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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뛰다

레무이 2017. 1. 16. 19:20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제법 영감이 강한 편이어서 이런저런 이상한 것들을 보는 일이 자주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 나 이상으로 영감이 강한 사람을 만나 여기저기 같이 돌아다니다보니 이전보다 더 이상한 체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


영감이라는 것은 보다 강한 것에 다가가면 공진 현상을 일으키는 걸까.


언젠가 나는 스승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이 자기 머리에 손가락을 대며 “길이 생기는 거야”라고 말한 것을 떠올린다.


 


대학 2학년 여름.


그 때 나는 스승에게 소개받아 어떤 병원에서 사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사람의 죽음을 안 간호사가 죽은 자의 일부를 몸에 단 채 걸어 다니고 있는 것을 몇 번이고 보았다. 영안실 앞을 지나갈 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말을 걸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나에게 들은 스승은 만족스럽게 “그것 큰일이네”라고 말하고 잠시간 생각을 하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나싶더니 “게임을 하지 않을래”라고 고개를 들었다.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은 명백했지만, 승낙했다.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좋은 꼴은 보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다.


그렇지만 그 때, 그런 것이 내 전부였다.


심야.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승과 함께 대학 구내에 왔다.


평일에도 거의 오지 않는 불성실한 학생이었던 나는, 검게 우뚝 솟은 밤의 학사 안을 누비며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에 묘한 고양감을 느끼고 있었다.



별로 밤이라고 해서 학교 내를 돌아다니는 것이 금지된 것도 아니고, 학사에 따라서는 연구실 같은 방 창문에 아직 불빛이 켜져 있는 곳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곳에서 사람과 마주친다면 어색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말도 하지 않고 발소리도 죽이며 걸어간다.


곧 스승은 한 건물 아래에서 발을 멈췄다.


별로 와본 적이 없는 타학부의 구역이며 대체 무슨 학사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스승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건물 뒤로 돌아갔다. 1충 어둠 속에서 바스락 바스락 뭔가 하고 있나 싶더니 덜컥덜컥 마른 소리와 함께 창문이 하나 열렸다.


스승은 마치 콩트의 스파이처럼 일부러,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왠지 웃겼다.


우리 학부동에도 이런 샛길이 있었다. 대대로부터 선배에게서 이어지는, 밤전용 진입로.


모두 똑같구나, 라고 생각하며 스승에 이어 창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쉿-’이라고 속삭이며, 스승은 어둠속을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복도건 뭐건 전부 새카매서, 멀리 보이는 비상구의 녹색이 더 초조한 기분이 느끼게 만든다.


계단을 몇 번 올라가, 작은 문 앞에 선다.


열자마자 순간 밤바람이 얼굴에 불어왔다.


옥상에 나왔다.


별이 가득히 빛나는 밤이었다.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다. 단지 바람만이 불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학생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네요.”


그런 내 말이 별로 와닿지 않는지 스승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옥상의 펜스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나는 묘하게 들떠서 그 근처를 뛰어다녔다.


여기에 몇 사람이 더 있어서, 농구라도 할 수 있으면 완벽할텐데라고 생각했다.


“잠깐 거기서 점프해봐”


어느 새인가 벽에 기대듯 앉아있는 스승이 그렇게 말했다.



말한대로, 제자리 뛰기의 요령으로 점프한다.


게임인지 뭔지가 시작한 것 같다.


나는 흥분된 텐션으로, 계속해서 뛰어올랐다.


어이어이, 이제 되었어. 되었다고.


쓴 웃음을 짓는 스승에게 제지당해, 다음에는“이번에는 눈을 감고 뛰어봐”라고 지시를 받았다.


눈을 감는다.


뛴다.


착지하는 순간 밸런스가 무너질 뻔해서 그대로 주저 앉았다.


“그래그래, 그런 느낌으로 지면에 닫는 순간 몸을 움츠려서 가능한 한 떠있는 시간을 길게해봐.”


몇 번이고 그런 방법으로 뛰었다.


그 다음 지시에는 놀랐다.


학사 건물 가장자리에 서라고 하는 것이었다.


낙하방지용 펜스가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 앞에 서게되었다.


물론 밑은 나락의 구렁텅이다.


“그럼, 눈을 감은 채로 거기서 뛰어봐.”


가장자리에 서니, 제자리 뛰기도 무섭다. 조금이라도 밸런스가 무너지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런 내 주저를 눈치챘는지 “뒤로 뛰어도 좋으니까"라고 스승이 말했다.


그런거라면, 뭐 못할 것도 없다.


밤을 잘라놓은 듯한 학사의 가장자리 앞에 서서, 눈을 감는다. 눈을 감는 순간 무릎이 휘청했다. 수십 센티 앞에 절벽이 있다. 생각하지않으려고 해도, 상상해버린다. 그럼에도 이 불가사의한 게임을 즐길 여유는 있었다.


반동을 붙여, 기합을 지르며 뒤쪽으로 뛰었다. 착지해서,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다시 한 번”이라는 말에 따른다.



5번 반복하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돌풍이 불지 않는 한 떨어질 일도 없고, 오늘은 바람이 불어봤자 미풍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스승이 “다음은 어렵다고”라고 말했다.


그 곳에서 눈을 감은채 몸을 회전시켜 방향을 모르게 해라, 라고 하는 것이다.


죽일 셈인가.


내가 그렇게 지적하기 전에 “뛰기 전에 말해줄 테니까”라고 말해왔다.


“그렇게 가장자리에 서서 도는게 무서우면, 앉은 채로 돌아도 좋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뭘 시킬 셈인거지.


그래도 시키는 대로 했다. 아직 브레이크를 밟기에는 이르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가장자리 앞에 앉아 눈을 감은채로 그 장소에서 빙글빙글 돈다. 무서워서 양손으로 지면을 만지면서.


열 번 정도 회전하니, 완전히 방향을 알수 없게 되었다.


대체 절벽이 어느 방향에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꽉 쥐어짜는 것처럼 불안해졌다. 앉은 채인데도 발밑이 지금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불안정감.


눈을 뜨고싶다


그런 충동과 싸웠다.


겨우 그것을 물리치고는 조심스럽게 일어 선다.


언제부터인가 바람이 멈춰 있다. 낮이라면 눈을 감고 있어도 느껴지는 태양이 지금 여기에는 없다.


정말 방향을 모르겠다.


방향은 모르지만 몇 걸음 앞에는 확실히 사람의 목숨을 저 세상으로 끌어들이는 절벽이 있다. 서있는 것만으로도 다룰 수 없는 만큼의 공포심이 덮쳐온다.


앉을까.


그 유혹에 질 것 같아졌을 때, 스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았어, 여기다. 뛰어라.”


확실히 그 목소리는 앞에서 들렸다. 거의 바로 정면.


그 순간에 우도 좌도 없는 암흑의 세계에서 내가 있을 좌표가 결정된 것 같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떨고 있는 무릎을 뻗는다.


이거라면 괜찮아.


눈을 감은 채로 몸을 가라앉혀, 앞으로 뛰기 위한 힘을 축적한다.


그 때,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어둠을 잘라낸 듯한 절벽의 저편.


스승이 허공에 둥둥 떠서 비웃고 있다.


바보인가.


그 악몽과 같은 이미지를 머리에서 떨쳐내려고 한다.


정면이다. 바로 정면으로 뛰어내리면, 아무 일도 없다.


자기 암시를 걸며, 나는 이를 꽉 깨물고 암흑 속으로 도약했다.


하얀 선으로 뇌리에 그림을 그린다.


나는 스승이 있는 방향으로 수십센티 뛰어, 결국 옥상의 콘크리트에 발부터 떨어진다.


그 하얀 선으로 그려진 지면에 이미지한 내가 착지하였을 때, 실제 발에는 아직 착지의 충격이 없었다.


순간.


하얀 선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사라지며, 거대한 구멍같은 낭떠러지가 발 아래에 크게 입을 열었다.


공황이 전신에 퍼지기 전에 하반신에 충격이 왔다.


착지.


무릎이 닿고, 양손이 닿는다.


눈을 뜨자, 스승이 철학자같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지금, 떨어지는 게 느리게 느껴졌지.”



나는 뇌 안을 훔쳐보인 것 같은 나쁜 기분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고개를 끄덕인다.


“죽기 직전에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는 말 들은 적이 있겠지. 시간의 흐름이라는 건 두개골이라고 하는 밀실에 갇혀있는 뇌에게는 상대적인 것이야. 극한의 집중을 하고 있으면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지. 이것도, 프로스포츠 세계를 예로 들지않아도 이해되겠지.”


말하려는 건 알겠다.


공포심 또한, 집중의 요인인걸까.


“이 게임의 재미있는 점은 착지하는 타이밍이 원래 그것보다 빗나간 순간에, 옥상에서 낙하할 수 있다는 사태를 상기시키는 것에 있어. 그리고 살짝 늦어져 이미지가 아니라 진짜 자기자신이 착지하지. 불가피한 죽음으로부터의 생환. 이 콤마수초의 세계에 생과 사와 재생이 담겨있어”


담당하게 말하는 그 얼굴에는 기쁨과 어두움 같은 것이 혼재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다시 한번.”


말한 대로, 다시 눈을 감는다. 앉아서 빙글빙글 돈다. 일어선다.


“여기야”


오른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거기를 향해서 뛴다.


지면이 없다.


죽는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착지한다.


왠지 울고싶어졌다. 이런 게임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자기자신이 무서워진다.


바람은 멈춘 채였다.


“다시 한 번.”



아무도 없는 심야의 학사 옥상에서 두사람, 생과 사와 그리고 재생을 반복하고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하늘을 보고 누워,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데네브.


베가.


알타이르.


여름의 대삼각형이 일그러져, 흐릿하게 보인다.


스승의 얼굴이 그것과 겹쳐져, “다음이 마지막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꾸물꾸물 일어나, 옥상의 가장자리에 선다. 앉지 않아도 돌 수 있었다.


다시 세계는 암흑에 갖히고, 나는 위치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어둠을 가르는 한줄기의 빛같은 그 목소리를 기다린다.


......


말이 없다.


조용하다.


계속 기다려도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걸어보라는 것일까.


단 하나 밖에 없는 내 목숨을. 1/2에.


상상한다. 이대로 뛴다면, 상대적인 착지시간은 이전보다 훨씬 더 길어지겠지. 그것은 자유낙하 운동 방정식에서 의해 결론지어진 지상까지의 시간과 분명 같을 것이다. 아니, 혹시나 더 더 길고, 이 하찮은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을 정도의 긴 낙하가 될지도 모른다.


스승은 만약 지금 내가 절벽에 마주하고 서있다 하더라도 멈춰줄까. 답이 없는 것이 이대로 뛰어도 괜찮다고 하는 답 그 자체인 걸까.


실눈을 뜨고 싶은 충동이 덮쳐온다.



그렇지만 그것을 하면, 그 생과 사와 재생의 쾌감은 사라져버리겠지. 그 찰나의 시간은 저항할 수 없는 고혹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뛸까, 뛰어내리지 말까.


아무말도 없는 우주에서, 고독했다.


곧 시간이 지나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앞에 펼쳐진 풍경은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잊히지 않는 채로 있다.


 

결국, 아무리 영감이 높여져서 다른 세계를 훔쳐보는 것이 가능해도, 내가 닿을 수 있는 장소는 한계가 있다. 그 앞에는 밑바닥을 모르는 절벽이 있어, 그 너머에 펼쳐지는 세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다가갈 수 없다. 그것을 알았다.


그날 멍하게 서있던 나에게 “돌아가자”라고 말한 스승은 상냥하고, 차갑고, 그리고 어딘가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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