 함께 살아요. 편하고 외롭지 않고"


"그렇겠네······ 하지만, 이제 그런건 괜찮단다. 잠시 기다려보렴······"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거실에있는 위패로 눈을 돌렸다. A는 그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곳은 A의 생가이지만, 그 이전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장소인 것이었다.


"미안······"


"사과할 일이 아니란다. 그보다는 내일 일찍 나가야지? 이제 자려무나."



배도 채웠고, A는 졸음이 몰려왔지만, 그 전에 회사에 보내야 할 것이 있었으므로, 부엌에 있는 자신의 컴퓨터(어린 시절에 쓰던 것)로 향했다.


"어머, 또 인터넷? 너 변하지 않았구나······"


"뭐 그렇죠······ 어?"


A는 화면을 보았다. 컴퓨터는 무사히 시작되었는데, 화면이 검은 색이었다.


"무슨 일이니?"


"고장인가?"


그러자 서서히 스크린에 문자가 떠올랐다. 그것은······





"깨 어 나 라"





"깨어나라? 이상하구나."


"이상하네요, 이제부터 자려는 참인데요."


고개를 갸웃하면서 A는 침실로 갔다.



다음날 아침, A는 물방울이 얼굴에 닿는 느낌에 깨어났다. 눈을 뜨자 익숙하고 그리운 천장이 있었다. 누수일까라고 생각하면서 부엌에 갔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침 식사를 만들고 있었다.


"어머 일어났니. 밥 먹을 시간은 있어?"


"오늘은 쉬는 날이예요. 아, 그보다 이상한 꿈을 꿨어요."


"꿈?"


"어쩐 일인지 누군가가 귓가에서 깨어나라,라고 말하는거예요. 그래서, 문득 고개를 들어올리니까, 어머니가 조금 슬픈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이상한 꿈이구나······"



A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또다시 컴퓨터로 향했다. 그러자 또 화면이 "깨어나라"라고 경고 해왔다. 고개를 갸웃하자 현관쪽에서 '덜컹'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가보니 문이 경첩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어머니, 문이 망가졌네요."


A는 어머니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여러번 불러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 생각한, A는 부엌에 가보고 놀랐다.


무려 그 부엌은 방금 전까지 어머니가 계셨던 부엌과 전혀 같은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타일에는 곰팡이가, 싱크대에는 녹이 슬어 마치 수년간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A는 서둘러 거실에 가 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어제 있었던 가구는 없었고, 다다미도 변색되어 있었으며 거미줄 투성이였다.


문득 어머니와의 대화가 머릿 속을 스쳤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젠 편하구나. 괜찮아.)


이젠 편하구나? A는 묘한 불안함을 안고 자신의 침실에 가보았다. 가는 길의 복도가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침실 문은 부서져 열린 채로, 천장은 구멍 투성이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건 괜찮단다. 잠시 기다려보렴······)


A는 두려워져서 집을 나왔다. 현관 문을 걷어차 부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어제 보았던 정리 정돈 된 앞마당 대신 황량한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네가 돌아왔을 때, 아무도 없다면 외롭지 않겠니.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단다.)


A는 천천히 되돌아 보았다. 생가는 약간 그 모습이 남아 있었지만, 어떻게 봐도 버려진 집이었다.


(돌아와줘서 고맙구나.)


A는 문득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는 돌아봤지만, 물론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그리운 된장국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A의 뺨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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