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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괴담

[1280th] 멈춰버린다

레무이 2023. 1. 24. 19:06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얘기.
그 선생님은 30대의 어른스러운 느낌의 선생님이셨는데 좀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가끔 멈춘다는 것.

수업 중에도 딱 멈춰버려서 움직이지 않게 된다.
대략 30초 정도, 길게는 2분 정도 멈춘 뒤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뭐 실제로 해가 되지도 않고, 학생들도 이상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인상이었다.

어느 날 나와 친구 둘이서 쉬는 시간 놀다가 실수로 선생님 책상의 꽃병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행이라고 할까 꽃병은 가장자리만 살짝 깨졌기 때문에 접착제로 붙여 그대로 제자리에 놓았다.
다음 수업 중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낭독시키고 자신은 교실 안을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꽃병 앞에 왔을 때 선생님이 멈췄다.
나와 친구들은 움찔했다.

2분 정도 멈춘 뒤 선생님은 "아아" 하고 작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선생님은 아무래도 위화감을 느끼면 멈춰 생각에 잠기는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나와 친구들은 재미있어 하며 교실에 의미없는 버그를 설치하게 되었다.
게시물의 압정을 한 곳만 떼어내거나 2개의 쓰레기통의 쓰레기를 한쪽에 집중시키는 등.
행동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선생님이 멈추는지 여부가 우리 관심의 대상이었다.
원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의 멈춤 빈도였지만,
우리가 버그를 설치하게 된 후에는 하루에 두세 번은 멈추게 되어 있었다.

태풍이 지나간 후였으니까 아마 7월이나 9월 정도일거다.
나와 친구들은 비가 많이 온 후에 강에 놀러가서 보물찾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낯선 인형을 주웠다.
얼굴이 밋밋한 인형에 도화지를 오려 만든 눈과 코와 기모노를 풀로 붙인 인형.
우리는 모래투성이의 그 인형을 강에서 씻어냈다.
다음날 아침 아무도 없는 교실에 제일 먼저 등교해서 칠판 옆 선생님 전용 사물함에 그 인형을 넣어두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는 동관과 서관이 있으며,
동관에는 1~4학년까지의 교실과 교무실이, 서관에는 5~6학년까지의 교실과 특별 교실이 들어서 있었다.
즉, 우리 교실에서는 교무실이 훤히 보였다.
직원 회의가 끝나고 교무실을 나와 복도를 지나는 것까지는 확인했다.
하지만 평소 같으면 2분 정도면 선생님이 교실에 오실 텐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30분쯤 지나서 교감선생님이 찾아왔고 담임선생님은 병결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다시는 학교에 오지 않고 그만두셨다.

사람들에게 들은 바로는 갑자기 교장실에 와서
"이런 곳에서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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