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rd] 상자 속의 소녀

수십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우리 할아버지는 솜씨 좋은 목공 장인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아서 자주 작업장에 출입하곤 했습니다.

그 날, 나는 언제나처럼 할아버지 댁에 방문해 떨어진 나무 토막을 주워서 놀고있었습니다.

눈앞에서는 할아버지가 작업대 앞에 앉아 묵묵히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투박한 손이 솜씨좋게 움직여서 나무를 깎거나 부품끼리 결합하거나,

그 뛰어난 실력에, 나는 잠시 놀던 손을 멈추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이상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할아버지의 뒤에 벽에 쓰다 남은 검게 빛나는 나무 판자가 몇장 기대어져 있었는데,

그 판과 판의 틈새에서 단발머리 소녀의 얼굴이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판과 벽 틈새에서 얼굴의 오른쪽 절반을 내밀고 들여다보는 모습으로 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얀 얼굴의 절반 만이 어두운 방 구석에 덩그러니 떠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묵묵히 손을 움직여 할아버지 옆을 지나 벽으로 다가갔습니다.

내가 접근하는 중에도 하얀 얼굴은 미동도 하지 않고, 할아버지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고있었습니다.

역시 몸과 얼굴 왼쪽 절반은 보이지 않았지만, 벽과 판자 사이에는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틈이 없습니다.

나는 소녀의 얼굴에게 말을 걸려고 했습니다-

"···말을 걸면 안된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못들어본 낮은 목소리.

뒤를 돌아보니, 할아버지는 여전히 작업대를 향한 채로, 이쪽에는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이 아이는 누구야?"

"그 녀석은 뭐, 내가 나무로 만든 거기 상자 안에 살던 여자애야. 그러니까 내버려 두어라"

그 말의 의미는 몰랐습니다만, 나는 일단 벽에서 물러났습니다.

그 후에도 할아버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나는 다시 나무토막으로 놀았는데 왠지 신경이 쓰여서 할아버지의 뒤쪽을 쳐다보니 어느새 얼굴은 사라져 있었으며, 윤기가 나는 까만 판자들이 나란히 있을 뿐.

할아버지 댁은 그 후에도 자주 놀러 갔는데 그 얼굴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십 년 정도 지난 재작년 초봄 할아버지는 병으로 쓰러져 입원, 곧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 당일 관속에 들어가기 위하여 할아버지의 기념품을 모았습니다.

그 중에 작은 나무 상자가 있었습니다. 10cm 정도의 검은 윤기있는 상자.

그것을 본 순간, 그날 벽에 기대어져있었던 나무 판자들이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 그 판자로 만든 상자가 아닌가?

손에 들어보니 의외로 무겁습니다. 상자에는 열 수 있는 뚜껑이 없어서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보살피던 이모가 말씀하기로는,

말년의 할아버지는 이 상자를 매우 소중히 여기며, 병원에서도 머리맡에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자는 할아버지의 머리 곁에 두기로 했습니다.

곧 장례가 시작되었는데 그 때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스님이 자꾸 관 쪽을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의심스럽게 생각한 아버지가 묻자,

"이 분 정말로 돌아가신거죠?"

라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조금 어이없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경전을 읽는 동안도 스님은 자꾸 관을 신경쓰는 행동을 보이며 몇 번이나 독경이 멈출 뻔 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할아버지의 시체는 화장터에서 태워졌습니다.

소각로에서 불타고 난 뼈가 실린 큰 수레가 왔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마치 난로와 같이 뜨거운 받침대 위에 하얀 뼈가 재 속에 묻혀있었습니다.

그것을 쇠 젓가락으로 집어서 담당자가 뼈 부위를 알려줍니다.

"···두개골은 나중에 뚜껑으로 사용하니까 그냥 두세요"

"갑상골은?"

"이것입니다."

주운 뼈는 계속해서 항아리에 넣어졌습니다. 그러나 항아리는 좀처럼 가득차지 않았습니다.

"더 집어주세요"

"아···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네요"

"여기 화로는 새거라서 화력 때문에 대부분 타 버립니다. 노인은 대개 적어요. 이 분들은 많은 편입니다."

"튼튼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그건 골반이고요. 그 옆이 넓적다리뼈예요."

"이건요?"

"갑상골이네요"

방에 있던 모두가 의아한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갑상골은 아까 항아리에 넣은 것입니다.

직원이 모은 머리 뼈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거 - 뼈가 많네요···"

그때부터 큰일이었습니다.

경찰이 와서 우리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는 화장터를 수색했습니다.

화장터 직원과 경찰이 조사한 결과 뼈는 대부분 재가 되어 있었지만,

어쨌든, 머리 뼈가 두 명 분이라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누구의 뼈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번 조사를 받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긴건지 짐작도 할 수 없었습니다.

관 뚜껑은 발인 직전에 참석자들의 눈앞에 못을 박았는데,

그때까지 당연히 관 속에 사람의 목같은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들어있던 것을 말하자면, 할아버지의 시신과 유품들, 거기에 그 검은 상자뿐입니다.

크기로 봐서는 상자 안에 사람 머리가 들어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안에는 뼈만 들어있었을까요?

그러나 살이 붙어있지 않은 노출 된 뼈는 금방 재가되어 모양이 남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못한 채로, 깊은 밤이 지나서 해산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유골은 한 때 경찰에 맡겨졌지만, 49일까지는 되돌려 받았다고 하고, 지금은 무덤 밑에 묻혀 있습니다.

신원 불명의 뼈에 대해서는 나중에 갑상골 부분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았습니다.

그것을 작은 상자에 넣어 할아버지의 무덤 옆에 묻고 묘비 대신 큰 돌을 두었습니다.

지금까지 별다른 일은 없습니다.

사건의 진상은 지금도 모르는 그대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