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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어느 가을의 이야기다.
아침밤으로 쌀쌀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한 여성과 함께 오컬트 스승의 집을 습격했다.
주변의 주택들은 정적에 감싸인 한밤 중이었다. 아파트 방에 불이 꺼지는 것을 확인하고 발 소리를 죽여 현관문 앞에 섰다.
손잡이를 돌리니 쉽게 문이 열렸다. 문이 잠겨있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슬금슬금 캄캄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스승을 내려다보았다.
우리 둘은 눈짓을 한 뒤 준비한 로프를 능숙하게 이불 아래 깔고 신중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단숨에 로프를 잡아당겨 이불채 동여맸다.
“뭐,뭐!”
스승은 갑작스러운 습격에 짧게 소리를 질렀지만 이렇다할 저항도 없이 우리들 앞에 그야말로 멍석말이 상태로 놓여졌다.
“뭡니까?”
잠기운도 달아났는지 스승은 냉정한 어조로 겨우 그렇게만 말했다.멍석말이 상태로.
‘뭡니까’라니… 그건 나도 알고싶다.
그저 이 스승의 여자친구인 아루쿠씨의 장난질 꼬임에 보기좋게 넘어갔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니 이유같은건 없을게 분명하고 재밌으면 됐다는 거겠지.
불을 켜고 우리들은 가져온 과자와 음료를 펼쳤다.
멍석말이를 안주로 홈파티를 즐긴다. 뭐 그런거였다.
스승은 ‘대체 뭐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버둥댔다. 요와 이불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것이 마치 애벌레같았다.
혹은 몇군데를 로프로 동여맨 원통형 이불이 라면가게의 차슈 덩어리같았다고 해야할까.
버둥대면 버둥댈수록 콜라가 잘 넘어갔다.
나와 아루쿠씨는 멍석말이를 앞에두고 즐겁게 담소를 나눴다.
마침내 지쳤는지 얌전해진 스승이 불쑥 말했다.
“과자 줘”
우리들은 귀중한 포테토칩을 요구하는 멍석말이를 무시하기로 했다.
“……”
“무시하지마.”
“……”
“과자 줘”
“……”
“재밌는 얘기 할테니까 살려줘”
나와 아루쿠씨는 방구석에 있던 장기판에서 오셀로를 시작했다.
“로마법왕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말이지. 실은 상당한 스피드광이었던 법왕이 운전사에게 운전대를 잡게 해달라고 부탁….”
“로마법왕에게 운전을 시킬만한 거물이 잡혔다고?”
“…응.”
“……”
“하나 더 들어봐!”
“……”
“예수 그리스도가 수면을 걷는 기적이 행해진 호수에 한 여행자가 왔어.
건너편 호숫가에 나룻배가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1인당 50달러라고 써있지 뭐야. 그러자 그 여행자가 말하길
<이럴수가! 고작 이 정도의 거리를 50달러나 받는다고!? 예수님이 걸어서 건널만 하군!>”
“…..후”
“아, 웃었다!”
“……”
“재미없어? 지금거 재미없어?”
“좋아!”
이걸로 오셀로 2연승이다. 아루쿠씨와 게임을 할때는 왠지 긴장하게 된다.
“하다 더. 하나 더 들어줘! 천년전에 세워진 독일의 고성 유적에 도적단이 침입했어.
흩어져서 탐색하고 있는데 돌아온 부하녀석이 말하는 거지.
<수상한 문이 있는데 잠겨있습니다>, <멍청한 놈. 옛부터 열쇠로 잠그는곳에 중요한 게 있다는건 상식이잖아! 죽기아님 까무러치기로 열어!>
혼비백산하여 다시 탐색하러 간 부하가 잠시 후 또 빈손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부하 말하길<화장실이더만유>”
“…우후”
“아, 웃었다. 웃었지? 야 이거 풀어줘”
“……”
“무시하지마”
좋↗아! 이걸로 삼연승이다. 아루쿠씨도 생각보다 별거없네.
“실은 방금 얘기 중에 기묘한 부분이 하나있지”
멍석말이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변했다. 그쪽은 쳐다도 안봤지만 장기알을 쥔 손이 흠칫 멈췄다.
“열쇠를 잠근 문 건너편이 화장실이었다는 결말이었는데 잘 생각해보면 천년전 성의 폐허에 있던 화장실인데 왜 열쇠가 잠겨져 있었던 걸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에 움찔했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사람은 천년이 지나도 아직 나오지 않은걸까. 안에서 열쇠를 잠근채로.
먼지투성이에 눅눅한 석조 성이 당장이라도 눈앞에 나타날 것같은 오한이 현기증을 동반했다.
좁은 아파트 실내의 풍경이 흔들거리며 뒤섞이는 것 같았다.
당했다. 스승의 술수에 빠졌다.
그런 생각에 긴장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바삭바삭 메마른 소리가 들려와 현실감이 돌아왔다.
아루쿠씨가 스승의 입에 포테토칩을 내밀어 마치 먹이를 주듯 먹이고 있었다.
상인가?하지만 풀어주진 않는구나.
그 후에도 ‘풀어줘’,’과자줘’등등 아우성치는 스승을 거의 무시한채로 우리들은 늦은 밤까지 놀았다.
너무 시끄러워 슬슬 풀어주는게 어떤지 제안하자 아루쿠씨는 ‘풀면 죽어’라고만 나직히 말했다.
죽는건가. 그럼 풀면 안되겠네. 주어가 빠진게 겁나 무섭지만.
아루쿠씨는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예지능력 같은걸 가지고 있다.
처음엔 감이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점점 그 감이 어처구니 없을만큼 정밀하다는걸 알게 된 후 무서워졌다.
그녀는 예지몽 같은 꿈을 꾼다. 그리고 일어났을 땐 그 꿈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문득 그것을 떠올린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억해 내는거다. 그것이 경고가 되어 주위에 있는 우리들도 위기에서 벗어난 적이 몇번이나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말은 때때로 무척 무겁게 느껴진다. <풀면죽어>라고 말했다면 무슨일이 있어도 풀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게 농담인지 경고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해도 말이다.
꿈틀꿈틀 연동운동을 반복하는 스승을 바라보며 평소 바보취급을 당해온 울분을 담아 실컷 콜라를 마셨다. 짱맛있다!
두 병째 콜라를 손에 쥐었을 때, 느닷없이 시계의 알람소리가 방에 울려퍼졌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아루쿠씨가 금방 스위치를 끄고 시계를 침묵시켰다.
시계를 보니 새벽2시. 대체 왜 이런 시간에 알람을 맞춰둔거야 이 사람은.
요즘 자주 심야를 배회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알람을 맞춰 일어나야 할만한 일인가?
“용건이 있단 말입니다”
스승이 불쌍한 목소리로 하소연했지만 아루쿠씨가 ‘무슨 일인대?’하고 묻자 좀처럼 대답하지 못하고
“어쨌거나 풀어주세요’라고 매달렸지만 단칼에 각하됐다.
이러쿵 저러쿵 하고 있자니 아루쿠씨가 방 어딘가에서 앨범을 찾아왔다.
대학 입학 앨범이다. 팔랑팔랑 넘기자 아는 듯한 얼굴도 간간히 있었다.
스승의 입학은 한참 예전 일일텐데 왠지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4학년의 입학식 사진인거 같았다.
후배의 입학앨범을 갖고 있다니 좀 수상한데?
변태를 보는 눈으로 멍석말이를 노려본 후 지인들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먼저 교육학부 페이지에서 미캇치씨라는 오컬트 동료의 지난 날 모습을 발견했다. 예상과는 달리 어이없을만치 시시한 모습으로 찍혀있었다.
이 부분만 잘라내 본인을 놀려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 다음 아루쿠씨를 발견. 지금 모습과 크게 다르지않았다. 사진 아래 있는 이름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저 그 페이지 끝에 접힌 자국이 있는게 신경쓰였다.
그러고보니 이 두사람, 스승이 일방적으로 열을 올렸다던가 아니라던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거 같았다.
이건 재밌는 걸 발굴한 건지도 모르겠다 싶어 옆에 있던 아루쿠씨를 훔쳐보자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그 접힌 자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그녀를 감싼 이상한 긴장감을 깨달았다. 뭔가 놀려볼까 하다가 꾸욱 참았다.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가 겨우 입을 열어 ‘처음 만났을 때 이 앨범을 가지고 있었어’라고 중얼거렸다.
신입생 앨범을 보고 한눈에 반해 그 앨범을 단서로 그녀를 찾아냈다는 건가.
그것만 들으면 연애의 시작따위 시시하기 짝이없다고 어이없을 법도 하지만 좀 상태가 이상했다.
이 대화를 듣고 있을 터인 스승을 돌아보자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일부러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지만 눈썹이 움찔움찔 경련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상당한 폭탄을 발굴한 듯하다.
후에 이 일의 진상을 알게 됐을 땐 멍석말이 뿐 아니라 좀 더 괴롭혀 줄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 때 나는 불온한 공기를 깨닫고 어떻게든 화제를 바꿔 멍석말이를 둘러싼 연회를 계속했다.
기억이 분명치는 않지만 이윽고 어느새 잠들어버렸던 나는 다다미 위에서 눈을 떴다. 몸 뼈 마디마디가 아팠다.
옆에는 아루쿠씨가 어디에서 잡아빼왔는지 담요를 말고 자고 있었다.
퍼뜩 스승을 바라보니 멍석말이에서 어깨 끝이 살짝 삐져나온 상태로 뉘여져 자고 있었다.
우리들이 잠든 후 자력으로 탈출하려다가 지쳐 탈피도중 잠들어버린 듯했다.
나는 잠을 깨우지 않도록 로프를 푼 후 스승과 아루쿠씨를 방치한채로 방을 나왔다.
아침해에 눈이 타들어 가는 것같아 나는 고개를 숙인채 주택가를 걸어나왔다.
다음날 밤 일이다.컴퓨터 전원을 끄고 우득거리는 목을 돌리며 양치질하고 자려고 일어서던 때였다.
책상 위의 PHS에 착신이 있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이런 시간에 누구지 생각하며 통화버튼을 누르자 쉰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듯 들려왔다.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것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서 가까운 서점. 서점 앞 공원….
대체 누구지?, 하는 의문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스승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무슨 일이죠?”
큰 목소리로 외친 순간, 부스럭대묘 종이봉투인지 비닐봉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는 전화기 건너편에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때때로 부스럭대는 작은 소리가 들리는 정도다.
몇번인가 건너편에 말을 걸어보았지만 더이상 연결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전화를 끊었다.
당장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스승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집에서 뛰쳐나와 자전거를 타고 스승의 집 쪽으로 향한다. 하늘은 구름이 낀건지 달이 보이지 않았고, 가로등이 없은 곳은 캄캄했다.
스승의 집에 드나들는 사이에 그 주변 지리를 파악해버린 나는 ‘집 근처 서점, 서점 앞 공원’이라는 힌트에서 지시한 장소까지 최단거리로 도착했다.
그곳은 신록이 풍성한 곳으로, 놀이기구는 거의 없지만 주민들의 산책코스인 광장이었다. 입구에 자전거를 세우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었다.
인기척은 없었다. 적어도 움직이는 생명체의 그림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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