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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내기

레무이 2017. 1. 16. 19:16

대학 3학년의 봄. 드디어 모든 대학 강의에 출석할 의욕을 잃은 나에게 아르바이트와 도박은 이전보다 더 삶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도박이라고 해도, 경정이나 경륜같은 아저씨들이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보다 더 정보를 얻기 쉽고 학생들 사이에서 관심도 높았던 경마, 그리고 가볍게 할 수 있는 마작이나 파칭코였다.

특히 파칭코 이벤트가 있는 날은 왜인지 모르게 감기에 걸려 바이트를 갑자기 쉬게 된다는 실로 민폐인 체질을 발휘하여, 아르바이트 동료한테 들키지 않도록 슬쩍 다니거나 했다.

어느 날, 소원해지고 있었던 오컬트 쪽 스승과 갑자기 만나게 되었다. 역 근처의 거리에서였다. 저녁에 역 앞에서 라면을 먹고, 자 이제 다시 한 판 더, 라고 의욕이 솟아오르던 차였다. “첫 월급이 나왔어”라고 기쁜 듯이 말하는 스승을, 정신차려보니 나쁜 길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걸 불리지않을래요”

유사이래, 인류가 끊임없이 잘못된 선택을 해온 것이 내기였다.

스승은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내가 지폐로 가득 찬 지갑을 보여주니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놀라울 정도로 운이 좋아서, 제법 돈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여러번 스승을 파칭코 가게로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넘어와 준적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할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돈이 될 만한 이야기에 끌렸다고 단순하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 복잡한 표정을 봐서는 다른 생각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하간 스승이 같이 와주기로 한 것에 나는 기뻐져서, 비장의 가게로 안내했다.

역 앞에서 조금 떨어져있지만 설치대수가 많은 것이 자랑인 대형가게로, 같은 체인점 중에서도 우량점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었다.



생초보인 스승에게 삼점방식의 구조(법률에 의해 일본 파칭코 가게에서 이뤄지는 영업 형태)같은 것을 설명하며 걸어가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스승이 장엄함마저 느끼게 하는 성과 같은 가게의 모습에 “너무 많이 버는 거 아냐”라고 미간을 찌푸려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마나 복권같은 공영 도박에 비해 공제율이 낮고, 발품파는 것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필사적으로 설득하자, “알았어, 알았다”라고 귀찮다는 듯이 입구로 발을 옮겼다.

자동문이 열리자 독특한 소음이 귀를 찔러온다.

나는 이것을 들으면 왠지 모를 투지가 불타오르지만 스승은 불쾌한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플로어를 잠시 동안 쳐다보다가, 카운터에서 영수증을 교환하는 손님이나 젯트 카운터에 대해 쭉 설명한 뒤에 나는 스승을 어떤 코너로 안내했다.

파칭코 슬롯이 설치되어있는 곳이다.

“파칭코는 안하는 거냐”라고 하기에 “지금은 이게 잘나갑니다”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원래 파칭코로 시작한 나였지만 요새는 파칭코 슬롯만 하고 있다. 규제완화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운이 좋을 때는 만장 이상의 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기종도 늘어나고 있다.

메달 1장을 20엔으로 교환한다면 하루에 20만 엔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두둑한 지갑도 그 덕분이었다.

그 중에서 고대 아즈텍 문명을 모티브로 한 기계가 마음에 들어 그것이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스승을 데리고 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손님이 많아서 두 사람이 연달아 앉을 수 없는 상태였다.

떨어져 있는 자리에서 초보인 스승 혼자 하게 할 수는 없으니, 잠시 기다렸지만 여전히 자리가 날 것 같지는 않았다.

이 빠진 것처럼 띄엄띄엄 비어있는 자리는 있지만, 그 주위의 손님이 모두 짠 것처럼 천엔짜리 지폐 다발을 메달투입구에 집어넣고 있어 금세 끝날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이게 잘나가는데, 자리가 안나네요”라고 내가 중얼거리자 스승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빈자리 사이를 차지하고 있는 손님에게 척척 걸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손님에게 뭔가 말을 걸어, 한 두마디 주고받다가 갑자기 그 스카쟝을 입은 젊은 청년에게 밀쳐져 넘어질 뻔 했다. 다시 기계를 향해 앉아 게임을 계속하는 청년이 뭔가 말을 내뱉자 스승이 돌아왔다. 화나 있었다.

“그 쪽한테 끝내달라고 하니까 혼났어”

나는 뿜었다. 초보의 발상은 대단해. 나라면 절대로 그렇게 못한다.

“그 사람이 끝내면 두 사람이서 온 사람도 같이 앉을 수 있는데, 매너가 없어”라고 투덜거리는 스승을 달랜다. 파칭코 슬롯에는 설정이라는 게 있어서, 라고 설명을 하고 있자 끝의 두 대가 연달아 비었다. 후딱 달려가 자리를 확보한다.

“그럼 할까요”

솔직히 어느 자리도 좋은 자리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일단 스승을 그나마 더 나은 자리에 앉히고 실전을 시작했다.

처음 천엔에서 스승은 제대로 된 그림이 갖춰지지 않아서 교환한 50장의 메달을 금세 날려버렸다.

“다 잃어버렸어”

그렇죠. 지금부터예요.

“그런가”

두 사람이 늘어앉아 틱틱 스톱 버튼을 눌러나간다.

“또 다 잃었어”

그렇군요.

일일이 시끄럽네, 라고 생각하면서도 돌고 있는 릴의 어디쯤을 노려서 버튼을 눌러야 좋은가 설명을 하고 있는데, 내 기계에 보너스 게임이 출현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얀 7의 그림이 두 개 나온 것을 흥분해서 말했다. 이번에는 스승이 시끄럽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1장의 메달을 투입하여 가운데, 우, 좌 순서로 버튼을 눌러 푸른 7 그림을 모았다. 빅 보너스다. 화려한 BGM과 함께 찰그랑찰그랑하고 밑받침으로 떨어지는 메달을 스승은 부럽다는 듯이 곁눈질하였다. 3백장정도 나오자 보너스가 끝나고, 거기에 더해 메달을 2백장 이상 획득할 수 있는 CT라고 하는 추가 게임으로 돌입이 가능하게 해주는 추첨 룰렛이 바로 시작되었다. 돌입확률은 1/2이다. 나는 잘되기를 기원하며 릴 하부 LED의 고속이동을 눈으로 쫓는다. CT에 돌입하고 나서 보너스 게임을 연속할 수 있는 것이 이 기계의 장점이며, 메달 대량 획득의 기폭제이다. 그러나 기대를 저버리고 룰렛은 꽝에 정지하여 기계의 음악도 없어졌다. 두 개의 그림을 모으고 마지막 하나를 보너스가 나올 때까지 유지하는 기술(順押しサボテン維持)을 스승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하고 낙담하자, 그 스승은 옆에서 풋하고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뭐가 잘 안되었다는 것만은 안 것 같다.

기계를 한 대 때리고 다시 한다.

그 뒤로 두 사람의 기계는 조용해졌고, 전혀 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1만엔을 날려버린 스승은 점점 기분이 나빠져서, 다른 기계를 슬쩍슬쩍 쳐다보기 시작했다.

“저 기계, 900회 이상 돌렸어. 슬슬 나올 때 아닌가. 옮길까”

데이터 카운터를 올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른 단어 때문에 뿜을 뻔했다. 그리고 웃음을 참으며 스승에게 속삭였다.

“그런 걸 오컬트라고 하는 거예요”

스승은 어리둥절해 했다. 뭔가 굉장히 웃기다.

결국 두 사람은 그 뒤로 한 번도 따지 못한 채, 각각 2만엔 이상을 날려버렸다. 처음에는 돈을 잃은 것에 화가 났지만 곧 스승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게를 나와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괜찮아. 공부도 된 것 같고”

이상하게 순순하다.

“그것보다....”라고 갑자기 진지한 얼굴이 되어 목소리를 낮춘다. “다른 기계 중에서 2000번 돌려도 따지 못한 게 있었는데, 그건 얼마정도 잃은 거냐.”

“7만엔 정도입니다.”

그 기계는 나도 신경이 쓰여서 돌아갈 때 데이터 카운터를 체크했지만, 1일 단위라고 해도 심하게 낮은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 대충 12, 13만 정도 잃은 거겠지. 그것을 설명한다. 

“계속 돈을 잃어 부채가 쌓여있는 사람에게는... 목숨에도 닿을 액수로군”

냉혹한 어조로 스승은 말했다.

“최근 돈을 따고 있는 것 같은데, 그만큼 따고 있다는 것은 그 이상으로 잃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당연한 거지만 파칭코, 파칭코 슬롯에 빠져있는 나같은 사람들은 형편 좋게 그것을 잊어버린다. 유쾌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당해 나는 입을 다물었다.

“도박성이 올라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 되면 될수록 고객 단가가 올라가 득을 보는 것은 가계 측이잖아. 그만큼 손님이 잃고 있다는 거겠지. 바보 같잖아.”

말하지 않아도 안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렇지만 일확천금을 손에 넣으면 또 한 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밤바람 부는 가게 밖을 걷고 있자니, 스승이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며 빠른 발로 왔던 길의 반대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뭔가를 느낀 것 같았다.

가게의 뒤편에 보통 사람들이 거의 지나가지 않는 작은 길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스승은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그 쪽으로 주저없이 향한다.

어둡다. 옆을 지나는 입체형 교차도로의 그림자에 가려 더 어두운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스승은 그 중간쯤에서 지면을 내려다보며, 멈췄다.



나도 나란히 서서 그 쪽을 보았다. 어두워서 잘은 안보이지만 검은 얼룩이 아스팔트에 늘어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헉하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성벽같은 가게의 외벽이 시계를 덮어, 그 위에 있는 밤하늘조차 가려있었다.

위는 분명 주차장 옥상이다.

언제였던가, 최근 투신자살을 한 사람의 소문을 들었다. 가게에서 돈을 잃은 손님이 오전중인데도 옥상에서 이 좁은 도로에 몸을 던져서 죽었다고 한다.

여기가 그 장소인가. 이 얼룩은 씻겨 내려가지 않은 피인걸까.

싫은 것을 봐버린 나는 마음이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죽음을 선택한다고 하는 것은, 내기다.”

스승이 여기로 돌아섰다.

“아무리 빛때문에 옴짝달싹 못하더라도, 죽어버리면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라고 하는 무의식의 내기”

“내기”

잉꼬처럼 복창한다.

“그런 사람은 천국이나 저 세상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고싶다고 생각해서 죽는 걸까”

조금 생각했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파스칼의 내기라는 말이 있어”

라고 스승이 말했다.

신이 존재하는 쪽에 걸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걸 것인가라는 물음에 유명한 프랑스인 과학자, 파스칼은 이렇게 대답한다.

신의 존재에 걸면 이겼을 때 얻을 수 있는 축복이라는 이름의 기쁨은 무한대이고 졌을 때, 즉 사후가 허무라고한다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는 운명이다.

그에 대해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건다면 승리라는 것은 즉 사후의 허무를 인정하는 것이 되며, 패배라는 것은 축복이라고 하는 이름의 기쁨을 내다버리는 것과 같다.



신의 존재에 걸어 그에 들어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고통일지도 모르지만, 이기면 그것을 보상해주고도 남을 만큼의 행복을 얻을 수 있고, 만약 지더라도 그 고통은 사라진다.

존재 하지 않는 다는 것에 걸어 현세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한다면, 이겨도 그 이익은 허무 속에 사라져, 진다면 축복이라고 하는 영원의 행복을 잃게 된다.

그러니까 신이 존재하는 데 걸어야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듣고는 과학자다운 합리성이군,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삶의 방식’으로써 어느 쪽에 거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지. 그러나 ‘죽음의 방식’으로써는 어떨까.”

파스칼이 말하는 신이라는 것은 물론 기독교의 그것이겠지. 자살을 허용하지 않는 종교니까, 애초에 그 질문 자체가 넌센스인 기분이 든다.

“‘신’은 ‘사후의 세계’라고 바꿔도 좋겠지. 괴로움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하는 목적을 위해 자살은, 내기로써 합리적인가 아닌가.”

그 질문에 아까 스승이 말한 “그런 사람은 천국이나 저 세상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해서 죽는 걸까”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그러자 스승은 바로 그 말을 다시 반복했다. 조금 간격을 두고 계속 이야기한다.

“죽음에 대한 욕망은 좀 더 깊은 곳에서부터 온다고 생각해. 그건 저승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종교관이나 고유문화같은 배경보다 더 깊은 곳에서부터.”

그곳은 어디입니까.

나도 모르게 물어본다.

스승은 입을 연다.

우리들의 기억이 시작하기 전의 새카만 어둠속에서다.

...........

그 말을 들으며 왠지 삼반기관이 순간 기능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즉, 자살을 한다는 것은 사후의 세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소멸을 원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극단적인 논리라고 그 때는 생각하지 않았다. 매 번 매 번 잘도 스승의 말에 잘 넘어간다고 나중에 생각했다.

“그렇다, 그러니까 아까의 질문은 '소멸을 원하는 자살은 내기로써 합리적인가 아닌가'라고 치환할 수 있지.”

그 때 내 눈에는 스승의 등 뒤에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창백한 것을 보였다.

나와 마주하고 있는 스승의 뒤는 어두운 밤의 거리가 펼쳐져있기만 할 뿐일텐데, 명백히 무엇인가 흔들거리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등뒤에서 보였다 말았다 한다.

심장이 차가워진다.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기분 나쁜 귀울림이, 머리 안 쪽에서 울리기 시작한다.

스승의 뒤에는 아스팔트의 얼룩이 있었을 것이다. 조금은 사람의 형태를 띄고 있는 얼룩이.

이쪽을 보고 있는 스승의 귀 뒤로, 흐릿하게 남자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진 채로 흔들리며 이쪽을 흘끔 본다.

소멸을 원하는 자살은 내기로써 합리적인가 합리적이지 않은가, 이론을 늘어놓으며 고민할 필요같은 건 없었다.

내가 보고있는 것이 그 내기의 결과 그 자체니까.

그 중년 남자가 보여주는 창백한 얼굴는, 거기에다 어린아이가 울고 있는 듯한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마치 얼어 붙은 것처럼.

그 언밸런스함이 더욱 모독적으로 생각되어, 공포심과 함께 생리적 혐오감에 빠지게 한다.

스승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또, 입을 연다.

“우리들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때, 득실의 이론으로 따지지 않아. 왜냐하면 관찰의 결과가 그걸 대체하니까.”

스승 얼굴 뒤에 울고 있는 듯한 얼굴의 남자가 얼어붙은 채로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관찰한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을텐데.

스승은 조용히 말을 잇는다.

나는 그 말에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인다.

“최근 나는 의심하고 있어.'그것'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우리들이 죽은 이후'가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부터 우리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완전히 다른 무엇인가가 아닌가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바람이 불지 않는 밤공기에 녹아든다.

그 말은 지금 눈에 비치고 있는 창백하고 텅 빈 것에게 느끼는 것보다 훨씬 깊은, 원시적인 공포심이 존재하는 곳을 자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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