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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괴담

[76th] 낡은 자동차

레무이 2017. 2. 2. 19:27

어느 날 해질 무렵, 나는 대학 수업을 마치고 자가용으로 귀가하는 중이었다.



입학하고 얼마 안되어서부터 나는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로 통학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에도 그땐 편했다.


당시에는 일찍 집에 돌아갈 길을 찾기위해 매일 다른 길을 선택해서 시간을 확인해가며 귀가했다.



도로가 퇴근하는 차량으로 정체되어버려서. 나는 그걸 피하기 위해 좁은 길로 들어갔다.


그날 들어간 길은 민영철도 연선의 구 도로. 한가로운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자동차끼리 엇갈리는데 빠듯한 정도의 도로 폭은 경차를 타는 나라도 조금 좁다고 생각했다.


문득 울리는 열차의 건널목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


차단기가 올라가고 난 늦어진 시간을 신경쓰면서 가속 페달을 밟았다.


 


거기에서 불과 200미터 쯤 갔을까.


나는 오래된 가옥 앞에서 세월의 깊이가 엿보이는 군청색의 차를 발견했다.



예전의 프리우스와 같이 차체 높이가 낮은 차량이었다.


구입 당시에는 고급차 였을 것이지만, 진흙이나 그을음 투성이가되어 한동안 달린적은 없어 보였다.


'닦아주면 멋진 자동차일텐데 아깝다'고 생각한 순간의 일이었다.



점차 그 차에 다가가자, 비상등이 깜박였다.



일반 리모컨 키 도어 잠금을 걸면 비상등 점멸 1회, 잠금 해제라면 2회 점멸할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의 램프는 3번 깜박였다.



사람이 타고 있는건가?


아니, 그렇다고 치기엔 얼룩이나 차체의 외관이 너무 지저분했다. 휠과 머플러도 녹슬어있다.



그 낡은 차 안에 누군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브레이크를 밟아 서행했다.


들리는 것은 밖에서 바람 부는 소리와 내 차량의 엔진 소리뿐.


주변은 서서히 땅거미에 물들어 검붉은 하늘이 감싸오고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분위기가 내 심박수를 높여왔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변의 고요함이 내 공포감을 고조시켰다.


낡은 자동차의 유리창은 더럽고 얼룩져 있었지만, 안쪽의 모습은 보였다.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비상등이 깜박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차안에 돌연 창백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뒤로 내가 어떻게 귀가했는지, 어떻게 그 자리를 떠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떠오른 얼굴은 그 자동차의 주인이었을까.


어쩌면 나에게 뭔가를 전하려고 했던걸까.



그 후 여러 번 같은 길을 지나가봤지만, 그 낡은 자동차를 다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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