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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괴담

스승시리즈 - 인형 (1/3)

레무이 2017. 1. 16. 19:24

인형에 얽힌 이야기를 하지.


대학 2학년의 봄이었다.

당시 다니고 있었던 지방 오컬트 포럼의 주요 멤버 중에 미캇치라고 하는 여성이 있었다. 유쾌하다고 해야하나 부산스러운 사람으로, 오프 모임에서는 늘 중심적 인물이 되어 놀고 있었는데, 그녀가 언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친구들과 합동전시회하고 있는데 보러 오지 않을래?”

대학 선배인 그녀는(캠퍼스 안에서 만난 적은 거의 없지만) 미술 과정을 다니고 있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아직 작품을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좋아요.”

라고 말하면서도, 문득 주위에 사람이 많다는 것이 신경쓰였다. 술집 오프 모임이 한창일 때, 어째서 나만 초대하는 것인가. 확실히 자주 오프에서 만나지만, 그 정도로 그녀와 친한 것도 아니었다. 포럼 주요 멤버 그룹의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자연히 만나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하는 정도이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틀림 없다고, 추측한다.

추궁하자, 바로 토해냈다.

“geko의 남자 친구를 데려와줘”라고 말하는 것이다.

geko라는 사람은 그 주요 그룹 안에서도 대보스같은 존재이며, 이상할 정도로 감이 좋은 점을 인정받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 남자친구라고 하는 건 내 오컬트의 스승이기도 한 기인이지만, 그 포럼에서 대해서는 “레벨이 달라”라고 비웃는 것 이외에는 참가한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는 컴퓨터따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 스승을 데려화달라는 건 대체 무슨 속셈인가.

“아니, 그 합동전시회 말이야, 장소를 5일간 계약해서 빌리고 있는데, 오늘이 3일째인데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림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갤러리의 아무도 없어야 할 곳에서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든가, 관객들도 기분이 갑자기 이상해진다든가 하는 것 같다.

“어제는 말이야, 끝나서 정리하려고 청소하고 있는데 말야, 바닥 위에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떨어져있는거야. 손님이라고 해도 우리들 친구 밖에 없는데, 대부분이 모두 머리 물들였거든. 선생이라든가 아저씨 손님들은 그렇게 머리 길지도 않고. 기분 나빠져서 말야.”

미캇치씨는 연기하는 듯한 움직임으로 무서워하는 몸동작을 하며, 어깨를 감싸안았다.

“이런 때 의지할 수 있는 geko는, 최근 왜인지 본가로 돌아가서 없고. 쿄스케도 도쿄로 나가버렸고.”

턱을 괸 채 중얼중얼 말한다.

“그러니까, 소문난 geko의 남친밖에 없다는 거야.”

미캇치씨는 스승과 직접 만나본 적은 없는 것 같았지만, 역시 소문은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소문인지는 상상도 안되지만.

“여하간 이거, 안내장. 내일 와줘. 나 내일은 아침부터 정오까지 당번이니까. 오후 전까지는 와줘.” 

제법 멋대로다. “내일은 평일인데요”라고 말하자 거의 수업 안나가잖아, 라고 정곡을 찔렸다.

다음날, 일단 스승을 끌어들였더니 “재밌어보이는데” 라고 어슬렁어슬렁 쫓아왔다.

두 사람이 안내장을 보면서 거리를 걷자, 도착한 곳은 오래된 아파트 옆에 있는 반지하에 조촐하게 차려져있는 갤러리였다.

밖으로 조금만 걸어나가면 아케이드 거리가 있어서, 평일 낮이라도 사람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데, 여기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안정되어있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학생처럼 보이는 숏 보브의 여성이 “어서오세요” 라고 웃으면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미캇치씨와 같은 미술 과정의 사람인걸까. 어두운 조명이 비추는 벽에는 크기가 다양한 그림이 걸려있었다.

“아, 정말 왔구나.”

불러 놓고서 정말이고 뭐고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미캇치씨가 갤러리 안쪽에서 나왔다. 그리고 스승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린다.

“우와, geko. 보여주지 않을 만하네……”

스승은 그것을 무시하고, 시선을 갤러리 안쪽으로 향하였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흥미없는 듯했는데 분위기가 조금 변해있었다.

“여기는 몇 명이서 빌린거지.”

스승의 질문에 미캇치씨는 “6명”이라고 답한다.

“과의 동기랑, 후배. 학생할인을 해주거든요, 여기.”

“그래서 자기들이 그린 그림을 기간 중에, 전시해두는 건가.”

“그래요. 그래서, 6명 순서대로 당번 정해서 손님 접대.”

흐음.

스승은 다시 한 번 쭉 둘러보았다.

“아, 그래그래. 나 범인으로 보이는 거 알아냈을지도. 여기여기”

미캇치씨는 우리들을 갤러리 안쪽 어느 한 구석으로 안내했다.

거기까지는 바구니에 담긴 과일같은 정물화 중심으로 전시 되어있었는데, 하나 명백히 다른 종류의 그림이 나타났다.

그것은 인행의 그림이었다.

전체적으로 푸르고 어두운 배경에, 일자단발을 한 인형의 그림이 마치 사람의 초상화처럼 그려져있었다. 명백히 인간을 데포르메 한 것이 아니라, 사실적 표현으로 척봐도 인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어있다. 흑발에 붉은 기모노. 그것들은 묘하게 더러운 느낌으로, 작은 액자 안에 담겨있었다.



“저기.”

라고 미캇치씨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기분 나쁜 그림이다. 이치마츠 인형이라고 하는 걸까. 귀여운 인형을 그린 그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왠지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을 가장해 거기에 있는 것 같은 혐오감을 느꼈다.

“이건 누가 그린 그림?”

“나.”

미캇치씨가 뒷머리를 일부러 긁는다.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모델이 있구나.”

“……친구가 가지고 있는 인형. 엄청 오래되었어. 조금 흥미가 있어서 그려본 건데.”

눈을 내리깐 어린 소녀의 통통한 얼굴이 기분나쁜 그림자를 머금고 있다. 가슴 부근에 묶여있는 옥색 띠가 사이사이 찢어져있어, 어딘가 가여워 보이는 행색이었다.

스승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림에 얼굴을 가까이대고 무엇인가 중얼대기 시작했다.

“역시 이거인가. 어떻게 할까. 제법 마음에 들었는데.”

“뭔가 사연이 있는 인형입니까.”

“있어. 엄청난 게. 그렇지만  이건 기껏해야 내가 그린 그림이라서,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말야.”

“그 사연이란거, 어떤 겁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스승이 얼굴을 떼고, 심각한 얼굴로 “반대야”라고 말했다.

“네?”라고 묻자,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아니”라고 머뭇거리며, 고개를 저으며 “역시, 잘 모르겠네. 이것이 원인이라고 해도, 단지 매개체에 지나지나 않아, 본체 쪽을 보고싶네.”라고 말한다.

미캇치씨는 “음~”이라고 말한 뒤, 씨익하고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서 말하기가 좀. 근처 찻집이라도 가서 이야기하지 않을래?‘



스승도 나도 끄덕인다. 미캇치씨는, 처음에는 촌댓말이었는데 어느 새인가 스승에게도 반말이다.

“아 그렇지만 교대 요원이 올 때까지 제법 시간이 남아있으니까, 그림이라도 보고있어.”

왔을 때는 우리밖에 없었는데, 어느새인가 다른 한 사람 초로의 남자가 와서 숏 보브의 여성이 응대하고 있었다.

나는 갤러리 한 가운데 서서, 눈을 감아보았다. 정신을 집중해서 위화감을 찾아보려한다.

그러자 역시, 인형의 그림이 있는 방향에서 뭔가 기분 나쁜 것이 느껴진다. 조명이 비추기 힘든 곳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 근방이 묘하게 어두운 것 같은 느낌이다.

“저기 미카, 친구야? 뭘 열심히 보고있었던 거야.”

숏 보브의 여성이 말을 걸었다.

“응. 인형 그림을 조금.”

“인형 그림?‘

고개를 갸웃거리는 여성에게, 미캇치씨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손을 저었다.

나와 스승은 일단 그림의 설명을 들으며 갤러리를 둘러 보았지만, 문외한의 눈에는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도 잘 모르겠다. 단지 모던한 느낌의 난해한 그림은 없었고, 생각보다 심플한 실사적인 작품이 많았다.

“봐봐 이거, 내가 모델.”같은 걸 말하며 나부의 그림을 가리키거나 하는, 텐션 높은 미캇치씨와는 다르게, 우리들은 그림 감상같은 것은 금세 질려버렸다.

특히 스승은 노골적이어서, 숏 보브 여성이 열심히 소개해주고 있는데 마음이 내키지않는 듯한 대답뿐. 그리고 조금 화난 듯이 여성이 “그림은 별로 좋아하지 않은 것 같네요”라고 말하자, 거기에 대해 생각도 하지 못한 대답을 했다.

“그림이라는 건, 말하자면 엄청나게 더럽혀진 종이잖아.”

아무 말도 못하는 여자에게, 다그치듯 말한다.

“보는 것 정도 밖에는 쓸모가 없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스승을, 이건 좀 곤란하다고 생각한 내가 강제로 잡아당겨 밖으로 나왔다. 미캇치씨에게는 “근처 찻집에 가있을 테니까”라고 말해놓았다.

시끌벅적하게 거슬리는 잡음들이 들려온다. 역시 저런 곳은 감상 중에 신경쓰이지않도록 방음이 잘되어있는 것이겠지.

나는 스승에게 추궁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는겁니까. 사람이 모처럼 그린 작품에.”

“별로 까내릴 생각은 없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걸 바보처럼 여기면 누구라도 화낼거예요.”

스승은 음~하면서 턱을 긁는다.

“오컬트가 훨씬 쓸모는 없잖아요.”

나는 자신에 대한 자학을 포함해 스승을 비난했다.

그러자 스승이 갑자기 먼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눈의 초첨을 흐리며 멍하니 옆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자, 이 쪽으로 천천히 돌아보며 말했다.

“쓸모없는 건, 사랑할 수 밖에 없잖아.”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발 밑의 주차금지 표식에 그림자가 떨어져내린다. 나는 순간 뭐라고 답해야할지 모르는 채로, 그저 그의 눈을 보고 있었다.

그 말은, 지금은 스승이 좋아하던 극작가의 말인 것을 알고 있다. 또는 장난으로 그런 말은 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그의 심층의식에서 흘러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화난다기보다는 질려버려서, 그런 말을 한심하다고 생각해, 뭐야 그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후로도 계속 잊지 못하였다.

찻집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며 30분 정도 기다리자 미캇치씨가 왔다.

“미안, 늦어져서.”라고 가벼운 태도로 자리에 앉았는데, 아까 스승이 막말한 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미캇치씨는 핫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나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 그림의 인형은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인 사람의 물건인데, 죽은 할머니가 준 엄청나게 오래된 거라더라.”

그 친구는 레이코라고해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사이인데, 최근 조금 상태가 이상했다고 했다. 언제 그녀의 집에 놀러가자, ‘뭔지 잘 모르겠지만 에도시대 정도의 일본 옷을 입은 여자가 몇 명있어서,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이 인형을 안고 앉아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자신은 그 인형을 안고 있는 여성의 환생이라고 말한 것 같았다. 들은 척 만 척 했더니 화내기 시작하고, 그 인형이 집에 있다고 말하며 어디선가 가져와 그것을 안으며 “그렇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진의 여성과 닮았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지만, 그런 이야기 자체가 싫은 건 아니니까 그런 것으로 해두었다. 거기에 그런 오래된 사진과 인형이 같이 아직도 현존하고 있다는 것에 묘한 감동을 느껴 “그림이 그리고싶어”라고 부탁했던 것 같았다.

“그 그림이 그건가.”

스승은 무엇인가 알아챈 것처럼 한 쪽 눈썹을 올렸다. 뭘 알아챘는지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

미캇치씨는 커피에 슈가 스틱을 녹여 넣으며, 흔치 않게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 뒤에 몇 일이 지나, 아, 한 3주전 인데, 그 레이코를 포함해 고등학교 친구들과 같이 온천여행을 갔는데.”

라고하며 말을 잠시 끊는다. 그 입술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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