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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불나무을 지나 가로등 불빛이 만들어내는 음영을 빤히 관찰하며 천천히 나아갔다.
기묘하게 조용했다.
단단한 지면에 작은 돌이 구르고 있어 내 발이 그것을 걷어차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덤불 앞에는 나무 벤치가 두 개 늘어선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누군가 있을것 같아 목을 뻗어 내다보았지만 멀찍이서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원이 아니었나 싶어 머리 속에 주책가 지도를 떠올리려고 할 때, 그 아무도 없는 벤치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긴장해서 다시 한 번 시선을 던졌다.
두 개의 벤치에는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 건너편은 전망이 좋아 아무도 숨을 수 없을 터였다.
뒤의 덤불나무 속이라면 모르지만, 뻔히 보기에도 딱딱해 보이는 나무였다.
그 속에 숨는다는 것은 상당한 상처를 입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될 터였다.
남은건 벤치 옆의 쓰레기통 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어떤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달렸다.
그 쓰레기 통은 어디에나 흔히 있는 금속 그물로 된 원통형 쓰레기통으로 위를 향해 점점 입구가 켜지는 형태다. 그 안쪽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걸려있었다.
다만 일반적인 공원에서 볼수 있는 타입보다 상당히 작았다. 어른의 허리에도 오지 않을 정도다.
그 쓰레기통에서 기묘한 기색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니, 의식을 집중하면 알 수 있었다. 기색이라는 애매한 것이 아니라 확실히 말해 피냄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숨을 멈추고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피냄새가 강해졌다. 틀림없이 쓰레기통안에서 나는 냄새다.
조금 다가가 자세히 보니 쓰레기통 아래 그림자 진 부분에 얼룩이 져있었다. 까맣다. 피다.
잘 안보이지만 쓰레기통 하부에 전부 퍼져있다고 하면 상당한 양이다.
발이 긴 모기가 옆을 가로질러 작은 날개소리를 남긴채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졌다.
침을 삼켰다.
부스럭, 쓰레기통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기색.
반사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목소리가 들렸다.
쉰 목소리.
……왔나.
어디가 되었든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면, 아직 좋았을 것이다. 목소리는 틀림없이 쓰레기통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잘, 들어, 시간이, 없어,
그 목소리에는 쉽게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울림이 있었다. 아니, 그건 나의 자기방어본능이 반영된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 쓰레기통은 무척 작았다. 옆에서 보기에 입구보다 아래 쪽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른이 안에 들어가기는 너무 작았다.
몸이 전부 갖춰진 채로 들어가기는, 너무나도.
아야를, 찾아, 전화, 안돼, 아마, 집, 에 있어, 만나서, 이렇게, 말해,
쓰레기통 속에서 들려오는, 이 세상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 목소리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나는 오직 귀에 의식을 집중했다.
…..이건 꿈이죠
그렇게 말하고, 목소리는 끊어졌다.
발이 긴 모기가 쓰레기통에서 날아올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숨을 삼켰다. 전신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오한이 느물느물 기어올랐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알려고 하면 알 수도 있겠건만. 발을 내딛어 쓰레기통을 들여다 보기만 한다면. 그러나 그 발은 내딛을 수 없었다.
사고가, 뇌가, 대뇌인지 간뇌인지 창고같은 부분이, 다가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듯했다.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았다. 내 개인적이고 자그마한 세계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더이상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다만 피를 보고 반사적으로 구급차라는 발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해야할 최선의 방법은 그저 지시된 일은 수행하는 것이라고 직감한 건지도 모르겠다.
머리 속에 전류가 흐른듯 가볍게 통증을 느낀 후 나는 잠에서 꺤듯 달려나갔다. 쓰레기통에서 새어나오던 비릿내를 콧속에서 쫓아내는 것처럼.
공원을 나와 입구 밖에 세워둔 자전거에 올랐다.
큰일났다
큰일났다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도 머리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이건 꿈이죠?
꿈일리 없어. 무서울만치, 리얼하다고. 냄새도, 소리도, 다리도, 허벅지에 젖산이 쌓여가는 느낌도, 전부.
오늘 하루기억을 떠올려본다. 그러나 틈하나 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방금까지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있던 사이트마저도. 그 전에 먹은 컵라면도, 그걸 먹으면서 고등학교 동창녀석과 전화를 했던 것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다는건, 역시……
거기서 사고가 끊어졌다.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는 걸가.
스승이 ‘아야’라는 본명으로 부른 아루쿠씨의 맨션으로 직행했다.
도중에 완만한 내리막길이 있었는데 속도를 유지한채로 중력을 거슬러 억지로 커브를 돌려고 했을때 앞에 오던 사람과 부딪칠 뻔 헀다.
놀란 표정의 그 사람을 어찌어찌 핸들을 조작해 피했지만 균형을 잃고 자전거에서 떨어졌다.
한바퀴 굴러 엉덩이를 찧고 얼떨결에 오른손이 아스팔트에 부딪쳐 껍질이 까졌다. 날카로운 아픔이 덮쳐왔다.
아파. 완전 아파. 망할,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야, 위험하잖아!”
갈색머리의 젊은 남자가 머리카락을 흐뜨린채로 다가왔다. 나는 뛰어오르듯 일어나 그에게 달려들었다.
“오늘 일 기억하고 계세요? 어제 일은요? 당신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나요?”
그는 들러붙은 내게 순간 멈칫했지만 금방 동요하며 그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미친놈아냐. 뭐야 너”
쿵하고 내 어깨를 떠밀고 발걸음을 돌려 빠르게 사라졌다. 도중 몇번인가 불쾌한듯 돌아보면서.
남겨진 나는 까진 오른손과 멀쩡한 왼손을 나란히 두고 관찰했다.
손등의 상처에서 작은 돌이 박혀있는걸 빼냈다.
아팠다.
왜 이렇게 아픈걸까.
울고 싶은 듯한, 한기가 느껴지는 듯한, 견딜 수 없는 느낌. 어쨌든 몸을 움직여 쓰러져있던 자전거를 일으켜세워 밟았다.
밤길을 달렸다. 그저 달렸다. 신호에 걸려도, 트럭이 지나가고 다음 차가 올때까지 약간의 틈을 뚫고 달렸다.
뒤늦게 울린 의미없는 경적을 등 뒤로 들으며 앞으로 앞으로.
숨이 차오르고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겨우 아루쿠씨의 맨션이 보이기 시작했다.
밝은 가로등 아래를 지나 언제나 이용하던 주차장에 갈 시간도 아까워 길가에 그대로 자전거를 세운다. 세울 때 안장을 누르는 오른손에 통증이 느껴졌다.
얼굴을 찌푸리며 현관으로 향했다. 입구에 보안시스템은 없었다.
안에 들어갔을 때 밖에서 방에 불이 켜져있는지 확인할 걸 그랬다고 생각했으나 돌아갈 시간도 아까워 그대로 계단 위로 달렸다.
방번호를 머리속에서 반복해가며 아무도 없는 통로를 달렸다. 발소리만이 무척 차갑게 울려퍼졌다.
목적지를 가만히 바라보니 방에서 가느다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마침 천정의 현광등이 꺼진 어두컴컴한 구석이어서 그 가느다란 불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있다. 방에 있다.
관문을 하나 넘은 느낌.
그러나 도착할 장소도, 갈 길의 전모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 세계가 입은 치명적인 상처를, 복원하는 길이. 어둠속에 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비명을 지를 것 같았다.
입을 틀어막았다.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안계세요?”
초조해지면 현관벨 따윈 장난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빨리 나와. 난폭하게 두들기는 문소리는 누가 들어도 불쾌할 테니까.
철컥…하고 문을 여는 소리에 이어 끼익…하고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이쪽을 향해 열렸다. 안에서 긴장한 듯한 표정의 여성.
“살려주세요”
얼굴을 보는 순간, 그 말이 튀어나올 뻔해, 숨을 멈췄다. 다르기 때문이다. 해야할 말은, 분명,
“이건 꿈이죠”
희미하게 식은 팽팽한 공기가 실내에서 밖으로 흘러나왔다.
실내복을 입은 채 아루쿠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발 물러섰다. 이끌리듯 나도 현관입구로 들어갔다.
아루쿠씨가 손을 뗀 문이 지지대를 잃고 내 뒤에서 덜컹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아루쿠씨는 또 한걸음 물러섰다. 신발을 벗지 않으면 올라설 수 없어서 나는 그 자리에 머무른 채였다. 두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생겼다.
아무래도 이게 아루쿠씨의 기본 거리인 듯했다.
“상처”
하고 아루쿠씨가 손가락으로 이쪽을 가리켰다. 그곳을 쳐다보자 바지의 오른쪽 무릎이 찢어져있었다. 주먹의 통증만 신경쓰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기다려봐”
약상자라도 가져오려는지 그렇게 말하고 발걸음을 돌리려고 한 그녀를 붙잡아 세우려고 입을 열었다.
“이건 꿈이죠.”
흠칫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는 다시 한번 이쪽으로 돌아섰다.
“무슨 뜻이지?”
늘 표정이 없는 그녀지만 눈썹을 찌푸렸다.
저… 공원에서 본 광경을 설명하려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나는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그것을 말로 뱉어버리면 마치 돌이킬 수 없는 무시무시한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갑자기 책을 찾았다. 잡지, 아니 신문도 좋다. 뭐든 방대한 정보가 들어찬 종이가 필요했다.
오래전 자연히 몸에 익힌 것으로 꿈 속에서 이것을 꿈이라 깨닫는 기술이었다.
볼을 꼬집는다거나 무언가 특정 키워드를 외친다거나 다들 각각 꿈을 인식하기 위한, 혹은 꿈에서 깨기위한 비결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내 경우엔 그게 책을 읽는 것이었다. 거기에 쓰여있어야할 정보량을, 순간적으로 꿈을 재생하고 있는 뇌가 제공할 수 없어서
마치 술수가 들통난 여우나 너구리처럼 꿈속 세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루쿠씨의 방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 현관과 거기서부터 이어진 부엌 주변에 책이나 잡지류는 전혀 굴러다니고 있지 않았다.
문에 붙은 우편함에서 흘러넘친 신문이 그대도 현관에 방치된 내 집과는 천지차이였다.
설명대신 나는 스승이 맡긴 말을 반복했다.
“이건 꿈이죠”
아루쿠씨는 아무래도 큰일이 난 것 같다고 판단했는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일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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