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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괴담

[169th] 자살을 생각했을 때

레무이 2017. 3. 15. 23:47

작지만 부부가 힘을 모아 방범 설비 회사를 시작해서 8년정도 지난 무렵,


지방 은행의 대규모 대출도 심사를 통과해서 순조롭게 이익을 늘리고있는 가운데, 전무 이사를 맡고있던 아내가 사고사했다.


그 시기에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기에, 나도 잘못인줄 알면서도 약속을 임의로 취소하고 아내의 불단 앞에 앉아서 하루를 보내는 등,


어느새 전형적인 쓰레기 인간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사업 계획서대로 되지 않는 대출은 중단, 사무실도 방치 한 채로 한 달을 방구석폐인,


머리가 냉정하게 된 시점에는 이미 그때까지 받은 대출의 상환이나 사업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 아 이제 자살밖엔 없구나... 생각했다.



멋대로 자라난 수염도 그대로, 가정용품점에 가서 가장 굵은 호랑이 로프를 구입해서 집에 갔고, 천장의 팬에 묶은 뒤 서양식 의자 위에 올라 섰다.


목에 밧줄을 두르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두려움 같은건 없었고, 의자를 발로 차버리면 바로 죽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는데,


주마등이라거나 자살하려면 각오가 필요하다던가, 그러한 지식은 그저 픽션이었구나··· 그런걸 멍하니 생각했다.



슬슬 죽으려고 다시 발 밑의 의자를 보려고 했는데, 그 앞에 뭔가 있는 것을 눈치챘다.



3등신 정도의 그것은 기름진 긴 머리를 늘어 뜨리고 있었고, 머리 사이로 보이는 핏발이 선 둥근 눈을 하고있었다.


입은 섬뜩하게도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내가 서있는 의자를 보고있는 것 같았는데, '빨리 걷어차!' 라는 의도를 확실하게 느꼈다.


무심코 입을 벌리고 바라보고 있으니, 나의 시선을 눈치 챈 듯이 눈을 마주쳐왔다.


저쪽도 상당히 놀란 모양으로 입가가 조금 아래로 떨어졌다가, 바로 히죽히죽 하는 입으로,



"죽으면 아이는 가져도 돼?"



라고, 중년 아저씨의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상황에 대해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순간적으로 "죽지 않아." 하고 말했는데, 그 순간 내가 하고있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달았다.


나에게는 아직 5살짜리 딸이 있고, 아내가 죽은 이후 떠넘기는 모양으로 장모님 댁에 방치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 달만에 처음으로 떠올렸다.



즉시 로프를 목에서 풀고 의자에서 내려갔는데,


그 녀석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확실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대로 아내의 친정에 가서 무릎을 꿇고 딸을 안아. 딸도 장인어른 내외도 울며 용서해 주었다.



지금은 빚을 갚으면서 딸을 키우고, 영업직으로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저런 원인 모를 놈은 어딘가에서, 나와 나의 딸을 노리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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