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번역 괴담

[662nd] 빈곤국

레무이 2018. 6. 6. 07:30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 하려는 것은, 소위 "오컬트"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정말로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꽤 장문이지만, 여기에 써보려고 한다.


영적인 이야기를 기대하는 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냥 읽어주기를 바란다.



나는 작년까지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고 있었다.


한번은 "C국에 출장가지 않겠나"라는 타진이 있었다.


회사는 C국에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 나라 기술자에게 일본 국내 공장에 채용된 시스템을 습득시키는 것이 목적인 장기 파견이었다.


장기라고는 해도, 현지 직원에 의한 운용이 가능해질 때까지의 기간 한정의 파견이었고,


현지에서의 대우도, 돌아오고 나서의 입지도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조금 생각하고는 동의했다.



C국 공장에서 인계를 마친 밤, 나는 전임자와 식사를 함께했다.


전임자 (만약을 위해 이후 T씨라고 쓰겠다)는 부임한지 반년 후, 건강상의 이유로 일본으로의 귀국을 희망하고 있었다.


눈 앞의 T씨는 확실히 뺨이 홀쭉한데다가 안색이 좋지 않았고, 심신이 지쳐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T씨는 현지에서의 생활에 대해 여러가지 조언을 해 줬는데,


그 중에서도 "창고 뒤에있는 언덕에는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을 특히 강조했다.


내가 그 이유를 물어도, T씨는 입을 다문 채였다.



결국 T씨는 귀국하고, 나의 C국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C국은 최근까지 치열한 내전이 이어지는 곳이었고, 그것이 국민 생활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공장 주변은 농촌 지역이었기 때문에 파괴 행위의 흔적은 거의 볼 수 없었지만, 게릴라에 의한 학살과 약탈은 이 일대 마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일꾼과 재산을 내전으로 잃은 가정은 일상 생활 조차도 매우 궁핍한 형편이었다.


그런 집의 아이들은 공장으로 이어지는 길 한복판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또한 공장에 고용된 노동자들을 남편을 잃은 여자가 우선적으로 채용되고 있었으며, 그녀들의 아이는 어머니가 일을 마칠 때까지 공장 근처에서 놀고있다.


공장 주변에는 그런 이유로 아이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아이들과 친해져서, 점심 시간이나 업무가 한가한 시간에 그들의 놀이 상대를 종종 해주었다.




어느 점심 시간이었다.


항상 공장 주변에서 놀고있는 K라는 아이가 "재미있는 곳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나를 초대했다.


"바로 근처야"


라는 K군의 말을 믿고,


나는 K군과 여동생 S양과 함께 공장 옆의 숲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잠시 숲 속을 걸어가자 갑자기 시야가 넓어졌고 공터 같은 곳이 나왔다.


K군과 S양은 그곳에서 축구 같은 것을 하며 놀기 시작했다.


나도 섞여 보았지만, K군의 공 다루는 솜씨가 상당해서,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K군의 공을 빼앗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점심 시간도 끝났고, 나는 직장에 돌아왔다.



며칠 뒤에 K군과 S양과 나는 다시 그 공터에 왔다.


그날, 나는 그늘에서 멍하니 K군과 S양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시선을 공장으로 돌리자, 조금 떨어진 곳에 창고가 보였다.


자연스럽게 이전에 T씨가 말한 것이 떠올랐다.


"창고 뒤에있는 언덕에는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라"


그러고 보니 이곳의 지형 조금 올라와 있어서, 언덕 같은 느낌이···






나는 근처에 있던 K군을 불러 이제 돌아가자고 권했다.


S양을 찾아봤는데, 반대편의 숲 근처에 서서 뭔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엔 노란색 장난감 같은 물건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주우려고, S양는 쪼그리고 앉았다.


나는 S양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돌아가자"라고 불러보려고 했다.


그런데 K군이 나의 소매를 잡고 가볍게 당겼다.


나는 무심코 K군을 향해 돌아보았다.






'꽝---!'




갑자기 아랫배를 울리는 큰 소리가 났고, S양 쪽을 뒤돌아봤다.


S양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서둘러 달려갔지만 소용없었다.



다리와 손이 있을 수없는 방향으로 꺾여있었고, 몸의 아래에서는 피가 쏟아지고 있다.



잠시 멍하니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S양이 주우려고 하던 노란 물건이 지뢰였음을 깨달았다.





물론, 대인 지뢰에 대해서는 C국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이가 흥미를 가질만한 색상과 모양의 지뢰가 있다는 것도.


세계 각국에서 그 것에 희생되어 손발을 잃은 아이들의 사진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실감이 없었다.


한심한 이야기이지만, S양의 끔찍한 시체를 보기 전까지는, 내 눈 앞에서 어린 아이가 희생된다는 것 따위,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되돌아 보면, K군이 얼굴을 잔뜩 구긴 채로 울고 있었다.





S양이 죽은 언덕은 법적으로 공장 부지였다.


사실, 지뢰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출입 금지였다.


그러나 거기를 둘러싸고 있던 철조망은 진작에 모두 도난당했던 것이다.



나는 S양 가족을 만나서 직접 사죄하려고 했지만 공장장을 비롯한 현지 직원은 모두 반대했다.


"그건 사고이다.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 후, 공장장으로부터 S양의 가족에게 회사에서 위로금을 전달했다고 들었다.



나는 얼마동안 집에서 휴식했다.


공장에서 다시는 이전처럼 아이들과 놀 생각은 들지 않았다.


K군과도 다시 만나지 않았다.





이윽고 세월이지나 당초의 목적을 달성한 나는 일본에 돌아가게 되었다.


귀국 한 나는 가장 먼저 T씨에게 연락하여 만날 약속을 받아 냈다.



T씨는 나를 보자마자 뭔가 깨달은 것 같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애석하게도···"


조금 시간을 두고 T씨에게 물었다.


"당신도 거기에서 유사한 경험을 한 거군요."


"아, 내 경우에는 남자애였어. 빨간 지뢰였지."


"···그 다음은?"


"아마 당신과 같을거야. 한 달정도 후에 다른 아이들이 걸려들었어. 가보니, 철조망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지."


T씨는 몹시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계속되었어. 형제가 함께 당하기도 하고, 몇 명이나, 몇 명이나···"



S양 가족의 손에 넘어 갔던 위로금.


우리에게는 푼돈 정도겠지만, C국에서는 가족을 수년 먹일 수 있는 가치가 있다.


게다가 먹을 입이 하나 줄어들 것이다.




한동안 T씨와 나는 저주와도 같은 아이들의 운명에,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번역 괴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664th] 사건 사고  (0) 2018.06.08
[663rd] 사요  (0) 2018.06.07
[661st] 두고 갔다  (0) 2018.06.04
[660th] 두 사람의 아버지  (0) 2018.06.03
[659th] 마네킹  (0) 2018.06.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