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도서관

레무이 2017. 1. 16. 19:18

대학 2학년일 때, 출석은 안 해도 레포트만 제출하면 최소한 pass는 시켜준다고 하는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좋아라하며 신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레포트 제출시기가 되면 “왜 이런 짓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라고 짜증이 났다. 최근의 대학생은 이런 건가라며 자기일이면서도 한심하다.

여하간, 언제인가 대학부속도서관에 참고자료를 찾으러 갔다.

ID카드로 지나갈 수 있는 게이트를 통과해, 어째서 모두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걸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학생이 붐비는 도서관을 어슬렁거렸다.

이렇게 어두웠던가.

문득 생각한다.

아니, 높은 천장에 달려있는 조명이 밝게 도서관 안을 비추고 있었다.

눈을 비빈다.

향토자료가 놓여있는 어느 부분만이 빛의 양이 이상하다. 묘하게 어두운 느낌이 든다. 위를 보아도 형광등이 꺼져있는 부분은 없다.

내가 고개를 갸웃한 그 때, 안경을 낀 남학생이 그 근방을 스쳐 지나갔다. 스윽, 하고 내 눈에 어두워 보이는 부분을 피해서.

전혀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자신도 왜 그런 움직임을 했는지, 1초 뒤에는 기억조차 나지 않겠지.

전혀 흥미 없는 향토사를 꺼내려고, 다가가 본다.

그 책장의 흐린 어두움에 오른 발을 넣은 순간, 엄청나게, 싫은 느낌이 들었다.

싫은 예감이라는 것은 분명 누구라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싫은 예감이, 뭐라고 해야 하나, 배아래 부근으로 천천히 내려오는 듯한 그런 감각. 그렇게 완강히 거절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건드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검지까지 걸쳐있던 두꺼운 장정의 책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다.

이건 뭘까.

나는 레포트를 쓰기위한 자료를 찾는 것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도서관 내부를 돌아 다녔다.

그리고 그런 에어포켓과 같은 장소를 몇 군데 찾아냈다.

멀리서 그런 장소를 관찰하고 있자니, 거기로 발을 디디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찾는 책이 거기 있으면 망설임 없이 다가가는 사람도 있지만, 단지 어떤 책이 있는지 돌아보려고만 하는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그 에어포켓을 피하고 있다.

그 장소에 있는 책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건 대체 무엇일까.

1학년 때는 느끼지 못했다.

나는 대학 입학 이후 오컬트 취향이 깊어져 여러 무서운 것에 고개를 들이민 결과, 명백히 영감이라고 할까, 특정 방면에 대한 인스피레이션이 높아져있었다.

그것이 원인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에어포켓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적인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은 한다. 그렇지만 단순하게 내 직감이 미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가장 싫은 것이 느껴지는 곳에 일부러 발을 디뎌 보았다.

주위의 눈도 있으니 적당히 잡아든 책을 펼쳐 그 장소에 계속 서있었다.

싫은 느낌을 구불구불한 소용돌이처럼 만든 것이 하반신에 무겁게 쌓여온다. 

점점 주변의 빛이 희박해지고, 산소가 부족할 때처럼 시계가 어두워지고, 그리고 바로 옆에 같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멈춰진 채로 멀어지는 것만 같은, 잡음이 사라져가는, 기압이 낮아지고 있는 듯한......

나도 모르게 뒤로 한발짝 물러섰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한 옆에 있던 사람이, 뭐냐는 듯한 얼굴로 여기를 보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솟아오른 식은 땀을 닦고서는 던지듯이 책을 책장에 꽂아놓고, 그대로 도서관을 나왔다.

다음날 서클의 선배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내가 계속 무서운 것에 관심을 가지게 한 장본인이며, 이상할정도로 스승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사람이다.

“아아, 구 도서관인가.”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거기는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말야.

그렇게 말하고는 내 얼굴을 정면에서 살펴보며 “관심 있어?”라고 물어온다.

없을 리가 있나.

그에게 이끌려서 저녁에 도서관의 게이트를 넘어섰다.

“저기인데요”

지나치려고 하는 스승에게 책장이 늘어서있는 한 곳을 가리켰다.

그것을 무시하듯이 빠른 발로 움직여서 어쩔 수 없이 쫓아갔다.

서고로 향하고 있다.

몇 번인가 들어가 본 적이 있지만 침침하고, 먼지 냄새가 나는 듯한 독특한 공기가 좋아지지 않는 장소였다.

더불어 서고에 있는 것과 같은 책은 느슨한 일반 학생들에게는 연이 없는 곳이다.

“타이밍이 중요하거든”

입구는 문이 닫히지만, 지금은 아직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스승은 서고에 들어가 나에게 곁눈질하며 어떤 장소에 몸을 숨겼다. 나도 똑같이 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긴장한다.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

스승이 목소리를 죽여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밤의 도서관에 일이 있는 것 같다. 경비원의 눈에 들키지 않기 위해 몸을 숨긴 것이다.



그런가.

서고는 도서관 자체가 닫히는 것보다 더 빨리 닫히니까...

오래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사람 이름으로 끝말잇기를 조금 한 다음 졸기 시작해, 금세 둘 다 잠이 들었다.

눈이 뜨여서야 만이 잘도 이런 불편한 자세로 잠이 왔구나 싶었다.

굳은 관절주변을 주물러 풀어주면서 옆에 있는 스승을 흔들자, “어디, 여기?”라고 잠꼬대를 하기에 질겁했지만, “농담이다”라고 바로 장난인지 변명인지를 하고 밖의 상태를 본다.

어둡다.

그리고 서고의 책장이 어두운 벽처럼 시야를 차단한다.

먼저 가버린 스승을 찾아 손으로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숨소리와 발소리도 죽이고 책의 산 속으로.

“아.”

스승에게 부딪혀 멈춘다.

어둠 속의 제스쳐에 따라 그 장소에 앉는다.

“그, 에어포켓 같다는 장소라는 게”

소곤소곤 말한다. 

“사람이 있기에 기분이 나쁜 장소라고해도, 영혼에게는 그렇지 않아. 오히려 영혼이 거기를 지나니까 사람은 피하고 싶어지는 거겠지.”

“혼길(霊道)이라는 건가요?”

목을 젓는 기척이 있다.

“길이라는 말은 딱 들어맞지 않는데. 어느 쪽에 가까우냐면 ‘구멍’. 그래. 구멍이야”

그런 말이 조용한 서고의 공기를 살짝 흔들리게 한다.

그리고 스승은 이 도서관이 세워져있는 장소에 예전 옛 일본군의 시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알고 있다. 대학 안에는 그것과 관련한 괴담 이야기가 많다.

“이 바로 아래에는, 거대한 구멍이 있어.”



파면 엄청난 것이 나올거야, 아마도.

그렇게 말하고 콩콩, 바닥을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그러니까 거기에 빨려들 듯이 옛날부터 이 도서관에는 영혼이 지나는 그런 구멍이 엄청나게 많은 거지.”

침묵이 있었다.

스승이 두드린 바닥을 훑는다. 오랜 시간 끝에 쌓인 먼지가 손가락 끝에 묻어났다.

문득 발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귀를 기울이자 먼 듯, 가까운 듯한 장소에서 확실히 누군가 발을 끄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일어나려고 하자, 스승이 그것을 손으로 제지한다.

그 소리가 등 뒤로부터 들리는가 싶더니, 오른쪽 정면 방향으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책장 저편을 들여다 볼 생각은 나지 않는다.

걸어다니는 듯한 기색이 이어진다.

그것도, 명백히 우리 두 사람이 있는 이 장소를 찾고 있다. 그건 알겠다.

이 한밤중 서고라는 장소에, 사람은 우리 두 사람 밖에 없다. 그것도 알겠다.

어금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듯한 조소가 들려, 스승의 방향을 쳐다보자 “저건 여기로는 못와”라는 속삭임이 돌아온다.

결계 같은 게 있는 걸까. 다도에서는 주인과 손님의 영역을 가르는 구분을 그렇게 말한다. 대나무나 나무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내가 최고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책으로 만드는 결계이다. 그리고 불교에서도 결계는 중을 범하는 속세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 결계이며 밀교에서는 확실히 마를 막기 위한 것을 그렇게 말한다. 결계를 펼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책으로 만드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스윽스윽.

구두가 상하로 마찰하는 듯한 그런 소리를 내며, 스승이 등 뒤에 있는 책장에서 한권의 책을 뽑아 들었다. 어두운 색상의 표지로, 타이틀은 읽을 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여기에 장치해놓은 책이야. 어떻게 하면 어울리는 장소에 어울리는 책을 놓을까 그것만을 연구하며 여기에 계속 드나들었지. 덕분에 도서관학에는 엄청난 지식을 익혔지만 말야. 교수를 속여서 기증하게 한다든가, 어떤 공간이 다음에 채워질까, 그것에 앞서 어느 책이 다음에 서고에 보내질까, 더 앞서서 그것에 영향을 주는 책이 과연 다음에 구입 될까. 계산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많아. 서고라고 해도, 슬쩍 바꿔 꼽아놓으면 어느 샌가  원상 복귀되어 있는 것도 있으니까. 아무리해도 수정이 되지 않을 때에는 뭐, 다소 비합법적인 수단도 사용했지...

발소리가 들어난다.

보폭이 다른 두 개의 소리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하며 주위를 돌고 있다.

한쪽은 화내고 있다.

한쪽은 슬퍼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대체 무엇이 여기에 오고 싶어 하는 그 두 개의 기척을 막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릿한 오랜 종이의 냄새가 떠도는 기류가 스쳐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시야가 좁아서, 앞이 암막을 친 것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서고의 구멍을 막았을 무렵부터, 흐름이 변한건지 밖의 구멍까지 벌레 먹은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어.”

이런 것까지 가능하다고. 기껏해야 책으로.

스승은 기쁜 듯이 그렇게 말했다.

지금 이야기에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지만 왜 이런 걸 했나요라는 질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것도 가능한 거라고, 기껏해야 책으로”라는 거짓뿐인 대답만이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계속해서 발소리가 주위를 돌기만 했다.

그 수가 늘었다 줄었다하면서 화남과 슬픔의 기척이 커지며, 공기를 메운다.

피부를 찌르는 듯한 긴장감이 덮쳐온다. 나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방어벽에 모든 것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언젠가 “그 정도 해두지”라는 사람이 아닌 것의 목소리가, 내 귀를 통해 인간의 룰의 종료를 알릴 것 같아서, 양손으로 귀도 막았다.

더 이상 막을 것이 없는 걸까라고 생각한 순간, 내 안에서 정체를 모를 감각기관이 발의 한참 아래에 있는 무엇인가를 알아챘다. 거대한 구멍의 이미지. 스승이 말하는 ‘구멍’을 ‘혼길’로 바꿔 말한다면, 아래를 향하는 ‘혼길’같은게 존재해도 괜찮은 걸까.

이 감각을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걸까.

떨면서 아침을 기다렸다.


그 서고도 이제는 출입금지가 되어있는 것 같다.

소방법이 어떻다하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진짜는 어떤지 모르겠다.

스승이 사서를 하고 있던 시기와 무엇인가 관계가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과연 어떨지

'퍼온 괴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승시리즈 - 뛰다  (0) 2017.01.16
스승시리즈 - 자동문  (0) 2017.01.16
스승시리즈 - 무덤  (0) 2017.01.16
스승시리즈 - 내기  (0) 2017.01.16
스승시리즈 - 멍석말이 이야기 (3/3)  (0) 2017.01.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