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행렬

레무이 2017. 1. 16. 19:23

스승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대학에 막 들어왔을 때 쯤, 학과의 선배들이 주최하는 신입환영회가 있었다.

역 근처에 있는 번화가에서 1차는 샤브샤브 뷔페. 2차는 OB가 하는 독일식 술집으로, 나는 맥주를 엄청나게 마셨다. 3차는 어디로 갔는지 기억도 않는다.

완전히 취해서, 또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하고 들떠있는 사람들에게서 어떻게든 도망쳤을 때는 밤 12시가 가까웠던 것 같다.

나처럼 취해서 걸어가고 있는 정장을 입은 남자와 그에 기대듯 안겨있는 여자, 길거리에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 부르는 대학생들로 보이는 무리, 전신주 밑에 앉아있는 젊은 사람의 등을 쓰다듬어주는 몇 명의 일행…… 

나는 이런 지극히도 평범한 번화가 풍경을 지나가 역 방향으로 향하여, 액체같이 형태가 흐늘 해진 다리를 질책하며 걸어갔다.

앞치마를 한 점원이 간판을 정리하고 있는 중화요리점의 앞에 접어들었던 때였다.

내가 가고 있는 길과 수직으로 교차하는 길이 눈앞에 있고, 그 십자로 위에 기묘한 것이 걷고 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가로등에 비춰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약간의 빛을 감싸고 있었다. 사람처럼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납작한 느낌이어서 얼굴이 있는 곳에는 눈과 코의 구별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 것이 몇 개이고 앞 쪽에 있는 길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빠져나간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금세 직감했다.

원래 다른 사람보다 영감이 강해서 유령과 같은 것은 자주 조우하는 일이 있지만 이렇게 길 한가운데서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흔치않았다.

천천히 십자로에 다가가자, 그 걷고 있는 무리가 행렬을 이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수는 10, 20 정도가 아니었다. 무수한 그림자가 흐릿하게 번화가의 밤 그림자에 떠오르며, 천천히 걷고 있다.

소름 돋는 광경이었다.

“혼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개미가 동료의 페로몬을 따라 같은 길을 행렬을 이뤄 가는 듯이, 무엇인가에 이끌려 방황하는 영혼들이 지나가는 길이다.

이런 번화가 한 가운데…… 

조심스럽게 십자로를 나와, 행렬이 향하는 방향을 살핀다.

어디론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지만, 길 건너 행렬의 선두와 같은 것이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행렬 중 이 쪽에 손을 뻗는 녀석이 있었다.

간발의 차로 그 손을 빠져나가 거리를 둔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불안정한 다리가 꺾일 뻔했다. 심장이 쿵쾅 거리고 있다.

이상할 정도로 길고 하얀 손이 파도치듯이 흔들리며 행렬로 돌아간다.。 

주변 사람은 아무도 그 광경을 보지 못한 것 같다. 행렬을 가르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고, 십자로에 접어든 사람도 아무렇지도 않은 움직임으로 좌우를 피해갔다.

원래 거기로 향하려던 사람인지, 그렇지 않으면 무의식에 혼길을 가르고 지나가지않도록 돌아가는 것인지…… 

그러던 중, 그들의 존재가 ‘보이고 있는’ 나에게 반응한 것이겠지.

그래도 행렬에서 떨어져 나와 이쪽으로 쫓아오려고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행렬을 쫓아 나아가는 것엔 저항할 수 없는 무엇인가있는 걸까.

자세를 바로잡고 길 중심을 지나가는 그들에게서 최대한 떨어지지 않은 채, 그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흐리게 빛나는 그들을 옆에서 보고 있자, 입고 있는 옷이 살짝 보인다든지, 무표정한 옆얼굴이나 부서져 열려있는 턱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끈적한 피, 좌측 어깨에 박혀있는 철골을 보고 있는 모습 같은 것이 잠깐 보였다.

확실히 모습이 보이는 것도 있고, 어둠에 사라져갈 것 같은 것도 있고, 그런 ‘모습’은 제각각 달라 일관적이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흐트러지지 않고 걸어가고 이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걸어가, 두 블록정도 지나서 그 선두를 따라잡았다.

그 때 본 광경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그 광경은 내가 평생 잊어버릴 수 없을 정도로 빛나고 있어, 다양한 순간에 수없이 떠오르는 것이 되었다.

불이 꺼진 약국 간판 앞에서 나도 모르게 서서, 그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혼길의 가장 선두에 있는 것은 여성이었다.

하얀 운동복 상하를 입고 주머니에 양손을 꼽아 넣고, 조금 굽은 등에, 노려보듯이 앞을 응시하며 걸어가고 있다.

그 모습은 분노를 품은 것처럼 하얗고, 눈은…… 

눈은 거기에 비치는 모든 것을 증오하고, 내버리고, 책망하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흥미를 상실한 듯한, 그런 색을 띄고 있었다.

짜증을 있는 대로 내며, 자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저주하면서 그녀는 걷고 있다.

그 뒤에 흐릿하게 빛나는 사자들의 행렬이 소리도 없이 이어진다.

나는 숨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장례 행렬과도 닮은 장엄한 진행은 한밤을 지나 광란도 식어가는 번화가의 밤 속으로 이어진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을 데리고, 그리고 그 것을 알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돌아보지도 않고 단지 앞만을 응시하며 그녀는 계속 걷는다. 대체 그녀는 무엇이기에, 마치 유아등(誘蛾燈)처럼 그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환상적인 광경에서 한발 나아가, 지나가려고 하는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저기……”

내밀려 했던 오른손이 허공을 맴돈다. 그녀는 발을 멈추려고 하지도 않고, 이쪽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단지 짧게 말했다.

“뒤에 줄서.”

그 다음 순간, 그녀는 지금 자기가 말한 것조차 잊어버린 듯, 표정도 바꾸지 않은 채 걸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인다.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이 이 세상의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전혀 상관없다. 그런 목소리였다. 그런 구별도 없고 단지 둘 다 똑같이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냉정하게 믿고 있는 듯한.

나는 그 목소리에 따를 뻔했다.

심층 의식의 어딘가에서 그녀에게 따르는 장례 행렬에 섞여, 의식을 잊어 버리고, 이성을 없애고 단지 맹목적으로 쫓아가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현실의 나는 눈앞을 지나가는 오싹한 행렬을 멍한 얼굴로 보내버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그녀의 옆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아니, 눈물이 아니었다. 왼쪽 눈 아래, 뺨 위 쪽 쯤에 살짝 빛나는 빛의 입자가 넘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람에 흐르는 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지면에 떨어지기 전에 사라져 간다. 그 입자의 흔적을 쫓아 무수한 사자들이 빛의 띠가 되어 나아간다. 조용한 강과 같다.

나는 그것에 시선을 빼앗긴다. 이 풍경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단을 갖지 못한 자신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정신이 들자 행렬은 가버리고 곧 다시 번화가의 시끄러움이 돌아왔다. 방금전까지의 이상한 공기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길을 횡단한다.

멀리서 손님을 불러들이려는 갈라진 목소리가 들린다. 끝나가는 밤의 잔재가 아스팔트 표면을 천천히 흘러간다. 정신을 차린 나는 우뚝 선 채로 왼쪽 눈 아래에 손가락을 댄다.

어디선가 그 사람을 다시 한 번 만나게 되는 걸까.

그런 예감이 들었다.

'퍼온 괴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승시리즈 - 인형 (2/3)  (0) 2017.01.16
스승시리즈 - 인형 (1/3)  (0) 2017.01.16
스승시리즈 - 데스 데이 파티  (0) 2017.01.16
스승시리즈 - 친구  (0) 2017.01.16
스승시리즈 - 뛰다  (0) 2017.01.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