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할아버지한테 들은 너구리 얘기.
그때는 오래전이라서 건너마을까지 장을 보러 나가 고개를 넘어 지름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게다가 총은 물론 산칼도 가지고 있지 않았어.
마을에는 무려 비녀를 사러 갔다는 일이었다.
딸(나에게는 엄마)에게 주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이것은 미심쩍은 이야기였다.
바람을 많이 피워서 할머니를 울렸다는 얘기도 들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옛날 사람들은 하루종일 걸어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던 모양이야.
할아버지가 등불을 켜고 숲 속을 걷다 보니 어느새 길 앞에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아가씨 같았다.
이렇게 늦은 밤에 젊은 여자가 혼자 걷고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니까,
할아버지는 "하하, 너구리나 여우겠지"라고 금방 짐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재미있어져서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는지 봐주기로 했어.
홀려서 장난치러 나온 것이겠지만, 밤길의 심심풀이로 거꾸로 혼내 주려고 생각한 모양이다.
걸음을 재촉해 아가씨를 따라 옆으로 나가자 아가씨는 왠지 손에 바람개비를 들고 있었다.
아가씨가 할아버지 쪽을 보고 말을 걸어올 때에는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밤길은 불안하기 때문에 동행해 주시면 든든하겠습니다." 같은 말을 했다고.
할아버지는 "좋아요."라고 대답하고 잠시 나란히 걸었다.
그러던 중 아가씨가 할아버지에게 "칼은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지 않아요."라고 대답하자 아가씨는 마음이 없는 듯 웃으며,
"이 바람개비 동생 주려고 사왔는데, 잘 돌지 않아서. 좀 봐주시겠어요?" 하고 부탁해 왔다.
멈춰 서서 할아버지가 바람개비를 잡으려 했지만 아가씨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가씨가 할아버지의 얼굴에 바람개비를 들이대자 빙글빙글 돌았고, 그것을 보는 사이에 머리가 멍해졌다.
할아버지는 "이것은 안 된다, 홀려버린다."라고 생각하고,
품에 넣은 비녀는 종이에 싸여 있었지만, 끝방향으로 그대로 자신의 허벅지 부근을 찔렀다.
그 아픔으로 정신을 차린 할아버지는 손을 뻗어 확 바람개비를 잡으셨다고 한다.
"삐익-" 소리가 나고 할아버지 손에는 너구리 꼬리가 쥐어져 있었어. 아직 젊은 암컷 너구리였다고.
할아버지는 "내 눈을 홀리려고 해봐야 그렇게는 안된다. 네 눈을 홀리게 해주마."
그러면서 두세 번 너구리를 휘둘러 돌려서는 길 가의 덤불에 던져버린 거야.
부스럭대며 도망가는 소리가 났대.
할아버지는 혼자서 크게 웃다가 걸음을 재촉해서 마을로 들어갔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이 다 되어 있었어.
그런데 품에서 종이 꾸러미를 꺼내 열어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어.
어느새 붉은 산호 장식의 비녀가 정성스럽게 나무열매를 매달아 둔 나뭇가지로 변해 있었다는 것.
"이야, 이건 당했다. 처음부터 이걸 노렸구나.
그건 그렇고 교활했구나. 너도 기억해라.
너구리는 자기 꼬리를 돌려 사람을 홀리려고 하잖니.
그런데 내가 술 같은걸 안마셔서 이 정도로 끝난거야.
술 좋아하는 놈은 더 호되게 당했어."
이렇게 말씀해주셨어.
할아버지도 나이가 드셔서 산을 넘지 않게 된 후로는 술을 마시게 되었고, 얼마 후에 뇌졸중으로 돌아가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